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묘소에 과거 급제를 고하는 제문 祖考墓榮掃告由文
갑술년(1874, 고종11)
삼가 아뢰옵건대 가운이 중도에 막힌 지 伏以家運中否
거의 백 년에 가깝습니다 殆近百年
훌륭하신 부군께서는 憲憲府君
도를 굳건히 지켜 守道介然
덕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有德不施
재주가 있어도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有才不稱
이런 덕을 불초한 제게 남기셔 以遺不肖
남은 경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獲承餘慶
성주께서 직접 납시어 聖主臨軒
5월 보름 五月之望
병과 제7등으로 丙科第七
합격자 방에 이름을 올리고 策名金榜
계속해서 영관에 오르게 되니 繼登瀛館
영광이 지극하나 근심도 깊습니다 榮極憂深
찬연히 빛나시는 부군께서 皇皇府君
조석으로 비추어 주셨고 朝夕照臨
아름답게 마음을 다잡으셨으며 懿厥秉心
공정하여 치우침이 없으셨습니다 公正無頗
비록 재야에 계실지라도 雖在布韋
나라를 집처럼 걱정하였습니다 憂國如家
의식을 구하려 해도 將求儀式
전형을 따라잡지 못할 것입니다 典型莫攀
공경히 술과 과실을 진설하고 敬陳酒果
줄줄 눈물을 흘립니다 涕泗汍瀾
[주1] 부군(府君) : 김윤식(金允植)의 조부 김용선(金用善, 1766~1821)을 가리킨다. 생애는 미상이다.
[주2] 남은 경사 : 남에게 좋은 일을 한 보답으로 자손이 누리게 되는 경사를 가리킨다. 《주역》 〈곤괘(坤卦)〉에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으리라.〔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하였다.
[주3] 영관(瀛館) : 홍문관을 가리킨다. 당 태종(唐太宗)이 문학관(文學館)을 열어 인재를 모아 경전을 토론하게 하였는데, 이를 세상 사람들이 영주에 오르는 것에 비유해 영광으로 여겼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조선 시대에 홍문관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