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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익산향토문화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이귀희
제 120차 향토문화연구회 답사
경북영덕, 울진답사 둘째 날 어젯밤 칠 흙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즐겼던 우리들은 이른 아침부터 비몽사몽. 하나, 둘 눈을 부비며 모래사장에 모여든다. 모든 피곤함을 뒤로하고 동해에 왔으니 일출은 보아야한다며, 회원들은 수평 끝만 응시한다. 그러나 기대처럼 맑은 하늘에 '뿅' 하고 나타날줄 알았던 해가 나타나지 않고 얄궂은 구름이 살짝 가려주며, 우리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부지런한 고깃배는 무심히 지나고 갈매기는 먹이를 찾아 나르고 있던 중 5시 30분 ‘와’하는 소리와 동시 맑은 구름사이로 삐죽이 환한 얼굴을 보여준다. 정말 멋지다. 우리 회원들 모두 만족해하며, 행복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임홍락선생님의 친구분(정철선생님, 울진 왕수학 학원을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마련해준 숙소를 뒤로하고
8시 조식을 위해 식당으로 출발 약5분 거리에 자리한 식당에는 오징어 물회(10,000)가 준비되어 있어 칼칼한 입안을 시원하고 상큼한 아침식사로 마치고, 10시 둘째 날의 일정을 따라 정철이 머문 월송정과 망양정, 성류굴, 불영계곡과 불영사로 출발한다. 우린 불영사에서 점심을 마치고 익산으로 출발할 예정으로 답사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해설은 이택희회장님(남성고)과 임홍락선생님(익산고)께서 해주신다.
월송정[越松亭]
우린 이곳에 9시 20분에 도착, 소나무 숲이 울창한 월송정을 걸어 올라본다.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절경, 경북 울진군 평해읍(平海邑) 월송리(月松里)에 있는 정자로. 신라시대의 화랑들(永 ·述 ·南石 ·安祥)이 이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하였다는정자이다. 관동8경(關東八景)의 하나로, ‘月松亭’이라고도 쓴다. 명승을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시대에 이미 월송사(月松寺) 부근에 창건되었던 것을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혹은, 그가 창건하였다고도 함)하였다고 하며, 오랜 세월에 퇴락한 것을 향인(鄕人)들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해버렸다. 1969년에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같지 않아서 해체하고 1980년 7월에 현재의 정자(정면 5칸, 측면 3칸, 26평)로 복원하였으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의 휘호로 되어 있다. 관동8경을 꼽을 경우, 월송정 대신 강원 통천군 흡곡(歙 谷)에 있는 시중대(侍中臺)를 꼽는 이도 있다.
월송정에서 내려 본 동해바다는 비취빛의 반짝이는 보석같다.
망양정[望洋亭]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번지에 있는 정자(亭子)로 관동팔경(關東八景)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월송정에서 출발 10시 30분 도착, 이곳 또한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절경이다. 이번 답사의 해설은 회장님께서 모두 하셨고, 보충설명은 임홍락선생님께서 해주셨다. .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의 정자며, 고려시대에 경북 울주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으로 이전하였으며, 다시 1858년(철종 9)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와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하였으나 다시 퇴락하여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하였다. 망양해수욕장 남쪽의 바닷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동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였다. 또 정철(鄭澈)은〈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고, 숙종과 정조는 어제시(御製詩)를 지었으며, 정선(鄭敾)은《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으로 화폭에 담는 등 많은 문인·화가들의 예술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우린 11시 5분 다시 석류굴로 향한다
울진성류굴[蔚珍聖留窟] 천연기념물 제155호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구산리(九山里)에 있는 동굴로. 1963년 5월 7일 지정되었다. 우린 11시 10분에 도착 약1시간을 소요하여 동굴답사를 했다. 탱천굴(撑天窟)· 선유굴(仙遊窟)이라고도 한다. 주굴 길이 약 470m, 전체 길이 약 800m이다. 입구는 선유산(仙遊山) 절벽 밑, 왕피천(王避川)가에 있는 좁은 동굴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동굴의 하나로, 고려 말의 학자 이곡(李穀)이 성류굴에 대하여 언급한 《관동유기(關東遊記)》는 한국 최초의 동굴탐사기가 되는 셈이다. 이곳에는 최대깊이가 8m에 이르는 ‘마(魔)의 심연(深淵)’이라는 큰 동굴호가 있는데 주위 벽면에 발달한 큰 규모의 종유석들이 수면에 잠기는 절경을 보인다. 만물상(萬物相)·운상대(雲上臺)· 여의동(如意洞)·음향동(音響洞) 등등, 동굴 안의 온도는 연중 15∼17℃로 거의 변함이 없다. 한국의 석회암동굴 중 최남단에 위치한다는 지형학적 측면에서도 주목되는 동굴이다. 그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관광동굴로 개발된 이후에는 그 훼손도가 매우 심각하다. ♣ 우리에게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천연기념물 제177호 천호동굴이 있으나 이러한 훼손을 막기 위해 지금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를 금지하고 있다.
불영계곡[佛影溪谷] 명승 제6호 경북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杏谷里)에서 서면 하원리(下院里) 불영사에 이르는 계곡. 총길이 15㎞에 이르는 장대한 계곡으로 이어진다. 1979년 12월 명승 제6호, 1983년 10월 군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왕피천(王避川)의 지류인 광천(光川) 이 심한 감입곡류를 하면서 생긴 계곡이다.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깊은 계곡과 푸른 물줄기가 어우러진 창옥벽(蒼玉壁)· 의상대(義湘臺)·산태극(山太極)·수태극(水太極)· 명경대(明鏡臺) 등 30여 개의 명소가 있다. 신라 진덕여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한 불영사가 있어 불영사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여름에는 계곡 피서지로 알맞고 봄·가을에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겨울에는 설경이 빼어나다. 불영사에는 크고 작은 12동의 가람(伽藍)과 대웅보전(보물 1201), 부도(경북문화재자료 162), 삼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135) 등 문화재가 많다. 또 주변 일대에는 천연기념물 96호로 지정된 굴참나무 숲이 우거진다.
불영사[佛影寺]
경북 울진군(蔚珍郡) 서면(西面) 하원리(下院里). 불영계곡을 굽이굽이 돌아 중간에 정자에도 올라 계곡도 감상하며, 12시 40분에 이곳에 도착했다. 우리의 일정을 생각해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불영사로 향한다. 천축산(天竺山)에 있는 절로 주차장에서 내려 약1.5Km 남짓 굽이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울창한 숲과 옥수가 흐르는 계곡을 연이어 걸어 내려가다 구룡교를 건너면 ‘단하동천(丹霞洞天)’이라 씌어 있는 바위가 있고, 개울가에는 비룡암과 비조암이 있으며, 좀 더 걷다보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굴참나무가 있는데 한눈에 약5m는 넘을듯하다. 예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이제는 수명을 다해 기진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에 배롱꽃과 옥잠화, 이름 모를 야생화가 곱게 피어 있는 불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며, 651년(진덕왕 5)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부근의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므로 천축산이라 하고, 전면의 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 용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서편에 부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있어 그 그림자가 항상 못에 비치므로 불영사(佛影寺)라 불렀다고 한다. 1397년(태조 6)에 화재로 타버린 것을 소운(小雲)이 중건하였는데, 그 후 다시 소실되어 1500년(연산군 6) 양성법사(養性法師)가 중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병화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응진전(應眞殿)만은 피해를 면했다고 한다. 그 후 1609년(광해군 1) 진성법사(眞性法師)가 재건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들의 손으로 중수가 거듭되었다.
불영사대웅보전(佛影寺大雄寶殿) 보물 제1201호 불영사 삼층석탑[佛影寺三層石塔] 경북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영산회상도(佛影寺靈山會上圖) 보물 제1272호 이택희회장님의 해설을 듣고있는 회원들 불영사 응진전[佛影寺應眞殿] 보물 제730호
불영사대웅보전(佛影寺大雄寶殿) 보물 제1201호 불영사영산회상도(佛影寺靈山會上圖) 보물 제1272호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원년(1725)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불영사 응진전[佛影寺應眞殿] 보물 제730호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만발한 응진전, 1981년 7월 15일 보물 제730호로 지정되었으며, . . 자연석을 쌓은 기단 위에 자연초석을 놓고, 그 위에 오금을 많이 둔 기둥을 세웠고,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 홑처마의 다포양식으로 내외삼출목 오포작(內外三出目五包作) 건물이다. 조선 중기의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흔치 않은 특이하고 소박한 양식을 지니고 있는데, 남아 있는 내부의 단청(丹靑)에서도 조선 중기의 수법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당우로는 대웅보전·근락전·응진전·명부전·조사전·칠성각·관음전· 영산전(靈山殿)·황화당(黃華堂)·설선당(說禪堂)·범종루·응향각(凝香閣)· 칠령각(七靈閣) 등이 있으며, 창건 당시의 유적인 무영탑(無影塔)과 돌거북 2기가 있고, 불영사부도[佛影寺浮屠] 경북문화재자료 제162호가 있다.
우린 이것으로 1박 2일의 답사를 끝낸 뒤 1시 20분 늦은 점심으로 그곳의 산채비빔밥 식사를 하였다. 맛있는 식사는 그동안 수고를 많이 하신 회장님께서 무탈하게 답사를 잘 마무리하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사주셨다. 2시 익산으로 향해 출발하며, 마침 15대 고 김대중대통령의 장례식방송이 있어 오는 내내 시청하며, 그분을 위한 묵념을 드렸다. 7시에 익산에 안전하게 도착, 시내 칼국수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나누고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하신 회장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회원님들 매일매일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시고, 다음 답사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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