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바람 이슬 그리고 인간의 정성을 물들인다 |
키 큰 감나무에 붉은 색 감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언제봐도 인심좋고 넉넉한 우리네 시골풍경이다. 오래전 제주사람들도 집집마다 감나무를 꼭 심었다. 애기구덕이며 차롱이며 대나무가 다용도 생활도구를 만드는데 소용됐다면, 감나무는 식용이 아닌 오로지 옷을 물들이기 위한 재료로 쓰여졌다. 풋감으로 물들인 갈옷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밭이나 바다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노동복을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재료로서 오늘날로 치자면 제주의 천연염색을 대표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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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옷은 감물을 입힌 제주의 전통 노동복이다. 7~8월 토종 풋감이 여물어 가는 시기에 떫은 감즙을 짜내어 염색한 것으로 감즙에 들어있는 탄닌(Tannin) 성분이 큰 역할을 한다. 갈옷은 몸에 달라붙지 않아 노동복으로 적합하고 입다보면 처음보다 부드러워진다. 통기성이 좋아 여름철엔 그 진가가 발휘되며, 천연염색이라 사람몸에도 이롭다. 자외선 차단효과가 뛰어나 뙤약볕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피부를 보호해 주고 비를 맞거나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다. 무엇보다 따로 풀칠을 하지 않았는데 빳빳함이 오래 가고 때가 타지 않는다는다. 하루종일 밭이며 바다에서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흰 옷이 웬말이며 세탁할 시간이 있기나 하던가. 제주인이면 누구나 입었던 갈옷은 바지인 갈중의, 저고리인 갈적삼, 여자들의 작업복 갈몸빼 등이 주된 복장이었다. 현재는 치마, 저고리는 물론 아동복, 원피스, 남방, 침대커버, 가방, 액세서리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현대적으로 탈바꿈해 많은 이들이 평상복으로, 선물로 구입하는 등 꽤 유명세를 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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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감의 즙이 가장 많은 때는 7, 8월이다. 그 중 8월초부터 열흘동안에 걸쳐 풋감을 채취하는 것이 좋다. 풋감의 씨를 먹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데, 인절미처럼 투명한 빛깔과 쫀득쫀득하니 말랑말랑한 그 맛이 나와야 하기 때문.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니 어렵고 못살던 그 시절 풋감 씨앗은 아이들의 과자대용으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풋감을 으깨는 어머니 곁에 바싹 붙어 앉아 낼름낼름 씨앗을 골라먹는 아이들. 지금의 그 어떤 과자보다 맛있는 간식거리가 아니었을까. 씨앗이 말랑말랑한 것과 비례해 과육의 떫은 맛은 더욱 강하다. 떫은 맛이 강해야만 갈옷이 제대로 된다고 하니 풋감 따는 시기는 정말 중요하다. 제주의 풋감은 다 자라도 직경 3, 4c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다소 검은 녹색을 띤다. 육지에서는 이런 종류의 풋감이 자라지 않는다니 환경의 이유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육지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인데, 감나무 조차도 제주의 강렬한 햇볕과 해수에 적응해 버린 모양이다. 육지 감을 가지고 갈옷을 만들었더니 제대로 된 갈옷이 나오지 않는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필연적으로 갈옷은 제주에서만 생산이 가능한 가장 제주적인 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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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물을 들이는 천은 광목이나 삼베 또는 집에서 입다가 낡은 옷을 사용한다. 물을 들이는 옷이나 옷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중의와 적삼 등 옷 한 벌을 만드는데 풋감 2되 정도가 소요된다. 과거엔 모든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져 2되였지면 지금은 기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감즙이 많이 나와 1되반이면 충분하다. 수작업일 경우, 옷 한 벌 분량의 풋감을 빻는데 두 시간은 너끈히 들어간다고 하니 사전작업에 상당한 공력이 들어간다. 풋감이 준비되면 즙을 내기 위해 으깨어야 한다. 양이 많고 도와 줄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절구에 찧지만 그렇지 안을 경우에는 도고리에 넣고 막개로 때려 으깬다. 도고리는 제주말로서 돌로 된 널찍한 그릇이다. 여기서 풋감을 빻아 천을 물들여야 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대야 정도 크기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막개는 두드리는 도구란 뜻의 제주말. “?이 촐촐, 눈물이 촐촐 막 나오고 날은 확확 더웡 죽어지는디 소리가 어디로 나와. 노래부를 정신 어서. 확 뽀스고 물들이곡 해그네 밭디 검질 매래 가사주 오늘 이것만 헐거라” 재연행사에 나선 한 아주머니께 노동요 한 곡 부탁했다가 구성진 사투리 핀잔만 한 바가지 되받았다. 충분히 으깨어지면 옷이나 천을 넣어 으깬 풋감을 힘껏 버무린다. 마치 빨래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이지 눈처럼 하얀 거품이 천을 적시고도 남을 정도로 폴폴 생겨난다. 전후과정을 보지 못했다면 진짜 빨래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정도. 거품이 나도록 꼭 짜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섬유 속속들이 감즙이 배어들어야 갈옷의 색깔이 제대로 나오기 때문. 충분히 감즙이 먹으면 푸르스름한 기가 천에서 묻어난다. 처음부터 황토색 빛깔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이때 붙은 감 부스러기를 완전히 털어 내고 햇볕에 널어 말린다. 널때도 천 양끝을 두 사람이 잡아쥐고 구김이 가지 않도록 힘껏 ‘탁탁’소리가 나도록 잡아당기고 털고 한 후 잔디밭에 펼쳐 넌다. 눈이 시릴 듯 푸르디 푸른 하늘과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는 초록의 잔디 그 위에 펼쳐진 갈천의 조화. ‘ ‘아! 사람이 아무리 기를 써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를 따라잡을 수 없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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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들은 말한다. “갈옷은 태양과 바람과 이슬이 만들어 주는 것이지 사람들의 노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다”라고. 천연염료와 천연섬유 여기에 자연과 사람의 정성이 깃들어야만 갈옷은 탄생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중간과정이 있다. 첫날 널어둔 광목이 빳빳하게 마르기 전에 손보기를 해줘야 한다. 천을 걷어다 두 사람이 양쪽 끝을 팽팽하게 잡고 쫙 펴주고 잡아 댕기고 하면서 구김을 없앤후 꼭꼭 발로 밟아준다. 천이 완전히 말라버리면 완성후 다림질로 구김을 정리해도 완벽하게 펴지지 않는단다. 다음날 부턴 바래기 과정을 되풀이 한다. 한낮 쯤, 천을 걷어다 물에 적셔 다시 널어 주는 행위를 ‘바랜다’고 하는데 바래기 과정의 중요성 때문에 장마때는 물들이기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틀이 지나면 연한 갈색이 보이기 시작하고 4일쯤 고운 황토색의 갈옷이 된다. 보통 7, 8일 정도 바래기 과정을 거치는데 최근엔 자신이 원하는 색상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바래기를 끝낸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갈옷은 세탁해 입을 수록 색상이 더욱 짙어지기 때문에 원하는 색깔보다 한 단계 낮은 상태에서 작업을 중단해야 낭패를 면한다. 세탁시 주의점도 있다. 세탁기 세제로 옷을 빨면 갈옷 색깔이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하게 변한다는 것. 단 다른 옷과 섞이거나 표백제를 넣어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니 그점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과거 갈옷은 실용적인 면에선 돋보이는 옷이었으나 천한 노동복이란 인식이 강해 시장에 나갈 때 조차 갈옷은 입지 않았다고 한다. 또 황토로 물들인 옷감이 따뜻한 성질이 옷이라면 갈옷은 차가은 성질있어 겨울철에는 입지 않았다. 천이 귀해 천 자체를 염색하기 보다는 낡고 낡은 옷을 재활용하는 차원에서 물들여 입었다. 제주에선 뭐든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아끼고 아낄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 의복이 최근에 들어선 천연염색이다 웰빙이다 하는 바람을 타고 귀히 입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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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보스제주 www.bobosjeju.com] 글 강은정기자 / 사진 한정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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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주 갈옷 한벌 꼭 입어보고 싶어요^^& 거시기 가격이 좀 부담이 된다는~~육지에서...
제가 알기로는 저렴한 것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도 제주 갈옷 입어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