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교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등산객들이 자주 보이며 공동묘지로 올라간다.
▲좌측엔 공동묘지가 있고 국사봉, 이수봉 방향으로 직진한다.
▲한오름 올라 등로에서 조금 떨어진 9번송전탑을 지나고
▲392m봉. 통의자 이정표(국사봉640m. 원터마을1800m) 지맥 길은 우측 국사봉, 이 수봉 방향으로 꺾어간다.
▲원터(院址)마을: 좌측의 하우고개 아래에 있는 원터(院址)마을은 옛날 광주, 인덕원, 과천을 잇는 동양원(東陽院) 이란 역이 청계동에 있었다하여 처음에는 역원터(驛院址)라 했다가 일 제시대부터 원터(院址)라 불렀다고 한다. 이 마을은 1880년대에 하우현 성당이 생기면서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현재 주민의 대 다수가 천주교인이며 전주이씨와 밀양박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
▲용갱이골 갈림길이정표(NO.33 청계사, 의왕, 용갱이골(800m), 운중 저수지(1600m) 하오고개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구전(口傳)에 의하면 아주 먼 옛날에 청계사 호래미골 밑 원통사 절터에 있는 바위에서 어느 스님이 독경을 하자 갑자기 바위에서 혹이 나왔다고 한다. 그 후 어느날 소나기가 쏟아지자 혹이 터지면서 금송아지 2마리가 나와 한마리는 현재 청계사 부근으로 가더니 없어지고, 또 다른 한마리는 다른 골짜기에 이르자 용으로 변하더 니 광채를 내며 승천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이 골짜기를 용이 광채를 낸 곳이라 하여 ‘용광(龍光)이골’이라했는데 세월이 흘러 변음이 되어 ‘용갱이골’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에서 이 골짜기에서 백자를 굽기도 하였다고 한다.
▲국사봉(國思峰:540m): 고려말의 충신 조견이 이 봉우리에 올라 나라(고려)에 은혜를 입었다 고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國思峰) 또는 국은봉(國恩峰)의 이름으로 불려오다가 이 봉우리 밑에 있는 운중동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되자 당시 박정희대통령이 이곳에 들러 국은 봉(國恩峰)으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성남 누비길 등로 따라 국사봉에서 내려간다.
▲이수봉(二壽峰:545m):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 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수봉은 연산군 무오산화 정여창 혈읍재 등과 연관되어 있는,조선은 왕과 신하를 위한 국 가였을 뿐 백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의 왕과 신하의 무능과 왕권세습 그리고 그들의 통치 철학 유교 사상의 폐쇄적 사고방 식,과학기술 천시,사대주의 사상이 조선의 멸망과 일제시대와 6.25를 불러들였다고 생각하 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 성남,용인, 과천, 의왕의 5개시에 걸쳐있는 청계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광주목 산천조 에 청계산(淸溪山)이라 되어 있고, 관천현 산천조에는 청계산이라 쓰고 일명 청룡산(靑龍山) 이라 한다고 쓰여 있다. 과천읍지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 좌청룡 우백호의 개념으로 오른편에 있는 관악산을 백 호산이라 부르고, 왼편에 있는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불렀을 것이다. 17세기에 세워진 청계 사 사적비 등 여러 곳에 청룡산이라 되어 있고, 택리지 산경표 대동여지도 등에는 청계산 (靑谿山)이라 되어 있다 한다. 맑을 청(淸)자가 아니라 푸를 청(靑)자를 썼고, 시내라는 뜻이 같기는 하지만 골 곡(谷)자가 붙은 계(谿)자를 쓴 것이다. 옛날 청룡이이 산의 허리를 뚫고 나와 하늘로 올라가서 청룡산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헬기장 우측 계수기로 내려간다.
▲조견 선생과 만경대라는 해설판:조선조 창건의 일등공신인 조준의 아우 조윤은 형의 변절과 망국과 동시에 죽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부끄러워하여 개와 같다는 뜻으로 개 犬 부가 붙은 견(성급하다, 절의를 지켜 뜻을 굽히지 아니 하는 일)으로 이름을 바꾸고 자를 개를 따른다는 뜻으로 종견이라 했다는 것이다. 만경대가 망경대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색 등 고려 유신들이 이 바위봉우리에서 망한 고려 의 서울(개성)을 바라보며 그리워한 터라 해서 정여창이 고쳐 불렀다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는 청계사를 제목으로 지은 이색의 시가 있다. 망경봉 서남쪽에 있는 천연동굴 마왕굴은 한때 고려 말의 조윤과 정여창이 은거했던 굴로 알려져 있고, 매봉과 망경봉 사이에 있는 혈읍(血泣)재는 피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뜻으로 정여창이 청계산에 은거하고 있을 때 무오사화를 겪고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한 데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우측 통나무계단으로 내려가면 청계산 방향이고,직진하면 관악지맥인 과천 매봉 방향이다. 청계산은 몇 번 올랐으므로 생략하고 직진 마루금으로 진행한다.
▲전망대에서 좌측 앞으로 가야할 매봉능선과 관악산, 과천시 조망이 좋다.
▲전망대에서 조절저수지, 서울대공원과 과천저수지를 내려다본다. 관악산이 희미하다.
▲우측 : 청계산 정상을 바라본다.
▲첫 번째 청계사갈림길이정표No.49(응봉(매봉) 2300 m, 이미마을4800 m, 청계사 430m, 이수봉940m, 국사봉2080m*주의* 이곳에서 우측 이미마을 방향으로 진행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