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의(大學問疑)
대학(大學)의 착간(錯簡)은 정자(程子)의 정(定)한 바에 많이 따르고, 경 일장(經一章)에서 이천(伊川)과 주자(朱子)는 ‘물유본말(物有本末)’ 아래에 ‘명명덕(明明德)’으로 잇[繼]고, 명도(明道)는 강고(康誥)의 ‘극명덕(克明德)’으로 밝혔다. 치지장(致知章)은 구본(舊本)에 ‘지어신(止於信)’ 아래에 있었는데, 명도(明道)는 그것을 ‘기본난말치자부(其本亂末治者否)’ 아래에 이어 놓았고, 주자(朱子)는 이천(伊川)의 뜻에 따라 ‘대외민지(大畏民志)’ 아래에 이어 놓고, 백 24자(字)로 보충하였다. 주자는 ‘극명덕(克明德)’을 전수장(傳首章)에 두고 이천(伊川)은 ‘지지(知至)’ 아래에 두었다. 기타의 ‘기욱(淇澳)’, ‘문왕(文王)’, ‘절남산(節南山)’, ‘강고(康誥)’의 취증(取證)은 정자(程子)의 개정(改正)과 혹 같고, 혹 다르다. 중용ㆍ대학은 본래 예기(禮記) 중에서 선출한 것인데, 한유(漢儒)의 부회(傅會)한 것이 많고, 정ㆍ주(程朱)의 의론(議論)도 마침내 귀일하지 못하여, 후학의 의심 가짐이 절로 그럴 수밖에 없다.
전사장(傳四章)
소주(小註)에 ‘백성으로 하여금 송(訟)이 없게 함은 나에게 있는 일이니, 근본이 되고, 청송(聽訟)하는 소이는 말(末)이 된다.’고 하였는데, 이 설(說)은 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백성으로 하여금 송사(訟)가 없게 함은 신민(新民)의 일이니 끝이 되지만, 백성으로 하여금 송사가 없게 하는 것은 그 근본을 알아 먼저 그 명덕(明德)을 밝히므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대저 근본은 물론 사람이 마땅히 급히 힘써야 할 바이지만 말(末)도 또한 약(略)할 수 없다. 만일 이 말대로 하면 성인은 그 근본만 일삼고 그 말절(末節)은 힘쓰지 않은 것이니 어찌 가하겠는가? 혹문(或問)에 이르기를, ‘나의 덕(德)이 이미 밝아져 덕(德)이 스스로 새로워지면 그 근본의 명효(明效)를 얻은 것이다.’고 하였다. 나의 덕(德)이 이미 밝아졌다는 것은 곧 그 근본을 얻음이오, 백성의 덕(德)이 스스로 새로워졌다는 것은 그 효(效)이며 말(末)이다. 그 본말(本末)의 뜻을 해석함이 이미 명백하고 주족(周足)하다. 그 아래 이른바 ‘혹 그렇지 못하다.’로부터 ‘그 또한 말(末)이다.’에 이르기까지는 눌러 물리치는 말이니, 어찌 그것으로써 ‘물유본말(物有本末)’의 뜻을 함께 논할 수 있겠는가? 우옹(尤翁)의 이른바 ‘미말(微末)’이란 것이 아마도 바꿀 수 없는 논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이 말은 기록의 오(誤)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전육장(傳六章)
군자(君子)가 선을 하고 악을 버리는 까닭은 다만 도리(道理)가 마땅히 그래야 하겠기에 그렇게 하는 것뿐이지, 어찌 밖에 힘써서 사람을 위하여 그러한 것이겠는가? 그런데 지금 이른바 그 ‘폐간(肺肝)을 보는 듯하다.’ㆍ‘밖에 나타나다.’ㆍ‘열 눈[十目]이 보는 바요 열 손[十手]이 가리키는 바다.’ㆍ‘덕(德)이 몸을 윤택하게 한다.’ㆍ‘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살찌다.’ 등등의 말은 마치 전혀 밖에 치중(置重)한 것 같으니, 이는 무슨 까닭인가? 선(善)을 하면서 밖에 나타남을 구하며, 악(惡)을 버리면서 남의 앎을 두려워하면 그 일은 공(公)이지만 그 뜻은 사(私)이다. 또 부부(夫婦)의 임석(袵席)의 사이에 혹 정(情)에 맡겨 욕(慾)에 방종하는 때가 있다 하더라도 어찌 진실로 열 눈의 봄과 열 손의 가리킴이 있겠는가? 일시의 실수[失]가 이 어찌 밖에 나타나 그 폐간(肺肝)을 보는 듯 한 데까지 이르겠는가? 이같으면 지극히 은밀하고 지극히 그윽한 곳은 타인의 미처 알지 못하는 곳이란 것을 확실히 안다면 그 선을 하고 악을 버리는 소이의 뜻이 혹 게을러지지 않겠는가?
전칠장(傳七章)
유소(有所)의 뜻을 일전에 감히 망설(妄說)을 드려 인가(印可)를 받았으나, 다만 어류 제설(語類諸說)이 유소(有所)를 병통이라고 확실히 말한 것이 많은데, 이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비록 초ㆍ만(初晩)의 분(分)이 있다고 하나 이미 초년(初年)의 설(說)이 있으면 또한 마땅히 만년(晩年)에 그 앞선 잘못을 깨달은 논(論)이 있을 것이고, 그 문하 제인(門下諸人)이 또한 반드시 참여(參與)하여 들은 자가 있었을 터인데, 집주(集註)와 혹문(或問) 밖에는 하나도 증거(證據)될 만한 것이 없고, 또 우리나라로 말하면 퇴계(退溪)ㆍ율곡(栗谷) 여러 선생이 일생 동안 이 책을 잠심 공부했어도 한 마디 이에 언급한 것이 없으니 무슨 까닭인가? 어찌 후인의 격치(格致)의 공(功)이 이르지 못한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일까?
‘심불재언(心不在焉)’이란 재(在)는 보고 듣고 말함에 있다고 함인가? 그렇지 않고 강자(腔子)속에 있다는 것인가?
전팔장(傳八章)
오벽(五辟)은 이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다. 마음이 그 바름을 얻었다면 어찌 이 다섯 가지의 병통이 있겠는가?
전구장(傳九章)
이 장(章)은 본래 위에서 행(行)하면 아래서 본받아 기약함이 없이 절로 그렇게 되는 것을 말한 것인데, ‘여보적자(如保赤子)’에 이르러는 도리어 미루어 행하는 것의 큰 것으로 삼었으니 무슨 까닭인가? 나의 생각은 이 조목은 전혀 자(慈)를 가리켜 말한 듯하고, 중(衆)을 부리는 데까지 추행(推行)하는 것을 말한 것 같지 않다. 자(慈)라는 것은 사람이 드물게 잃어버리는 것이므로 특히 이를 들어 말하여, 효(孝)와 제(弟)와 자(慈) 세 가지는 모두 이 자연에서 나온 것이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반드시 그 단서의 발견을 알아서 미루어 넓힘에 있다. 가령 자(慈)로써 말하면 적자(赤子)를 보호[保]하는 ‘진심으로 구한다[心誠求之].’ 같은 것이 단(端)이고, 이로부터 많은 자애(慈愛)하는 도(道)에 미루어 다하는 것이 이른바 추광(推廣)이다. 그 집에 베푸는 것이 이와 같기 때문에 비로소 인(仁)에 흥(興)하고 양(讓)에 흥(興)하는 공효(功效)가 있게 되는 것이 마치 신민장(新民章)에 말한 ‘먼저 자신을 새롭게 함을 힘쓰면 백성이 절로 일어나서 스스로 새롭게 한다.’는 것과 같다. 만일 이 장(章)으로써 백성에게 미루는 것을 말한 것이라 하면 이는 곧 오히려 권면(勸勉)하고 독려함을 기다린 뒤에야 화(化)하는 것이니, 어찌 가하겠는가? 그러나 혹문(或問)에는 명백히 백성에게 베푸는 것으로써 말하였으니 감히 알 수 없다.
전십장(傳十章)
‘중심(衆心)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중심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 한 것이 나라의 득실(得失)에 권권(眷眷)한 것 같으나, 군자 어찌 천하의 존귀(尊貴)를 탐해서 혈구(絜矩)의 도를 억지로 행하겠는가?
문왕(文王) 조(條)의 득실을 말한 것을 집주(集註)에 상문(上文) 양절(兩節)의 뜻을 맺었다고 했으면, 다시 논할 것이 없는데, 강고(康誥)ㆍ대도(大道)에서 득실을 말한 것을 집주에 ‘다만 문왕 강고(文王康誥)의 뜻을 따른 것이라’고만 말하고, 그 상문(上文)을 맺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 팔절(八節)로 나눈 것도 이 양조(兩條)로서 각각 한 절을 만들었으니, 상문(上文)을 맺는다는 뜻을 이름이 아닌 듯하다. 이 말대로라면 양조(兩條)의 득실을 말한 것이 거의 착락(着落)할 곳이 없지 않은가? 강고(康誥) 조(條)의 혹문(或問)에 이르기를, ‘선(善)하면 얻는다.’는 것은 덕(德)이 있고 사람이 있다는 말이고, 불선(不善)하면 잃는다는 것은 거슬려 들어오고 거슬려 나간다는 말이다.’고 하였고, 대도(大道) 조(條)에는 이르기를 ‘사람과 더불어 호오(好惡)를 같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집주(集註)에 이른바, ‘상문(上文) 문왕(文王) 시(詩)의 인용한 뜻에 따랐다.’는 것이 정(正)히 그 상문의 뜻을 맺는 것을 가르킴이라고 하였다면 이 몇 가지 말을 다 상문을 맺는 것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힘써 백성으로 더불어 호오를 같이하고 그 이(利)를 오로지 하지 않는 데 있다. ‘남산유대(南山有臺)’ 이하(以下) 삼조(三條)와 진서(秦誓) 이하 사조(四條)는 호오(好惡)를 말한 것이요, ‘선신호덕(先愼乎德)’ 이하 오조(五條)와 및 ‘생재유대도(生財有大道)’ 이하는 그 이(利)를 오로지 아니함을 말한 것이다. 만일 호오(好惡)를 같이 함으로써 용인(用人)하는 것이라 한다면, ‘남산유대(南山有臺)’ 이하 삼조(三條)가 어찌 그 전혀 용인(用人)에 속한다고 보겠는가? ‘호인소오(好人所惡)’ 주(註)에 어째서 또 ‘용인으로 인해서 능히 혈구(絜矩)함과 능히 혈구하지 못함을 밝힌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大學問疑
大學錯簡。多因程子所定。而經一章。伊川朱子則物有本末下。繼以明明德。而明道則以康誥克明德明之。致知章。舊本在止於信下。而明道則繼於其本亂末治否下。朱子因伊川意。係於大畏民志下。而補亡以一百二十四字。朱子則克明德在傳首章。而伊川則在知至下。其他淇澳文王節南山康誥取證。與兩程改正。或同或異。庸學本禮記中選出。多經漢儒傅會。而程朱議亦終未歸一。後學之持疑。無恠其然。
傳四章
小註使民無訟。在我之事。本也。所以聽訟爲末。此說恐可疑。盖使民無訟。新民之事。末也。然所以事民無訟者。由其知本而先明其明德故也。夫本。固人之所當急務。末亦不可以略也。若如此說。則聖人徒事其本而不務其末。豈可乎哉。或問曰。己德旣明而民德自新。則得其本之明效也。己德已明者。卽得其本也。民德自新者。其效也末也。其釋本末之義。已明白周足矣。而其下所謂或不能然。至其亦末矣。是抑退之辭。何可與論於物有本末之義乎。尤翁所謂微末者。恐是不易之論。然則此說無乃出於記錄之誤耶
。
傳六章
君子之所以爲善而去惡者。亦只看道理之當如是而已。豈可務外而爲人而然哉。今曰如見其肺肝。形於外。十目所視。十手所指。德潤身。心廣體胖等語。有若專歸重於外者然。是何也。爲善而求形於外。去惡而畏人之知。則其事雖公而意則私。且夫婦袵席之間。雖或有任情縱慾之時。豈眞有十目之視十手之指乎。一時之失。豈至於形於外而如見其肺肝乎。如是則至隱至幽之處。决知其他人所不及知。則其所以爲善去惡之意。不幾於或怠乎。
傳七章
有所之義。日者敢陳妄說。得蒙印可。而但語類諸說。多有的說。有所是病者。此則何以處之。雖曰有初晩之分。旣有初年之說。則亦當有晩年覺其前非之論。其門下諸人。亦必有與聞者。而集註或問之外無一可證者。且以我東言之。如退栗諸先生。一生沉潛於此書而無一言及此者。何也。豈後人格致之功有所未知而然歟。心不在焉之在。謂在於視聽及言耶。抑謂在腔子裏耶。
傳八章
五辟。是不過心不得其正之致。心已得其正矣。則又豈有五者之病乎。
傳九章
此章。本言上行下效。有不期然而然者。而至於如保赤子。反爲推之大者。是何也。妄意則此條似專指慈而言。未說到推於使衆者矣。慈者。人之罕有失者。故特擧此而言之。以明孝弟慈三者皆是出於自然而非勉强而爲之者也。必在識其端緖之發見而推而廣之。如以慈言之。則保赤子之心。誠求之者。是端也。自是而推致之於許多慈愛之道。乃所謂推廣也。惟其施於家者如是。故方有興仁興讓之效。如新民章之先務自新而民自興起而自新者。若以此章爲推於民者。則是卽猶有待於勸勉程督而後化。豈可乎哉。但或問則明以施於民者爲言。則不敢知也。
傳十章
得衆得國。失衆失國。有若眷眷於國之得失者。然君子豈愛天下之尊貴而强爲絜矩之道哉。文王條之言得失。集註亦言結上文兩節之意。則更無可論。而康誥大道之言得失則集註。只言因文王康誥之意而不言結其上文。且其分八節也。亦以此兩條。各爲一節。似非謂結上文之意。若如是說。則兩條之言得失者。不幾於無着落乎。康誥條之或問曰善則得之者。有德而有人之謂也。不善則失之者。悖入而悖出之謂也。大道條曰不得與人同好惡矣。集註所謂因上文引文王詩之意者。正是指其結上文之意云。則凡此數說。雖謂之結上文。亦恐不爲無妨矣。務在與民同好惡而不專其利。南山有臺以下三條及秦誓以下四條。是言好惡。先愼乎德以下五條及生財有大道以下。言不專其利。若以同好惡爲用人。則南山有臺以下三條。豈見其專屬於用人乎。而好人所惡註。何不言又因用人。以明能絜矩與不能絜矩也。
[주1] 착간(錯簡) : 순서가 뒤범벅이 된 책장. 옛날엔 죽간(竹簡)으로써 책을 만들었으며, 착은 착오라는 뜻.
[주2] 혹문(或問) : 주자(朱子)가 지은 대학혹문(大學或問).
[주3] 유소(有所) : 대학(大學)의 ‘有所忿☐’ ‘有所恐懼’ ‘有所好樂’ ‘有所憂患’에서 유소(有所)만 따온 것.
[주4] 초ㆍ만(初晩)의 분(分) : 주자(朱子)의 말에 대하여 초년설(初年說)과 만년설(晩年說)의 구분을 말한다.
[주5] 오벽(五辟) : 대학(大學)의 다섯 가지 치우침. ‘親愛而辟’ ‘賤惡而辟’ ‘畏敬而辟’ ‘哀矜而辟’ ‘敖惰而辟’을 말한다.
[주6] 혈구(絜矩)의 도 : 혈(絜)은 헤아림이오, 구(矩)는 모나게 하는 기구(器具)이니, 군자(君子)가 마땅히 같은 것으로 인하여 물을 헤아려 피아(彼我) 사이로 하여금 각각 소원대로 되게 하면 사방이 바르고 천하가 평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