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리 갈림길안부(762m): 좌측으로 내려서면 유현리로 향하는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살짝 꺾어진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서원면 유현리에 있는 금천광업 쪽으로 가는 길이다.
▲유현리 갈림길에서 다시 오르막을 오르는데 힘이 많이 든다.
▲큰바위 우측으로 우회
▲시루봉을 내려서 발귀현 지나 갈기산으로 이어지는 기맥능선
▲783m봉에서 보이는 삼형제봉(789봉) 능선(유현 치안센터로 뻗어나간 능선 줄기이다)
▲성지지맥782.7m봉: 정상에는 녹슨 군부대 출입금지 경고판, 녹슨 철판에 "성지지맥 782.7m" 정상산패. 좌측으로 진행. 올라온 방향에선 좌측 진행
▲782.7m봉에서 좌측으로 옥스필드 C.C가 내려다보인다.
▲계속 등로는 급하게 내려섰다가 급하게 치고 오르고 오르막 낙엽이 많이 쌓여 있다. 그래서 오르다가 자꾸 뒤로 미끄러지고 그래서 힘이 무척 든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와 스틱에 힘을 주니 그만큼 체력 소모도 많다.
▲782.7m봉에서 성지봉 오르는 등로는 좌측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내렸다가 성지봉으로 오르게 된다.
▲안부(740m), 다시 오르막길...너무
힘들다.
▲성지봉 오르는 길은 무척이나 가파르다. 오르는데 고생을 좀 한다.
▲갈지자로 능선을 오르는데 미끄러워 나무를 잡고 올라야 하고 애를 쓰며 오른다.
▲2등삼각점이 있는 성지봉 정상에도착 한다.
▲성지봉 삼각점(홍천24/1988재설)
▲성지봉 유래: 이 산이 성지봉(聖地峰)인 것은 부근에 있는 풍수원성당 때문인지 아니면 성재동 마을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근처에 풍수원성당(豊水院聖堂)이 있다. 1801년(순조 원년)의 신유박해와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등으로 엄혹하게 탄압받았던 천주교 신도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용인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중심으로 40여 명의 신자들이 피난처를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인 풍수원이라고 한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한국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한편 지형도에 명기한 성재봉은 예로부터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는 도원리 성재동(聖才洞, 승지골)의 지명에서 유래했을 가능성도 있다.
▲금물산(780m)에 속해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성지지맥이란 이름을 낳게 했다. 성지봉(聖址峰:787.4m):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와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도원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성지지맥의 주봉인데 지명의 유래는 임금님의 행차가 쉬어갔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이봉우리 아래에 성재동(聖才洞)이란 마을이 있는데, 옛날 영남선생이라는 분을 모시고 서당을 세워 공부하던 마을로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하여 성재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상에는 2등 삼각점이 있고 정상 아래쪽엔 군부대 벙커가 있고 위쪽엔 군부대 경고판과 태양열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도 봉우리 아래에 있는 군부대 사격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정상에서 우측으로는 군부대 경고판과 태양열 조명이 서 있는 곳으로는 도원리로 내려가는 뚜렷한 등로가 있는데, 지맥 길은 성재봉 정상 벙커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져야 한다
.(독도주의)
▲성지봉에서 내려가다 군부대 참호가 있는 곳을 조금 지나
▲성지봉을 내려서면 가파르게 내려서고 암봉 사면을 따라서 급 내리막 이다.
▲엄청나게 큰 암릉이 길을 막고 있어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좌측으로 급경사 내리막으로 진행하다 멋진 선돌(立石)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