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철 | 책을 읽을때는 내가지 관점 . 이해, 해석, 비판, 전망 투명인간 작가 성석제의 여러가지 시각중에 첫번째는 가족에대한 사랑입니다 P365~366의 석수와의 대화입니다
석수-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가? 죽는 게 낫겠다.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데 가서 새로운 생을 개척해 보자든가. 그래서 다리 위에서 두신을 했다든가. 만수-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사는 게 훨씬 쉽다. 나는 한 번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는 아직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지켜줘야 한다. 내가 포기하는 건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 생명보다 더 귀한 사람들. 어머니, 누나, 누나들, 나의 아내, 동생들, 나의 아들. 그리고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 아버지 어머니까지 모두 그렇다. 석수-가족, 가족, 가족. 왜 그렇게 가족에게 집착하는가? 혹시 아직 한 인간으로 자립하지 못한 건가? 어릴 때부터 가족 지상주의에서 세뇌가 되었는가? 만수-단지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절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거야. 태어나서부터 타고나기를 그랬던 것 같아. 그들은 나의 뿌리이고 울타리이고 자랑이다. 나는 그들을 정말 좋다. 지금도 그렇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복숭아꽃, 살구꽃이 환하게 핀 고향의 집에서 어머니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당에 서 있는 게 보인다. 형님은 하모니카로 클로멘타인을 부르고 아버지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로 꼬고 있다. 어서 와, 어서 와. 누나들은 산나무를 담은 바구니를 옆에 끼고 나를 향해 손짓한다. 할아버지의 글 읽는 소리, 할머니의 정다운 말소리, 동생들이 달려 나온다. 석수다, 옥희다. 나는 마주 달려간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난다. 햇볕이 따뜻하다. 소가 운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내 아들 태석이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린다. 앞치마를 한 아내가 손을 닦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게 다 있다. 보인다. 지금 같은 순간이 있어서 난 행복하다. 내가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기쁨이 내 영혼을 가득 채우며 차오른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느낌. 개인의 벽을 넘어 존재가 뒤섞이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곳에서 다 들을 수 있는 것 같아. 이게 진짜 나다. 질문-1 소설속 만수는 우리사회에서 어떤인물인가?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만 본다면 만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실패자로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성공한 몇몇의 사람만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에 오히려 이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사회는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만수와 같은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열패자이 아니라, 사회를 떠받치는 소중한 버팀목이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2 현재와 미래의 만수는 이 소설 속에서도 그랬지만 현재도 미래에도 만수와 같은 '투명인간'은 끊임없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만수는 왜 실패했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만수를 만들어 내는가'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만을 인정하는 경쟁 중심의 사회를 넘어,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존재가 존중받고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했다고 인간의 가치까지 부정되지 않는 사회, 경제적 성취가 아니라 서로를 돌보고 연대하는 삶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만수와 같은 사람은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3 그러면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1.성공의 기준을 다양하게 인정하는 사회 돈, 직위, 학벌만이 아니라 성실함, 돌봄, 봉사, 책임감도 사회적 가치로 인정해야 합니다. 2.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안전망 실패와,질병, 빈곤등 한 번 무너지면 끝나는 사회가 아니라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3.고립되지 않는 공동체 이웃, 직장, 지역사회등 전체 공동체가 서로를 보살피고 서로가 연결될 때 사람은 소외에서 극복되고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4.노동과 희생에 대한 존중 눈에 잘 띄지 않는 노동과 희생을 사회가 정당하게 평가해야 합니다. 특히 청소노동자, 돌봄노동자, 공장 노동자처럼 사회를 유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5.경쟁보다 연대를 중시하는 문화 '남보다 앞서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는 약자를 걸러내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결론 만수를 없애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수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지 않는 사회는 만들 수는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할 가치는 성공보다는 존엄을, 경쟁보다 연대를, 성과보다는 사람의 가치를 먼저생각하는 사회만드는 것 입니다 |
| 임 대혁 | 투명인간, 선석재, 책을 읽고, 임대혁.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제목 그대로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만수가 다리 위에서 투명인간처럼 등장하고 마지막 부분에서 사고로 운전자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흔적조차 남지 않는 장면을 보면 만수는 세상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투명인간이라는 말이 단순히 안 보이고 소외된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명희가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듯한 상태를 느끼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의 눈과 평가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가 쓸모있는 사람인지, 정상적인 사람인지, 성공한 사람인지 등등 이런 기준에서 벗어나 그냥 나 자신으로 있는 상태, 그래서 그 순간이 행복하고 감미롭게 묘사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앞부분에 자전거를 타는 투명인간이 나오는 장면도 그 사람의 몸은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복장이나 햇빛, 고글, 마스크, 장갑 같은 것을 통해서만 사람들에게 보여집니다. 이것은 우리도 사회 속에서 직업, 학력, 돈, 집, 가족 관계, 직함 같은 옷을 입어야 비로소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사회적인 간으로 인정받지만, 그 옷을 벗으면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는 그런 의미에서 투명인간은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회가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 이름 없는 사람, 접근도 밖에 있는 사람,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 가족을 위해 희생했지만 기록되지 않는 사람은 쉽게 투명인간이 투명이집니다. 다른 하나는 나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투명하다는 것은 슬픈 일이면서도 한편으로선 남에게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니 만수는 그냥 투명인간이 된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책임졌기 때문에 투명이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만수는 억울해하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학교에서 반 친구를 위해 나서기도 하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동생들을 돌보고 사고를 수습하고 자기의 몸은 묵묵히 감당합니다. 자기의 몫을 묵묵히 감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한 적이 없어요라는 만수의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은 그에게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살아내는 일이 오히려 분명했다는 것 같습니다. 죽은 것은 자기의 책임을 놔버리는 일이고, 사는 것은 힘들어도 오늘의 할 일을 계속 하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수에게는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것, 무식해서 법을 모르지만 정의는 안다고,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게 그냥 느껴지는 것. 그것이 만수의 윤리,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투명인간 주제와 연관된 것 같습니다. 사회는 성공한 사람이나 목소리 큰 사람을 잘 보이지만, 조용히 책임지는 사람은 잘 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수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끝까지 책임진 사람입니다. 이 책임이 너무 조용했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오히려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가족을 먹이고 돌보고 버티게 하는 일은 실제 굉장히 큰 일인데도 사회는 그것을 쉽게 배경처럼 취급합니다. 투명인간이란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수와 그의 형제, 자매들은 자기가 각각 투명인간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난했기 때문에, 누군가는 사고 때문에, 누군가는 가족 안의 책임 때문에, 누군가는 시대의 폭력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들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현대의 밑바닥을 실제로 견디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들은 분명 힘들게 살았고 상처도 많았지만 자기 방식으로 끝까지 살았고 버텼습니다. 특히 만수는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사람입니다. 특히 만수는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책임을 묻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만수의 투명인간이 인정받지 못한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고 느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