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편 김종섭 현) 천안일보 생활에세이 및 고정칼럼 연재 한국그린문학편

[코리아]

                                 

                                                                       김 종 섭
                         Apex Sports Management 고문이사
                         City Blends Coffee Café 운영
                         (사)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2014년 한울 문학(수필) 신인상 수상
                         2014년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시) 신인상 수상
                         전) 골프타임즈 객원기자
                         현) 천안일보 생활에세이 및 고정칼럼 연재
                                                          
                                                                     
아버지 오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당신이 무척이나 그립고 그립습니다. 낯선 이국땅 녹슨 철길에 이름 모를 잡초가 무성하옵니다. 돌아올 기약조차 없어 보였던 기차가 무성해진 잡초를 밟아 가면서 초라한 흔적만을 남겨 놓은 채 철길 위를 힘겹게 지나쳐 가고 있습니다.

우거진 숲길로 변해버린 철길에 다시는 기적 소리를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긴 꼬리를 물고 오늘,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 속으로 돌아와 애처로운 표정의 모습을 지으며 한참 동안을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완강하게 내려진 바리케이드 앞에는 많은 차량의 행렬이 멈추어 기대서 채 무심히 떠나가는 기차의 뒤를 지루함의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나가는 기차의 철로 위에 시야를 얹어 놓고 문득 지나쳐온 옛날의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꺼내어 되새김질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기차의 뒤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주인을 잃어버린 녹슨 기찻길의 모습처럼 옛 기억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희망 없는 추억을 생각 없이 무참히 철길 위에 내던져 버리고 망각의 시간을 보내어 왔습니다

아버지 저도 많은 인생의 시간을 아버지와 닮은 삶을 살아오면서 오늘 당신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생각을 저시어 가는 것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당신의 아들도 나이가 들어가는 아버지가 되어가고 있나 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잃어버리고 지나가 버린 세상 밖의 흔적을 어느 정도의 세월을 맞고 보면 애절하게 그리움으로 쫓는다 했던 예전에 누군가 전해주었던 그 말이 희미하게 떠올라집니다, 하지만 미쳐 그 그리움의 의미마저 무성의하게 깨닫지 못하고 흘려 버리고 살아온 삶의 여정이 이제 와 생각 속에 돌아 앉아보니 후회감이 차가운 자신의 질책으로 변해 버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지천명이 되고서야 제가 지금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 듯합니다. 어쩌면 핑계를 앞세워 놓고 불효의 마음을 현실 속에서 덮어 가려는 까닭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오월이 날로 푸름의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온 산에 이름 모를 꽃들까지 합세해서 활짝 만개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맞이했던 봄날도 예전과 다를 것 없이 변한 것 하나도 없는데 잠시 제 마음은 세속에 향기 없이 피어난 꽃처럼 의식 없이 살아왔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쯤 아버지의 산에도 봄이 찾아와 풀잎이 무성할 것이외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가슴속 깊은 것에서 꺼내어 하루하루를 기억하고 그리워할 날로 맞이할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봄비는 여전히 가물어 가는 대지 위에 생명수가 되어 피어나는 꽃들과도 가슴을 내어주고 포옹하는 만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사실 앞에 슬픔과 그리움이 넘나드는 그네를 타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슴으로 남겨주었던 그 사랑을 제 가슴의 한 곁에 사랑의 씨앗을 뿌려 놓겠습니다. 아버지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꽃을 피워 나가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할머니의 노잣돈

어릴 적 제일 먼저 기다리는 설렘으로 와 닿는 일 중의 하나는 용돈 받는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지난날에 소망했던 설렘 한 부분을 떠올려 보게 된다. 부모의 눈치를 살펴볼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그동안 미루어 남겨 놓았던 먹고 가지고 싶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풍요로우므로 채워 가다 보니 용돈에 대한 기다림의 인식이 인색해졌다.

용돈이라는 기억 속에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 살아 계셨다. 할머니는 지병으로 말미암아 거동도 못 하시고 오랜 세월 동안을 몸져누우셔서 지독히 고독한 지병과의 사투를 이어나가셨다. 지병이 오래도록 지속하다 보니 친척 외에도 이웃하시는 지인들은 병문안을 위해 가끔 찾아뵙는 일은 일상 중에 그리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병문안을 오셨다가 돌아가시는 분마다 의례적으로 늘 할머니 손에 용돈을 쥐여 주시고 돌아가시곤 하셨다. 손님이 자리를 뜨기도 무섭게 받으신 용돈을 이부자리 밑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으시기에 바쁘신 모습이 아직도 선명한 어제의 일처럼 지나쳐간다.

거동이 불편하신 터라 특별히 오갈 데가 없으셨던 할머니의 일상은 사력을 다해 한 반신을 간신히 힘겹게 일으켜 세우시고 잠시 벽면에 기대어 앉아 있는 일이 전부인 하루를 보내시곤 하셨던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 갑자기 떠올라 지면서 생각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애처로움과 안쓰러움이 교착되어 다가선다. 할머니에게는 특별히 먹고 입고 가지고 싶은 것도 마저 의미 없는 욕망의 일들이었음에도 굳이 용돈을 받아 챙기시는 모습을 지켜보아 오면서 어린 맘에는 항상 의아스러움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느껴가곤 했다.

어느 겨울날 할머니는 지병과의 오랜 싸움 끝에 기나 겼던 아픔의 세월을 내려놓으시고 세상과의 이별을 택하셔야 했다. 할머니가 우리 곁을 떠나가신 후 그동안 사용해 오시던 이부자리를 걷어 내는 순간 긴 세월만큼이나 애정 어린 지인들이 주고 간 용돈이 꾸겨진 휴짓조각처럼 흐트러진 모습으로 주인을 잃어버리고 긴 잠을 자고 있었다.

살아 계시는 동안 모아두셨던 용돈을 단 한 푼도 흔쾌히 써보지도 못하시고 죽음 앞에 미련 없이 돈의 소유 의식마저 내려놓으시고 결국은 살아있는 이에게 긴요하게 쓰일 몫으로 남겨 두시고 먼 길을 그렇게 떠나가 버리셨다. 할머니는 왜 쓰지도 못하실 용돈을 그토록 애착을 두셨을까, 할머니가 떠나시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생각하니 용돈에 집착하신 마음에 대해 인제야 때 늦은 어버이 된 마음에서 조금은 알듯 싶다. 할머니에게는 아마도 돈이 있다는 하나의 자체만으로도 큰 위안과 힘이 되셨던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이유가 있으시다면 용돈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마다 살아내고자 하는 삶의 애착이 커지는 이유에서 그토록 용돈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간다

우리 내 삶 속에 결탁하여 있는 돈에 대한 현실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돈을 벌기만 하는 사람과 쓰기만 하는 사람으로 구분된 경우를 한 번쯤은 주위에서 목격했던 경험 있다. 돈이라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써본 사람만이 익숙함으로 가치 있게 쓸 수 있다는 속설이 때론 사람들 사이에서 설득력 있는 근거로 주어진다. 살아가면서 단 몇 푼도 아까워 쓰지 못하고 욕심만을 앞세워 벌기만을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이도 있다. 우리 할머니의 이부자리 밑에 자리를 잡고 바깥세상을 거부했던 용돈의 행방처럼 벌기만을 고집하는 그들의 마음도 할머니의 마음처럼 돈이라는 정체가 모여 가는 행복감만으로도 힘이 되어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할머니의 입관식을 하던 날 그해 하얀 겨울은 할머니의 긴 투명의 세월만큼이나 유독 눈이 많이도 내리고 대지가 강하게 얼어붙어 갔던 혹독했던 겨울날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가시는 길에 겨울 속 은빛 배웅을 받으면서 정성스럽게 꽃 단장을 해드리고 단정하고도 깔끔하게 삼베옷을 입혀 드렸다. 큰 아버님은 고인을 이대로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던지 할머니께서 그동안 남겨 놓으신 용돈 일부를 저승 가실 노잣돈이라고 수위 주머니에 정성스럽게 넣어 놓아 드렸다.

할머니는 다시는 만져볼 수도 집착할 수도 없는 돈의 욕망을 내려놓으시고 노잣돈만을 주머니에 챙겨 놓으시고 꽃을 한 아름 안으시고 저 세상을 향해 꽃상여를 사뿐히 타오르시어 우리의 곁을 영원히 떠나가셨다. 노잣돈이 진정 저 세상에서도 이승에서처럼 돈으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그동안 써보지 못했던 돈이 고귀한 가치를 담고 단 한 번만이라도 값지게 쓰였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해본다. 욕심으로 포장된 돈의 부활이 아닌 그토록 움켜지었던 소망이 담긴 용돈의 가치로 저승에서도 할머니의 노잣돈만큼은 부활 되어 갔으면 간절한 바람을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마음을 함께 실어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