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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1. 인간의 감정을 다루는
복잡한 심리학 이론들이 많이 있다.
이런 이론은 상당 부분 상징학과 관련이 있고
신화학 이론을 빌려오는 경우도 있으며,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하기도 한다.
그 결과 각기 다른 목표와 방식을 추구하는 다양한 심리요법 학파들이 생겨났다.
2. 단순성은
진실의 전형적 특성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고
누구나 실험해 볼 수 잇는 감정의 지도를 살펴볼것이다.
감정의 지도는
누구라도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목적>
1. 어떤 심리학 이론을 연구하든
인간의 주된 목표는
그 무엇보다도 생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인의 생존과 자신의 동일시 하는 집단,
이를테면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
국가의 생존을 확보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이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게끔
사람들은 몸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인다.
2. 자신의 곧 몸이며
따라서 존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개별적이며 한계가 있는 존재라 여기기 때문에
늘 결핍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이런 결핍을 채워 줄 무언가를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낀다.
자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기에 불충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3. 따라서
마음은 일종의 생존기제이며,
생존방법으로 주로 감정을 사용한다.
(하나 하나를 생각 해보면 거의 쓸데 없는 일까지도 (오욕칠정인) 감정을 사용하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고 보니 오는 그 감정은 투사도 하고 있고, 회피도 하고, 억누루기도 하고, 있는걸 느낀다)
생각은 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이 생각의 약칭과도 같게 된다.
수천가지 수백만가지의 생각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
감정은 정신과정보다 근본적이고 원시적이다.
이성은 마음이 감정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지적능력을 통해 이성이 사용될 때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근본 감정은
대개 무의식적으로만 작용하거나
최소한 자각하지는 못하는 상태로 있다.
바탕에 깔려 있는 감정을
잊거나 무시하거나 느끼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자각하지 못하고
대신 갖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지어낸다.
4.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든
그 이면에 깔려 있는 감정적 목표가 의식에 떠오르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무엇 때문에?"라고 질문하여 근본 감정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문답이 이어질 수 있다.
새로 벤츠 승용차를 사고 싶은 남자가 있다.
남자의 마음은 갖은 논리적 이유를 대지만,
사실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바람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문한다.
무엇 때문에 벤츠가 갖고 싶은 걸까?
'사회적 지위와 인정, 존경 확실한 성공의 상징 같은 것을 덕고 싶은 거지"
다시 묻는다
무엇 때문에 지위를 원하는 걸까?
다른사람에게서 존경받고 인정받고 싶은거지
다시 또 묻는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인정을 받고 싶어할까?
안전하다는 느낌을 얻고 싶은 거지
다시 또 묻는다.
무엇 때문에 안전을 원하는 걸까?
행복을 느끼고 싶어서지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을 계속하면
불안감/불행감, 성취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결핍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는사실이 드러난다.
5. 모든 행동이나 욕망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어떤 감정을 성취하는 것외에 다른 목표가 없다.
감정은 우리가 생존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 것과 결부되어 있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말하자면
감정자체는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안전을 추구하도록 몰아가는 기본적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감정의 척도>
1. 간단 명료한 설명을 위해 의식의 수준 대신 그와 일치하는 감정의 척도를 활용할 것이다.
의식수준이란 어떤 것이며 그 과학적 근거는 무엇이고, 어떻게 실제로 적용하는 것인지는 의식혁명을 읽어보라
2. 간단히 설명하면
만물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그 에너지는 긍적이거나 부정적이다.
<린다본의 더 파워에서도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호의적이고 진실하고 사려깊은 긍정적인 사람과
욕심 사납고 남을 잘 속이고 불쾌한 부정적인 사람의 차이를 직감적으로 안다.
테레사 수녀의 에너지는 히틀러와 분명 다르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즉 음악이나 장소, 책, 동물, 마음속 의도 등 삶의 모든 사물은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각 사물이 얼마나 참된지 그 정도가 숫로 나타나게끔 사룸릐 본질와 에너지 크기에 따라 눈금을 붙일수 있다.
3. 유유상종이란 말대로
에너지도 크기별 끌개패턴을 형성하는데,
이것이 곧 의식수준이다.
의식지도는 끌개 패턴이 보여 주는 비선형적이고 역동적인 지형을 로그 값을 통해 선형적으로 나타낸다.
즉 각 의식 수준(끌개 패턴)에다 그 에너지의 힘을 1에서 1000사이로 나타내는 로그 값 눈금을 붙인 것이다.
지도 맨 위에 있는 완전한 깨달의 수준(1000)은 인간의 영역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을 나타낸다.
예수나 부처, 크리슈나의 에너지가 그렇다.
의식의지도 맨 아래에서 죽음 가까이에 있는 수치심의 수준(20)은 가까스로 생존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4. 용기의 수준(200)은 에너지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늘 결정적인 지점이다.
이 수준은 진실성과 정직, 자율, 대처 능력이 에너지를 뜻한다.
용기 아래의 의식 수준은 파괴적이지만, 용이 위의 수준은 삶에 힘이 든다.
간단한 근육테스트로 그 차이를 알아 볼 수 있다.
200이하의 부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근육에 힘이 빠지고
200이상의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곧바로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진정한 파워는 힘을 주고 포시는 힘을 뺀다.
우리가 용기 위에 수준에 있으면 파워가 에너지를 줄 뿐더러 호의를 베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가온다.
한편 우리가 용기 아래에 있으면 포스(force)가 에너지를 빼 갈뿐더러
물질적이거나 정서적인 욕구를 채우는 데 이용하려 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피한다.
5. 이제 높은 에너지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가면서 감정의 기본 척도를 자세히 살펴보자.
600(평화)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화" 처럼
만물의 분리를 넘어서 지성을 넘어선 비이원성의 상태이다.
인간의 영역에 매우 드물게 존재하며 깨달음으로 묘사한다.
540(환희)
무조건적이고 변함없는 사랑의 상태로 상대의 처지나 행동에 구애받지 않는다.
만물에 연민을 느낀다.
자기완성감과 자족감으로 충만하다.
500(사랑)
상대를 용서하고 보살피고 도와주는 존재방식이다.
사람은 마음이 아니라 가슴에서 뿜어져 나온다.
상황의 세부보다는 핵심에 집중하고 부분보다는 전체를 다룬다.
400(이성)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이다.
이는 사물의 요점을 보고 개념을 만들어 감정이 치우치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능력이다.
이성은 특히 문제 해결에 매우 유용하다.
350(받아들임)
삶은 좋은 것이다.
당신도 나도 좋은 사람이다.
나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삶은 여건대로 살아간다.
남을 탓하거나 삶 자체를 탓할 이유가 없다.
310(자발성)
모두에게 호의적고 협조적이며 누군가를 돕고 싶어 하고 무언가 봉사할 길을 찾는다.
어떤 삶이 펼쳐지든 긍정적 자세로 달갑베 맞이하기 때문이다.
250(중립성)
이래도 놓고 저래도 좋다
강경한 입쟝을 취하지 않고 비판을 삼가며 경쟁하지 않는다.
200(용기)
난 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단호라고 삶에서 열정을 느끼고 생산적이고 돌립적이고 자율적이다.
효과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175(자부심)
내 방식의 제일 좋은 것이라 고 말한다.
주된 관심사는 성취하고, 인정받고, 남다라지고, 완벽해지는 일이다.
누구보다 낫다라고 느끼거나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낀다.
150(분노)
이 에너지는 두려움을 주는 근원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강제력과 협박, 비난을 동원한다.
짜증을 잘 내고, 욱하기 쉬우며, 과격하고, 불안정하고, 툭하면 분개한다.
두고보자 라는 말대로 꼭 되갚아 주려 한다.
125(욕망)
항상 이익과 재물, 향락을 추구하며 자기 외부의 무언가를 얻어내려 한다.
만족을 결코 모르고
물리는 법도 없으며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걸 가져야 돼" 내가 원하는 걸 줘 지금 바로!
100(공포, 두려움)
모든 곳에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피하고 방어적이며 안전에 집착하고 사람에 대한 소유욕과 질투심이 강하고
제데로 휘지 뫃하며, 불안하고 늘 바짝 경계한다.
75(비탄, 슬픔)
무력감과 절망, 상실감, 후회에 차 있다.
무언가를 하기는 했어도---- 하느나심정이다.
소외와 우물, 슬픔을 느낀다.
낙오자가 된다.
더이상 어쩔 수 없다 라는 애석함이 있다.
50(무의욕)
죽은 듯 무리력하며, 보기만 해도 기운 빠지고,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와
"난 못해" "내 알바 아니라"라는 감정이다.
흔히들 가난하다.
30(죄책감)
누군가에게 벌을 주고 싶거나 스스로 받고 싶어하낟.
그결과 자기거부와 자기학대, 자기파괴에 빠지고 희한과 낙심에 찬다.
다 내탓이다.
사고를 잘 당하고, 자살행위를 하고, 자리혐오를 '사악한'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투사 현상도 흔하다.
심인성 육체 질환의 원인이 된느 경우가 많다.
20(수치심)
창피해서 고개를 떨군다 라는 말대로
이 에너지는 굴욕이 특징이다.
전형적으로 추방을 동반한다.
건강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며 자신과 타인을 모질게 학대하게 만든다.
6. 이 척도의 아래쪽은 보통 낮은 진동 주파수와 결부된다.
즉 에너지와 힘이 약하고, 생활형편이 어렵고, 인관관계가 빈약하며,
뭐든 넉넉하지 않고 사랑이 부족하고, 육체적으로난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다.
궁핍한 사람들은 에너지가 약한 탓에 여러모로 우리 기운을 뺏는다.
그 때문에 기피당한 끈에 (예컨데 교도소에서) 같은 수준 사람들과 섞이곤 한다.
7. 부정적 감정을 놓아 버릴수록 감정의 상태가 척도에 따라 점점 올라가 용기에 이르고
용기를 넘어서면 성과를 거두기가 더울 쉬워져 성공하고 힘을 덜 들여 넉넉해지기도 한다.
주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쉬어 하기 마련이다.
이런이들을 '고양' 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주위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 에너지를 내뿜는다.
동물들도 이들에게 끌린다.
기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마주치는 모든 이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준다.
용기의 수준에서는 부정적 감정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어도 그런 감정을 다룰 에너지가 충분하다.
척도 맨 밑에서 맨위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은 자신과 타인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8. 또한 에너지 수준은 우리 몸에서 차크라를 나타내는 에너지 중심점과 관련이 있다.
200의 용기의 수준에서는 쿤달리나 에너지가 깨어나는데,
차크라는 쿤달리니 에너지가 흐르는 에너지 중심점이다.
에너지의 중심점, 즉 차크라는 다양한 임상기법과 정밀 전자기기로 검출할 수 있다.
의식지도에서 차크라는 다음과 같이 측정된다.
정수리차크라 600
제3의 눈 차크라 525
가슴 차크라 505
목구멍 차크라 350
명치 차크라 275
엉치뼈(지라)차크라 275
기저(근저)차크라 200
부정적 감정을 포기하면 상위 차므라의 에너지가 증가한다.
예를 들어 걸핏하면 두번째 지라차크라에 축적된다는 울분을 터뜨리는 대신에
다섯번째 차크라인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될 수있다.
9. 이러한 에너지 체계는 육체에 직접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준다.
각 차크라의 에너지는 '경락'이라는 경로를 통해 전체 에너지 신체로 흘러 나가는데,
이 에너지 신체는 육체의 청사진과 같다.
각 경략은 특정 장기와 관련이 있고, 각 장기는 특정 감정과 관련이 있다.
부정적 감정은 이와 연관된 침술경락 및 관련 장기의 에너지 균형을 깬다.
예를 들어, 우울이나 철망, 비애는 간 경략과 연관되어 있어 간 기능에지장을 주기 쉽다.
부정적 감정은 모두 장기에 손상을 입혀 장기를 병들게 하고, 끝내 기능을 멈추게 한다.
10. 감정 상태의 수준의 낮을수록,
우리는 자신의 삶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생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감정의 진화 수준이 높아 질수록 '
삶도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주변의 모든 생명에세 힘을 준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해 항복하면
보다 자유로워지면서 감정 수준도 올라가고 결국에는 긍정적 감정을 주로 경험할 수 있다.
낮은 감정은 모두 우리에게 제약이 되기 때문에 낮은 감정일때
우리는 진정한 큰나가 보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항복을 통해 척도 맨 위에 가까워지면, 새로운 유형이 경험이 시작된다.
척도 맨 위에 이르면 진정한 큰나를 깨달아 여러 수준의 광명을 얻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때 알아아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척도 상에서 상승해 자유로워질수록
이른바 영적 자각이나 영적 직관이 생기면서 의식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정적 감정을 항복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바다.
그들의 의식은 점점 더 깨어난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는 볼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것이
높은 수준에서는 자명한 것이 되면서 놀랄 만큼 명백해진다.
<감정의 이해>
1.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모든 생각은 .
관련된 감정 및 감정이 미세 변화 단계에 바탕을 둔 정리 체계에 맞게 마음의 기억 저장고 정리된다.
[그레이 라비올렛 1981]
생각은 감정의 분위기 따라 정리되는 것이지 사실에 따라 정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보다도 감정을 지켜보면 자기 자각이 빠를게 증대된다는 견해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나의 감정에 관련된 생각조차 수천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생각 이면의 감정을 이해하여 올바르게 다루는 것이
생각 자체를 다루는 것보다 성과가 좋고 시간 소모도 덜하다.
2. 감정이라는 주제 자체가 낮선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감정을 상대로 뭔가 하려 하지 말고 감정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감정과 생각 사이의 관계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켜보는 데 익숙하여지면 일종의 실험도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되풀이해서 떠오르기 쉬운 유형의 생각을 골라내어
그와 연관된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이어서 그 감정을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저항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감저이 존재함을 받아들인다.
그런 다음 감정의 에너지를 비우는 일에 들어가는데,
방법은 감정이 소진 될 때까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조금 지나면 앞서 들었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생각의 성격이 바뀌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감정을 완전히 항복하고 놓아 버렸다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생각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 일을 신속히 마무리하자는 생각만 남는다.
3. 외국에 가기 전에 여권을 잃어버린 사람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출발 에정일이 다가오면서 그의 마음은 공황 상태가 되었다.
미친듯이 머리를 굴러 어디다 여권을 두었는지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사방을 다 뒤졌다.
기억해 내려고 이런저런 묘책도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자책할 뿐이었다.
"멍청하게 여권을 잃어버리다니!
새로 만들 시간도 없다고!
여원이 없으면 여행도 가지 못하니 운명의 날이 다가오자 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업과 개인 일을 겸해서 가는 것이라
이번 여행을 가지 못하면 일이 잔뜩꼬이고 상황이 어렵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막판에 이렀을때, 놓아버림 기법이 생각 났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자문했다.
'어떤 근본 감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근본 감정으로 드러난 것은 놀랍게도 슬픔이었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떨어져 있기 싫은 감정과 관련 있는 슬픔이었다.
자리를 비움으로써 관계를 아에 잃거나 관계가 악화될까 봐 두려워한 것이다.
슬픔을 놓아버리고 관련된 두려움도 놓아버리자
문득 문제를 안고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한 2주간의 부재도 견디지 못할 관계라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결론도 얻었다.
마음이 편해지자 곧바로 여권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났다.
사실 너무 뻔한 곳이라 무의시적 차단 때문이 아니라면 기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여권 분실과 여행 불발, 그로 인해 있을 수 있는 일 등 수많은 생각도 모두 즉시 없어졋다.
그의 감정은 좌절 대신 감사와 행복의 상태가 되었다.
4. 놓아버림은 일상에서도 매우 쓸모가 있지만,
특히 삶의 위기때 사용하면 크게 괴로울 일을 미리 막거나 가볍게0 하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다.
삶의 위기에는 보통 감정이 압도적으로 밀어 닥친다.
이러한 위기에는 억제되거나 억압된 감정 중 주요한 유형 한가가 활용된다.
이 상황의 관제는 어떤 감정인지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압도하는 감정을 상대하는 것이다.ㅣ
<감정적 위기 다루기>
1. 감정적 위기는 사람들이 대체로 아주 힘겨워하는 문제이므로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감정상의 재앙을 내버려 두어 제 풀에 사라지게 하는대신
그것을 훨씬 빠르게 통화하여 좋은 결과를 내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기법이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감정을 다룰 때 마음이 동원하고자 하는
평상시 기제는
억제(억압포함),와 표출, 회피이다.
이런 기제는 의식적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면 해롭지 않다.
감정 압도 시의 기재 활용은 의식적으로 하면 바람직할 때가 많다.
이 묘책의 목적은 감정을 해체해 하나하나 놓아버릴 수 있독 감정의 양 자체를 줄이는데 있다.
(이과정은 뒤에서 서술)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감정에 압도되는 순간 가능한 한 많이 의식적으로 감정을 제처 놓아도 된다.
가까운 친구나 멘토에 기분을 털어 놓아 감정의 강도를 줄일 수도 있다.
기분을 표출하기만 해도 그 이면의 에너지가 얼마간 줄어든다.
2. 같은 상황에서 회피 기제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
속상한 일을 멀리하기 위해 사교 모임에 나가거나, 개와 놀거나 테레비젼을 보거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음악을 틀거나, 섹스를 하는등 평소습관대로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감정의 약과 강도 자체가 줄고 나면,
전체 상황보다는 상황의 어려 작은 일면과 그에 따르는 감정을 놓아 버리는 일에 들어가는 것아 가장 좋다.
(<실직자 감정코칭>)
3. 방법의 요점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해
어느 회사에서 오래 일하다 실직해 절망이라는 감정에 압도당한 남자의 예를 들어 보자.
위에 서술한 세 가지 기제를 활용하면 감정을 얼마간 줄일 수 있다.
그 후에는 일터와 관련된 사소한 것들을 돌이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동료들과 자주 찾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싶은 바람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이전까지 매일 주차하던 공간에 주차하고 싶음 바람을 놓아버릴 수 있을까?
늘 타던 엘리베이터에 타고싶은 바람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쓰던 책상에 대한 애착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비서가 보여 주던 친절과 비서에 대한 애착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쓰던 컴퓨터에 대한 애착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매일같은 상사을 보던 일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사무실 소음이 주정 친숙한 느낌을 놓아 버릴 수 있을까?
이렇게 자질구레한 실직의 일면을 항복하는 목적은 그렇게 함으로서 마음을 놓아버림 모드로 바꾸는 것이다.
마음을 놓아버림 모두로 바꾸면 용기의 수준으로 올라 갈 수 있다.
부정적 감정을 받아들여 통과했고, 그 결과 부정적 삼저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면 상황을 직면하하고 감정을 인식해 감정에 대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불현듯 자각한다.
4. 사소한 것에 항복하면, 기묘하게도 중심 사건이 주는 억압 또한 점차 덜해진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 가지 감정에 항복 기제를 사용하면 감정 전부를 동시에 항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감정 모두의 이면에 동일한 에너지가 있어서,
한쪽 방향에서 항복하면
표면상으로는 반대 방향에 있는 듯한 감정까지 항복하는 것과 같다.
이 점은 임상 체험의 문제라 공감하려면 각자 개인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5. 억제, 표출, 회피, 사소한 면에서의 항복 이라는 위 네가지 방법을 적용하고 나면
이제 다섯번째가 명확해진다.
사실 모든 감정은 여러 부수적 감정이 합성된 것이라,
전체 감정 복합체 또한 해체가 가능한 것이다.
이를테면 실직한 사람은 처음에는 절망에 압도당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라 느낌 주변부의 사소한 것들을 항복하면서,
회피와 억제, 표출의 기제를 의식적으로 활용해 압도된 느낌을 줄여 나가면
분노의 존재 또한 깨달을 수 있다.
분노는 자부심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분노는 억울함의 형태로 많이 나타난다.
자기는 이제 틀렷다고 하는 것도 자신을 향해 표출되는 분노의 형태다.
또한 분노에는 상당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따라서 연결된 감정들을 이제 곧바로 다룰 수 있다.
이를테면 다른 일자를 얻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을 놓아 버릴 수 있다.
두려움을 인정하 놓아 버릴때,
가능성 있는 대안 전부가 갑자기 뚜렷해진다.
그리고 자부심을 항복하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자신이 경제잔에 직면한 것이 아님을 금세 알게 된다.
이럿듯 감정 복합체가 해체되어 구성요소로 갈라지고 나면
각 요소는 에너지가 약해져 개별적으로 항복할 수 있다.
6. 감정 압도에 벗어나면서 감정의 일부를 의도적으로 억제하거나 회피했다는 사실이 기억날 것이다.
이제 그 감정을 다시 검토해 억울함이나 무식적인 죄책감, 낮아지는 자존감 등의 후유증을 없앨 수 있다.
감정 복합체 파편들이 일정 기간동안 다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기간이 몇년이 될 수도 있지만 이후에는 다 감정의 조각들뿐이라 올라오는 대로 처리할 수 있다.
적어도 위기 수준의 상황만큼은 또렷이 의식하며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된다.
7. 위기처리를 지적수준이 아니라 감정수준에서 하면 위기 지속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든다.
실직한 사람의경우 지적수준에서 위기를 처리하면 갖은 생각과 가상 시나리오가 수없이 떠오른다.
생각이 폭주하는 탓에 밤마다 잠 봇 이루는 고통을 받으며 마음은 위기를 검토하고 또 검토한다.
아무런 성과도 없다.
이면의 감정을 항복할 때까지 온갖 생각만 꼬리를 물 것이다.
8. 아주 오래 전에 감정적 위기를 겪고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위기로 인해 삶 전체가 악영향을 받았고, 이면의 감정을 다루는 노하우가 없는 대가를 톧톧히 치렀다.
9. 삶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면 이로운 점이 많다.
그중 하나로 억제되거나 억압된 감저이 크게 줄어든다.
위기로 인해 올라온 감정을 포기한 결과,
저장고에 남은 양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삶에서 무슨 일이 닥쳐도 해결하고 견딜 수 잇다는 자각이 있기에 자존감과 자신감이 커진다.
삶에 대한 두려움이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삶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느낌이 커지며,
타인의고통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고,
다른사람이 비슷한 상황을 헤쳐 나가도록 도울 수 잇는 능력이 높아진다.
역설적으로 삶의 위기 뒤에는 길든 짧든 평화와 고요가 이어지는 시기가 오는 경우가 많다.
혹은 신비한 경을 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거친후에 높은 자각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임사체험>
10. 이런 역설을 보여 주는 사례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임사체험자들의 경험이 있다.
시중에는 임사 체험을 다른 책이 많이 나와 있는데 거기엔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직면한 공포 중의 공포, 즉 죽음이 주는 두려움과 충격이
깊디 깊은 평정과 평화, 일체성, 두려움에 대한 면역성으로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이가 비상한 능력을 얻거나, 치유자가 되거나, 영안이 생기거나, 영적 광명 상태에 들어섰다.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뜻하지 않게 뜻하지 않게 새로운 재능까지 생기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삶의 모든 위기는 의식을 뒤바꿔 새롭게 도약하게 해주며
옛것을 놓아 버려 새것이 탄생하게 해 줄 씨앗을 품고 있다.
<과거 치유>
1. 자신의 삶을 살펴보면, 미해결된 과거의 위기가 지닌 잔재가 보일 것이다.
그 당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또한 이런 생각과 감정이 삶의 어떤 부분을 망가뜨렷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때 그일이 계속해서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지 자문하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이제는 잔제를 처리하는데 쓸 수 있는 기제를 알고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남은 감정을 조사해 놓아버림으로써 치유가 일어나게 할 수 있다.
이과정에서 큰일을 치른 뒤에 진가를 발휘하는 새로운 감정치유기법을 알게 된다.
사건을
새로운 맥락에서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의의와 의미가 다른 새로운 페러다임에서 평가하는것이다.
2.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일생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의 환희는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이 원래 그러하니 "쓴웃음'이라도 지으며 참는것이 최선일것이라 흔히 짐작한다.
철학자들은 때로 이런 부정적이과 비관적인 태도를 활용하여 허무주의 철학을 만들어 낸다.
이런 철학자들 중 일부는 수년간 유명세를 얻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은 해결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감정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그런 감정을 계기로 끝없이 사물을 논리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려 들게 된 것뿐이다.
억제된 감정일 뿐임이 분명한데도,
그것을 합리화하는 정교한 지적체계를 구축하느라 평생을 바치기도 한다.
3. 과거 해결에 효과가 좋은 방법 중 하나로 새로운 맥락 만들기가 있다.
과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으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과거의 곤경이나 트라우마 안에 선물이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4. 이 기법의 가치를 정신 의학게에서 알아본 사람은 빅토르 프랭클린이다.
플랭클린은 자시의 명저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요법으로 명명한 접근법을 풀이 했다.
그느 임상 경험과 개인 체험을 통해 감정과 트라우마를 새로운 의미로 에워싸면
그 발생 양상이 현저히 달라지면서 치유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프랭클린은 자신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내면의 승리를 가져올 기회로 보고
나치 수용소의 경험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해도 빼앗을 수 없는 한가지,
즉 인간의 마지막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잭할 수 있는 자유,
자신만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자유다(1959)
프랭클린은 그때의 끔찍한 상황을
새로운 맥락에서 이해하는 재맥락화를 통해 인간 영혼의 심오한 의미를 발견했다.
5. 아무리 비극적인 경험이라 해도
모든 인생의 경험에는 교훈의 숨어 있다.
경험속에서 숨은 선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았들일때 치유가 일어난다.
6. 앞에서 예로 든 실직자는
시간이 흐른뒤 지잔 일을 돌이켜 보고는,
이전 직장은 성장에 방해가 되었으며 그안에서 판에 박힌 생활을 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하면서 궤양까지 얻었던 그는 실직하기 전까지는 그곳의 즐거운 면만 보았다.
일단 상황이 벗어나자,
그동안 육체적, 정신적 , 감정적으로 치렀던 댓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실직한 위에 그는 새로운 능력과 재능을 찾아내는 일에 마음을 열었고,
나아가 더욱 유망한 직업을 새로 찾았다.
<칼 융의 이론>
7. 이렇듯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성장하고, 확장하고 경험하고, 발전할 기회인 것이다.
어떤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그 이면에 무식적 있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중요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경험할 유일한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같은 사건이었음을 무의식이 알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신분석학자 칼 융이 제창한 이론의 일부이다.
평생에 걸친 연구 끝에
무의식속에는 전체가 되고 완전해지고 큰 나를 깨닫고자 하는 선천적 충동이 있어,
무의식이 설사 의식적인 마음에 상처를 준다 해도
충동을 실현할 방법과 수단을 고안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융에 의하면
무의식 속에는 우리가 지닌 어떤 측민이 존재하는데 이를 '그림자'라 한다.
그림자는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 개념을 억합한 것들이 일체로, 스스로 직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또 위기의 이점은 위기 덕에 종종 자신의 그림자를 익힌다는 것이다.
또 위기덕에 우리는 보다 인간미 있고 폭넓은 사람이 되어 자신이 모든 인간과 고유하하는 점을 깨닫는다.
즉, '그들.의 죄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내안에도 똑같이 있음을 안다.
따라서 이런 면을 의식적으로 자각해 인정하고 항복하면 더 이상 무의식적으로 휘둘리지 않는다.
일단 그림자를 인정하면 그림자는 힘을 잃는다.
단지 내개 어떤 금지된 충동과 생각, 감정이 있음을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
그러고 나면 그런 것들을 "그래서 뭐" 하며 다룰 수 있게 된다.
8. 삶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보다 인간미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
<(삶의 위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이것을 느낄 수 없단 말인가?)>
더 이상 타인이나 자신을 비난하는 일에 빠질 이유가 없어진다.
감정적 위기를 해결하면 보다 큰 지혜를 얻게 되며, 그 지혜는 평생 이익이 된다.
삶을 겁내는 것은
감정을 겁내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다.
<(감정은 에고가 만든 것이지만)>
감정을 정복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거나) 줄어든다.
자신감이 커져 기꺼이 더 큰 모험을 안다.
감정으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모든 주저함을 낳는 근원이어서
두려움을 정복하면.
이전에 꺼렸던 인생 경험에 들어가는 길 전체가 뚫린다.
9. 실직 위기를 다루는데 성공하는 사람은 다시는 그런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직장에서는 보다 창의적으로 일하며,
일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실직의 두려움이 있었기에
과거에는 얼마나 심하게 몸을 사리고 걱정하고 조심스러웠느지,
굽실대며 윗사람을 따르느라 얼마나 자존감이 상했는지 차차 보이기 시작한다.
12. 삶의 위기가 주는 또 다른 이점은 자신에 대한 자각이 커지는 것이다.
위기 상황이 압도하는 가운데에는 한눈팔 새도 없이 자신의상황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자신의 밈듬과 목표, 가치관, 삶의 방향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위기는 죄책감을 되짚어 보고 놓아버릴 기회다.
위기는 마음가짐을 완전히 바꿀 기회이기도 하다.
삶의 위기를 통과하면서 우리는 극과 극에 마주친다.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이번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할것인가?/분개하고 억울해 할 것인가?
다른사람이나 나 자신의 결점을 눈감아 줄 것인가?/화내며 따지고 들것인가?
미래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더욱 겁내며 물러설 것인가?/이런 위기를 완전히 초월하고 정복할 것인가?
이번 경험을 나눔을 배우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겁내고 억울해 하는 겉모습 속으로 움츠려 들것인가?
11. 위에서 적시한 모든 감정 경험은 올라가거나 내려갈 기회다.
어느쪽을 택할 것인가? 이문제에 부딪친다.
우리에게는 감정 혼란을 움켜쥐는 대가를 살펴볼 수 있다.
대가를 치르고 싶은가?
아니면 기꺼이 감정을 받아들이고 싶은가?
놓아 버리면 이로운 점도 살펴볼 수 있다.
나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
치유되는 쪽을 택할 것인가?
걸을 수 있는 부상자 축에 낄 것인가?
선택을 할 때는 고통스러운 경험의 잔재를 움켜쥠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살펴보면 좋다.
어떤 만족을 얻으려는 것일까?
얼마나 하찮은 것에 선뜻 만족하려는 것일까?
분노, 증오, 자기연민, 억울함,
이 모두가 하찮은 싸구려보상 하찮고 은밀한 만족감이 들어 있다.
아닌 척하지 말자.
고통을 움켜쥐는 데서 오는 이상야릇한 쾌감이 분명히 있다.
이 쾌감으로 인해 벌을 받아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우리의 무의식적 요구가 충족된다.
아우러 비참하고 꺼림찍한 기분이 든다.
"계속 이래야 돼? 하는 의문의 더오른다.
(<23년동안 형과 말을 하지 않고 지난 남자 이야기>) - 통과
형에 대한 감정을 놓아버리는 일에 들어가자 느닷없이 슬픔이 눈물이 솟아지며
지난 세월동안 일어버린 온갖 생각이 나고 - 사소한 것 때문에 대가치른 것 생각 남
<나의 왜소함>
12. 내면에서 부정적 감정에 매날리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왜소함이다.
왜소함은 심술궂고, 옹졸하고, 이기적이며, 경쟁심 많고, 인색하고, 음해하기 좋아하고,
앙심을 잘 품고, 비판 잘하고, 보잘것 없고, 나약하고, 죄책감 많고, 자심심이 강한측면이다.
왜소함에는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자존심만 고갈시키고 낮춘다.
자기혐오와 끝없는 죄책감, 벌을 받고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 안의 왜소한 측면 때문이다.
그런 측면과 자신을 동일시 하고 싶은가?
그런 측면에 힘들 보태고 싶은가?
자신을 그렇게 여기고 싶은가?
내가 나를 그렇겨 여기면 남들도 나를 그렇게 여길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대로 세상이 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러 인한 결과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스로 자신을 인색하고 옹졸한 사람으로 본다면 연봉 인상의 목록의 첫머리에 올라가기 어렵다.
왜소한 면을 고집한 대가는 근육 테스트로도 알아볼 수 있다.
테스트는 매우 간단하다.
마음속에 심술굿고 옹졸한 생각을 품은채
옆으로 뻗은 팔을 다른사람에게 눌러 달라고 하고 누르는 힘에 저항한다,
결과가 어떤지 본다.
다음에는 정반대 생각을 품는다.
스스로을 관대하고 너그럽고 다정하며 자신의 내적 위대함을 느끼는 사람으로 상상한다.
그러며 ㄴ즉시 근력이 세져서 긍정적인 생명 에너지가 급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왜소함은 나약함과 허약함, 질병, 죽음을 가져온다.
이런 것을 정말 원하는가?
부정적 감정의 놓아 버림과 병행할 수 매우 건전하면서도 내적 변모에 크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다.
긍정적 감정에 저항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긍정적 감정 높이기>
1. 부정적 감정의 놓아 버림은 긍정적 감정에 대한 저항을 그만두는 것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주만물에는 각각 정반대의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마음속의 모든 부정적 감정에도 그와 반대되는 것이 왜소함과 위대함 사이에 존재한다.
어느 특정 순간에 그런 정반대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는지 없는지와는 상관없이 존재한다.
2.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좋은 연습방법으로는,
자리에 앉아 지금 느끼는 부정적 감정에 정반대되는 감정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저항을 놓아버리는 것이 있다.
예를들어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는데 싸워서 분한 마음에 돈을 쓰고 싶은 기분이 아닐경우
도저히 선물을 사러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생일 날짜는 점점 다가온다.
이에 정반대되는 감정은 용서하고 베푸는 마음이다.
이제 용서하는 감정을 마음속에서 찾아내 그에 대한 저항을 멈춘다.
용서하는 하감이 되는 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서 놓아 버리면,
놀랍게도 용서하는 마음이 용솟음친다.
3. 우리 천성의 일부는 항상 기꺼이 용서하길 원했지만 스스로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음을 점차 알게 된다.
그랬다가는 바보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한 분한 마음을 품는 것으로 상대를 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친구에 대해 의식적으로 딱히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기 성격에 그런 일면이 있음을 점차 알게 된다.
사랑에 대한 저항을 계속해서 항복해 갈때,
나누고 베푸는 것으로 나타나고자 하는 어떤 것이 마음속에 있으며
이것이 과러글 놓아 버리고 화해하고자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4. 우호적인 태도을 보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화해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잘못을 바로잡고, 감사를 표하고, 바로라 여겨저도 상관없다는 바람이 있다.
이 연습을 통해 내면에서 찾아내려는 것은 '위대함'으로 묘사할 수 밖에 없다.
위대함은 장애를 극복하려는 용기다.
위대함은 사랑의 순준으로 높이 올라가려는 자발성이다.
위대함은 타인의 인간적 약점을 받아들여 상대의 입장에서 그사람의 고통과 연민을 느끼는 것이다.
타인을 용서하면 자신도 용서되어 죄책감이 해소된다.
부정성을 놓아 버리고 사랑을 선택할 때 진정한 보상을 받는다.
이때 혜택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다.
다시 말해 진정한 보상을 얻는 사람은 자기 자신인 것이다.
5. 자신의 참모습을 자각할수록 고통에 덜 상처받는다.
자신과 타인의 인간적 약점을 연민으로 받아들이면 더이상 굴욕을 당하지 않는다.
참된 겸손은 위대함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보면, 보다 크 행복을 주는 근원을 갈구한다.
이것이 삶의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얻는다.
자신의 가치를 못 느껴 내심 허무해 하는 대신에
자신을 참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면 행복의 근원을 세상에서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6. 더불어 세상에서는 결코 행복의 근원을 얻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부를 쌓아도 마음속 빈곤람을 메꿀 수 없다.
마음속 공허와 자존삼 결핍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억망장자가 많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면의 큰나,
내면의 위대함과 만날 때,
내면의 완전성과 만족감,
진정한 행복감과 만날때,
우리는 세상을 초월한다.
이제 세상은 즐기는 곳일뿐, 나를 더 이상 휘두를 수 없다.
나는 세상의 영향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
7. 부정성을 포기하는 기법과 긍정에 대한 저항을 항복하는 기법을 활용하면,
언제가는 자신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전체적으로 자각한다.
이는 일단 경험하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전과 같이 세상에서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다.
세상 관례를 습관처럼 계속 따르긴 하겠지만,
사로잡히거나 쉽게 상처받고 의심 많던 마음속 성향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똑같아 보일지라도 마음속 원인은 이제 전혀 다르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해결한 결과, 다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총알에도 내면은 끈떡없다.
이제 평정과 품위를 잃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첫댓글 내면에서 부정적 감정에 매날리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의 왜소함이다.
왜소함은
심술궂고, 옹졸하고, 이기적이며, 경쟁심 많고, 인색하고, 음해하기 좋아하고,
앙심을 잘 품고, 비판 잘하고, 보잘것 없고, 나약하고, 죄책감 많고, 자심심이 강한측면이다.
왜소함에는 에너지가 별로 없어서 자존심만 고갈시키고 낮춘다.
자기혐오와 끝없는 죄책감, 벌을 받고 건강하지 못하고 병이 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우리 안의 왜소한 측면 때문이다.
마음은 일종의 생존기제이며,
생존방법으로 주로 감정을 사용한다
생각은 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정이 생각의 약칭과도 같게 된다.
수천가지 수백만가지의 생각을 단 하나의 감정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렇듯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성장하고, 확장하고 경험하고, 발전할 기회인 것이다.
어떤 사건들을 돌이켜 보면 그 이면에 무식적 있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중요한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데,
그것이 경험할 유일한 길이 고통스럽더라도 그 같은 사건이었음을 무의식이 알고 있는 것이다.
삶을 겁내는 것은 감정을 겁내는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다.
모든 감정 경험은 올라가거나 내려갈 기회다(감정지도를 기억하라)
그 사람을 증오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이번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성장할것인가?/분개하고 억울해 할 것인가?
다른사람이나 나 자신의 결점을 눈감아 줄 것인가?/화내며 따지고 들것인가?
미래에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더욱 겁내며 물러설 것인가?/이런 위기를 완전히 초월하고 정복할 것인가?
이번 경험을 나눔을 배우는 기회로 삼을 것인가?/겁내고 억울해 하는 겉모습 속으로 움츠려 들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