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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U-turn 윤이상 국제콩쿠르에서 만난 그녀
-기적 (miracle)의 재회
한 진 호
2022년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예향(藝鄕) 경남 통영에서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국제음악콩쿠르 대회리가 윤이상 기념관에서 열리고 있었다.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는 통영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고 재능 있는 젊은 음악인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2017년에 시작되었다. 올해가 5회째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수준급 음악회로 손꼽히고 있다.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WFIMC)
국내 콩쿠르 가운데 국제음악 콩쿠르 대회에 가장 먼저 가입한 콩쿠르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부문이 매년 번갈아 열리며 올해는 첼로 부문에서 개최되었다. 지난달 29일부터 열린 이번 대회에는 총 27개국에서 146명이 참가하였으며 워낙 인기 있는 국제음악회인지라 관중석은 초만원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어서 첼로 부문에서 19살 신예 첼리스트 김지민이 윤이상 국제콩쿠르 대회에서 우승하여 관중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았다. 주정 진도 감격하여 옆에 있는 대학 동기 친구와 같이 벌떡 일어나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이반 모니게티 심사위원장은 말했다.
“지난 일주일간 통영이 세계 첼로계의 중심이었고, 인터넷으로 중계된 경연실황을 전 세계에서 시청했으며 모든 첼리스트와 음악 애호가들이 이번 콩쿠르에서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이번 대회의 별미는 김지민 같은 세계적인 첼리스트를 발굴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윤이상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힘찬 목소리에 술렁이던 관중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오늘의 장원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첼리스트이자 천재 소년 김지민 군이 오늘의 대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보호자가 오셨으면 같이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부모 되는 듯한 중년의 중후한 옷차림의 여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순간 정진은 가슴이 탁 막히며 호흡이 멈춰지는 것 같았다. 아니, 많이 낯익은 얼굴이 아닌가!
정진은 잠시 자기 눈을 의심하여 여러 번 눈을 깜박였다. 죽은 줄로 알고 있던 사람이 살아서, 그것도 지금 눈앞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꿈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때 정열을 태웠던, 보고 싶고, 그리웠던 바로 그 여인,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잠시 고개 숙여 기도를 올렸다. 장내는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통영 밤하늘을 뚫고 메아리쳤다. 정진과 친구 광수도 열열한 박수를 보냈다. 정진은 시상자와 그 보호자가 단상에서 내려올 때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혼자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정진은 주인공 학생 어머니 곁으로 갔다. 잠시 머뭇거리다 어쭙잖게 말문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참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녀도 엷은 눈웃음으로 반신반의로 답례를 하고 있었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말한다.
“아니! 어떻게…?”
그제야 확신의 답례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감격의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옆에 있던 친구 광수는 영문을 모르고 의아하게 쳐다만 보고 있다가 먼저 슬며시 빠져버렸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정진은 옆에 있는 오픈 카페에 자리를 만들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와인 한잔하시지요.”
다시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경화 씨 뜬소문이 이상하게 나서 나도 반신반의하며 궁금하던 차에 오늘 참 반갑습니다.
한참을 호흡을 가다듬고 경화는 말문을 열었다.
“정진 씨가 떠나간 그 후로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하다가, 정말 세상 포기하려고 까지 했으나 얄궂게도 뜻을 굽히고 대학 친구와 바로 결혼을 하였지요. 그러나 모든 게 실타래 엉키듯 엉망으로 엉켜 도저히 풀을 방법이 없어 식 올린 지 사흘 만에 헤어졌고 이혼하게 됐지요. 언니가 사는 이곳 통영에 내려와 살게 됐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또 재혼했다고 소문이 났는데요. 사실은 사촌 오빠가 있는데 올케가 몸이 불편할 때 집에 가서 가사를 도와준 일로 루머가 이상하게 퍼졌나 봐요. 오늘 대상을 받은 학생이 제 아들입니다.”
“아!, 그랬었군요.”
“소문이 이상하게 났나 봐요.”
“어느 날 약국 문을 좀 일찍 닫고 바람 좀 쐴까 하고 달아항에서 요트를 탔지요. 시원한 바닷바람이 좋아 창밖 난간에 기대서 한참 동안 저녁놀을 감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갈매기 한 마리가 계속 따라오는 거에요. 물론 먹이도 안 주는데 말에요. 그래서 친구 하자고 새우깡을 한 개씩 주니까 제 깐에는 기분이 좋았던지 바짝 따라붙더니 아예 내 머리에 앉아 버리는 순간 내가 놀라서 새를 쫓다가 그만 난간 밖으로 빠져버렸지요. 소리소리 질러봤지만 배는 저 멀리 가버렸고 수영도 못하지, 순간 죽었구나 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눈앞에 플라스틱 물통이 파도에 밀려 나에게로 오는 거에요. 그래서 꽉 잡고 ‘놓치면 죽는다’ 결심하고 있는 힘을 다해 꽉 두 손으로 손가락 깍지를 틀어 가슴에 붙들어 맸지요. 그 후로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정신이 들어 눈을 떴더니 낯선 집 안방에 이불 덮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야 정신이 났지만, 기운이 없어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 집 할아버지가 배낚시로 생활하시는 분이라서 마침 이상한 물체가 보이길래 가까이 와 봤더니,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더래요. 그래서 서툴지만, 전에 배운 심폐소생술을 하니 복부에서 물을 토해내면서 눈을 뜨더래요? 해서 겨우 살아났지요. 이곳 할아버지가 생명의 은인입니다. 할아버지는 나를 살리려고 매일 전복을 따와 죽을 쑤어 줬지요. 그 바람에 빨리 회복하여 보름 후 집으로 가게 되었지요. 그 사이에 매스컴에서 실종으로 처리하면서 자살했다고 결론 냈나 봐요, 하하. 앞으로 창피해서 약국도 못 할 것 같았지요.”
“에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요. 창피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무용담으로 동네 사람들에 들려주면 좋을 듯하네요”
“세상은 평온과 행복만이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슬픔을 당한 사람은 왜? 나만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고 원망하지만 누구에게나 높낮이만 다를 뿐 제각각 나름의 번민은 있나 봐요. 그래서 세상은 불공평이 공평으로 이어지고 평준화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마치 헤겔의 정(正), 반(反), 합(合)의 원리와 같은 것이겠지요.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호사다마’ 같은 것도 결국 인생의 삶 속에서 녹아있는 평범한 진리 같아요. 나를 살려준 할아버지도 지금은 평화 속에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말 못 할 쓰린 과거가 있더라고요. 고향(통영)에서 농업과 어업으로 잘살고 있었다네요. 한데 서울 사는 아들이 큰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잘 버니 오셔서 그냥 편하게 사시라고 하는 바람에 시골 재산 다 정리하여(전부 팔아봐야 서울 아파트 한 채도 안 되지만) 올라 갔더래요. 한데 석 달도 못 살고 다시 시골 통영으로 내려왔답니다. 이유인즉슨 지하철은 ‘지옥철’이고 버스는 ‘콩나물시루’고 ‘공기가 나빠’ 밤새 기침 나는 바람에 잠도 못 자고, 가만히 앉아서 텔레비전이나 보자니 소화도 안 되니 밥맛도 잃고, 그래서 속담이 생각나더래요.
‘고기도 저 놀던 물이 좋더라’.
가진 돈 아들한테 다 뺏기고 겨우 이곳 허름한 땅에 오두막집 하나 장만해서 두 늙은이 겨우 발만 뻗고 살게 해 줬다네요. 생활비도 안 대주니 바다낚시로 겨우 입에 풀칠한다고 탄식을 하더라고요. 할아버지 얘기 속에 기막힌 얘기가 있어요.
“자식이 아니면 원수여?”
“자식이 원수로 변하면 안 되겠지요.”
밤공기가 차가운데도 둘은 바닷가 모래사장 위를 걷고 있었다. 옛날 한탄강 변 모래사장 위를 걸을 때를 회상하면서 추억을 되살려 봤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연 다른 분위에 그저 말없이 묵묵히 걷고 있었다.
“그런데 정진 씨는 이곳에 웬일이세요?”
“아, 예 대학 동창 친구가 설악산에 리조트를 짓는데 이곳에 있는 ‘E.S’ 리조트를 참고하고 싶다고 해서 온 겁니다. 마침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인터넷에 뜬 음악회 선전을 보고 가게 된 거지요.”
“또한, 경화 씨 생각에 옛 추억도 생각나서 답답한 가슴 바람도 쐴 겸 해서 왔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경화 씨도 만나고 의외의 수확에 놀랐습니다, ㅎ ㅎ. 그러고 보면 사회에 떠도는 ‘루머는 루머일 뿐’ 이지요. 확인되지 않은 루머는 믿어서는 안 되지요.”
“아, 그러셨어요. 제 생각을 하셨다니 기분은 좋네요.”
밤공기는 찼지만 상큼하니 답답했던 가슴도 뚫리는 기분이었으며 맑은 하늘에는 별들이 총총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정진은 너무 경색된 분위기를 바꾸려고 옛날 둘이서 자주 읊었던 윤동주의 시 한 수를 읊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맘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 전문
베이스 바리톤과 알토의 고운 목소리, 살랑이는 파도 소리의 아리아가 달빛 그물망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아름다운 음의 하모니가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육체를 벗어난 그들의 영혼의 노래는 이미 하나로 결집하고 있었다. 답답한 가슴이 후련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이 시는 우리도 좋아하지만 우리 국민 누구나 다 같이 좋아하는 시이지요. 경화 씨도 윤동주 시 좋아하듯이 말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중에서도 가장 많이 낭송되고 있는 유명한 시로 알려졌지요.”
한참을 걷자 포장마차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도 쌀쌀한데 한잔하고 갑시다. 와! 저 문어와 전복 좀 봐요.”
서로가 작당하는 모습이 그들만의 옛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며 야릇한 미소가 오갔다.
와인에 전복찜으로 알싸하게 서너 잔을 하니 추위도 가시고 기분 전환도 되었다.
“참 아까 첼로 대상을 탄 아들 대단합디다. 지금 어디에서 공부하고 있나요?”
“예, 미국 맨해튼에 있는 ‘줄리아드 스쿨’에서 공부하고 있지요. 지민이를 가질 적에 태몽 꿈을 꿨지요. 바로 정진 씨를 끌어안고 자는 꿈을 꿨어요. 그래서 정진 씨를 닮아 머리가 좋은가 봐요! ㅎ, ㅎ,”
정진은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강렬한 한 줄기의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아 그래요!.” 그녀는 더 이상 얘기는 하지를 안했다. 그러나 ‘태몽 꿈’을 강조하는 경화의 표정을 봤을 때 무엇인가를 암시라도 주는 듯한 서기가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고 있었다.
“할 말이 태산 같았으나 막상 대하고 보니 하얀 백지가 앞을 가리네요.”
“정진 씨의 소식은 신문 지상이나 매스컴을 타서 잘 듣고 있었지요. 하지만 다 지난 일 지금에 와서 어찌하겠어요! 모두가 다 자업자득이지요.”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예, 친구 따라 바람도 쐴 겸 따라 왔지요. 친구가 설악산에 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라면서 리조트업계에서 호평이 나 있는 'E.S' 리조트 구경 좀 시켜 달라고 하기에, 전국 E.S 중에서도 이곳 통영이 제일 좋기에 이곳을 택했는데요, 이렇게 경화 씨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온 거지요. 하지만 의외의 기쁜 소식을 안고 가게 돼서 가슴 뿌듯하네요. 정말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이곳 E.S가 위치가 절경이지요. 유람선을 타고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진입하여 미륵도 쪽을 보면 경치가 마치 유럽풍의 E.S 리조트가 한 폭의 수채화로 절경이지요.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동화 속의 요령이 사는 집 같은 이미지가 풍기지요.”
“저도 이곳에 산지가 여러 해 됐지만, 실제 가보든 못했어요.”
“아 그래요! 필요하면 어제든지 말하세요. 제가 회원증을 가지고 있지요. E.S는 전국적으로 명소에는 다 있지요. 설악, 해운대, 대천, 제주, 제천, 용인 그리고 해외엔 히말라야중앙부의 남쪽 반을 차지하고 있는 네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여행 좋아하는 가족에겐 꼭 필요한 리조트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가고 싶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지요.”
밤이 깊어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삶이란 참 묘하지요. 뉘앙스이고, 오페라 같은 연극을 연기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우리들의 인생살이가 다 그렇잖아요. 정진 씨와 저와의 삶도 말이어요. 그렇다고 보면 우리는 연기를 잘한 명배우가 아닐까요! ㅎ ㅎ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앞이 캄캄했지요. 사실은 우리가 헤어지고 나서 많은 고민과 정신적 공황장애로 여러 해 동안 헤맸지요. 그러다 성당에 나가 믿음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았지요.“
“미안해요. 경화 씨, 정말 미안해요. 다 내 잘못이지요. 그 당시는 철부지의 자존심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날씨도 싸늘하니 감기 조심해야지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시고 내일은 아드님 지민 군 만나 축하도 해 주고, 점심을 같이하고 싶습니다. 지민 군과 상의해서 장소를 문자로 넣어 주세요. 꼭 입니다.”
E.S 리조트에 돌아온 정진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안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와인을 비우고 또 비우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태몽 꿈?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또 하필 나를 닮았을까? 풀지 못할 수수께끼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결혼 삼 일 만에 헤어졌다고 강조하는 의미는 또 무엇일까? 신혼여행 길부터 의견충돌 있었듯이 내뱉는 뉘앙스 적인 언어의 교집합에서 해답이 있을 법도 했다. 우리가 헤어지자마자 바로 결혼했다는 것도, 아들 나이가 열아홉이란 것도, 여러 조건이 뇌 속을 어지럽혔다. 비몽사몽 뒤척이다 상큼한 아침 공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잔잔한 바다 위에 윤슬을 뿌리며 윙크를 하고 있었다. 광수 친구는 벌써 바닷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막 들어오면서 말한다.
"오늘 날씨 참 좋네. Lucky Day!“
그는 무늬가 있는 주먹만 한 돌을 주워와 말한다.
“친구야, 이 돌 좀 봐! 여기 묘한 그림이 있어?”
자세히 보니 그 속에는 새 한 마리가 날갯죽지를 활짝 편 채 막 비상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묘하게 생겼네, 여기에 시가 들어 있어, 이 돌 내가 사면 안 되겠나?”
그는 늦잠에서 깨어 눈을 비벼대며 돋보기를 대고 이모저모 살펴보고 하는 말이었다.
“그래 가져.”
“고마워! 대신 오늘 저녁은 내가 술 한잔 살게. 좋지, 좋아”.
핸드폰을 보니 이미 문자가 와 있다.
“오늘 12:30 서호시장 내 부부식당에서 뵈어요!”
E.S 리조트에서 서호시장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다. 콜택시를 불렀다. 기사는 친절하면서도 통영 터줏대감으로서 주인의식이 강했고 자존심이 강한 팔십 대 노인의 패기에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가슴 뿌듯했다. 역시 내 고장을 사랑하는 자존에서 애국심도 나오는 것이리라.
이곳은 원래 통영 앞바다에 있는 미륵도라는 섬이었으나 통영시로 편입되어 관광특구로 개발되어 관광명소로 소문나 주말이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곳 미륵도에는 E.S 리조트를 비롯해 다도해를 바라볼 수 있는 케이블카도 있어 전망대에 올라가면 남해안이 역시 다도해라는 수십 개의 섬을 관망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지만 통영하면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지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을 한산도로 유인하여 학익진 병법으로 적선 백여 척을 파괴한 일은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유명한 해전으로서 세계 4대 해전에도 들어가는 유명한 해전입니다. 한산도 대첩은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리며 또한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과 함께 한국사 3대 대첩이라 불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곳이 처음이신가요?”
“아닙니다. 몇 번 왔었습니다. 노장께서는 애국자이십니다. 역사를 훤히 꿰뚫어 보시고 해박하십니다.”
정진은 이런 국민이 애국자란 것을 다시 실감하며 내심 머릿속에 메모해 두었다.
한편 경화는 정진 씨가 아빠의 친구라고 지민이한테 소개는 했지만, 혹시나 대화에서 실수할까 봐 불안하였다. 무엇보다도 정진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잘못을 인제 와서 정진에게 떠넘기는 것은 자존이 허락 하들 안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인생도 허물어지는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덮어두자 세월 속에 묻혀버리겠지!’
12:20 예약 시간 10분 전 도착한 정진은 식사 후 경화와 데이트할 장소를 택시 기사의 설명에서 힌트를 얻어 내심 기사가 고마웠다.
“벌써 오셨네요!”
뒤따라오는 건장한 청년, 어제 보긴 했지만, 오늘은 더 늠름하니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인사드려라. 어제 얘기했던 주정진 회장님이셔.”
“예, 김지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반가워요, 주정진 입니다.”
“말씀 놓으세요. 엄마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제 첼로 연주는 아주 환상적으로 잘했어요. 대상도 타고, 다시 축하해요. 제2의 윤이상 음악가로 기대가 큰 만큼 더욱더 열심히 해서 한국을 세계에 빛내야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지도자로서 바쁘실 텐데 저한테 시간을 내주셔 감사합니다. 정치가로서, 사업가로서, 학자로서 성공하신 훌륭한 분이십니다. 존경합니다. 어머니께서 항시 선생님 말씀 많이 하셨지요. 앞으로 친자식같이 살펴주십시오.”
“아, 그래요. 우린 이제 남남이 아닙니다.” 정진은 마음속으로 아차, 내가 너무 나갔나 싶어 은근히 걱정됐다. 이어서 통영에서 유명한 통영 김밥에 우럭 매운탕이 나왔다.
“자, 식기 전에 듭시다. 와, 국물이 시원하니 맛있습니다.”
“맛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 전에 중국 음식 좋아? (하다가 경화는 아차, 말을 거두고,) 그래도 통영에 오셨으니 이곳 토종음식 김밥에 해물탕을 생각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예, 아주 맛있습니다.”
“지민 군 많이 먹어요. 낯선 이국땅에서 생활하다 보면 고국이 그립지요. 특히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이 그리워질 때가 많아요. 나도 미국 생활 10여 년 넘게 하면서 고국이 아주 그리웠고 특히 자취생활에 엄마 밥상이 생각날 때가 많았지요. 열심히 해서 대한의 자랑스러운, 아니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기 바래요. 그리고 어려울 때는 나한테 전화해요. 내가 미국에 자주 가기도 하지만 시카고에 우리 미국 본사가 있으니 직원이 살펴주도록 조치해 놨으니 염려 말고 학업에 열중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가슴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어제의 시간에 멈춰있다. 하지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시공이라 하더라도 양심의 책무는 두고두고 그림자로 괴롭히겠지.
‘묻어두자! 그대로?’
지민이를 집으로 보낸 후 둘은 미륵도 관광특구에 케이블카에 올랐다. 날씨가 초겨울인데도 참 고운 하늘빛입니다.
“통영 남해안 바다는 정말 멋진 코발트 빛으로 물들어 관광객들에 더욱 인기 만점인가 봅니다. 경화 씨 저 앞에 보이는 섬 저 섬이 한산도네요. 한산도 하면 이순신 장군을 빼 놀 수 없지요.
“한산대첩에서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으로 일본의 수군을 학익진으로 펼쳐 47척을 침몰시키고 12척을 나포하여 적을 물리치는 전과를 올린 유명한 전투이지요. 세계 4대 해전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실은 나도 잘 몰랐는데요, 택시 기사가 설명해서 알았지요.” ᄒ ㅎ.
“에잇, (경화는 옛 버릇 그대로 정진의 어깨를 머리로 툭 치며) 난 또 자기 실력인 줄 알고 역시나 정진 씨구나 했지요. 점수 줬거든요. 취소해요!.”
정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경화 씨 저기 섬 두 개가 붙을락 말락 나란히 붙어있는 섬 보이지요.”
“아, 저 섬요.”
“맞아요, 바로 제가 살아난 섬이지요. 어제 말했던 만지도요. 그곳에 할아버지가 저를 살렸지요.”
“아, 예 은혜의 섬이네요.”
“경화 씨는 저 섬이 어머니 같은 섬이네요. 새 생명을 줬으니 말이요! 1년에 한 번씩은 그 영감님 찾아 봬야 하겠습니다.”
“맞아요,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느새 하루가 서녘에서 노을을 뿌리며 숨 가쁘게 지고 있었다.
“경화 씨 노루 꼬리 봤어요?”
“웬, 갑자기 노루 꼬리는요?”.
“어떤 시인이 하루를 노루 꼬리에 비교했답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가 그렇게 짧았네요.”
“정진 씨 덕분에 오늘 즐거운 하루였어요.”
“나도요. 오늘 저녁은 같이 온 친구하고 저녁 식사하기로 약속했어요.”
“예, 정진 씨는 항시 봄바람 같은 바람둥이지요. 실컷 불만 질러놓고 사라지는 봄바람 말이어요.” ㅎ ㅎ “내가요?”
“그럼, 오늘은 이만 소인 물러갑니다.”
“난 몰라요?”
또 옛날같이 바람같이 사라졌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바람을 스치며 생각했다. 인생무상 삶은 참으로 헛헛하다고 생각하며 예전에 쓴 시를 읊조렸다.
함박눈이
사뿐사뿐 나리든 어느 날
숭인동 골목길에서
동대문 버스정류장 사이를
오 가기를 여러 번
우리는 말 없는 대화를 나누며
그냥 묵묵히 걸었답니다
팔짱도 못 끼고 그냥 걸었지요
고요히 밤하늘에
달빛이 흐르든 어느 날 밤
새벽녘에 들려오든 멜로디는
누구를 위한 목소리였을까요?
건넌방
잠 못 이루는 끝눈의 트랜지스터는
새벽 내내 울었답니다
‘푸치니’의 ‘별은 빛나건만’
그 애절한 울음소리는
못다 한 사랑의 멜로디,
아니 행복의 판타지였습니다
그러나
정녕 나는
멍멍한 가슴만 태우는
벙어리가 되었나니
어느 날
날려온 편지 한 장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를 좋아한다고.
아니 사랑한다고,
죽도록 사랑한다고“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상상이었지요
그런 답장도 쓸 용기가 없었답니다
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미완의 학창시절
군대도 가야 했고
취직도 해야 했든
책무의 그림자에
젊음의 열정은
한낱 티끌로 사라져버렸나니
아아!
지금은 아련히
가슴만 저려옵니다
‘첫사랑’이란 표찰로
내 가슴에 낙인된 채
- 시 ‘잊혀진 연정’ 전문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