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사업회·종친회 참여 오봉산 청평식암터서 거행
고위관직 내려놓고 입산 검소함 인생으로 보여줘
천년 전 청빈과 무욕의 삶을 살다 간 청평거사(淸平居士) 이자현(1061~1125년) 선생이 헌다로 되살아났다.
청평거사 진락공 이자현 열반 891주기 추모 헌다례가 14일 오봉산 청평식암(淸平息庵) 터에서 종친회원을 비롯한 시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청평거사 진락공 이자현 헌다례 기념사업회(회장:정미선)가 주최하고 춘천문화원, (사)춘천역사문화연구회가 후원한 이날 헌다례는 고려 중기의 학자 이자현의 삶을 기리고 그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고려사에 따르면 이자현은 당시 최대의 문벌을 이루고 있던 이자연(李子淵)의 손자로, 문종 때 과거에 급제해 나이 스물여덟에 고려 국립음악원 원장 격인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됐으나 조부 이자연과 사촌 이자겸의 탐욕에 질려 1089년 관직을 버리고 청평산(지금의 오봉산)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주로 채소를 먹고 누비옷으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헌다례는 이자현이 입적한 기일(음력 4월21일)에 맞춰 지난해부터 열리고 있다. 의식은 `진락공 세수터'로 표기된 유적지에서 흐르는 물이 두번 꺾여 걸러져 정제된 찻물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됐다. 찻물에 차를 깊게 우려내 집례자의 진행에 맞춰 예를 차리고 헌다하는 순으로 이어졌다.
인주(仁州) 이씨 종친회 관리국장인 이도하(72)씨는 “대종회 차원에서 했어야 할 일을 춘천시민들이 대신 기려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정미선 회장은 “이자현 선생이 삶으로 보여준 청빈과 무욕은 정치권을 비롯해 과욕으로 넘쳐나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가치”라고 말했다.
한편 춘천역사문화연구회는 `진락공 세수터'는 찻물을 뜨던 유적지를 잘못 표기한 것이라며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춘천=이하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