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저작권은 누가 지켜주나.1
- 저작권 침해 분쟁 조정 참관기
며칠 전에 한국저작권위원회 분쟁조정실에서 MBC웹드라마 ‘반지의 여왕’이 김리리의 ‘돼지(은)공주’에 대한 저작권 침해 문제 관련한 조정이 있었습니다. 문학동네 편집부장과 제가 김리리 작가와 동행, 참관했습니다.
흔히 ‘조정’은 특별히 기대할 만한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이상해서 충고를 들어도 내심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게 되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저작권법을 보면 제8장에, ‘저작권과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저작권에 관한 분쟁을 알선 조정하며, 권리자의 권익 증진 및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설립한 게 한국저작권위원회이고, 분쟁조정은 이 위원회의 업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청인(김리리 작가)은 밤새 자료를 준비하고, 질의서, 경위서, 피신청인 측의 답변서에 대한 의견문 등등을 준비하고, 조정 직전까지 논의하고 체크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정 과정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습니다. 사건 경위만, 그것도 아주 간단히 말하게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끝이었습니다. 공방해 봐야 끝이 없고, 영화나 드라마가 한 편 제작될 때마다 저작권 침해 받았다며 항의하는 게 늘 한 건 이상씩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아... 2.5초 동안 어리둥절했고, 그 후 2.5시간은 허탈했습니다.
조정 자리에 피신청인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다는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참석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더 컸나 봅니다. 어쨌거나 조정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조정에 실패한 것은, 김리리 신청인 측이 막대한 저작재산권을 요구해서는 아닙니다. 돈과 관련한 요구는 처음부터 없었고, 저작권 침해 인정과 관련된 것만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조정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법적인 효력도 없는 조정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정은 법적 효력이 없을 뿐 아니라 비공개이며, 그날 발언은 기록, 열람되지도 않습니다. 저작권법 제116조에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정절차에서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인이 한 진술은 소송 또는 중재절차에서 원용되지 못한다.’. 혹시나 나중에 소송을 하게 되어도 조정하며 오간 이야기는 증거자료로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조정에 실패했다는 기록만 하나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쟁이 발생하면 일반적으로 저작권 침해 받은 책의 판매부수를 체크하는 것 같았습니다.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접근성 차원에서 살펴보는 과정에서 증거자료로 사용하는 거겠지요. 그러나 이는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 권 팔린 책이라고 해도 그걸 읽은 사람이 표절할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표절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표절 문제에, 천만 부 백만 부 팔린 게 뭐가 중요할까요? 오히려 많이 팔린 책일수록 남들이 다 아니까 표절할 수 없을 겁니다. 드라마 제작하는 사람은 당연히 저작권을 사서 제작에 들어갈 테고요. 판매부수로 따지는 접근성. 맥 빠지는 일입니다.
이런 분쟁에서 사람을 맥 빠지게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2차적저작물의 원작 변형과 관련한 부분입니다.
문학작품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경우에는 원작, 원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문자로 이루어진 문학 작품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연극 등의 2차적저작물로 만드는 경우에는 원작이 일부 변하는 게 흔한 일입니다. 이는 매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매체의 성격에 맞게 변형하지 않으면 제작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간결한 문체와 간결한 구성, 절제된 인물의 수들을 자기 성격으로 갖는 동화를 말과 행동 중심의, 복잡한 인물 구성을 특징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 연극 등으로 만들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도 원작에 없는 인물이 등장하고, 원작 인물의 성격이 달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을 근거로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작이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엄마 까투리>는 또 어떻습니까? 어떤 애니메이션은 아예 원작을 느낄 수조차 없습니다.
동화가, 문학이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연극 같은 2차적 저작물로 제작되면 흔히 벌어지고, 매체 성격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동화 원문과 시나리오나 희곡을 문장대조하며 표절 여부를 가리거나 저작권침해를 따질 수 없는 거지요. 그러나 종종 이런 대조를 통한 표절 시비를 판가름하려는 경우가 있더군요.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이번에도 피신청인 측은, 드라마가 김리리 동화와 기본 줄거리, 등장인물의 구성과 성격, 구체적인 사건, 사건의 흐름, 사건이 인물의 내적 발전이나 인물 간의 관계 변화에 미치는 영향, 심지어 반전까지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와 변신 마법 설정, 반지라는 제재가 이미 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고,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며 논의의 초점을 빗겨가며 저작권침해를 부정합니다.
해당 드라마와 김리리 동화 둘 다에서 일치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마법의 반지가 모계 쪽으로 내려오는 가문의 보물이라고 설정한 점이나 반지를 끼면 상대방이 나를 예쁘게 본다거나, 부모님의 결혼도 이 마법의 반지 덕이었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는 엄마의 원래 모습을 좋아해서 반지의 마법과 상관없이 결혼했다거나 등등등. 이런 것들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드라마를 본 후에 동화를 읽은 초등학생이 동화가 드라마와 똑같다고 지적하며 동화작가에게 드라마 보고 썼냐고 물을 정도입니다. 흔히 찾아볼 수 있고, 추상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죠.
그러나 아무리 어린 아이가 보기에도 명백한 저작권침해가 법적인 다툼으로 가면 다른 논리들이 작동하고, 생각하지 못한 잣대가 사용됩니다. 그래서 대개의 분쟁, 소송에서 작가가 이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물론 표절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매우 까다로운 문제이고, 애매한 경우도 많습니다만.)
왜일까요? 왜 이렇게 명백한 저작권 침해 사건에서도 작가가 소송에서 지고, 침해한 자가 이기는 걸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자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저작권을 반복해서 침해하고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게 가능한 자는 방송국과 학습지 만드는 대형출판사뿐입니다. 이들은 돈이 있고, 힘이 있습니다. 부정을 저지르고도 변호사를 고용해 유죄를 무죄로 둔갑시킵니다. 여지껏 그래왔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힘없는 작가 개인이 저작권 침해에 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대 방송사를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특정 작가 개인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구조의 문제, 관습의 문제는 개인을 통해 드러납니다. 저작권 침해는 작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조정을 참관하며 심각한 힘의 불균형을 느꼈습니다.
상대방은 돈, 매체, 권력, 법 정보, 인력까지 갖추고 있는 반면에, 작가 쪽은 돈도 권력도 법 관련 정보도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싸우면 지기 딱 좋은 조건입니다.
가진 돈이 없으니(부자 작가도 있긴 합니다만... ) 변호인에게 사건을 의뢰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시비비를 따져보겠다고 혼자 아득바득 공부하며 싸웁니다. 그러나 오기로 버티기에는 참으로 외롭고, 싸움은 깁니다. 그래서 차라리 관둬 버리는 게 낫겠다 싶어 아예 시작도 안 하거나 중간에 때려치우는 작가들이 있는 겁니다.
힘이 없으면 편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원래 힘없는 사람의 편은 법이고 제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현재 작가 편이 아닙니다.
작가...
선생님이라는 낱말이 뒤에 따라붙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가 작가입니다.
보기에도 참 그럴 듯합니다. 매우 지적이고, 문학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그러나 보기만큼, 우리가 느끼는 자부심만큼 사회가, 제도가 작가를 인정하고 보호해 주지는 않습니다.
작가연대 하면서 자꾸 확인하게 되는 것.. 작가는 법이나 제도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것.
작가라도 작가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보호받기 위해서라도 작가 편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연대는 회원 편입니다. 작가 편입니다.
4월 11일 11시 MBC로 갑시다!
첫댓글 동참합니다. 함께 해요~~!!
ㅠㅠ
읽다보니 화가 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그러네요.우리 모두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