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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토법문의 인간불교적 특질
1) 정토법문의 불교적 특질
이 글에서 논하는 정토법문은, 특별히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의지하여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미타정토법문(彌陀淨土法門)을 가리킨다. 이 특질이 갖추어져 있으면 불교라 할 수 있고,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불교라 할 수 없다. 불교의 특질이란, 일반적인 차원에서는 출세간의 해탈을 지향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원만한 성불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정토법문은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일단 왕생하게 되면, 삼계(三界)에 계박된 업이 그로부터 영원히 끊어지고, 위없는 불과(佛果)가 자연스럽게 원만히 성취된다. 그러므로 이 법문이 지닌 불교적 특질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문 가운데, 중국 불교의 대승 팔종(八宗) 법문을 통틀어 보더라도, 불교의 본래 특질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가장 온전히 보존되며, 잘못 해석되거나 억지로 끼워 맞추는 일이 가장 적은 것이 바로 정토법문이라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선종에서 말하는 “자성청정, 본래 부처(自性清淨,本來是佛)”, 『화엄경』의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에는 차별이 없다(心佛衆生,三無差別)”, 『유마경』의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도 청정하다(心淨國土淨)”와 같은 가르침은, 종종 안목이 부족한 이들에 의해 “수행할 필요도 없고, 해탈도 성불도 구하지 않으며, 정토에 왕생할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큰 착오일 뿐 아니라, 불교의 기운이라 할 만한 것도 전혀 남지 않게 되는 중대한 오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정토법문의 인간적 특질
이는 세 가지 층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곧 인간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특질, 인간 사회에서 실천 가능한 특질, 인간 세상에 원만한 이익을 주는 특질이다.
① 정토법문은 인간 세상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른바 “인간 세상에 필요하다”는 말은, 인류 가운데 누구나 다 필요로 하며,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어떤 시대든지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간은 일생 동안 분주하게 살아가며, 날마다 쉴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간다. 천 가지 걱정과 만 가지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가지만, 그 삶의 근본적인 욕구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을 추구하는가? 한마디로 말해,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厭苦求樂). 이는 인간의 본능적인 추구로서, 세상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행복과 즐거움을 좇고, 불행과 고통을 멀리하려는 마음을 지닌다.
정토법문은 극락정토에 왕생할 것을 권한다. ‘극락’이라는 명칭의 유래와 그에 왕생하려는 이유에 대하여, 『정토삼부경』 가운데 『무량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삼악도와 고난이라는 이름조차 없고, 다만 자연스러운 즐거움의 소리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안락’이라 부른다.”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아래의 차별이 없이 평등하고, 막힘 없이 두루 통달하여 끝이 없으니, 반드시 생사 윤회를 초월하고 끊어 떠나 안락국에 왕생하게 되며, 다섯 가지 악도를 가로막아 끊고, 악도는 저절로 닫히게 되리라.”
『아미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그 나라의 중생들은 갖가지 고통이 없고, 오직 온갖 즐거움만을 누리므로 ‘극락’이라 부른다.”
또 『관무량수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근심과 괴로움이 없는 곳이 있다면, 저는 반드시 그곳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 염부제의 탁하고 악한 세상이 싫습니다.”
또한 『왕생론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경에서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단지 저 극락국토가 청정하고 장엄하다는 말만 듣고서, 작정하고 왕생하기를 발원하면 역시 왕생하여 정정취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이는 국토의 이름으로 불사를 짓는 것이니, 이것을 어떻게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극락’은 ‘안락’이라고도 하며, 그 즐겁다는 말을 듣고 왕생을 원하면, 작정한 대로 왕생하게 된다. 이와 같이 극락이라는 명칭의 유래만 보더라도, 정토법문이 인간 본능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에 얼마나 깊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심은 인종, 국가, 계급, 이념, 심지어 종교까지도 초월하여 인간 세상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본능은 즐거움을 지향한다. 이것이 정토법문이 지닌 첫 번째 인간적 특질이다.
② 정토법문은 인간 사회에서 실천 가능하다
이른바 “인간 사회에서 실천 가능하다”는 말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인간계에 속한 모든 중생이 실천할 수 있다는 뜻이며, 시대적 차원에서는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실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설사 어떤 가르침이 인간 사회에서 필요하다 하더라도, 실제로 인간 사회에서 실천할 수 없으면 그것은 인간적 특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유로운 교통은 인간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천상 신선들이 신통력으로 자유롭게 드나드는 것은 인간계에서 실현될 수 없으므로 인간적 특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 반면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자유로운 교통 방식이므로 인간적 특질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정토법문은 행법(行法)이 무량하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공법(共法)이고, 다른 하나는 불공법(不共法)이다.
첫째, ‘공법’이다. 세간적이든 출세간적이든 인간 사회에서 널리 행해지는 모든 선행을 포함하며, 그것을 극락왕생을 위해 회향하면 즉시 정토법문의 행법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관무량수경』에서는 ‘지성심·심심·회향발원심’의 삼심(三心) 속에서 정선과 산선, 즉 정산이선(定散二善)을 실천하는 것이 곧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행을 포섭하여 정토 수행이 된다고 설하고 있다.
둘째, ‘불공법’이다. 정토법문만이 가진 고유한 행법으로, 오직 한결같이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량수경』에서는 “한결같이 무량수불을 불러라”고 하였고, 『관무량수경』에서는 “무량수불의 명호를 집지하라”고 하였으며, 『아미타경』에서는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그 명호를 집지하라”고 설하고 있다.
즉, 인간 사회에서 불교적 출세간의 선법이 존재하는 한, 예컨대 ‘보리심을 발하고 대승경전을 독송하는’ 등의 실천이 있다면, 정토법문은 실천 가능하다. 이러한 출세간적 선법을 회향하면 즉 정토의 행법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 사회에서 불교적 출세간 선법이 전혀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세속적 선행, 예컨대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는 것’ 등의 세간적 선행이 존재한다면, 정토법문은 여전히 실천 가능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 사회에서 출세간 선법과 세간 선행이 모두 실천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정토법문은 여전히 실천 가능하다. 왜냐하면 한 구절 아미타불 명호는, 누구든지, 어느 때, 어느 곳, 어떠한 환경과 인연 속에서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경』에서는, 오역죄와 십악을 지어 임종에 지옥의 모습을 본 사람,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법을 실천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무아미타불’을 한 번이나 열 번만이라도 부르면 극락정토로 장엄하게 왕생할 수 있다고 설한다. 『무량수경』에서는, 만 년 뒤 불법이 사라진 때에 사람들이 온통 악만 짓고 선은 전혀 존재하지 않아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행이 사라진 경우에도, 아미타불의 명호만 부르면 원하는 대로 모두 왕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그것은 극락의 교주이신 아미타불께서 인지(因地)에 법장보살로 있을 때, 법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을 깊이 통달하시고, 어려운 것은 버리고 쉬운 것을 취하며, 열등한 것은 버리고 뛰어난 것을 취하여, 큰 서원을 세우시고는, 육자홍명(六字洪名)으로 모든 공덕을 총섭하시어, 오탁악세의 어리석은 범부들이 그 명호를 부르기만 해도 모두 왕생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불교의 법문은 무수히 많지만, 과연 어느 법문이 정토법문처럼 인간 사회에 보편적이고 영속적으로 존재하면서, 인간 사회를 교화하고 이익을 주는가?
만약 어떤 법문이 성인의 지혜를 가진 사람만 실천할 수 있고, 어리석은 범부는 실천할 수 없으며,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오늘날에는 실천할 수 없다면, 그러한 법문은 인간적 특질이 제한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토법문은 인간 사회에서의 실천 가능성이 무한하다. 왜냐하면 아미타불의 서원은 본래 어리석은 범부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토법문이 지닌 두 번째 인간적 특질이다.
③ 정토법문은 인간 사회에 원만한 이익을 준다
인류는 스스로 가진 한계로 인해, 자신의 필요와 행위가 언제나 합리적이고 유익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비합리적이고 해로운 요소가 가득하다. 예를 들어,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러한 본능적 의지는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초를 제공했지만, 동시에 인간 사회의 어둠과 죄악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무엇이 괴로움이고 무엇이 즐거움인지, 어떻게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을 것인지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나 가정, 혹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나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해치기도 하고, 당장의 짧은 쾌락을 위해 장래의 길고 깊은 복락을 해치기도 한다.
현실의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불평등, 범죄, 위기와 충돌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행위를 규범화하기 위해 정치, 법률, 도덕, 종교 등의 다양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불교의 정토법문은 이미 철저하고 명확한 통찰을 제시하고, 근본적으로 실천 가능한 길을 내놓고 있다.
『아미타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한다.
“그 부처님의 광명은 무량하여 시방세계를 비추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으므로, ‘아미타(무량광)’라 하며, 그 부처님의 수명과 그 국토의 중생의 수명은 무량무변한 아승지겁이므로, ‘아미타(무량수)’라 한다.
중생이 그 이름을 들으면, 마땅히 서원을 세워 저 국토에 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명호를 집지하면 곧바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
궁극적이고 완전한 안락의 경계와 그에 이르는 길은, 정토법문이 가르치는 ‘아미타불’ 한 구절의 명호 염송 속에 모두 담겨 있다.
인류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생사에 대한 무명에서 비롯되며, 그 모습은 무상하고 끊임없이 윤회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은 곧 무명을 타파하여 무량광을 얻고, 생사의 유전에서 벗어나 무량수에 이르는 데 있다. 이 경지에 이르는 방법이 바로 아미타불께 귀명하고 입으로 그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정토법문은 단지 인간 세상이 필요로 하고 실천 가능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수행과 발원이 진리에 부합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과 타인, 나라와 백성, 현재와 미래, 현생과 영겁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실질적이고 원만하며 궁극적인 이익을 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과 타인, 현재와 미래 사이에 어떤 충돌이나 모순도 발생하지 않는다.
다음에서는 정토법문이 인간 사회에 끼치는 이익을, 자신과 타인, 그리고 가족·국가·세계라는 세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
① 정토법문은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
정토법문이 주는 이익은 매우 많지만, 요약하자면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세의 이익이고, 다른 하나는 내세의 이익이다.
현세의 이익은 열한 가지다.
1. 아미타불께서 머리 위에 머무르신다.
2. 부처님의 광명이 몸을 보호한다.
3. 모든 부처님이 지극한 마음으로 호념하신다.
4. 보살들이 항상 곁에서 따라다닌다.
5. 명계(冥界)의 신중이 호법신으로서 수호한다.
6. 죄업과 장애가 소멸된다.
7. 복덕과 지혜가 증장된다.
8. 온갖 재앙과 어려움에서 벗어난다.
9. 건강하고 장수하게 된다.
10. 임종 시 평온하게 삶을 마칠 수 있다.
11. 정정취(正定聚)에 들어간다. (곧 성불이 확정된 지위에 들게 된다.)
내세의 이익은 네 가지다.
1. 윤회의 굴레를 끊는다.
2. 극락정토에 왕생한다.
3. 불과(佛果)를 성취한다.
4.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
이상 모두 합하여 열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이는 부처님과 역대 조사들의 진실한 가르침으로, 결코 헛된 말이 아니며,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실제 사례가 이를 뚜렷이 증명해 주고 있다. 덧붙이자면, 정토염불이 현세에는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매우 큰 오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② 정토법문은 타인에게도 이익을 준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성으로 염불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회향하면, 그 타인도 동일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간단히 몇 가지만 들어 보겠다.
예를 들어, 부모가 염불하면 자녀가 재난을 면할 수 있고, 자손이 염불하면 선망한 부모가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또한, 일단 극락에 왕생하면 반드시 성불할 수 있고, 성불하게 되면 널리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므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길이 궁극적으로 원만히 실현된다.
③ 정토법문은 가정·국가·세계에도 이익을 준다
그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여기서는 그 핵심을 간추려 보겠다. 작게는 가정과 단체에서,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갈등과 충돌은 대개 이익을 둘러싼 다툼에서 발생하며, 또한 사람들의 시야가 좁은 지구에 갇혀 있고, 생각이 짧은 한평생에만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로부터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해 왔다.
“번쩍이는 불꽃 같은 찰나의 삶에서 길고 짧음을 다투고, 달팽이 뿔 위에서 승패를 겨룬다.”
만일 정토법문의 염불 수행을 실천하여, 십만억 불국토 너머의 황금 정토를 동경하고, 무량겁에 걸친 자재한 몸과 마음을 원한다면, 세간의 재물과 음욕 등 다섯 가지 욕망은 오히려 피하고자 할 것이며, 오늘날 인류를 괴롭히는 핵무기, 지역 전쟁, 에너지 위기, 환경 오염, 테러, 폭력, 음란, 마약 등의 문제들도 근본적으로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무량수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다니시는 나라와 도시, 마을과 고을마다 그 가르침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온 세상이 화목하며, 해와 달은 밝고, 바람과 비는 때에 맞게 내리며, 재앙과 질병은 일어나지 않고,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은 편안하며, 병기는 쓰이지 않고, 덕을 숭상하고 인을 일으키며, 예와 양보를 실천한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향기롭고 이상적인 세계인가!
정토법문은 누구나 실천할 수 있으며, 자신은 물론 타인, 가정과 국가, 나아가 세계 전체에까지 원만하고 실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준다.
중생의 근기에 알맞고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부합하므로, 그 이익은 실로 무한하다. 이것이 정토법문이 지닌 세 번째 인간적 특질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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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법문 감사드립니다
일향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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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감사합니다
일향전칭(一向專稱)일향전념(一向專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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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인류의 궁극적인 행복은 곧
무명을 타파하여 무량광을 얻고,
생사의 유전에서 벗어나
무량수에 이르는 데 있다.
부모가 염불하면 자녀가 재난을
면할 수 있고, 자손이 염불하면
선망한 부모가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모든 근기를 아우르는 가르침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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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나게 하는 정토법문의 인간적 특질이 대한 법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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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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