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성경에 나타난 세 영적 존재(1. 하나님, 2. 천사, 3. 사람)
<성경은 세 영적 존재, 곧 하나님, 천사,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특별히 신론(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론(인간)보다 천사론(천사)에 대하여 강조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부리는 천사와 타락한 천사는 그 내용이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과 천사와 사람이라는 세 영적 존재를 보는 거울로서 세 영적 존재의 실재와 활동을 기록하고 있다.
나의 오랜 관심과 체험과 성경 연구를 통하여 그동안 내가 정리한 ‘성경에 나타난 영적인 세 존재’에 대하여 약 20회에 걸쳐 연재할 계획이다. 내가 여러 주제를 동시에 다루는 이유가 있다. 곧 각 주제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자료정리와 우선순위와 연관성을 부각하기 위하여 상호 보완적 시간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천사와 사람이라는 세 영적 존재를 기록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천사를 알 수 있고, 사람의 영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성경은 영적 존재를 보는 거울이므로 사람이 성경에 나타났을 때 영적 존재임이 드러난다. 곧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자각시키고 어떻게 영적 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인간은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성경을 모르거나 성경을 부정하면 자신이 영을 가진 영적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한다. 살전5:23절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한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존재이다.
사람은 영을 가진 영적 존재인 것이다. 세상에 고전(古典)으로 인정하는 훌륭한 서적도 많지만, 인간을 흙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영적 가치가 없다. 그러나 성경만이 사람을 영적 존재로 대우하고 하나님이 간섭하고 계심을 보여 준다. 또한 영적인 죽음이 무엇이고, 영적으로 할 일이 무엇이며, 영적인 소망이 무엇인지 자세히 알게 된다.
성경을 통해 자신이 영적으로 부유한가, 빈곤한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의사에게 가면 자신을 의학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배우듯이 성경을 보면 자신을 영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배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것과, 천사들의 선악간의 활동과, 사람의 영의 형편 등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수종드는 천사와 반역하는 천사, 순종하는 사람과 불순종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아래는 인간, 그 중간에 천사가 왕래하고 활동한다. 이 세 영적 존재의 이해 없이는 성경을 제대로 알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 천사,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천사와 사람에 대해서 모르면 성경에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이 부분은 특별히 내가 오래 전 성령세례를 받고, 내 삶의 페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영적으로 눈뜨기 시작했을 때, 쉼없이 방언기도하며, 영으로 말씀을 전하고, 찬송이 꿀과 같아 일을 하면서도 중단할 수가 없었을 때,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 귀신이 드러나고, 방언이 터지고, 병든 사람이 치유됨을 체험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유월절(구원)이 내 심령에 새겨진 것이다. 그 후 주님은 나에게 축복을 주시지 않고 무교절, 곧 죽음과 무덤을 허락하셨다. 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삶의 고난을 통과하면서 자아파쇄를 체험하기 시작하면서,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든 그것, 바로 내가 체험한 ‘성령체험이란 무엇인가?
마귀, 악령, 귀신의 존재란 무엇인가? 성경은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나의 강렬한 영적 호기심과 꼭 알아야겠다는 각오에서 출발한 나의 결사적인 성경 연구의 한 부분을 정리한 것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역대하2:5-6절은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데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역대하6:18절은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늘보다도 크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감히 어떤 장소에 모실 수 없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
하늘 위에 있는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데 하물며 성전에 하나님을 모실 수는 없다. 예를 들면 마치 반지를 내 손가락에 끼울 수는 있어도 내가 반지 안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역대하17:5-6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오늘날까지 집에 거하지 아니하고 이 장막과 저 장막에 있었다. 내가 언제 너희에게 집 지으라고 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인간이 지은 집 속에 모실 수 없다. 만일 성전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바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 계실 정도의 작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성전 안에도 계시고 바깥에도 계신다. 우주에도 계시고 하늘에도 계신다. 곧 하나님은 하늘이 없어도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 아버지는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인자)은 예루살렘에 계실 때 여리고에 안 계셨고, 여리고에 계실 때 예루살렘에 안 계셨다. 그분은 한 장소에만 나타나셨다. 곧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무소부재하지 않으셨다. 예루살렘에 계실 때 여리고에 계시지 않았고, 갈릴리에 계실 때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았다.
성자는 무소부재하지 않으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만물을 위해서 오시지 않고, 인류를 위하여 오셨기 때문이다.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셔서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신 이후부터 아들은 하늘 보좌를 초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 아버지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나 아들은 무소부재하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늘에는 계시지 않고, 보좌에 계실 때는 땅에서 그분을 뵐 수 없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세상에 다시 오신다. 그분의 권위와 그분의 영광은 무소부재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분명히 한 장소에만 계셨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은 모든 하늘과 땅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분은 무소부재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무소부재하셔서 어떤 물질이나 공간, 시간 등에 제한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공간도 초월한다. 그러나 아들은 무소부재하지 않으시고 한 곳에만 계실 수 있다. 지금 그분은 하늘 보좌에 계신다. 그리고 성령은 믿는 이에게만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自尊者)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을 초월하여 그보다 먼저 계신 분이다. 하늘이 없을 때도 하나님은 계셨다.하나님은 영원하시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미래에 영원하신 것처럼 과거에도 영원하신 분이다. 미래에 영원하신 것처럼 과거에도 영원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만물이 있기 이전, 영원 전부터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만이 태초 이전부터 계신 분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생하시고(요17:3), 자존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시작이다.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살아 계신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언제부터 존재하셨는지 그 시점이 없는,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영원하신 분이시다.
마치 둥근 원과 같이, 시작한 날이나 끝이 없는 영원한 분이시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살아 계신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하시다. 영원은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천사와 인간은 창조 때부터 영원하지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하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다.
본(本)은 가장 높은 위치와 최고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왕은 전하라고 부르고 대통령이나 장성을 각하라고 최고의 표현으로 부르는 것과 같다. 인간은 하나님의 위치를 표현할 능력이 없으므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로 그 질이 영원하신 분이시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자존하셔야 한다. 성경에 하늘을 가리켜 ‘하나님 우편’이라 말한다. ‘우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데 두었다는 말이다.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여 들어가신 하늘이다.
하나님은 하늘과 상관없이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 안에도 계시고 바깥에도 계시고 그 어디든지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늘을 창조하셨다. ‘후사(後嗣)’란 상속자라는 말이다. 후사는 왕위를 이을 자이다. 그렇다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물러나시고 아들이 오르신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은퇴하시고 아들이 계승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들을 위해 하늘을 지으시고 그를 만유를 다스릴 후사로 세우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홀로 완전하시기 때문에 어떤 피조계나 피조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아버지에게는 보좌도 필요 없다. 아버지는 스스로 보좌가 되시므로 별도의 보좌를 지을 필요가 없으나 아들에게 상속할 보좌는 창조되어야 한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다.
이렇게 아버지는 아들의 권위를 자기의 권위처럼 높여 주려고 하늘 보좌를 창조하시고 아들에게 주셨다. 하늘의 창조는 1) 아들을 위함이고, 2) 아들과 아버지의 이름을 위함이며, 3) 아버지의 영광을 위함이다.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좌정하실 수 있는 곳은 없다. 오직 아들을 위해 하늘 보좌를 지으셨다.
하나님은 하늘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그 이름의 영광을 아들에게 상속하시려고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하늘에 보좌를 두신 것이다. 이것을 우편 하늘 또는 우편 보좌라고 한다. 아버지는 품속에 있는 아들을 후사로 정하시고 그에게 상속하시려고 하늘을 창조하시고 가장 가까운 데 두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 품속에 계실 때는 아직 상속받지 못했다. 아들이 하나님 안에 있을 때는 하늘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하늘 보좌에는 아버지의 계명에 순종하여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나님의 아들, 곧 인자가 계신다. 하늘의 보좌는 인자가 하나님께 복종하고 받으신 기업이다.
하나님은 홀로 계신 분인데 아들을 위해 아들에게 상속하시려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지으셨다. 물론 하나님은 한분이시지만 또한 삼위(三位)이시다.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인격을 가지시고 그 사역은 다르지만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아들인 예수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보라.
히1:2-3절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한다.
히1:10-12절에는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종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말한다.
골1:15-17절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말한다.
아들은 하늘도 창조하시고 땅도 창조하셨다. 아들은 아버지 품속에서 독생하셨다. 하늘에는 아들 한 분만 계셔서 통치하시지만 그분은 또한 아버지 안에 계신다. “독생하신 하나님”에서 “독생 하신”이라는 말은 외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에서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감동감사충만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