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공문초 서문文貞公文鈔序
나의 7세조 문정공(文貞公)의 분서집(汾西集) 16권과 부록 1권의 목판이 천안군(天安郡) 광덕사(廣德寺)에 보관되어 있다. 또 상자 안의 원고 20권이 집에 보관되어 있는데, 모두 선조께서 직접 쓰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종가에 몇 년 사이로 연거푸 혹심한 상화(喪禍)가 닥쳐 대대로 전해오던 서적이 거의 다 없어지고, 상자 안의 원고도 없어지고 말았다. 아! 원통하도다.
우리 집에는 예전에 필사본 《분서시문(汾西詩文)》 4책이 있었는데, 이 역시 절반을 잃어버렸다. 거기에 ‘증왕고유고(曾王考遺稿)’라는 표지가 붙었으니, 아마 우리 고조부 장간공(章簡公)께서 손수 써서 정리하신 듯하다. 지금 원집을 가져다 서로 대조해보니, 그 같고 다르며 자세하고 간략함에 서로 다른 곳이 많았다. 내가 생각건대, 원집이 이미 간행되어 세상에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고조부께서 다시 집안에 전해오던 원고를 초록하여 이 책을 엮었으니, 상자의 원고 전부를 지금 다시 볼 수 없으나, 이 책이 남아서 열의 한둘이나마 전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권질(卷帙)이 단출하여 이 책만으로 간행하기는 어려우나, 내가 살펴보니 당송제가(唐宋諸家)의 문집에도 다시 교정한 별본(別本)이 많이 있고, 체재와 규모에 각기 취한 의미가 있었다. 이에 감히 참람함을 헤아리지 못하고서 원집과 합하여 다시 편차를 바로잡아, 이제 고체(古體) 및 근체시(近體詩) 모두 328수로 제1권과 제2권을 만들고, 서(序)와 기(記)를 합해 17편으로 제3권을, 서독(書牘) 5수로 제4권을, 비지(碑誌) 7편으로 제5권을, 행장(行狀) 4편으로 제6, 7권을, 제문(祭文) 7수로 제8권을, 변(辨)ㆍ책(策)ㆍ찬(贊)ㆍ명(銘)ㆍ송(頌)ㆍ제(題)ㆍ발(跋)을 합해 17편으로 제9권을 만들었으니, 부록 1권을 합하여 모두 10권이 된다. 제목을 《문정공문초(文貞公文鈔)》라고 붙인 것은 작품을 선정하여 수록한 것이 간략하기 때문이고, 또한 별본임을 나타내어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분서집》이 온전한 간본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 삼가 생각건대 선조께서 아름다운 덕을 세워 후세에 드리우시어 자손들이 훌륭하게 되었다. 우리 고조부 때에는 대공(大功)에 해당하는 형제가 14인이었는데, 훌륭한 선비와 이름난 대신이 되어 같은 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으니, 선조의 유훈을 이어 받들고 후손에게 가르침을 끼친 것이 깊고도 원대하였다. 그러므로 집집마다 모아 놓은 글이 필시 사람마다 한 묶음씩, 집집마다 한 부(部)씩은 될 것이다. 지금 이것들을 취합한다면 흩어진 짧은 간편(簡編)들을 필시 다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니, 얼마간의 유초(遺艸)가 우리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후손들이 촌수가 멀어지고 타향에 흩어져 살고 있으므로 수소문하여 모으는 일도 창졸간에 이룰 수는 없다. 부디 서로 이 사실을 알려서 일이 성사되도록 도와줄 것을 족당(族黨)의 제현들에게 간절히 바라노라.
을사년(1845) 2월, 불초손 규수(珪壽)가 삼가 쓰다.
[주1] 문정공문초 서문 : 이 글은 환재가 1845년 2월에 7대조 문정공 박미(朴瀰)의 시문들을 뽑아 《문정공문초》 10권을 편찬하면서 붙인 서문이다. 이 책은 집안에 소장되어 온 필적을 모아 묶은 것으로, 이미 간행된 《분서집(汾西集)》보다 규모가 작은 별본이다.
[주2] 문정공(文貞公) : 박미(朴瀰, 1592~1645)의 시호이다. 본관은 반남, 자는 중연(仲淵), 호는 분서(汾西)이다. 이항복의 문인으로, 1603년(선조36) 선조의 다섯째 딸인 정안옹주와 혼인하여 금양위(錦陽尉)에 봉해졌다. 광해군 때 폐모 논의에 불참하였다가 삭탈관직 당했으나, 인조반정 후 구공신적장자(舊功臣嫡長子)로 가자되었으며, 혜민서 제조에 서용되었다. 1638년 성절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금양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주3] 분서집(汾西集) : 박미의 시문집으로 목판본 16권 4책이다. 1682년(숙종8) 손자 태두(泰斗)가 편찬ㆍ간행하였다. 내용은 권1~8은 시(詩), 권9~10은 서(序), 권11은 기(記), 권12는 묘지명, 권13은 묘표ㆍ행장, 권14는 잡저, 권15는 제문, 권16은 발(跋) 및 부록으로 되어 있다. 부록에는 자지(自識)와 우암 송시열이 쓴 신도비명과 서문 및 조카 세채(世采)가 쓴 행장이 수록되어 있다.
[주4] 광덕사(廣德寺) : 현재 천안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1464년(세조10) 세조가 광덕사에 거둥한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가,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버리고 가까스로 대웅전ㆍ천불전만 중건되어 명맥만을 유지하였고, 1981년 대웅전ㆍ천불전 등이 증축되었다.
[주5] 장간공(章簡公) : 박필균(朴弼均, 1685~1760)으로, 본관은 반남, 자는 정보(正甫), 시호는 장간공이다. 1754년 대사간으로 재직시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연(書筵)을 중지한 잘못과 조정의 언로 폐쇄, 과거제 문란 및 백관들의 기강 해이를 지적하는 소를 올려 인정을 받았다. 1758년에 동지돈녕중추부사에 올랐다. 벼슬에 있을 때 청백리로 칭송받았다.
[주6] 대공(大功) : 9개월 동안 입었던 굵은 베로 만든 상복을 말한다. 대공에서 정복(正服)의 대상은 같은 항렬에 속하는 3등친인 4촌형제와 자매, 아랫대로는 3등친인 둘째 이하의 손자ㆍ손녀로서, 자매와 손녀의 경우 출가하면 소공(小功)으로 내린다.
文貞公文鈔序
七世祖文貞公汾西集十六卷附錄一卷。藏版于天安郡廣德僧舍。又有在笥稿二十卷藏于家。皆先祖手筆艸墨也。宗子之家。數歲以來。喪禍荐酷。傳世書籍。散亡殆盡。而在笥稿全部亦在佚中。嗚呼痛哉。吾家舊有寫本汾西詩文四册。亦佚其半。其標識稱曾王考遺稿者。葢我高王父章簡公親手錄定也。今取原集與之對較。則其同異詳略。多有互相出入者。竊意原集旣鏤版行世。而高王父復鈔家藏存稿。以成此編者。則在笥全部。今旣不可復見。而幸得此本。猶傳其十之一二槩矣。然卷帙單寡。旣難孤行。而竊觀唐宋諸家文集。亦多重訂別本。體裁規撫。各有取義。輒敢不揆僭妄。參合原集。重整編次。今得詩古近體共三百二十八首。爲第一第二卷。序記共十七篇爲第三卷。書牘五首爲第四卷。碑誌七篇爲第五卷。行狀四篇爲第六第七卷。祭文七首爲第八卷。辨策贊銘頌題跋共十七篇爲第九卷。附錄一卷共計十卷。題曰文貞公文鈔。誠以選錄旣簡。而且以示別。使後之人。知汾西原集自有剞劂全本也。嗚呼。恭惟先祖種德垂庥。孫支競爽。惟我高王父之世。大功兄弟且十有四人。鴻儒名卿。同堂而飯食。所以繩述先訓。貽詔來許者。亦旣深且遠矣。則凡家集遺書。是必人抱一束而家弆一部。今若聚而合之。則斷簡逸編。必將復有所得。而數卷遺艸。不獨吾家有也。顧後屬疏遠。散處異鄕。搜訪萃集。未可倉卒。庶幾其相與告言而贊成之者。深有望於族黨之諸賢云爾。時乙巳仲春。不肖孫珪壽謹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