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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6일 중국여행 상해를 가는 날이다.
중국은 이번이 세번째이며 최근 2~3년사이에 중국의
길림성의 연변, 호남성의 장가계를 다녀왔고
이번에는 상해를 가는 것이다.
이번여행은 아내의 개인사정으로 동참을 못하고 딸과 함께 가며
친구가족 5명과 함께 가는것으로
친구가족은 이번 여행이 해외여행 처음이란다.
우리나라의 날씨는 한창 추울때이지만 상해는 요즘 평균
기온이 영상 15도 안팎이라 추위걱정은 크게 안해도 될것 같다.
비행기가 이륙후 2시간 비행끝에 중국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은 올때마다 느끼지만 비행시간이 짧아서 지루하지 않고 적당하게 타고 오는것이 좋다.
입국수속을 끝내고 나오니 가이드가 하나투어 피켓을 들고있는 곳으로 가서
인원을 정리하니 우리 일행외에 부자지간의 두남자 60대의 자매 2명, 총 11명으로 결정되고
투어버스에 올라 상해시내로 들어갔다.
가이드는 어제 밤을 새운듯 부시시해 보이고 피곤해 보였는데
가이드 본인이 자신을 소개하며 사실 어제 잠을 자지못해 엄청 피곤하다며
죄송함을 표현하고 양해를 부탁해 왔다.
가이드의 상해설명,중국의 수도 베이징 다음으로 큰 도시이며
중국의 경제무역 도시라며 규모를 설명하는데
상해시내에 40층이상 빌딩이 400여개가 넘는 도시이며 상해에는 세계의 사람들이 많으며
여름에는 더위가 너무 심하여 아내없이는 살아도 에어컨이 없이는 못살 정도로 덥단다.
하지만 한겨울에도 영상 4도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드물단다.
상해의 크기는 서울크기의 20배정도 크기이며 높이 표고 해발 5미터가 없을 정도로
완전 평야지대라고 보면 무방하고 그래서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행렬이
어마어마해서 교통난을 초래할 정도란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가는중에 창밖을 보니 고가도로가 엄청 많아서 질문해보니
아마도 고가도로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잘되어 있을거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러는사이 버스는 식당앞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식당이 어마어마하게 큰 위용에 압도를 당할 정도여서 식당이
왜 이렇게 크냐고 질문하니 가이드왈,
이 식당은 50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수 있는 규모라나....? 할말을 잃었다.
중국은 이런 대형식당들이 각 성마다 많단다.
안으로 들어가서 방으로 안내를 받았는데 서빙하는 사람들이 모두 20살 안팎으로 어려보였고
하나같이 깨죄죄한 옷차림이어서 서비스문화에 관해서는 변방 도시같았다.
자리에 앉은후 같이 일행이 된 사람들과 정식인사와 소개를 하고 받았는데,60대자매중
언니가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일동 의아해 했는데 본인왈,1
970년대 초중반에 서독에 간호사로 갔다가 그곳에서 결혼을 한후 독일국적을 취득했다 한다.
그러자 일동 모두 순간적으로 그럼 바깥분이 독일남자...? 하니
손사래를 치며 그렇치않고 한국남자라고 했다.
그말에 모두가 의아해 하기에 난 순간적으로 그럼 그당시 광부로 갔던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셨나 보죠?
했더니 그녀는 순간 얼굴이 굳어지더니 마지못해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가 자존심이 상해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유는 그녀는 남편 전직업이 광부라는 직업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듯 보였다.
이후 그녀의 동생은 나에게 별것도 아닌일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추후 여행기간 내내 분위기가 껄그럽게 된 계기였던것 같다.
어색한 분위기속에 점심식사가 끝나고 상해의 명동거리라는 신천지라는 곳으로
안내되어 자유시간을 1시간 주었다.
나는 딸과 친구가족이 함께 구경을 다니며 최대한 많은것을 보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거리의 특이한 가게는 대형 건강식품가게가 여러개 있었는데 들어가보니 홍삼,녹용 같은것을 포장을
귀가 막히게 예쁘게 하여 포장만 본다면 구매욕이 엄청 일어났지만 홍삼,녹용은 우리것보다
품질,효능이 떨어질것 같아서 관심도 주지 않았다.
한창 구경을 하는데 친구부인이 소변이 급하다고 화장실을 찾는데 안보인다고 어저냐고 끙끙...
가이드는 없고 화장실이라는 중국어는 모르고 그렇다고 ``워땨 똥쌰,,...? 할수도 없고 난감했다.
궁리끝에 중국인에게 에? 에? 하고 부르고는 소변보는 자세로 쉬~~~하니 그 중국인 박장대소를
하며 화장실을 알려주어 친구부인은 다급히 뛰어가 해결하고는 너무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다.
시간이 되어 가이드의 소집에 따라서 이번에는 홍구공원을 갔다.
홍구공원..여러분은 다 아시리라~ 우리 윤봉길의사의 그 유명한 도시락 폭탄사건,
이곳이 그역사의 현장이란 말인가..?
1932년 이곳에서 일본천황 탄생 기념식에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정부 주요요인을 암살했던 장소라니...
지금으로부터 약 80여년전의 역사의 현장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일행은 윤봉길의사 넔을 기리며 구석구석을 밟고 구경하며
혹시 윤봉길의사가 밟고 서있던 자리가
내가 서있는 이자리가 아닌가 하는 신비감에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공원은 남루했지만 컸고 윤봉길의사 사당이 모셔져 있기에
우리는 잠시 옛열사를 생각하며 묵념의 기도를 했다.
홍구공원 관광이 끝나고 임시정부였던 자리로 이동했는데 홍구공원에서 차로 10여분거리에 있었다.
임시 정부청사에 들어서니 작고 초라함이 느껴졌다.
비록 일제 식민지 체제하에 임시정부 청사라지만 이렇게 협소하다니...
2층건물이었는데 층당 건평 20여평에 불과했다.
다만 김구선생을 비롯하여 몇명을 인형으로 만들어 각자의 자리에 모셔 놓았는데
실제 김구선생과 마주 앉아 있는 착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세월은 엄청 흘렀지만 모든 가구며 집기들이
그시대의 유물들이 그대로여서 내가 타이머신을 타고 그시대에 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라 아직 윤봉길의사,김구선생에 대하여 배우지 않았기에
딸에게 역사에 대한 사실감이 떨어져서 딸에게 설명을해도 느낌이 없는듯 했다.
청사를 나와 호텔로 향했다. 시간이 일렀지만 저녁에 상해하면 빼놓을수 없는것이 서커스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호텔에 가서 체크인하고 식사후에 서커스를 보러가기로 했다.
당조호텔이라는데 34층의 건물에 28층의 방을 배정받고 들어갔는데 오! 세상에....
방 전망이 상해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었다.
처음 가이드의 상해는 해발 5미터 언덕이 없다는말 처럼 상해시내가 믿기지 않을만큼
모두 평야였으며 사방모두가 지평선끝이 바다의 수평선처럼 끝이 안보였다.
태어나서 지평선 끝이 없는것을 처음 목격하는 순간이라 하겠다.
그것도 한나라의 수도와 맞먹는 도시가 지평선끝이 안보이다니...
저녁식사를 하러갔는데 식사가 엉망이라는 표현이 맞을정도로 형편 없었다.
사실 이번여행 상품은 싼 상품이었기에 큰기대를 하지 않고 난 사발면,친구는 고추장을 많이
가져오기로 했는데 친구는 기대이하 작은량의 고추장을 가져와 남은 여행기간이 불안했다.
음식고통에 거의 울상이된 딸에게 사발면으로 대신하게 했고 난 대충 먹었지만 친구가족은
그런대로 잘먹는것에 놀랐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족만 유독 해외에 나오면 음식고생을 하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식사후 서커스를 보러갔는데 서커스장은 초만원이었다.
매일 하루에 2회 공연하는데 항상 이렇게 초만원이란다.
서커스가 시작되었는데 탄성이 절로 나올정도로 대단했다
어린시절 동네에 약장수겸 서커스가 자주 들어와서 몇번을 보았지만
어린시절 약장수 서커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서커스내내 탄성을 지르며 재미있게 보았는데
특히 애드벌룬크기,모양의 철망 지구본안에서 오토바이 1대로 시작된 전속력 질주가 차례로 늘어나더니
결국 5대가 그 지구본 안에서 전속력으로 질주하는데 아찔함이 들 정도였다.
그 좁은 지구본안에서 오토바이끼리 부딪치는 사고도 나지 않고 다람쥐 쳇바퀴돌듯 할수 있을까.
관객들이 환호성과 비명을 동시에 질렀는데 나 또한 어느새 동참에 있었고 딸 또한 그랬다.
1시간30분 동안의 공연 이었는데 시간을 망각한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로비로 나오니 서커스 광대들이 직접 나와서 지금까지의 공연을 CD로 제작하여
한개에 만원씩을 받고 싸인을 해주며 팔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CD를 사지 않은게 후회스럽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아침 일찍 딸과 산책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여느 해외여행때 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 딸을 깨워 산책을 나갔다.
호텔주변은 우리나라 청계천의 공구상가가 몰려있듯이
호텔주변이 그래서 특별한 것은 없고 딸과 많은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대화의 주제는 세계각국을 한국기준으로 거리와 경제순위에 대해 묻고 답하는 형식이었다.
딸은 초등학교 1학년때 처음 해외여행을 시작하여 이번 여행이 세번째인데 해외여행을 하기전에
다른 나라라고는 미국밖에 몰랐는데 이제는 세계나라의 이름을 거의 다 알정도로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졌고 이제는 경제순위까지 관심을 보여 세계를 바라보는 딸의 시각에 대응하려면
나 또한 세계사에 대해 더 한층 업그레이드 해야겠다.
호텔로 돌아와 식사후 가이드의 인솔로 소주로 향했다.
소주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 소주도시의 크기는 서울크기의 25배이며 운하의 도시란다.
소주에 도착하여 시내에 있는 한산사라는 절에 갔는데 오래된 고찰이라는 느낌뿐
절의 크다거나 하는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절을 나와 운하 체험을 갔다. 운하체험이란 배를 타고 운하를 항해하는 것인데
서울시내의 왕복 4차선정도의 폭을 인공으로 만든 강으로
양옆은 주로 일반 가정집이나 구멍가게들이었다.
예전에 중국영화를 보면서 이런 운하를 본적이 있는데 쉽게 설명해서 가정집 앞마당이 운하인 셈이다.
운하의 수질은 악취만 나지 않을뿐 최악이라고 말할 정도로 더러웠는데 의아한것은
양 옆집들의 아낙들은 그 물에서 빨래들을 했고 물이 더러워서
그런지 널어 놓은 빨래들은 한결같이
누렇게 변색이 되어 있었고 가이드에게 질문해보니 정말 수질로 인해 변색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나다니는 행인들의 옷을 보니 하나같이 지저분해 보였다.
옛날 중국의 수양제가 이곳 소주와 옆도시 항주에 운하를 많이 준설하여 발달된
운하로 무역업이 번성했다 한다 구체적인 운하수는 이곳 소주에만 300여개의 운하가 있었는데
요즘은 개발로 인해 그 수가 줄었다 한다.
운하 준설과 관련된 전설을 소개해 본다.
수양제가 운하를 준설할때 일꾼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며 끼니를 조금밖에 주지 않아
많은 일꾼들이 굶어죽어 일정기간마다 일꾼들을 추가로 투입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꾼이 굶어죽기는 커녕 살이 찌더란다.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운하를 팔때 꽃게들이 많이 나와 그걸 잡아먹고 살이 찐것을 알고는
수양제가 대노하여 그렇게 좋은것을 짐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먹었다며
그후 잡히는 꽃게는 진상품으로 올리고 이름은 수양제의 이름을 붙여 수양게로 불리우게 되었고
운하가 완공된 후 시찰을 하던중 축 늘어진 버들을 보고는 무슨 나무이기에 저리도 아름답느냐?
물으니 신하가 버들이옵니다. 하고 아뢰니 지금부터 내이름을 따서 수양버들이라 부르거라~ 하여
수양버들이라는 이름을 우리도 쓰게된 시초란다.
운하관광중 재래시장이 보이자 가이드는 일행을 재래시장으로 안내했다.
우리나라의 완전 5일장 분위기였고 시장은 컷지만 초라했다.
우리의 제과점처럼 시장통에서 빵을 만들고 구워 팔았는데 첫눈에도 비위생적이며
맛 또한 구미에 당기지 않을만큼 약간의 향과 맛이 없어 보였다.
친구가족에게 내가 사준다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절정의 손사래뿐이어서
그럴듯하게 생색만 내었다.
1시간여의 운하관광이 끝나고 항주로 이동했다.
소주에서 1시간 30분후 항주에 도착했는데 기온은 상해.소주.
이곳 항주나 한결같이 영상 15도여서 겨울외투가 필요없어 부담스럽기까지 했다.
옛날 중국 당나라의 시대에 수양제의 황궁이 있던 지역이 바로 이곳 항주란다.
항주의 크기가 서울의 30배 크기라는 말에 또 한번 놀랐고
이제는 가이드가 중국 도시를 설명할때 서울과
비교하는 자체에 경끼를 할것 같았다.
항주도착후 오산이라는 공원에 갔는데 우리의 파고다공원 같은 공원겸 유적지였다.
이곳 저곳을 관심있게 관광했지만 별 특별한 것은 없었고 패키지상품에 시간 떼우기식 코스같았다.
기념상품점을 지날때면 호객행위를 하기위해 한궈살람?(한국사람)한궈살람? 을
반복하며 끌여들이려 했지만 난 장난기로 그들에게 중궈살람? 중궈살람? 하며 되묻자
그들은 폭소로 답했고 그 폭소가 우리일행들에게
전염이 되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저녁이 되어 송성가무쇼를 관람하기로 하고 식사부터 하러갔다.
저녁식사는 먹을만 했다. 가이드가 제시한 옵션을 선택해주어 식사를 업그레이드 시켰는지
기본으로 한점씩 나오는 동파육과 추가로 지불하여 나온듯한 돈까스 비슷한음식,파전등
몇가지가 맛이 좋아서 딸도 오랜만에 배불리 먹는것 같았다.
중국여행 상품들을 보다보면 동파육이라는 메뉴가 자주 등장하는데 동파육은 소동파가 개발했다하며
우리의 장조림 비슷하지만 송편크기 하나만 달랑주어 큰 의미를 부여하기 좀 그랬다.
식사후 송성가무쇼를 관람하러 갔는데 옵션가격으로 1인당 40달러씩 지불했고 모르긴해도
가격에 70%는 가이드 몫인것 같았다.
쇼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중국에 있는 미녀들을 한데 모아 놓은듯한
많은 미녀들이 화려한 중국전통의 무대복을 입고 나와 춤을 추는데 남자들은 염불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는듯 웬 횡재냐 하는 표정으로입에 침을 흘릴 정도였다.
한바탕 춤판이 끝나고 1막 1장형식으로 1막당 15분정도씩 하는데
정말 굉장했고 40달러의 돈이 아깝지 않았다.
전체의 무대의 가로크기는 약 16미터정도이고 세로길이는 약 50미터에 육박하는
대형무대로 특이한 점은 무대 전체중 세로길이 무대의 반을 장막으로 막아서
1막을 공연을 할 동안 장막뒤에서 다음무대 세팅을 하고 1막이 끝나고
2막을 시작할때 그 장막을 걷게되면 무대 전체에 옛날 사극에서 보는
실제크기의 성을 셋팅해 놓고 그 성을 향해 고막이 찢여질 듯한
대포를 쏘고 그 대포로 인하여 성은 불타고 실제로 무대에 열명정도의 말을 탄
병사들이 난입하여 칼싸움을 하고 그 칼싸움에 주연배우가 죽고 그를 연모하던 여주인공이 나와서
죽은 장수를 끌어안고 슬피우는데 하늘도 슬피운다는 뜻으로 무대위에는
실제 소나기가 엄청 쏟아져서 생동감이 폭발했지만 관객에게는 빗물이 전혀 튀지 않았다.
관객은 환호했고 배우들은 신명난 극에 몰두하여 관객과 배우가 혼연일체가 되었다.
이렇듯 여러막의 연극이 펼쳐졌는데 번갈아 가며 1막은 무대를 반만쓰고 2막은 무대전체를 쓰는
형식이 반복되었으며 또 특이한 막은 장막을 걷으니 우리의 녹차밭같은 차밭이 셋팅이 되어있는데
정말 장황했고 그 차밭사이를 아가씨들이 바구니를 옆에 끼고 차잎을 따러 다니는 장면인데
아마도 내 식견으로는 어떤무대를 셋팅할때 레일위에 무대를 셋팅하고 레일로 끌어다
셋팅하는 레일 무대셋팅법 같았다.
그렇게 셋팅된 무대가 어설프거나 조잡하지 않고 실제 같았다.
하루에 매일 2차례씩 공연을 하고 예약 않고는 볼수없을 정도로
관객이 꽉꽉 들어 찬다고 하는데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런데 배우들은 그지역 성의 전속배우들로 삶을 충분히 보장 받을만큼 대우가 좋단다.
1시간20분의 공연동안 관객들은 다른생각을 일체 할수없을 만큼 호연을 했다.
만약 이글을 읽으시는 분이 항주에 갈일이 있다면 송성 가무쇼를 필히 관람하시길 권한다.
쇼가 끝났지만 진한 감동을 안고 호텔로 향했고 호텔에 돌아온 후
친구부부와 맥주잔을 기울이며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다음날.아침식사후 서호에 갔다. 서호란 인공호수라는데 크기가 엄청났고
대략 서울크기의 3배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배를타고 유람하는 것이다. 배에서 먹거나 마시거나
특별히 하는건 없고 한량이되어 주변경관을 보며 시조나 한수 읋으면 딱 좋을 격조 높은 분위기다.
우리 유람선 옆으로 노젓는 작은배들이 지나가는데 한결같이 사공이 뒤돌아 앉아 노늘 저어
가이드에게 질문하니 옛날 당나라 수양제가 왕비,후궁,상궁들과 뱃놀이를 즐겼고
그럴때면 사공이 아름다운 왕비,후궁,상궁들 미모에 반해서 그들을 쳐다보다 정신이 팔려
배가 엉뚱한 곳으로 가곤했는데 이에 진노한 수양제가 감히 네놈 주제에 누굴 넘보느냐고
호통을 친후 이놈아 돌아앉아 노를 저어라~
하여 그후 배를 만들때 뒤돌아 앉아 노를 젓게끔 제작했다 한다.
서호관광후 다시 상해로 되돌아 왔다.
상해에 도착하니 저녁 7시정도로 곧바로 황포강 유람선을 타러갔다.
배를타러 200미터 정도 걸어가는데 길거리의 보따리 장삿꾼들이 호객행위가 심해 걷기조차 힘들었고
열쇠고리,적외선 후레쉬 동방명주탑 모형, 기념품등을 사라고 아우성이었는데 정작 살만한 건 없었다.
우리 한강유람선으로 생각하면 딱 맞는것으로 아마도 중국도 한걍유람선을 모방하여 황포강
유람선을 띄운듯 했다.
황포강은 우리 한강보다 폭이 살짝 넓은듯 했고 강변야경은 한강보다 한수 높아 보였다.
동방명주라는 탑으로 된 건물은 특이한 모양으로 상해를 상징하는것 같았는데
높이는 우리의 63빌딩 높이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가이드의 설명이 동방명주탑 맨 꼭대기 바로밑 층에 7성급 호텔이 오픈하여
그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식사하는 것이 상해 주요부자나 관광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란다.
그 호텔에서 보는 상해야경이 아마도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힐 정도로
최고의 야경이라는 설명에 듣는이 눈의촛점을 잃게했고
가이드의 설명에 평소 레스토랑을 동경하던
딸은 아빠 우리 저 호텔의 레스토랑에가서 비프스테이크 먹자.했다.
강변야경에 주변에서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는 불꽃놀이를 방불케 했고
우리도 그 불꽃놀이에 동참했다.
1시간30분의 유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오늘은 이번여행의 마지막날이다.
특별한 일정은 별로 없고 여행사 패키지의 관광상품점들을 가는날이란다.
라텍스,차 전문점,진주 상품점등을 다녔지만 여러번 다닌 경험으로 살 물건은 없었다.
일행중 누군가가 북한식당을 가자고 제의하여 3년전 연변에 갔을때
너무 맛있게 먹은 기억에 흔쾌히 동의하고 북한식당에 갔다.
북한식당도 세계 여러곳에 체인점이 있는데 그 브랜드가
한개의 브랜드가 아니라 2~3개의 브랜드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이번식당은 3년전에 같던 연길의 브랜드와 달라서인지
맛이 별로여서 괜히 비싼돈만 내고 먹은것 같아 실망했다.
이번 여행의 모든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고 가이드가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고
우리는 비행기시간만 기다리기를 1시간이 지났을무렵,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중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방송되는데 많은사람들이 웅성웅성 대는것이 분위기가 심창치 않았다.
우리일행 11명중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 못알아 듣는데 그중 한사람이 알아듣고는 설명해주길,
현재 한국 김포공항에 안개가 심하여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고 그러니 공항에서 나갔다가
내일 아침 9시40분 비행기에 탑승하란다. 황당했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보니 한국의 하나투어 여행사였다.
통화요지는 가이드가 우리를 다시 데려가서 호텔에 투숙시켜 줄것이고
마음편히 하루 더 쉬라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소요되는 모든비용은 하나투어에서 지불하는 것이니 걱정 말라는 말에 안심이 되었는데
문제는 화물로 부쳤던 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데 짐 찾는데만 2시간여가 소요된다고 했다.
우여곡절끝에 짐을 다시 회수하여 로비로 나오니 가이드가 와있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본의 아니게 하루를 더 묵는 특별한 해외여행이 되어 호텔에 도착하여 간단한 짐만 풀고
친구내외와 마지막 중국의 밤을 맥주잔으로 추억을 새기고
다음날 아침일찍 다시 가이드의 출국수속에 상해를 떠나왔다.
이번여행으로 얻은 경험은 천재지변으로 비행기가 결항되는 경우는
여행사에서 모든경비를 지불한다는
것을알게된 소중한 경험을 했고 앞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을때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대처할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