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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우리가 되찾음을 그의 피를 통하여 범죄들의 용서를 지니나니 그의 은혜의 그 부유함(the riches)에 따라서입니다(엡 1:7).
7절은 “In whom”이라는 말로 시작되는데 “그 안에”라는 의미입니다. “그”(whom)는 바로 앞 절에 나오는 “그 사랑함을 받은 자”를 가리키는데 “그 사랑함을 받는 자”는 5절에 나오는 “예수 크리스트”를 가리킵니다.
그 안에 신자들이 되찾음(redemption)을 그의 피를 통하여 가집니다. “되찾음”을 “범죄들의 용서”라고 바꾸어서 설명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에 “그가 우리를 암흑의 권세에서 구해내셨으며 그의 사랑의 아들 왕국 안으로 옮기셨으며. 그 안에 우리가 그 되찾음을 죄들의 그 용서(the forgiveness)를 지니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19~20절에 “모든 충만을 정착하셨기 좋게 생각하셨고. 그를 통해 모든 것들을 그 안으로 화해시키셨기에 그러하셨기 때문이니, 그의 십자가의 그 피를 통해 평화하게 만드셨으니 그를 통해 땅 위의 것들이든지 하늘 안의 것들이든지.”라고 하였습니다.
“되찾음(redemption)”이라는 단어(아폴뤼트로시스)는 “~에서부터 구출”, “구속”(redemption), “구조”(deliverance), “해방”을 의미합니다.
속량하는 것은 구조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시 32:7, 삼하 22:2). 다윗은 하나님을 “구조하시는 자”로 고백하였습니다(시 144:2). 그는 속임과 불의의 사람에게서 구조하여 주실 것을 구합니다(시 43:1).
구속자 신앙을 처음에 고백하였던 사람은 야곱이었습니다(창 48:16). 그는 하나님의 사자께서 노예 상태로부터 되사신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스라엘)과 함께하시고 그를 건지셨습니다.
야곱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이집트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큰 심판들 안에 되사셨습니다(출 6:6).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큰 심판들로 되사셨는데 이집트의 땅에 커다란 심판을 하심으로써 그들을 되사셨습니다(출 6:6). 하나님께서는 되사신 백성을 그의 자비 안에 안내하셨습니다(출 15:13).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 되사신 백성을 그의 자비로 안내하셨으며, 그들을 그의 능력으로써 그의 성별의 거처에 인도하셨습니다(출 15:13). 하나님께서는 그가 되사신 백성을 천국에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의 형제가 가난해질 것이고 그가 그의 소유로부터 판 때 그를 되사는 그 가까운 자가 들어왔고 그의 판매를 되삽니다(레 25:25).
다윗은 주 하나님을 그를 되사시는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시 19:14). 다윗은 그의 영혼을 되사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시 69:18). 메시아께서는 폭력에서 궁핍한 자들의 영혼을 되사 주십니다(시 72:14).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되사시는 가장 높은 신(神)이십니다(시 78:35).
하나님께서는 구덩이에서 우리의 생명을 되사십니다(시 103:4).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그 미워하는 적의 손에서 되사십니다(시 106:10).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되사실(redeem) 것입니다(시 119:154).
레위기 25장 47~48절에 “체류자와 함께하는 너의 형제가 가난해졌고 그가 거주자 체류자에게 혹은 체류자의 일족의 일원에게 팖을 받았으며. 되삼이 있고 그의 형제 중에서 하나가 되살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에게 백성으로 대속하셨습니다(삼하 7:23).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대속하셨습니다(대상 17:21).
다윗은 이스라엘을 고난들로부터 대속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그를 대속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시 25:22, 26:11). 그리고 진리의 하나님께서 다윗을 대속하셨습니다(시 31:5).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의 영혼을 대속하십니다(시 34:22). 하나님께서는 나의 영혼을 음부의 손에서 대속하실 것입니다(시 49:15). 그가 전쟁으로부터 다윗의 영혼을 평화에 대속하셨습니다(시 55:18).
다윗은 그의 영혼을 되사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며(시 69:18), 그를 대속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1) “되찾음”은 크리스트 안에 있습니다.1)
에베소서 1장 7절에 “그 안에 우리가 그 되찾음을 가지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130편 7~8절에 “하나님께 기다리라 하나님과 함께 자비가 있고. 그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으로부터 대속하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대속함을 받는 사람들이 돌아올 것입니다(사 35:10, 51:11). 그가 음부의 손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대속하실 것입니다(호 13:14).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종의 집에서 대속하셨고(미 6:4),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속하셨습니다(슥 10:8).
시편 111편 9절에 “그가 구속을 그의 백성에게 보내셨고 그의 이름이 신성하게 구별되고 경외함을 받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되찾음”이라는 말은 “속전을 주고 구출하여 내다”라는 의미입니다.2)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혼을 많은 자의 속전으로 주시기 위해 오셨으며, 그는 많은 자를 석방하시기 위해서 친히 몸값이 되셨습니다(마 20:28).
그는 자신의 목숨을 속전으로 주시고 팔린 자들을 되찾으신 것입니다. 그가 팔린 자들을 되찾으시기 위해 지급하신 속전은 자신의 목숨입니다.
그 안에 신자들은 되찾음을 그의 피를 통하여 가집니다. 그 죄들의 용서를 그러하니, 그의 은혜의 풍부에 따라서입니다.
노예는 팔릴 수 있고 그 팔린 노예를 되사서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3)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니. 그 이유는 우리가 값의 삼을 받았음이며, 우리는 우리의 몸 안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여야만 합니다(고전 6:20).
우리가 크리스트 안에 “그의 피를 통하여” 되찾음을 가지게 됩니다.4)
루카복음 21장 28절에 “그러나 이것들이 생겨나기에 시작하는 때는 너희는 스스로 치켜서 올리고 너희는 너희의 머리들을 들어 올릴 것이라 너희의 그 되찾음이 가까이 오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무료로 그의 은혜에 의롭다 함을 받는 자들이니,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되찾음을 통해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되찾음(redemption)”은 “되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값을 받고 노비로 팔린 자를 되사서 양민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되산다(redeem)는 뜻의 히브리어(가알)와 관련된 말인데, “그 사자(Angel)”께서 야곱을 해악으로부터 되사 주셨습니다(창 48:16). 되산다는 말은 “속량하다”, “속죄하다”, “구속하다”를 뜻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산다는 말은 그 처음 사용될 때부터 크리스트와 관련됩니다. “되찾음”은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습니다.
“되찾음(redemption)”이라는 단어(아폴뤼트로시스)는 “풀다”라는 동사(뤼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풀다”라는 동사(뤼오)는 들 나귀의 속박을 여는 것에 쓰인 말로, 묶인 나귀를 푸는 것에 쓰였습니다(마 21:2, 막 11:2, 룩 13:15, 19:30).
금 1,000kg으로는 돈으로는 우리의 영혼을 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의 영혼의 속전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이런 “되찾음”이 없어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석가모니, 마호메트와 공자는 구원을 위한 속전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행위들에서 모든 육체가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크리스트 예수 안에 되찾음을 통하여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를 하나님께서 그 피로 속죄하는 것으로 공시하셨습니다(롬 3:25). 크리스트 예수를 하나님께서 속죄하는 것으로 보이셨습니다.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속죄하는 것으로 내놓으셨으며 공시하셨습니다. 여기서 “속죄하는 것”은 “속죄 덮개”(캅포레트)를 번역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속죄일마다 속죄 덮개 위에 희생 제물의 피를 뿌렸습니다. 파울은 여기에서 크리스트 예수를 속죄 덮개로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피가 뿌려진 속죄 덮개에 대응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공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그의 피 안에 속죄하는 것을 공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크리스트의 피로 속죄하기 위한 값을 공시하신 것이며, 우리는 “값없이” 거저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 값을 지급하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나 의로움의 하나님은 아니시면 ‘너희가 죄를 범하였지만 없던 것으로 하자’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를 벌하셔야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죽음이고 하나님께서 벌하시면 모든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죄의 삯으로 죽고 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입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올바름을 모두 만족시킬 방법이 곧 “속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 안에 속죄하는 것을 내놓으셨는데(롬 3:25),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하여 그의 피 안에 속죄하는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여기에서 “내놓으셨다”라는 말은 프러포즈하셨다는 말입니다. 청혼하려고 남자가 여자에게 청혼 반지를 내놓듯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빛이신 까닭에 악한 이재명을 혐오하시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를 하나님께서 속죄하는 것으로 공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화해” 또는 “속죄의 희생”으로 공시하셨습니다. 그 믿음을 통하여 그의 피 안에(in His blood)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앞 절에 기록된 “크리스트 예수”를 가리킵니다. “안에(in)”는 수단의 뜻인 “~에 의해서(by)”라고도 번역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7~29절에 “너희는 모든 자가 그것에서부터 마셔라. 이것은 언약의 나의 피임이니 죄들의 용서를 위하여 흘러나옴을 받으나. 지금부터 나의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새로운 것을 마시는 저 날까지 그 포도나무의 소산에서 내가 마시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4장 8절에 “이 말씀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너희와 잘라내신 그 언약의 피(blood of the covenant)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중요한 언약은 피를 뿌리고 잘라낸 것인데 피로써 세우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때 뿌리는 피를 가리켜서 “그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출 24:8). 구약 시대에 짐승의 피를 뿌렸고 메시아의 피를 뿌리심의 예표였습니다.
“그의 피를 통하여”라는 문구는 희생 제사의 교리와 일치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5)
루카복음 24장 44절에 “이것들이 너희를 향해 말한 나의 그 말들이니, 율법과 예언자와 시편에 기록된 모두가 채워져야 하노라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크리스트께서 성경대로 돌아가신 것이고. 그가 매장함을 받으신 것이고, 셋째 날에 일으킴을 받으신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울도 받아들인 것을 첫째 안에 그가 그들에게 전수하였기 때문인데, 크리스트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 성경대로 돌아가셨습니다(고전 15:3). 파울은 이 신앙고백을 먼저 받아들인 후 그들에게 다시 전수하였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매장되셨으며 셋째 날에 일어나셨습니다(고전 15:4). 예수님께서 자신이 “세 번째의 날에 일으킴을 받으리라”라고 가르치셨고 예수님께서 세 번째의 날에 일으킴을 받으셨습니다(마 16:21, 룩 24:7).
이 순간에까지 거의 지옥에 가까워질 정도로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이것을 믿는다면 “그의 피를 통하여”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6)
“그의 죽음”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피”라고 말씀합니다.7) 우리는 되찾음을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범죄들의 용서를 가집니다.
로마서 8장 23절에 “우리의 몸의 되찾음을 간절하게 기다리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직 우리는 우리의 몸을 되찾지 못하였고 간절히 기다리는 상태인데, 우리는 크리스트 안에 되찾음을 가집니다.
죄가 우리의 몸에서 제거되어야 우리의 구원은 온전하여집니다.8) 사람들은 “용서”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죄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9)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죄들의 용서”를 가지는 것입니다.10)
여기에 크리스트교의 죄 용서의 교리가 도입되고 있습니다.11) 예수 크리스트께서 피를 흘리시는 일만이 오직 유일한 길입니다.12)
크리스트의 피를 통하여 얻은 죄들의 용서가 얼마나 철저한 용서인지, 그것은 범법자에게 완전히 하나님의 은총을 입도록 합니다.13)
시편 103편 12절에 “서쪽으로부터 동쪽이 멀리 있는 것과 같이 그가 우리로부터 우리의 반역들을 멀리 있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에 “작은 자로부터와 큰 자까지 나를 알게 되리니, 내가 그들의 죄악에 용서하겠고 그들의 죄에 기억할 것이 아님이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것입니다.14) 우리가 자신을 크리스천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전혀 진리를 안 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15)
우리에게 선(good)을 행할만한 힘이 없었을 때가 있었습니다(롬 5:6). 우리가 아직 무력한 때 크리스트께서 시간을 따라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주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가치 없고 불경한 자들을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은 의인을 위해 간신히 죽고 선인을 위해 담대히 죽으나(롬 5:7),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그러신 것이고 악인을 위해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그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롬 5:8). 우리의 아직 죄인들일 때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크리스트 안에 믿는 자들은 그의 피를 통하여 죄들의 용서를 지니나니 “그의 은혜의 풍부(the riches of his grace)에 따라서”입니다.
우리는 “그의 은혜의 풍부에 따라서”라는 어구를 살필 수 있습니다.16)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여러 방식 가운데에 하나입니다.17)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 무엇이든지 체험한 적이 있는지요?18) 우리가 주 십자가 생각할 때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립니다. 우리가 보혈의 공로 힘입어 교만한 맘을 버립니다(찬송가 149장).
우리의 영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풍부하게 알아갈 것입니다.19)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셨는데 말할 수 없이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값없이 풍부하고 넘치게 주시는 분이십니다.20)
예수님께서 주실 물에서 마신 자는 결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나 그 안에 영원한 생명 안으로 솟아나는 물의 샘이 될 것입니다(요 4:14).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여 주시는 것은 언제나 온전한 용서입니다.21) 하나님께서는 그의 은혜의 풍부로 인하여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가 우리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셔서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22)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잔치의 첫맛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맛봅니다.23) 가련한 모습으로 나아가 그의 은혜의 풍부함을 받기 시작하십시오.24)
크리스트 안에 믿는 자들은 그의 피를 통하여 죄들의 용서를 지니나니 그가 우리를 위해서 풍부하게 만드신 그의 은혜의 풍부에 따라서입니다.
2)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우리 안으로 풍부하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8절에 “이것은 그가 우리 안으로 풍부하게 하신 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울은 본문 8절에서도 3절에서 시작한 진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25)
개역 개정의 8절 처음의 “이는”은 관계대명사(which)를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7절에 나오는 “그의 은혜”를 가리키는 관계사입니다. 은혜를 우리를 위해서 풍부하게(넘치게) 만드셨습니다(엡 1:8).
“풍부(豊富)”라는 말은 “풍성할 풍(豊)”과 “가멸 부(富)”가 연결되었고, “담을 성(盛)”은 채운다는 말로 굽 높은 그릇을 채우는 것이 풍성입니다.
“가멸다”라는 말은 재산이 많고 살림이 넉넉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니, “풍부(豊富)”는 가득 차고 많고 넉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우리 안으로 가득 차고 넉넉하게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남기는 것과 관련됩니다(출 10:5, 왕하 25:11).
남겨둠을 받는 것과 관련되며(판 21:16, 삼상 2:36, 30:9, 겔 48:21), 남겨둠을 받는 것이 소득입니다(잠 14:23).
남겨둠을 받는 것이 이익입니다(전 1:3, 2:13, 5:16, 7:12, 10:10~11), 성적 등이 “다른 것보다 뛰어나게 나옴”이 “우월”입니다(전 2:15, 6:11).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우리 안으로 남아서 풍부하게 하셨습니다.
“총명”이라고 번역된 단어(프로네시스)는 “통찰”을 뜻하며, “통찰”은 전체를 환하게 내다보고 예리하게 꿰뚫어 보는 것을 뜻합니다.
본문에서 “모든 지혜와 통찰(총명) 안에”라는 문구를 8절 끝에 붙일지 9절 처음에 붙일지가 논쟁이 되고 있습니다.26)
“모든 지혜와 통찰 안에”라는 문구를 8절 끝에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붙이면 그가 그의 은혜를 지혜와 통찰로 풍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는 지혜와 통찰을 풍부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를 풍부하게 하셨고 모든 지혜와 통찰은 그가 그의 은혜를 풍부하게 만드신 수단입니다. 따라서 지혜와 통찰을 목적어로 번역한 개역 개정은 잘못 번역한 것인데 개역 성경의 바른 번역을 개역 개정 성경은 다시 잘못 개정한 것입니다. 그가 그의 은혜를 풍부하게 하시되 모든 지혜와 통찰로 그러하셨고, 또는 모든 지혜와 통찰과 함께 그의 은혜를 풍부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혜와 통찰은 앎과 관련되니 9절에 붙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 9절에 붙이면 그는 모든 지혜와 통찰로 그의 뜻의 신비를 알리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뜻의 신비를 알리신 분이십니다.
에베소서 1장 9~10절에 “우리에게 그의 뜻의 신비를 알리신 분이시니 그 안에 그 시간의 그 충만함의 경영 안으로 결심하신 호의를 따라서라. 그 모든 것들을 크리스트 안에 요약하셨기 위해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 “알리다(make known)”라고 번역된 단어(그노리조)는 “알다”라는 단어(기노스코)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리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게 됩니다(엡 1:9, 룩 2:15).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에게 그 아버지의 이름을 알리셨습니다(요 17:26).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생명의 길들을 알리셨으니, 예수님을 그 자신의 얼굴과 함께 즐거움으로 채우실 것입니다(행 2:28).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 및 그의 영광의 부를 알리십니다(롬 9:22~23). 이방인 안으로 믿음의 순종 안으로 알려진 신비입니다(롬 16:26, 1:5).
파울은 자신이 전도하였던 복음을 형제들에게 알렸습니다(고전 15:1). 그들은 이 복음을 받아들였으며 이것 안에 섰습니다.
또 우리가 복음을 통하여(By which) 구원함을 받으니 전도한 말에 꽉 붙들고서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러합니다(고전 15:2).
파울은 복음을 알렸는데, 사람을 따라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갈 1:11). 파울은 자신이 전파한 복음의 기원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함을 밝힙니다. 그가 전도한 복음은 주 예수 크리스트의 계시를 통한 것입니다(갈 1:12).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그의 뜻의 신비를 알리신 분이십니다(엡 1:9).
“신비”는 파울의 서신들에서 중요한 용어입니다(롬 11:25, 16:26).27) “신비”는 사람의 지성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28) “신비”는 사람의 지성으로는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을 뜻하기보다는 자연인의 생각으로는 미칠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것을 뜻합니다.29)
그러나 크리스트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의 신비를 아니 그가 그의 뜻의 신비를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셔서 알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호의에 따라 우리에게 그의 뜻의 신비를 알리셨는데, 그의 호의는 그가 크리스트 안에 결심하신 그의 호의입니다.
구원은 영적이며 구원은 전부 하나님에 의해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며 또한 지혜와 통찰도 주십니다.30)
“시간의 그 충만함의 경영 안으로”는 원전에 10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영어 번역본들처럼 10절에서 살펴보겠습니다(엡 1:10).
한글 개역 성경은 “~ 안으로”를 그가 결심하신 목적으로 해석합니다. 9절에 “~ 위하여”, 즉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새 번역은 개역과 달리 목적의 의미를 없애고 조건으로 번역하였는데, 10절에 “때가 차면”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 그의 뜻의 신비를 알리셨습니다.31)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궁극적 미래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32)
“경영”(오이코노미아)은 “관리”, “경영”, “행정”을 뜻합니다. “섭리”(dispensation), “경영”(administration), “계획”으로 번역됩니다.
본문에서 권위를 가진 자의 “계획”, “경영”, “섭리”를 의미합니다.33) “경영(經營)”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경륜(經綸)”이라고 번역되었으며 새 번역에는 “계획”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키고 관리하는 청지기의 역할도 하십니다. 그는 사람을 뽑고 직원들을 임용하는 인사(人事)를 담당하는 경영자시며 미리 계획을 세우시고 자기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시간의 충만”은 하나님의 계획이 그 실행에 옮겨질 때를 말합니다.34)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일이 일어날 시간을 사전에 계획하셨으며 시간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때에 각각의 일을 실행에 옮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크리스트의 오심으로 그 실행에 옮겨진 것입니다.35) “모든 것들을 크리스트 안에 요약하셨기 위해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요약하다(sum up)”(아나케팔라이오마이)는 “요점”, “합계”라는 헬라어(케팔라이온)에서부터 나왔습니다. “다시”(again)라는 전치사(아나)가 접두어로 합성되어 나왔습니다. “총계하다”, “합계하다”, “요지의 개요를 설명하다(sum)”를 의미합니다. 함께 모으거나 실행하거나(put into effect) 결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번역에는 “다시”(again)라는 접두사(아나)가 생략되었습니다.36) 자신을 위해 다시 함께 끌어모으는 것, 다시 통일 재통일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크리스트 안에서 다시 총합하셨기 위한 것입니다. “총합하다”라는 말이 한글 개역 성경에는 “통일되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다시 주재하거나 다시 지휘하는(head up) 것을 뜻하기도 한데, 이 구절은 보편 구제설(Universalism)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37) 어떤 자들은 모든 자를 주재한다고 해석하여 잘못된 이론을 주장합니다.
“총합하다”라는 말은 부정사며 개역은 이것을 목적으로 번역하였으며 새 번역은 이것을 앞에서 나온 하나님의 뜻과 동격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모든 것들을 그 안에 결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입니다. 그의 뜻의 신비의 내용이 모든 것들을 결합하시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모두를 결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이 하나님의 뜻이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뜻의 신비는 모든 것들을 재결합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다시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셔서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크리스트 안에 결합하시는 것이 그의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것들”은 보편 구제론(Universalism)이 아닙니다.38)
골로새서 1장 20절에 “모든 것을 그 안으로 화해시키기에 그러하시니, 그를 통해 땅 위의 것들이든지 하늘 안의 것들이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을 재결합하시려는 것입니다.39)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예수님 안에 다시 결합하십니다.40)
1) D. M.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서문강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201.
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03.
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04.
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06.
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07.
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10.
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12.
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14.
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16.
1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18.
11)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0.
1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2.
1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4.
1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5.
1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7.
1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28.
1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30.
1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33.
1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35.
2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37.
21)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0.
2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2.
2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5.
2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7.
2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8.
2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49.
2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52.
2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55.
2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57.
3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2.
31)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3.
3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5.
3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6.
3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7.
3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8.
3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69.
3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70.
3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71.
3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72.
4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27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