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헌기
이 헌(軒)을 불우(不憂)라고 명명한 것은 한가로이 지내는 뜻을 드러내 기록함이다. 사람이 세상에 있어서 한가함이 없으면 근심이 있고 한가함이 있으면 근심이 없음이 예로부터 그런 것이다.
요(堯) 임금은 순(舜)을 얻지 못한 것을 자기 근심으로 삼았고 순 임금은 우(禹)와 고요(皐陶)를 얻지 못한 것을 자기 근심을 삼았으니, 이는 천하를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으로 근심한 것이다. 공자가 노(魯)나라를 떠나면서 “더디도다, 나의 행차여.”라고 했고,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때는 사흘을 묵고 주읍(晝邑)을 나갔으니, 이는 도를 행하고 시대를 구제하기 위하여 근심한 것이다.
옛 태산군(泰山郡)에 한 거사(居士)가 있는데, 그 학문은 경사를 섭렵하고 그 뜻은 성현을 사우로 하여 두 차례 이단을 물리치는 상소를 하니, 중용(中庸)에 의지한 것이다. 연방(蓮榜)을 거쳐 정과(丁科)에 급제하니, 유자(儒者)의 기상이다. 원종 2등 공신에 들어 자손이 음직을 받고 후세에 죄가 있어도 용서를 받는 은전을 얻으니, 임금의 은총을 받은 것이다. 성균관 주부 네 번과 종학 박사 두 번을 역임했으니, 문신의 직책이다. 총마(驄馬)를 타고 상대(霜臺 사헌부의 별칭)에 앉았으니, 풍헌(風憲 사헌부의 권능)의 여광(餘光)이다. 양전관(量田官) 세 번과 교수직 세 번을 역임했으니, 유림으로서 쓸모 없는 존재이다. 신세를 뜬구름같이 여기고 고관을 헌신짝처럼 버린 채 자신의 내면에 기량을 간직하고 일의 기미를 보아서 일어나 기쁜 마음과 자득한 모습으로 여기에서 조석으로 지내고 여기에서 기거한다. 그리고 남자 종은 밭을 갈고 여자 종은 베를 짜서 그 수고로움을 대신하고, 부모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여 그 인륜을 돈독하게 하여, 벼슬길의 부침을 듣지 않으니 어찌 세도의 승강을 알 것인가. 높은 하늘 낮은 땅 사이에 한가히 지내는 한 사람이니, 무엇을 근심할 것인가.
고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네 마리 말이 끄는 높은 수레를 타는 사람은 그 근심이 매우 크니, 부귀하면서 사람을 두려워함이 빈천하면서 뜻을 마음대로 하느니만 못하다고. 그것은 아마 불우헌에 지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리라.
不憂軒記
軒以不憂名。志閒也。人之於世。無閒則有憂。有閒則無憂。從古則然。堯以不得舜。爲己憂。舜以不得禹皐陶。爲己憂。是爲天下得人而憂之也。孔子之去魯曰。遲遲吾行。孟子之去齊。則三宿出晝。是行道濟時而憂之也。古泰山郡。有一居士。其學則涉獵乎經史。其志則師友乎聖賢。再上疏闢異端。依乎中庸矣。由蓮榜捷丁科。儒者氣像矣。錄原從二等。蔭子孫宥後世承天寵也。四成均注簿。再宗學博士。文臣職也。乘驄馬。坐霜臺。風憲之餘光也。量田三。敎授三。儒林之腐者也。浮雲乎身世。弊屣乎軒冕。藏器於身。見幾而作。欣欣然囂囂然。朝夕於斯焉。起居於斯焉。奴耕婢織。足以代其勞。父慈子孝。足以厚其倫。不聞宦海之浮沈。焉知世道之升降。天高地下間。一閒人也。夫何憂哉。古之人不云乎。駟馬高車。其憂甚大。富貴之畏人。不如貧賤之肆志焉。其不憂軒上人之謂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