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10:19-39절) 하늘의 소망을 둔 신앙 오늘 본문은 하늘 문을 열어 놓으신 대제사장이 계신데,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겠느냐? 는 말씀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로 있다가 해방되었을 때, 젊은이들이 패배의식과 절망에 더 이상 빠지지 않고, 모두가 일어서서 영광된 조국의 미래를 위해 싸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셔서 천국을 회복시켜 주셨다면, 그를 믿는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도전(挑戰)의 말씀입니다.
Ⅰ.그리스도가 하시는 일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 36년간 치옥적인 지배아래서 해방되었을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셨을 때, 그날은 천국의 치유가 회복되던 날입니다. 즉 인간에 대한 사탄의 지배가 끝나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된 날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제 마귀의 지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죄의 감옥(監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껏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축복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10:19-20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 말씀을 비유(比喩)로 들면, 모세의 성전은 우리나라 독립일인 3.1절과 같고, 예수님의 부활은 8.15해방과 같습니다.
구악시대부터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을 부어 주시는 복을 약속(約束)하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이스라엘의 성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실은 성전(聖殿)이 천국으로 가는 문이나, 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전(聖殿)안에 있던 지성소에는 천국 가는 문이나, 입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국으로 가는 진정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 안에 천국의 모든 비밀과 능력과 축복을 다 싸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의 육체(肉體)는 걸어 다니는 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이 못에 박히고, 창에 찔려 육체(肉體)가 찢어질 때,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던 담이 허물어지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20절)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천국 문을 열어 놓으신 예수님과 우리는 어떤 관계이며,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천국에 출입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천국 문을 열어 놓으신 후, 우리와 같은 육체(肉體)를 가진 채로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올라가실 때, 인간의 모든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과거의 영광된 몸으로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肉體)를 가지고 그대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240장 후렴도“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나의 주를 나의 주를 손의 못 자국을 보아 알겠데,”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그냥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지고 올라가셨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철저하게 우리 편에 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어려운 이 세상에서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끙끙대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 해결해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들이 대표(국회)를 뽑고, 그들이 법을 세우고, 정부의 활동을 감시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국회를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표가 하늘에 계십니다. 즉 예수님께 우리의 고통과 연약함과 실수한 것 등 모든 부족한 것들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 크게 3가지라고 본다면, ①가장 중요한 것이 죄를 없애는 일을 하십니다.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죄(罪)문제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죄를 사하는 일을 하십니다.
②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물론 직접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많은 정사(政事)나 권세(權勢)와 같은 천사들과, 위정자(爲政者)들을 세워서 다스리십니다. 중요한 모든 것은 예수님의 허락과 결제가 없이는 안 됩니다.
③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마귀와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놀라운 능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십니다. 이것이 지금 이 세상에서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미국이나 러시아나 강대국들의 정책이 전 세계를 쥐고 흔드는 것 같지만, 이것은 엑스트라(extra)의 연기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핵심은 믿는 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깨끗함을 받아야 합니다. 언제나 깨끗할 수만 있다면, 마귀는 우리를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마음껏 받을 것입니다. 21-22절)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양심(良心)이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비싼 보석(寶石)입니다. 사람들은 보석(寶石)이 다른 곳에 있는 줄 알고, 열심히 땅을 파고, 돈을 벌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은 진짜 보석(寶石)이 아니라 가짜입니다.
진짜 어마어마한 보석(寶石)은 우리 안에 있는 양심(良心)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양심을 깨끗하게 씻음 받으면,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천사처럼 높이 들림을 받게 됩니다. 즉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한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엄청난 복(福)이 있는 줄 알면서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양심이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우리들의 가장 큰 승리는 유명이나, 어떤 큰일도 아닙니다. 즉 유명해지고, 부자(富者)가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냄새나고 “썩은 면류관”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25절)...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아 냄새나는 모든 더러운 죄들을 회개하고, 깨끗함을 받을 때,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실을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22절)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란 우리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어도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우리의 발에서 악취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냄새 나는 발을 씻으면, 온 몸은 개운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활이 항상 깨끗하고 경건하면, 주께서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Ⅱ.지상의 성전 19절)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오늘날도 성소(聖所)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죄에 빠져 고통과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도 성소를 허락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천국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마귀는 패배 했지만, 우리의 눈에는 마귀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죄의 무거운 짐과, 마귀의 유혹(誘惑)을 받으면서 멸망의 길을 가면서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성소(聖所)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그 성소(聖所)가 어디일까?“골방”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면서 외식(外飾)하는 자들처럼 밖에 나와 떠들지 말고, 골방에서 기도할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6).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시설이“골방”입니다. 즉 우리가 삶에 지쳤을 때, 이 세상에서 너무나 실망했을 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 절망하지 말고,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에게 비밀(秘密)입니다.
예수님은“골방의 비밀”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시든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셨습니다. 어느 때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도 사람들과 제자들을 모두 다 보내고, 혼자 한적한 곳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가셔서“골방의 비밀”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골방 안에는 영광이 있었고, 빛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는데, 그곳도 예수님의“골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골방을 능가하는 큰 성소(聖所)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모임공동체”입니다.
23-25절)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그 모임이 성소(聖所)로 변합니다. 그것도“전통성소”가 아니라,“하나님의 성소”로 변하게 됩니다. 거기서 우리는 기도 응답을 받고, 불치의 병도 치료받고, 기적을 체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성전은 구약 성전보다 훨씬 월등합니다. 구약 성전 안에는 언약궤와 그룹 천사들이 새겨진 뚜껑만 있었지만, 우리의 성전은 하나님과 우리가 실제로 연결된 곳입니다. 우리가 모여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히 임하여 모두를 변화시키십니다. 즉 어떤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해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던 같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하여 실망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우리끼리 모여서 예배드려봤자 아무소용 없더라. 이제 더 이상 모이지 말고 각자 알아서 살자”는 식으로 결정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곧 엠마오로 기던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글로바와 또 다른 한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고, 이제는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짓고, 장사나 하려고 열심히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끝까지 찾아가셔서 말씀으로 그들의 식은 가슴을 뜨겁게 하셨고,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모이기를 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즉 그 중 하나는 핍박 때문이요, 또 예수님이 생각보다 더디(再臨)오시니까 실망을 해서 더 이상 예수님을 기다리지 말고, 세상으로 가서 실컷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보자고 해산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끼리 서로 내분(內紛)이 생겨서 그가 보기 싫으니까 흩어지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모임은 우리의 모임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고, 성령이 부어지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격려하고, 모여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일 때마다 부요(富饒)해지고, 어려움이 해결되고, 기적도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회(공동체)를 허락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모여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면, 승리한 것입니다. 그 후, 은혜를 주시고, 치료하시고, 어려움을 해결해주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모여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Ⅲ.구원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사람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구원(救援)이 너무 쉽고, 가깝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은 천국가기가 너무나 쉽게 길이 열렸습니다. 그야말로 온 도시나, 동네마다 교회가 있고, 심지어 길에서도 복음(福音)을 전하고, 텔레비젼과 인터넷에서도 복음(福音)을 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느 진리의 말씀이라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救援)을 소홀히 해서 믿지 않는 사람도 많이 있고, 또 믿다가도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 저자는 당시에 예수를 믿다가 배반하고, 타 종교나, 세상으로 가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26-29절)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여기에 보면“복음을 진리를 아는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복음(福音)은 인간의 처지와 운명에 대한 유일한 진리(眞理)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믿은 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신앙을 버리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짐짓 죄를 범했다”는 것은 우리가 연약하여 시험에 들거나, 실수로 죄에 빠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실컷 믿다가 신앙을 버리면, 더 이상 속죄(贖罪)하는 제사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이 언약(言約)을 성취(成就)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도저히 믿음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환난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활까?
고전10:13절)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단지 두려운 것은 교회는 다니지만, 진정한 구원의 확신OI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도 점점 쇠퇴(衰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일단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다 천국 백성이 되었다 생각하고, 복음(福音)을 많이 설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福音)은 교회의 철문(鐵門)과 같습니다. 즉 복음(福音)이 지속적으로 설교되면, 그 문 안에 들어오는 교인들이 아주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단과 사탄이 절대로 틈타지 못합니다.
그러면 과연 중생이나 회심이라는 것이 사람의 노력으로 되느냐? 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福音)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효험(效驗)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신실하게 복음(福音)을 전할 때, 교회가 알곡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서 주님을 버린 자들은 이미 마음에 평화(平和)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위해“살려고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정말 잠깐입니다. 잠깐 사는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영원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면서도 일부러 믿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罪)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일부러 이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통을 당하면서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는데, 이것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것은 곧“하나님의 아들을 발로 밟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9절)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즉 인간의 죄(罪) 중 가장 큰 죄(罪)가 하나님을 인정(認定)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보다 더욱 큰 죄(罪)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알고도 일부러 믿지 않는 것입니다. 장차 지옥(地獄)의 심판(審判)의 정도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복음(福音)을 아예 들을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한 자와 복음(福音)을 수없이 듣고, 또 주위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을 보고서도 믿지 않는 자의 심판(審判)은 다를 것입니다. 30-31절)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저.”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 구원을 확실하게 해놓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원수(怨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審判)은 봐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지 못한 자의 영혼(靈魂)과 육체(肉體)를 모두 다 함께 영원한 지옥(地獄)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신의 영혼 구원을 확실히 해놓지 않고, 엉터리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혹 내가 엉터리가 아닌지? 내 영혼은 방치해놓고, 엉뚱한 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늘 주의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다른 사람은 실컷 구원해 놓고, 막상 자신은 지옥(地獄)에 떨어질까?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언제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면서 끝까지 인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천국의 기쁨과 영광이 자꾸만 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늘의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고난도 덜 실망하고,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해도 즐겁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32-34절)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본문을 보면 히브리서를 받아보는 교인들에 대한 정보가 조금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난 후, 공개적으로 비방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3절)...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마 거리에 풀려나와 손가락질을 당했든지, 아니면 조롱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취급을 당하지 않았다 해도 불명예를 받았을 것입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좋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했고, 심지어는 감옥(監獄)에 갇히기도 하고, 직장과 산업을 빼앗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지역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고 나서 그런 취급을 당했을까? 아마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일까? 아니면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일까? 아니면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대인들일까? 그것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 핍박을 대단히 용기 있게 이겨냈습니다. 그래서 감옥(監獄)에 갇히고 직장과 산업을 빼앗겨도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또 거리에서 조롱을 당해도 그리스도인의 신분(身分)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강하게 권면합니다. 35-36절)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함과 인내(忍耐)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소망(所望)을 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소망은 전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드리기를 주저합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도 헷갈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즉 세상 이익은 당장 눈에 보이고, 천국의 상급(賞給)은 오직 약속(約束)으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즉 우리가 천국 약속을 믿고, 끝까지 충성을 다했는데, 부도(不渡)가 나면, 어떻게 될까? 의심도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직 왕(王)에게 충성된 신하(臣下)일 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짓 왕(王)에게 충성하면서 호의호식 합니다. 그러나 우리 왕(王)은 하늘에 계시고, 언젠가 왕(王)앞에 서서 우리가 끝까지 왕에게 충성을 다한 것을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 저자는 하박국서 말씀으로 우리를 이렇게 격려합니다. 39절)우리가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의인(義人)은 결코 머리로 이해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직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믿음들이 모여서 큰 기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38절)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믿음으로 이기지 못하는 자는 교만(驕慢)한 자들이고, 정직하지 못한 자들인데, 그런 사람들은 불 시험들 이기지 못하고, 모두 뒤로 물러가 영적. 침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침체(沈滯)에 빠지게 될까? 두려움과 불안과 자기 생각에 빠져 신앙생활에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책임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못한 것은 야단맞을 수도 있고, 잘한 것은 칭찬 받을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주님이 책임을 지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저 빛나는 영광에 들어가려면, 아직 이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끝까지 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성전(聖殿)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깨끗한 양심을 지키고, 서로 권면하면서 함께 나아갈 때, 날마다 주님의 기적이 우리를 지켜 줄 것이며, 모든 부러움과 부족함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83장 *구름 같은 이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