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고집 발문〔跋〕
김 충문공(金忠文公 김조순)의 시문집이 공이 세상을 떠난 지 23년 뒤에 간행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아! 공이 어찌 문장으로 자처한 자이겠는가. 다만 내면에 축적되어서 글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문장을 짓는 자들은 처음에는 저마다 자신의 글을 아끼고 중시하지 않은 적이 없건만, 전해지는 것이 장구하기도 하고 짧기도 하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덕행과 공적, 이름난 절개와 식견이 우뚝하고 특출하며, 빼어나고 출중한 기운이 산천과 같고 별과 같은 연후에야 서려 있는 순수한 정신과 빛나는 예리한 기상이 고금을 다하도록 시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공이 집안에서 익힌 학문〔詩禮之學〕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충정(忠貞)은 타고난 것이며, 당당한 체구와 고상한 풍격을 지녔으며, 흉금은 담백하고 도량은 넓었다. 용과 범처럼 변화를 헤아릴 수 없지만 마음을 지니는 것은 기린과 봉황처럼 상서롭고 조화로웠으며, 높고 우뚝한 산악처럼 운용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을 다스리는 것은 어려운 때에 천하를 경륜하는 것과 같았다. 의론은 종횡으로 내달리며 곡절(曲折)이 있고 근거가 있어 장강(長江)처럼 넓고 넓어 끝이 없되 풍류가 넘치고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마치 예관(禮冠)을 쓰고 패옥을 울리며 준뢰(罇罍 제기(祭器))와 종경(鍾磬 악기(樂器)) 사이에서 절하고 사양하는 것〔揖讓〕과 같았다. 무릇 선비가 칭송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얻게 되는 것들이 공에게 한 가지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종(正宗 정조) 때 공이 나이가 아직 많지 않고 지위는 현달하지 않았으나 성상은 사람을 알아보는 밝은 안목으로 남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공을 알아보고 ‘바르고 신중하니 대사(大事)를 맡길 만하다.’라고 여겼다. 마침내 위수(渭水)의 다리를 놓는 상서(祥瑞)를 정하였으며, 손을 잡고 순종(純宗 순조)을 부탁하고서 순종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은 결코 너를 바르지 않은 도리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순종이 재위한 30여 년 동안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여 마치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조정의 상황을 안정시키고 세신(世臣)을 보호하며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형벌을 너그럽게 하는 큰일에 대해서는 그 관건을 묵묵히 보좌하였으니, 대부분 조정의 신하들이 모르고 대신(大臣)이 행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밝게 빛나는 그 충정은 요순군민(堯舜君民)의 바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만년토록 이어질 국가의 터전에 큰 명(命)을 맞이하고 큰 복을 넓히기를 항상 생각하였으니, 그 금석(金石) 같은 지극한 정성을 신명께서도 굽어볼 것이다. 옛날의 이른바 ‘사직신(社稷臣)’이라는 것이 아마도 공을 이르는 것이리라.
공은 태어나면서부터 영특하고 순수하며 빼어나고 출중하였으며, 문장에 대해서는 신명처럼 깨우침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글을 탐독하는 것을 일로 삼았는데, 규장각 벼슬에 올라 손수 책을 엮게 되어서는 관청의 등불을 대하다가 왕왕 붉은 해가 창을 비추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위로는 경전을 모두 엿보고 아래로는 제자백가에 이르기까지 푹 잠겨서 헤엄치고 두루 섭렵하였으니, 그 저술은 경전에 근본을 두되 제자(諸子)에서 힘을 얻은 것이 많아 웅장하고 광대하여 우뚝이 홀로 선 형세가 있었으며, 종묘와 조정에서 사용하는 글은 전아하고 우아하여 관악기와 현악기가 어우러져서 울리는 듯했다.
시에서는 고체(古體)에 더욱 뛰어났는데, 넓고 큰 강물이 험난한 곳을 만나 더욱 도도하게 끝없이 내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삼군(三軍)의 아침 기운과 같았으며, 갑옷 입은 말이 좁은 골짜기에서 날듯이 뛰어오르는 것 같았으며, 바람이 세차게 불고 번개가 번쩍이듯 기묘한 변화가 귀신과 같았다. 율시와 절구는 빼어나고 훌륭하며 유원(悠遠)하여 여음이 있었으니, 논하는 자들이 간혹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의 시인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공이 항상 말하기를 “떨어진 깃털과 조각난 비단을 끌어 모아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 어찌 한 필의 비단을 다 써서 마름질하여 만든 것만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공이 표절과 절취를 공교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스스로 일가(一家)의 말을 이룬 이유이다. 사문(斯文)의 모범이 되고 다스림의 귀감이 되어 팔방의 선비들이 한마음으로 받들었으니, 우리의 성대한 교화와 문명의 운용을 꾸미고 드러낸 것은 그 공을 또한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공의 서법(書法)은 굳세고 강건하였고 고상한 정취가 있었다. 일찍이 묘향산(妙香山)을 읊은 장편의 시를 쓰고서 나에게 산사(山寺)에 보관하라고 맡기셨다. 내가 연경(燕京)에 갈 때 이 시를 지니고 연경에 이르니 명사(名士)들이 모여서 보고 깜짝 놀라 돌아보며 말하기를 “양양(襄陽 미불(米芾))의 글씨요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의 시로다. 초고를 남겨두어 천하 사람들과 함께 보배로 여기고 싶소.”라고 하였다. 이 글씨는 공이 손 가는 대로 붓을 적셔 쓴 것에 불과할 뿐인데도 안목이 높은 자에게 중시를 받은 것이 마침내 저와 같았단 말인가.
공의 막내아들인 상국(相國 김좌근(金左根))이 나에게 한마디의 서문을 명하였으니, 어찌 내가 공의 문장을 선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서이겠는가. 아마도 내가 예원(藝苑)의 글을 짓는 자리에서 공의 덕에 감화되고 가르침을 입은 것이 지금 사람들 중에 오래되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내가 어찌 공의 문장을 알 수 있겠는가. 오직 공의 덕업과 학식과 세상에 보기 드문 도량이, 공이 살아 있느냐 세상을 떠났느냐에 따라 드러나고 묻힘이 없을 것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하물며 이 책에 공의 해타(咳唾)와 담소와 정신이 모여 있음에랴.
옛날 송금화(宋金華 송렴(宋濂))가 구문공(歐文公 구양현(歐陽玄))의 책에 쓰기를 “공의 문장은 하늘과 땅의 사이에 있어서, 올라가면 경운(卿雲 상서로운 구름)이 되고 내려오면 예천(醴泉)이 될 것이니, 시간이 흘러도 항상 새로워 천고의 시간이 하루와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늘 이 말을 외고 또 세상에 이 말에 해당될 만한 자가 없음을 한스럽게 여겼는데, 오늘에야 공을 위해 이 말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금상 5년 갑인년(1854, 철종5) 중추(仲秋)에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ㆍ홍문관ㆍ예문관ㆍ춘추관ㆍ관상감사 원임규장각제학(原任奎章閣提學) 동래(東萊) 정원용(鄭元容)이 삼가 짓다.
[주1] 김 충문공(金忠文公)의 …… 되었다 : 《풍고집》은 1854년(철종5)에 풍고의 셋째 아들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이 정리자(整理字)로 간행하였다.
[주2] 어려운 …… 같았다 : 원문은 ‘운뢰지경륜(雲雷之經綸)’인데, 《주역》 〈둔괘(屯卦) 상(象)〉에 “비를 이루지 못한 구름과 우레가 둔이니 군자가 보고서 천하를 경륜한다.[雲雷屯, 君子以, 經綸.]”라는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구름과 우레는 하늘과 땅의 기운이 통하지 않는 어려운 때를 의미한다.
[주3] 위수(渭水)의 …… 정하였으며 : 풍고의 딸을 순조의 비(妃)로 간택했다는 말이다. 위수의 다리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태사(太姒)를 친영(親迎)한 것을 말하는데, 《시경》 〈대명(大明)〉에 “큰 나라가 딸을 두니 하늘에 비길 만한 여인이로다. 예로 그 길함을 정하시고 위수(渭水)에서 친영하사, 배를 만들어 다리를 놓으시니 그 빛이 드러나지 아니할까.[大邦有子, 俔天之妹. 文定厥祥, 親迎于渭. 造舟爲梁, 不顯其光?]”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4] 손을 …… 하였다 : 《순조실록》 32년 4월 3일자 풍고의 졸기(卒記)에 같은 내용이 보인다.
[주5] 요순군민(堯舜君民)의 바람 : 임금을 요순과 같은 성군으로 만들고 백성을 요순 시대의 순박한 백성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은(殷)나라 탕(湯) 임금의 세 번이나 계속된 초빙을 받은 이윤(伊尹)이 출사하면서 한 말에서 나왔다. 《孟子 萬章上》
[주6] 옛날의 …… 것 : 사직신(社稷臣)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 중신(重臣)을 말한다. 맹자가 “사직을 편안히 하려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안히 함을 기쁨으로 삼는 자이다.[有安社稷臣者, 以安社稷爲悅者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주7] 위로는 …… 이르기까지 : 원문은 ‘상규하체(上窺下逮)’이다.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위로는 요순의 아득하여 끝이 없음과……살피며, 아래로는 《장자》와 《이소(離騷)》와……에까지 미친다.[上規姚姒渾渾無涯……下逮莊騷……]”라고 한 것을 축약한 표현한 것이므로, 〈진학해〉의 내용을 참작해 보충해서 번역하였다.
[주8] 삼군(三軍)의 아침 기운 : 예리한 기운을 말한다. 《손자(孫子)》 〈군쟁(軍爭)〉에, “그러므로 삼군의 기운을 빼앗을 수 있고, 장군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침 기운은 예리하고 낮 기운은 태만하고 저녁 기운은 돌아가려 하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의 예리한 기운을 피하고, 나태하여 돌아갈 때 공격한다.[故三軍可奪氣, 將軍可奪心. 是故朝氣銳, 晝氣惰, 暮氣歸. 故善用兵者, 避其銳氣, 擊其惰歸.]”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주9] 내가 …… 때 : 정원용(鄭元容)은 1831년(순조31)에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왔다.
[주10] 옛날 …… 하였다 : 송금화(宋金華)는 명나라 초기의 문인 송렴(宋濂)으로, 절강성(浙江省) 금화(金華) 출신이다. 자는 경렴(景濂) 호는 잠계(潛溪)이다. 구문공(歐文公)은 원(元)나라 구양현(歐陽玄)으로 시호가 문(文)이다. 자는 원공(原功), 호는 규재(圭齋)이다. 인용한 내용은 송렴의 《문헌집(文憲集)》 권7의 〈구양문공문집서(歐陽文公文集序)〉에 나오는 말을 축약해서 옮긴 것이다. 참고로 구양현의 문집은 《규재집(圭齋集)》이다.
跋[鄭元容]
金忠文公詩文集。後公二十三年。而板行于世。嗚呼。公豈以文章自命者哉。特積諸中而發之爲言也。古今爲文章者。其始未嘗不各自寶重。傳之有久近何哉。德行功業。名節識見。魁梧傑特。卓犖不羣之氣。如川嶽。如星辰。然後精靈之所蟠。芒角之所爍。可以閱窮宙而不弊矣。公詩禮世也。忠貞性也。偉幹峻標。冲襟汪度。龍虎變化之莫測。而持心則麟鳳之祥和也。喬泰運用之不見。而宰物則雲雷之經綸也。議論則馳驟衡縱。有曲折。有根據。長江浩浩不窮。而風流暎發。餘韻弘長。如冠冕瑲玉。揖讓於罇罍鍾磬之間。凡人士之所夸美而名世者。於公無一不具。 正宗時。公年未高。位未顯。則哲之明。知公於衆所不知之中。謂正直謹愼。可屬大事。遂定渭梁之祥。執手托純宗曰。此人必不以非道導之。及 純宗三十餘年之間。謙虛畏約。若不以事物經心。而至若靖朝象。保世臣。恤困窮。寬刑獄之大政。密贊樞機。多外廷所不知。而大官所難行者。炳然丹心。非惟堯,舜君民之願。常思迓景命。衍洪祚於萬億之基。金石至諴。神明鑑臨。古所謂社稷臣者。其如公之謂乎。公生而英粹秀穎。於文有靈悟神解。自少業耽書。上閣直手編。對官燈。往往不覺紅旭之照窓。上窺下逮。浸泳汎濫。其制作本經籍。而得諸子。力爲多閎雄博茂。騫然有特立之勢。而郊廟朝廷之用。典雅舂容。玉管珠絃之和鳴也。有韻。則古體尤長。薈蔚奫泫。遇硬愈肆。奔放無涘。三軍朝氣。介馬飛騰於狹束之谷。風電熌掣。奇變如神。律絶雋逸。高邁悠遠。而有音 論者。或疑爲蘇,黃。公常言聚零羽片錦以自耀者。曷若布帛全疋之裁成哉。此公之不以剽襲尋撦爲工。而自成一家語也。羽儀斯文。元龜人治。八方衿紳。翕然而宗之。賁闡我昌煕聲明之運者。其功亦豈可易言哉。公書藝遒健。有高致。嘗寫妙香長篇。屬余藏山寺。余之燕携至。上京諸名士。聚觀驚顧曰。襄陽之書。山谷之詩也。願留草。與天下人共寶之。此不過公信手濡毫。而爲知音者所重乃爾耶。季子相國命元容一言簡端。豈謂余能發揮公文哉。其以余之薰德染誨於藝苑觚翰之間者。于今人有久也歟。余何足以知公文哉。惟知公德業學識間代之器。不以存沒而有顯晦。况此卷。公咳唾談笑精神之所注乎。昔宋金華題歐文公卷曰。公文在霄壤中。上之爲卿雲。下之爲醴泉。光景常新。千古如一日。 余每誦斯語。又恨世之無可當斯語者。今可爲公書之也。上之五年甲寅仲秋。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原任奎章閣提學東萊鄭元容。謹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