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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장 1-7절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용납하라
1. 지난번 14장에서, 바울 사도는 성숙한 믿음을 가진 자유주의 성도들에게 연약한 믿음을 가진 율법주의 성도들을 넘어지게 말고 잘 보살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5장에서도 계속 그 주제로 성숙한 성도들에게 연약한 성도들을 인내와 위로로 잘 보살피라고 말씀합니다.
2. 이처럼 강한 성도가 약한 성도를 용납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3. 그래서, 오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용납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4.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4절. 강한 성도가 자기 맘대로 살지 않고, 연약한 성도의 약점을 담당하라.
5-7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인내와 위로의 정신으로 연약한 성도를 보살피라.
1-4절. 강한 성도가 자기 맘대로 살지 말고, 연약한 성도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합니다.
1절.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e who are strong ought to bear the weaknesses of those without strength and not just please ourselves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Ὀφείλομεν δὲ, ἡμεῖς οἱ δυνατοὶ, τὰ ἀσθενήματα τῶν ἀδυνάτων βαστάζειν,
We ought now, we who strong, the weaknesses of the weak to bear
‘마땅히 — 담당하고’(Ὀφείλομεν--βαστάζειν)에서 앞의 동사(Ὀφείλομεν)는 현재형이고(we ought), 뒤의 동사(βαστάζειν)는 부정사형 동사(to bear)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καὶ μὴ ἑαυτοῖς ἀρέσκειν.
and not ourselves to please
‘기쁘게’(ἀρέσκειν)는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please).
1. 바울 사도는 참으로 자상한 목회자였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라도 상처를 입을까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8-29절에서, 바울 사도는 고난 목록을 27가지나 죽 나열한 후에, <이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 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바울 사도는 같은 주제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면서 그 말씀을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빌립보서 3:1.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주라>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는 말씀은 <교회의 화평>과 <성도들의 양육>을 위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화평>하고, <용납>하기만 하면, 교회 성장, 성도의 신앙성장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맙니다.
2. 세상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비정한 원리가 통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합니다.
3. <마땅히>란 말씀은, 교회의 원리가 반드시 <강자가 약자를 돌보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4. <담당하라>는 말씀은 갈라디아서 6장 2절 말씀대로 <짐을 지라>는 뜻입니다.
약자가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앞으로 가지 못할 때, 강한 성도가 그 짐을 조금 덜어서 지고 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연약한 성도가 음식 하나 마음대로 못 먹고 힘들어할 때, 강한 성도가 그 짐을 지고 함께 음식을 안 먹어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친히 모범을 보이신 교훈입니다.
그래서 3-5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이신 <섬김의 본>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강한 권사님, 집사님, 장로님들이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잘 돌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교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47장 2절>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합소서
2절.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Each of us is to please his neighbor for his good, to his edification.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ἕκαστος ἡμῶν τῷ πλησίον ἀρεσκέτω
Each of us the neighbor let please,
직역하면, ‘우리 각자는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뜻입니다.
‘기쁘게 하되’(ἀρεσκέτω)는 현재 명령형으로서 ‘기쁘게 하라’입니다(let please).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εἰς τὸ ἀγαθὸν πρὸς οἰκοδομήν·
onto the good, for edification
동사는 없지만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덕을 세우도록’(πρὸς οἰκοδομήν,for edification)에서 명사(οἰκοδομήν)의 원형(οἰκοδομή)은 원래 ‘세우는 것, 세우는 행동’(a building, the act of building)을 가리키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진보, 덕을 세우는 것’( spiritual advancement, edification)을 가리킵니다.
1. 이웃을 기쁘게 한다고 해서, 이웃의 육신적 향락을 부추기는 일은 오히려 신앙적으로 해를 끼치는 일입니다.
분문에서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웃 성도의 <영적 유익과 성장을 위해서 도와주라>는 말씀입니다.
2. <선을 이루고>
14장 6절 말씀대로, 믿음이 강한 성도는 이미 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믿음이 연약한 성도>는 <강하고 자유한 성도의 선행을 비방한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는 고기를 못 먹는데, 자유한 성도가 고기 먹는 것을 비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선>이란 <율법에서의 자유>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10:4.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느니라
로마서 7:6.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제는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찌라.
그러므로, <선을 이루는 것>은 연약한 율법주의 성도가 율법에서 자유하여, 강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도록(베드로전서 2:2) 자라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연약한 성도를 도와준다고 해서,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이 약한 성도를 잘 가르쳐서 믿음이 장성한 성도로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다 장성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이 말씀도 반복법으로써, <강한 성도와 약한 성도간의 협력과 화목을 통해서, 약한 성도가 성장하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4절에서는 <인내와 위로, 소망>이란 단어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즉, 약자를 도와주려면, 오래 참고 성질을 안 내야 합니다.
그리고, 강자는 약자를 위로하면서, 잘 따독거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차 약한 성도가 장성한 성도가 될 것을 소망하면서, 희망을 가지고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와 안위와 소망을 가지고 연약한 성도를 잘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약한 성도가 점점 더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even Christ did not please Himself; but as it is written, "THE REPROACHES OF THOSE WHO REPROACHED YOU FELL ON ME."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 For even the Messiah did not please Himself. On the contrary, as it is written, The insults of those who insult You have fallen on Me.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καὶ γὰρ ὁ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ῷ ἤρεσεν·
even for the Christ not Himself pleased
‘기쁘게 하지 아니 하셨나니’(οὐχ ἤρεσεν)에서 동사(ἤρεσεν)는 부정과거로서(pleased) 그리스도께서 단호하고 확실하게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기록된바
ἀλλὰ καθὼς γέγραπται
but as it has been written
직역하면 ‘기록된 것과 같이’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γέγραπται)는 완료 수동태입니다(it has been written).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Οἱ ὀνειδισμοὶ τῶν ὀνειδιζόντων σε ἐπέπεσαν ἐπ’ ἐμέ.
the reproaches of those reproaching You fell of Me
직역하면 ‘당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들이 나에게 떨어졌나이다’란 뜻입니다.
‘미쳤나이다’(ἐπέπεσαν)란 동사는 부정과거형으로서(fell) 과거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
이사야 53장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도다.
우리 주님은 묵묵히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무거운 죄 짐을 들고, 오래 참고 계시다가, 자기 아들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롬 3: 25).
이처럼, 만왕의 왕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에게 희생과 사랑을 보여주셨다면, 우리 강한 성도들도 마땅히 연약한 성도들을 섬기고, 자기를 기쁘게 아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예수님처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교회 천국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47장>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4절.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whatever was written in earlier times was written for our instruction, so that through perseverance and 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 we might have hope.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ὅσα γὰρ προεγράφη,
whatever for was written in the past
직역하면 ‘왜냐하면 전에 기록된 것은 무엇이든지---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전에 기록된’(προεγράφη)은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was written in the past).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εἰς τὴν ἡμετέραν διδασκαλίαν ἐγράφη,
for the our instruction was written
‘기록된’(ἐγράφη)은 부정과거 수동태입니다(was written).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ἵνα διὰ τῆς ὑπομονῆς καὶ διὰ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τῶν γραφῶν, τὴν ἐλπίδα ἔχωμεν.
so that through the perseverance and through the encouragement of the Scriptures, the hope we might have
직역하면 ‘인내와 성경의 위로를 통해서 우리가 소망을 갖게 하려 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갖게 하려 함이라’(ἔχωμεν)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we might have ).
1. 파괴는 순식간이지만,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연약한 성도에 대한 사랑과 소망이 있어야, 오래 참으면서 실수를 용납하면서, 기를 수 있습니다.
아이를 기를 때, 걷는 연습에 수없이 실패해도, 한두 걸음만 걸어도,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처럼, 어린 성도를 사랑과 인내로써 소망을 가지고 양육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2. 또한, 강자가 약자를 받아서 친구 삼으면, 다른 사람들의 비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인,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8장의 간음한 여인,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한 베드로(요한복음 21장)를 모두 용납하시고, 새 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는 자유주의 율법주의 신비주의 신자들이 있게 마련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장성한 성도들이 연약한 성도들을 사랑하고 용납하여 건전한 성도로 잘 양육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69장>
내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
주께서 우리게 명하시니, 그 명령 따라서 살아가리
5-7절.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인내와 위로의 정신으로 연약한 성도를 보살피라고 합니다.
5절.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may the God who gives perseverance and encouragement grant you to be of the same mind with one another according to Christ Jesus,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ὁ δὲ Θεὸς τῆς ὑπομονῆς καὶ τῆς παρακλήσεως
the now God of the perseverance and of the encouragement
‘위로’(παρακλήσεως)란 단어의 원형(παράκλησις)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부르는 것, 격려, 위로’(calling to one's aid, i.e. encouragement, comfort)를 가리키고, 여기서 나온 단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는 ‘변호사, 위로자, 중보자, 보혜사 성령’(lawyer, comforter, intercessor, Paraclete)을 가리킵니다.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δῴη ὑμῖν τὸ αὐτὸ φρονεῖν ἐν ἀλλήλοις, κατὰ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may He give you the same to be of mind with one another, according to Christ Jesus,
직역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 그가 너희에게 서로 뜻이 같게 해주시기를 원하노라’는 뜻입니다.
원문에는 ‘본받아’라는 동사가 없고 그냥 ‘따라’라는 전치사(κατὰ,according to)로만 되어 있습니다.
‘해주시기를 원하노라’(δῴη)는 부정과거 기원격 동사(aorist optative)로서 단호하게 이루어주시기를 간곡히 기원하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바울은 하나님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소망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33절에서는 <평강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2.그러면, 바울 사도는 왜 이 대목에서 하나님을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으로 부르고 있을까요?
그것은 강한 성도가 약한 성도의 약점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내와 위로>를 주셔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성도가 성숙한 성도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기를 때에,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며> 인내로 자녀를 기름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와 위로를 받아서, 연약한 성도의 비방을 참고, 다독거리면서, 잘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3. 성도님이 찾고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축복의 하나님이십니까?
능력의 하나님이십니까?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심판의 하나님이십니까?
그러나, 허물과 죄로 늘 넘어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하나님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날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사랑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4. 3장 25절에는, <길이 참으시는 중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길이 참으시는 하나님>은 무거운 짐을 계속 들고 계시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길이 참으시는 인내의 하나님>은 무거운 짐 같은 죄의 진노를 당신의 아들에게 쏟아 부으시고, 우리 죄인을 구원해주셨습니다.
5. 여기서 바울 사도는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말하면서, 핍박자였던 자신을 길이 참고 용서하셔서, 사도 삼으신 그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더니
디모데전서 1:14.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격을 가슴에 가득 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도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죄송함과 감사와 사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패역한 불신자는 날마다 범죄로 하나님을 가슴 아프게 한 일도 회개치 않으면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멸시합니다.
로마서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께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아니셨다면, 살아남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10:21. <그러나, 순종치 아니 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노라>
6. <하나님의 인내와 위로하심>을 온전히 실천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5절.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평생 죄인을 참으시고, 사랑과 용서를 베푸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연약한 성도들을 인내와 위로로써, 양육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거역을 길이 참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2:2-3.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 하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이렇게 죄인들의 거역을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고 교훈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약한 성도들의 비방과 거역함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길이 참고, 피곤하거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어코 연약한 성도들을 장성한 성도로 기르시기를 축원합니다!
7.너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5절 하반절)
하나님께 대해 교인들이 같은 뜻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으로서는 인내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내로써 연약한 성도를 용납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온 교인들이 한마음과 한뜻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 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 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6절.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with one accord you may with one voice glorify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한 마음과 한 입으로
ἵνα ὁμοθυμαδὸν, ἐν ἑνὶ στόματι,
so that with one mind, with one mouth,
직역하면 ‘그래서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기를’이란 뜻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δοξάζητε τὸν Θεὸν καὶ Πατέρα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you may glorify the God and Father of Lord of us Jesus Christ.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δοξάζητε)는 현재 가정법 동사(you may glorify)입니다.
1.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찬송하는 입은 여러 개인데, 마음이 각각 다르다면, 얼마나 불협화음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야 찬송도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와 봉사와 전도도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는 것 같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봉사하면서 불협화음이 나서는 안 됩니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지 않으면, 에베소서 4장 30절 말씀대로,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성령님을 근심케 하면, 신앙생활에 도무지 유익이 없습니다.
이처럼 한 마음과 한 입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추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려고 해야 합니다.
2.우리 예수님의 삶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39.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요한복음 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그래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연약한 자의 약점을 인내와 위로로 담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우리 강한 성도가 인내와 위로로 연약한 성도의 약점을 담당하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마음 한 입이 되기 위해서,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성도들이 하나 되고 사랑이 가득한 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78장 3절>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 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7절.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accept one another, just as Christ also accepted us to the glory of God.
이러므로 –-- 너희도 서로 받으라.
Διὸ προσλαμβάνεσθε ἀλλήλους,
Therefore, accept one another,
‘받으라’(προσλαμβάνεσθ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accept).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καθὼ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προσελάβετο ἡμᾶς, εἰς δόξαν τοῦ Θεοῦ.
as also the Christ accepted you, to glory of the God
직역하면 ‘역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란 뜻입니다.
‘받아’(προσελάβετο)는 부정과거로서(accepted)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들을 단호하게 받으신 역사적인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강하신 예수님이 연약한 죄인 우리들을 용납하셨습니다.
이처럼, 강한 성도가 허물 많은 연약한 성도를 길이 참고 용납하여, 언젠가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허물 많은 어떤 성도가 성도님을 속상하게 하고 함부로 상처 주는 말을 합니까?
그러더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길이 참고, 기도하시고, <인내와 위로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