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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몬서 1장 11-18절. 원수를 형제로 대접하라
1.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는 ① 골로새 교회의 장로님이신 빌레몬과 그 아내 압비아와 그 아들 아킵보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② 빌레몬 장로님의 선행을 칭찬한 후에, ③ 오네시모를 내게 머물러 두게 하라고 마땅한 일로 명령할 수 있으나, 빌레몬 장로님이 자원해서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줄 수 있도록 간구한다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2. 오늘 이 시간에는, 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다시 바울 사도에게로 돌려보내달라는 간청과, ② 오네시모를 죄짓고 도망간 노예인 원수로 대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대해달라는 요청과, ③ 오네시모가 물질적으로 손해 끼친 것이 있으면, 바울이 갚아줄 테니까, 오네시모에게 추궁하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3. 내용은 3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1-15절.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빌레몬 장로에게 돌려보내는데, 빌레몬 장로에게 오네시모를 다시 바울 사도에게로 돌려보내달라는 간청입니다.
16-17절. 오네시모를 도둑질하고 도망간 원수 같은 종놈으로 대하지 말고, 바울을 대하듯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로 대해달라는 간청입니다.
18절. 오네시모가 빌레몬 장로에게 물질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은 바울 사도가 갚아주겠으니, 오네시모에게 추궁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4. 오늘 설교의 제목은 <원수를 형제로 대접하라>입니다.
11-15절.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빌레몬 장로에게 돌려보내는데, 빌레몬 장로님에게 오네시모를 다시 바울 사도에게로 돌려보내달라는 간청입니다.
11절.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formerly was useless to you, but now is useful both to you and to me.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τόν ποτέ σοι ἄχρηστον,
the once to you useless
동사는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νυνὶ δὲ καὶ σοὶ καὶ ἐμοὶ εὔχρηστον,
now however both to you and to me useful
동사는 없으나 옳은 번역입니다.
1. 당시 노예들은 ‘오네시모’란 이름이 많았는데, ‘오네시모’란 이름의 뜻은 ‘유익하다’란 뜻이었습니다.
즉 노예들은 주인에게 유익한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오네시모는 전에 빌레몬에게 뮤익한 종이었고, 심지어 주인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도망간 나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모가 로마 감옥에서 바울 사도를 만나서, 예수 믿고 회개하여, 정말 유익하고 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예수 믿고 중생할 때 비로소 가정과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됩니다.
12절.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 have sent him back to you in person, that is, sending my very heart,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ὃν ἀνέπεμψά σοι αὐτόν,
whom I sent back to you the same
‘돌려보내노니’(ἀνέπεμψά)는 부정과거로서(I sent back) 지금 돌려보내면서, 편지를 받을 때는 과거임을 생각해서 ‘서신적 과거’(epistolary aorist)로 쓴 것입니다.
그는 내 심복이라.
τοῦτ’ ἔστιν τὰ ἐμὰ σπλάγχνα·
he who is the my very heart
동사(ἔστιν)는 현재입니다.
1. 바울은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오네시모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께는 용서를 받았지만, 육신의 상전인 빌레몬에게는 아직 용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법률로써 도망한 노예가 체포되면, 노예의 생사여탈권이 그 주인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 예수님의 심정으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주기를 간청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오네시모 같은 죄인들입니다.
루터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 오네시모이다’고 했습니다. (Luther by 이상근)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네시모를 용서하셨는데, 빌레몬 장로도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바울은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울의 심정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 죄인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롬 8:34)
13절.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m I wished to keep with me, so that on your behalf he might minister to me in my imprisonment for the gospel;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ὃν ἐγὼ ἐβουλόμην πρὸς ἐμαυτὸν κατέχειν,
whom I I was wishing with myself to keep
직역하면 ‘그를 나와 함께 있기를 내가 원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내가’(ἐγὼ, I)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머물러 있게 하기를’(κατέχειν)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keep), ‘원하고 있었다’(ἐβουλόμην)는 미완료과거로서(I was wishing) ‘서신적 과거’(epistolary aorist)로 볼 수도 있고, 성취되기 어려운 소원(wish impossible to fulfill)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I could have desired).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ἵνα ὑπὲρ σοῦ, μοι διακονῇ ἐν τοῖς δεσμοῖς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so that on behalf of you, me he might serve in the chains of the gospel
직역하면 ‘너를 대신하여, 복음의 죄수가 된 나를 그가 섬기게 하고자 한다’는 뜻입니다.
‘내 복음’이란 번역에서 ‘내’란 단어가 원문에는 없습니다.
‘섬기게 하고자 하나’(διακονῇ)는 현재 가정법 동사(he might serve)입니다.
1. 바울은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달해주어서, 빌레몬이 영적으로 바울에게 빚지고 있고, 바울을 섬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바울에게 다시 되돌려보내서, 오네시모가 빌레몬 대신 바울을 섬기게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으나, 자기가 세주고 산 집에서 군사들의 경비 속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친구들과 성도들의 돌봄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8:20).
14절.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ithout your consent I did not want to do anything, so that your goodness would not be, in effect, by compulsion but of your own free will.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χωρὶς δὲ τῆς σῆς γνώμης,
apart from however of the your consent,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οὐδὲν ἠθέλησα ποιῆσαι,
nothing I wished to do
‘하기를’(ποιῆσαι)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do) 단호히 하는 것을 가리키고, ‘원하지 아니 하노니’에서 동사(ἠθέλησα)는 부정과거로서(I wished) 결단코 원치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ἵνα μὴ ὡς κατὰ ἀνάγκην, τὸ ἀγαθόν σου ᾖ, ἀλλὰ κατὰ ἑκούσιον.
so that not as according to necessity, the good of you may be, but according to willingness
직역하면 ‘너의 선이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고, 자의에 따른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되게 하려 함이라’(ᾖ)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 may be).
1. 바울은 빌레몬의 승낙이 없이 오네시모를 로마 감옥의 바울에게 잡아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잡아두고 편지로만 빌레몬에게 용서하고 허락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빌레몬은 억지로 마지 못해서 오네시모의 용서를 허락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단호하게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낸 후,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다시 바울에게 돌려보내기를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선행이란 자유의지에서 나와야 하지, 마지 못해서 억지로 해서는 참된 선행이 되지 못합니다.
15절.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perhaps he was for this reason separated from you for a while, that you would have him back forever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τάχα γὰρ διὰ τοῦτο, ἐχωρίσθη πρὸς ὥραν,
perhaps for because of this, he was separated (from you) for a time
직역하면 ‘왜냐하면 아마 이것 때문에 그가 잠시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떠나게 된 것은’에서 동사(ἐχωρίσ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인데(he was separated) 여기 수동태는 소위 ‘신적인 수동태’(divine passive)로서, 숨은 하나님의 행동(the hidden action of God)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Linguistic Key. 660.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ἵνα αἰώνιον αὐτὸν ἀπέχῃς,
so that eternally him you might possess
직역하면 ‘이는 영원히 그를 네가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소유하게 하려는 것이다’(ἀπέχῃς)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you might possess) 확실히 소유하게 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1. 바울은 오네시모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이라고 수동태로 말하는 것은 오네시모가 도망간 노예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신적인 섭리 속에서 빌레몬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 미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요셉이 형들이 과거에 자기를 노예로 판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형들과 가족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 것과 같은 대단히 훌륭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창세기 45: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16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 longer as a slave, but more than a slave, a beloved brother, especially to me, but how much more to you, both in the flesh and in the Lord.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οὐκέτι ὡς δοῦλον, ἀλλὰ ὑπὲρ δοῦλον, ἀδελφὸν ἀγαπητόν,
no longer as slave, but above slave, brother beloved,
동사는 없으나 좋은 번역입니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μάλιστα ἐμοί, πόσῳ δὲ μᾶλλον σοὶ καὶ ἐν σαρκὶ καὶ ἐν Κυρίῳ.
especially to me, how much however more to you, both in flesh and in Lord
동사가 없지만, 좋은 번역입니다.
1.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는 것은 육신적으로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지만, 영적으로는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같은 형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제도적인 노예 제도 개혁을 부르짖지는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노예를 형제로 대우하는 혁명적인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는 뜻은 바울은 오네시모와 육신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어도 주 안에서 형제인데, 빌레몬은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주종이라는 관계를 가졌으니 더욱 주 안에서 형제의 의가 더욱 깊다는 뜻입니다.
2.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세상 법적으로는 오네시모는 어디까지나 빌레몬 장로님의 노예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네시모는 감히 주인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달아난 도둑놈으로서, 당시 사회법적으로는 공개처형 해야 할 죄인이요, 원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신앙 안에서 원수 같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죽어 마땅한 노예가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대접하라고 호소합니다.
(1) 바울 사도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그런 절대적인 용서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면, 노예가 주인의 재산을 도적질하고, 주인의 처를 강간하고, 자식을 죽이고 도망갔는데, 어떻게 용서하고 형제같이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기는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은 자식을 둘이나 죽인 원수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로마서 5장 8. 10. “우리가 죄인이고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과 바울 사도는 이런 원수 사랑을 실천하라고 성도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로마서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 이처럼 죄지은 노예를 형제처럼 대접하라는 바울 사도의 신앙 사상은 당시의 사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혁명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바울 당시의 로마 사회와 세계는 노예 제도를 통해서 사회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같이 과학 문명이 발달 된 산업사회에서는 인력보다 기계의 힘을 사용하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기계화가 안 되었기 때문에, 노예의 힘이 모든 경제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예의 힘이 절대적인 당시 노예사회에서 바울 사도가 노예를 형제로 대우하라는 신학 사상은 당시 사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혁명적인 사상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 노예 해방 사상과 불신 사회의 노예 제도 사이에 오랫동안 은밀한 투쟁이 계속되어 오다가, 예수 믿는 링컨 대통령의 남북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 노예제도 폐지가 이루어졌습니다.
기적 같은 기독교 사상의 승리였습니다.
오늘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이나, 간디의 무저항 정책이나, 마르틴루터 킹 목사의 흑인해방운동이나, 톨스토이의 농노해방운동 등도 모두 바울 사도의 노예 해방 신학 사상에서 비롯된 그리스도의 정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죄인이고 원수인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7절.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If then you regard me a partner, accept him as you would me.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εἰ οὖν με ἔχεις κοινωνόν,
if therefore me you consider partner,
직역하면 ‘그러므로 만일 네가 나를 동역자로 가지고 있다면’이란 뜻입니다.
‘생각한다면’(ἔχεις)은 현재인데(you consider) 원형(ἔχω)은 ‘가지고 있다, 소유하고 있다’(have, hold, possess)는 뜻입니다.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προσλαβοῦ αὐτὸν ὡς ἐμέ.
receive him as me
직역하면 ‘그를 나처럼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영접하라’(προσλαβοῦ)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receive) 확실히 정중하게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1. 여기서 ‘동역자’(κοινωνόν. partner)라는 말은 정말 친한 친구나 부부관계처럼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않는 친밀한 관계를 가리킵니다.
이제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 안에서 형제로 대해줄 것을 넘어서 친한 친구나 부부처럼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는 친한 동역자, 동무, 동반자로 대접해주라고 부탁합니다.
2.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 사도는 육신적으로도 빌레몬의 선생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 안에서도 빌레몬을 전도한 사도였습니다.
이러한 영육간의 상관인 바울이 제자인 빌레몬에게,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바울 선생님을 대하듯이 존대하라고 순종하기 힘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1) 바울 사도와 빌레몬 장로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습니다.
그리고,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빌레몬 장로에게,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빌레몬의 스승인 바울 사도를 대하듯이 존대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 명령은 참으로 순종하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아무리 스승 되신 바울 사도의 명령이라고 할지라도, 어찌 자신의 노예이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악을 행한 원수 같은 오네시모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스승으로 존대하라는 것은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2) 그러나, 기독교 정신은 바로 이와같이 죄인과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죄인 되고,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죄인이고, 원수 된 우리를 섬기러 오셨고, 목숨까지 주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분이십니다.
바울 사도도 이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여,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긴 분이었습니다.
오늘 빌레몬 장로님에게도 노예요, 원수인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스승처럼 존대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을 본받아, 죄인과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섬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8절.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he has wronged you in any way or owes you anything, charge that to my account;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εἰ δέ τι ἠδίκησέν σε
if however in any way he wronged you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그가 너에게 어떤 불의를 행했다면’이라는 뜻입니다.
‘불의를 행했다면’에서 동사(ἠδίκησέν)는 부정과거로서(he wronged) 확실히 불의를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ἢ ὀφείλει,
or he owes (you)
직역하면 ‘혹은 그가 빚지고 있다면’이란 뜻입니다.
‘빚지고 있다’(ὀφείλει)는 현재형으로서(he owes) 현재 빚지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τοῦτο ἐμοὶ ἐλλόγα·
this to me charge
직역하면 ‘그것을 나에게 지우라’는 뜻입니다.
‘지우라’(ἐλλόγα)는 현재 명령형입니다(charge).
1. ‘불의를 하였거나’는 보통 노예가 도망갈 때 주인집을 불태우거나 주인의 아내를 강간한 경우가 많았음을 볼 때, 오네시모가 이런 불의를 행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이란 오네시모가 도망갈 때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서 도망간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내게로 회개하라’는 것은 바울이 말로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오네시모의 빚을 바울이 대신 갚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빚을 갚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말로만 사랑을 주장하는 다른 종교들과 달리 희생을 동반한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쳇말로 웅덩이에 빠진 사람을 보고, 공자와 석가는 불쌍하다고 하면서 지나갔지만, 예수님은 웅덩이에 들어가서 자신이 희생하고 사람을 살렸다는 것입니다.
로마 감옥에서 바울은 천막 장사를 하지 못했으나, 빌립보 교회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보내준 선교 자금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2.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가 예수 믿기 전에는 무익하고 해로운 존재였으나, 이제 예수 믿고 변화된 후에는 유익하고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1) 원래 ‘오네시모’란 이름의 의미는 ‘유익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가 태어났을 때, 쓸모 있는 노예가 되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는 이름값을 못 하고, 오히려 주인인 빌레몬에게 무익하고, 해를 끼친 존재가 되었습니다.
노예 제도가 있던 때에, 노예가 주인을 배반하고 나올 때는, 보통 주인의 재산을 도적질하고,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고, 주인의 자녀를 죽이고 도망을 갔습니다.
(2) 오네시모가 어느 정도의 죄를 지었는지 정확히는 모르나, 성경을 통해서 볼 때, 주인인 빌레몬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도망간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오네시모는 과거에 사회에 무익하고 해로운 존재였으나, 예수 믿고 나서는 변화하여 바울에게나 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3) 오늘날 우리나라 성도들도 예수 믿고 나서는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불신자들은 사회에 해를 끼치는 존재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 유익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에게 존경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성도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 불신자의 도덕 수준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준 높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저는 내 심복이라. 저를 내게 머물러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오네시모는 바울의 복음 사역에 심복과 같이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1)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죄가 적은 바리새인 시몬과 죄가 많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 다 같이 죄 용서를 받았는데, 적은 죄를 용서받은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소홀히 대접했으나, 많은 죄를 용서받은 한 여자는 예수님을 눈물과 향유로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였습니다.
누가복음 7:36-47.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로마서 5장 20절에도,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했습니다.
(2) 오네시모는 노예로서 주인을 배반하고 도적질까지 했으니, 당시의 법률대로는 꼭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니, 그만큼 더욱 헌신적으로 주님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사형수들도 예수님을 믿고 나면,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 사도에게는 오네시모가 복음 사역에 대단히 소중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바울 곁에 두고서 바울을 섬기도록 하고 싶으나, 세상 법적으로는 오네시모가 빌레몬 장로의 소유인 노예이므로, 빌레몬 장로가 자원해서 오네시모를 바울 사도에게 다시 보내주도록, 돌려보냈습니다.
(1) 교회의 모든 봉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함이 없는 봉사는 반드시 자기 명예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려고 합니다.
강요된 봉사는 반드시 봉사에 대한 댓가를 찾아 먹으려고 합니다.
(2) 교회에서 드리는 주일 학교 교사직 봉사, 찬양대 봉사직, 안내위원과 차량 봉사, 청소나 식당 봉사, 헌금과 전도 봉사는 모두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원함으로 드리는 봉사여야 합니다.
억지로 하는 헌금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오히려 속임수로 헌금을 해서 교인들에게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은 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5:1-5.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3) 그러나, 은혜에 감사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헌금과 봉사는 구원과 백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물을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보이리로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마가복음 10:29-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의 일에 충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에게 보일려고 봉사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봉사하십시오!
그러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5.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 장로님의 재산을 도적질하여 로마로 도망갔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가 빌레몬 장로님에게 도둑질하고, 또 빚진 것을 대신 갚아주겠노라고 말합니다.
지금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라는 노예의 빚을 갚고, 또 노예 값을 지불하고, 오네시모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키려고 합니다.
원래 노예 해방 값을 “대속물”(혹은 “속전”, ransom, λύτρον)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 노예를 해방시키는 ‘속전’을 대신 물어주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대신 갚기 위해서 목숨을 희생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의 오네시모에 대한 사랑은 예수님의 대속적 사랑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같은 희생과, 바울과 같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이 말로써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기도하고, 댓가 없는 물질적 도움과, 댓가 없는 희생을 하여야,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결실의 계절에 바울처럼 한 영혼을 사랑하여, 희생함으로써, 귀한 구원의 결실을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결 론 >
1. 주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봉사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죄인과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바울처럼, 한 영혼을 사랑하여, 물질과 목숨까지 주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돕고, 희생함으로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은혜가 충만하시고, 성령님이 언제나 하셔서, 복된 삶, 복된 가정과 자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