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위쪽에 있는 활엽수와 침엽수 차이점이 적혀 있는 안내판
▲바위 좌측으로 우회하여 올라간다.
▲구절터 갈림길, 좌측으로 구절 300m라는 이정표를 만나고 직진으로 올라간다. 좌측 사면으로 200m지점에 구절터가 있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아마도 옛날에 절(사찰)이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암릉지대를 만나, 우측으로 우회하여 원통산으로 힘들게 올라간다.
▲가파르게 올라 바위지대에서 큰 바위 좌측으로 돌아 올라간다.
▲암릉을 지나 묵은 낙엽이 쌓여 있고 우측을 멋진 소나무를 지나 완만하게
올라간다.
▲바위 우측으로 지나 원통산(圓通山 ; 655.6m)으로 경사진 등로로 올라간다.
▲멋진 2층 팔각정‘원통정’이 보이며 원통산 정상에 올라선다.
▲팔각정자“원통정‘ 2층
▲삼각점은 테크 바닥에 묻혀있고 방위각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원통산(圓通山:655.6m) : 충북 충주시 노은면과 앙성면, 음성군 감곡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산 이름을 원통산(怨慟山(‘怨’ 원통할원, ‘慟’자는‘서럽게 울다, 큰소리로 울며 슬퍼하다’는 의미로 ‘한국지명유래집’에 원통산(怨慟山)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쓰고 있는 '원통산(怨慟山)'은 어떠한 유래나 문헌의 근거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원통산(怨慟山)'이라는 명칭이 일제 말기에 일제가 악의적으로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우리 민족의 패배의식을 고착시키기 위해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여 진다. 조선후기 ‘대동지지’에 표기된 원통산(圓通山)으로 음성군에서 최근에 개명한 기념으로 팔각정과 정상석, 이정표, 벤치, 그리고 원통산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적어 논 팻말이보인다.'음성읍지(陰城邑誌)'(1786년)와'대동지지(大東地志)'(1861년), 일제강점기 이병연이 편찬한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1934년)에는 '圓通山'으로 표기돼 있다. 조선환여승람에는 '원통산이 (음성)군 북쪽 60리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 조선환여승람 고적(古跡) 조에는 중국 송나라의 대 서예가인 왕희지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아 해동서성으로 불리우는 신라시대 명필가 김생이 감곡면 원통산(圓通山)에서 글씨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라시대 승려 김생은 원통산(圓通山) 아래에서 나뭇잎을 따 종이로 삼고 흐르는 계곡 물을 먹물 삼아 글씨를 익혔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들보다 앞선 문헌에는 다른 한자 표기도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 충원현(忠原縣) 조에는 '元統山(원통산)'으로 표기돼 있다. 이 원통산은 '(충원)현 서쪽 60리에 있고 수리산(愁離山) 줄기'라고 했다.
▲원통산 정상에 있는 정자 '원통정(圓通亭)' 안내문: 일제 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산 이름을 원통산(怨慟山(怨원망할원,慟서럽게 울통,)으로 강제 변경되어 불리어 오다가 지역주민들이 2015년도에 종전대로 명칭을 개명해야 한다고 탄원하여 마침내 2016년에 국토지리정보원 고시에 의해 원통산(圓通山)으로 변경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통산 정상에 팔각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원통정(圓通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충주시 노은면 대덕리 대덕저수지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