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시대의 찬란한 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인공유의 접근성, 검열과 무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 정보의 무책임 무작위 반포...모두 우리 시대 우리의 문화적 표상들입니다. 뒤샹에 대한 평가는 이제 대중적인 평가가 가능한 시점인 듯 합니다. 구체적인 정보와 거시적인 통찰, 그리고 미술사적 맥락이 삼위일체가 된다면 훌륭한 사료가 되겠지요/김영재, 바보와 천재가 만드는 미술이야기, 다른세상, 2000에서 뒤샹 칼럼을 올립니다. 참고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뒤샹

피카소가 20세기 미술의 대명사라면 뒤샹은 20세기 미술의 패러다임이다.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전형, 기본 형태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원형(archetype)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그만큼 20세기 미술의 기본틀을 형성했다는 의미가 있다.
천재 중의 천재라는 피카소는 10년 앞의 예술을 자신의 화포에 담았다. 그러나 뒤샹은 30년 앞의 미술을 주물렀다. 그렇다면 뒤샹은 왕천재쯤 되겠네?
뒤샹은 다다라는 동력을 초현실주의로 변환하는 동력변환장치라 할 수 있다. 또 뒤샹은 다다의 파괴미학에 레디메이드를 끌어들었다. 그것은 네오다다와의 연결고리였다. 그리고 미래주의의 속도와 기계문명 예찬을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의 범주를 정초했다.
키네틱 아트는 움직이는 미술이다. 뒤샹은 회전하는 유리판을 만들었다. 둥근 유리판에는 부채꼴로 여러 색들이 칠해져 있다. 회전하면 혼색이 된다. 빛의 혼합은 가산혼합이라 그러지? 빨리 회전하면 하얗게 보일 것이다. 뒤샹이 목표했던 것이 뭘까. 역시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움직이는 예술이 목적이 아니다. 움직이는 조형을 선택하는 것은 시신경의 잔상보존 능력 때문이다. 짧은 순간의 잔상을 보존할 수 있는 능력을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참 의도는 좋다. 그러나 동기는 지극히 단순하다. 뒤샹은 비행기의 프로펠러를 보고서 주눅이 들었다. 인간이 기계의 아름다움에 대항하기에 너무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회전하는 판에 인간적인 의미를 부여하였다는 설명이다.
뒤샹은 먼저 발견된 오브제와 대량생산의 테크닉을 사유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까지 예술가는 개인적으로 테크닉을 가져야 한다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렇게 <자전거 바퀴>가 발견된다. 설명은 대단하지? 사실은 심봉이 달린 자전거 바퀴를 거꾸로 세운 것이다.
그럼 테크닉은? 전시라는 방법으로 사유화하는 것이 테크닉이다. 1914년에는 <병걸이>가 발표되었다. 짐작이 가겠지? 병을 씻은 후 거꾸로 걸어놓는 걸이를 그냥 출품한다.
1913년은 유럽미술의 제1차 미국공습이 있었다. 전쟁신의 이름은 초현실주의였다. 대형 전시장 하나 없는 문화의 사막 미국을 공습한 선두 파일러트가 뒤샹이었다. 목표는 뉴욕 병기창, 작전 이름은 아머리 쇼이다. 폭탄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였다. 연속사진을 모델로 그려진 누드는 재현의 미술에 대한 무차별 융단폭격을 감행한다. 그 탄피를 줏어 미국인들은 네오다다라는 기성품의 미학을 재조립했다.
1917년 뉴욕의 앙데팡당에서 <R.Mutt 1917-샘>이라 사인을 한 소변기를 출품했다. 뒤샹이라는 작가 이름 대신 리차드 머트 변기회사의 이름을 썼다. 오줌을 내려보내는 변기를 샘으로 뒤집어 표현했다. 당연히 뉴욕이 절절 끓었다.

뒤샹은 변기에 대한 비평의 반응에 이렇게 대꾸했다. “미스터 머트가 자신의 손으로 샘을 만들었건 만들지 않았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가 선택했다는 것,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타이틀과 시각 아래 놓인다는 것이 중요하다. 누가 변기를 전시장에 놓겠다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생각이 중요한 것은 그 물체에 대한 새로운 사상을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뒤흔든 변기는 세계의 미술관을 화장실의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 레디 메이드 뿐이랴. 동식물, 산업재료, 쓰레기 들을 이름만 붙이면 미술품이 되었다. 아상블라주는 산업시대의 폐품을 무더기로 모아 그 위력을 과시했다. 정크 아트는 아예 쓰레기를 미화한다.
그 쓰레기미학의 원흉이 소변기였다. 그런데 왜 뒤샹이 하필 소변기를 선택했을까. 나중에 뒤샹은 회고하고 있다. 미국 문화야 볼 것이 있나? 글세, 교량이나 변기는 그런대로 보아줄만하지. 뒤샹은 그렇게 미국문화를 조롱했다. 그러나 미국을 조롱한 이 변기는 2차대전 후에 미국 작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네오다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것은 미국인들이 밸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을 성가시게 구는 이라크 짓밟는 것 봤지? 그러나 미국을 정면으로 짓이기는 일본은 미국인이 숭배한다.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격한다. 태평양함대와 클라크 기지가 공격당했다. 미국의 대일본 고철수출 및 항공기유와 휘발유 수출 중단을 통한 전쟁억제책에 대한 반발이었다. 일본은 연함군에 승승장구하면서 미얀마, 자바, 필리핀 등을 점령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반격으로 솔로몬군도, 유황도,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탈환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일본은 1945년 8월의 원폭투하로 무조건 항복했다. 미국은 감격스레 그 항복을 접수했다. 최고의 예우를 갖추어 일본을 부흥시켰다. 1946년 신헌법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하도록 도왔다. 동북아의 맹주로서 군림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외계인이 지구에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 미국인의 80퍼센트 이상이 외계인을 따뜻하게 영접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지구를 정복하더라도 미국인은 그들을 영주로 모실 것이다.
네오다다는 밸이 없다고 치자. 전시주최측은 이 작품 때문에 진땀을 뺐다. 앙데팡당이라는 전시의 성격상 전시를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작품은 간막이로 가린채 전시되었다.
다다를 거쳐 뒤샹의 초현실주의 동력변환장치는 <노총각들이 벗기기까지 한 새색씨>에서 극대화된다. 부제가 달려 있다. 9명의 구혼자이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융의 잠재의식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성자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라. 세계에서 가장 추악할 것이라 했다. 왜 그럴까. 보통 사람보다 억제된 성욕이 가득 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성욕이라는 것이 프로이트나 융의 주장이다.

작품에는 잠재의식이라는 이름의 성욕이 연상되는 모든 도구와 상황이 등장한다. 작품은 유리판의 위 아래에 그렸다. 위 부분은 신부의 모습이다. 사마귀를 닮은 뼈다귀로 상형한다. 암사마귀는 교미를 끝낸 수컷을 잡아먹는다. 어째 으스스하지 않아? 물론 수컷은 한번의 교미로 일생을 마감한다. 그렇더라도 새끼 사마귀들의 아빠 사마귀를 먹어치워? 에그 끔직해...
유리판의 아래 쪽에는 남자의 성기를 닮은 주조물을 9개 배치한다. 잡아 먹힐지도 모르는 노총각들을 상징한다. 노총각의 방에 가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커피 그라인더나 필터등이 선원근법으로 결합된다. 이 작품이 작동이 된다면 섹스를 연상케 할 것이다. 노총각들의 상상이 꿈 나아가 잠재의식 속에서 새색씨를 벗기기만 하겠는가.
여기에 투명한 유리로 삼차원의 현실, 즉 장소와 공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대신 시간이라는 사차원의 몽롱한 꿈이 유리에 투영된다. 성욕과 꿈이라는 초현실적인 것이 표현된다는 의미에서 초현실주의와 이 작품은 연결된다. 뒤샹은 차원의 개념을 가스통 드 파블로프스키의 "사차원 세계로의 여행"에서 얻었다.
두장의 대형 유리 사이에 형체와 도상이 자리잡고 있다. 유리판에는 n차원이 투시된다. 뒤샹은 그 n차원을 단순히 사차원의 투영이나 반영으로 해석한다. 삼차원 존재인 인간이 4차원을 연금술적 몽환과 신비의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어떤가. 뒤샹이라는 말만 들어도 뺀질뺀질하고 시건방진 사람같지? 동키호테 같은 좌충우돌 형이라 생각이 들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 20세기가 떠들썩한 휘황찬란한 실적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뒤샹은 지극히 심약한 사람이었다.
<R.Mutt 1917-샘>이 출품된 곳은 앙데팡당전이었다. 무심사 전시라는 뜻이다. 더욱이 자신이 심사위원인 전시에서 작품은 간막이로 가린채 전시되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더 충격적인 일도 있다. 회전하는 유리판을 시험하는 도중 회전판이 날아갔다. 하마트면 옆에서 지켜보던 만 레이를 죽일 번했다.
이러한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은 뒤샹을 더욱 소심하게 만든다. 노총각들이 새색씨를 벌거벗긴 이후 뒤샹은 40년간 붓을 꺾고 체스나 두면서 칩거하다가 죽었다. 그래서 제작을 하지 않는 작가라는 전설이 생겼다. 그런데도 그토록 유명했다니 놀랄 일이 아닌가.
더욱이 유언에 따라 사후에 <물의 낙하> 등의 작품이 공개되었다. 얼마나 비평가나 세상사람들의 입방아가 귀따가왔으면 죽은 다음에 작품을 발표하라고 했을까.
20세기의 '특별한'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2017.02.21.
http://blog.naver.com/deconuvo00/220941029906
도판: 상기 블로그 에서 인용
안녕하세요. 더 포트폴리오입니다.
오늘은 미의 개념을 바꾸어 놓은 예술가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미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들어봤을 아주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이죠.
그는 그의 작품으로도 유명했지만, 그의 사상이나 철학 때문에도 수많은 시선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의 포스팅 만으로는 그의 인생이나 작품 모두를 들여다 보기는 어려워요.
오늘은 그의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며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는 것에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중략...
1912년 항공 공학 박람회를 관람한 뒤 뒤샹은 친구인 콘스탄틴 브랑쿠스에게 말합니다.
"이제 회화는 망했어. 저 프로펠러보다 멋진 걸 누가 만들어낼 수 있겠어? 말해보게 자넨 할 수 있겠나?"
뒤샹이 이런 말을 한자리에서 새로운 미술의 탄생은 예감되었습니다.
그 후 뒤샹을 필두로 하는 현대 미술이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전통적인 회화 작품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물건'들이 예술품으로 변모해 아주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죠.
그의 오브제들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시장에서 구해온 남성용 소변기를 세워놓고 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죠.
그 이후 그는 다양한 의견과 비판을 듣게 됩니다. '이게 미쳤나. 이제 예술은 망했군'과 같은 말들 말이죠.
그러나 이런 반응과 더불어 전통적인 방법에서 무언가 돌파구를 찾는 새로운 예술가들에겐 열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그는 화가의 손을 해방시켰습니다.
그의 오브제 작품들과 소변기, 유리, 나무 상자와 같은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 혹은 만들어진 제품들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산업화 시대로 도래한 물질주의 시대, 그리고 대량생산 시대에 예술가로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를 만든 것은 현대 자본주의 혹은 대량 생산 시대이기도 한 셈이죠.
뒤샹은 다다이즘의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는 다다이즘의 앙드레 브르통과 교류하고, 초현실주의자 회화와 가까웠습니다.
그는 세상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낙담하지 않았는데요.
그저 뒤샹의 작품은 지금 보아도 우리 눈에는 낯설게 느껴지기만 하죠.
중략...
뒤샹의 예술에 대한 인습 타파적인 접근 방식은 다다이즘에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가 다다이즘을 접하기 된 계기는 뉴욕에서 프란시스 피카비아, 만 레이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는 이후 입체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뿐만 아니라, 팝 아트와 개념미술, 미니멀리즘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나아가 다음 세대의 미술가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략...
오늘은 전통적인 예술을 넘어서 현대미술의 범주까지 오게 되기까지
아주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마르셀 뒤샹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그는 '작품은 망막이 아닌 개념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오브제를 선택하고 새로운 명칭을 부여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