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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秦皇逐客書
李斯
臣聞吏議逐客이라하니 竊以爲過矣라하노이다 昔者에 繆公은 求士하여 西取由余於戎하고 東得百里奚於宛하고 迎蹇叔於宋하고 來邳豹公孫支於晉하니 此五子者는 不産於秦이로되 而繆公用之하여 幷國二十하여 遂霸西戎하니이다
孝公은 用商鞅之法하여 移風易俗하여 民以殷盛하고 國以富强하며 百姓樂用하고 諸侯親服하며 獲楚魏之師하고 擧地千里하여 至今治强하니이다 惠王은 用張儀之計하여 拔三川之地하고 西幷巴蜀하고 北收上郡하고 南取漢中하며 包九夷하고 制鄢郢하며 東據成皐之險하고 割膏腴之壤하여 遂散六國之從하여 使之西面事秦하여 功施(이)到今하니이다 昭王은 得范睢(수)하여 廢穰侯 逐華陽하여 彊公室 杜私門하며 蠶食諸侯하여 使秦成帝業하시니 此四君者는 皆以客之功하니 由此觀之컨대 客何負於秦哉잇가 向使四君이 郤客而不內(納)하고 踈士而不用이런들 是는 使國無富利之實이요 而秦無彊大之名也리이다
今陛下致昆山之玉하고 有隨和之寶하고 垂明月之珠하고 服太阿之劍하고 乘纖離之馬하고 建翠鳳之旗하고 樹靈鼉之鼓하시니 此數寶者는 秦不生一焉이어늘 而陛下說(열)之는 何也잇고 必秦國之所生然後可인댄 則是는 夜光之璧이 不飾朝廷이요 犀象之器 不爲玩好요 鄭衛之女 不充後宮이요 而駿良駃騠가 不實外廐요 江南金錫이 不爲用이요 西蜀丹靑이 不爲采며 所以飾後宮 充下陳하고 娛心意 說耳目者가 必出於秦然後可인댄 則是는 宛珠之簪과 傅璣之珥와 阿縞之衣와 錦繡之飾이 不進於前이요 而隨俗雅化하여 佳冶窈窕趙女가 不立於側也리이다
夫擊甕叩缶하고 彈箏搏髀而歌呼嗚嗚하여 快耳目者는 眞秦之聲也요 鄭衛桑間 昭虞象武者는 異國之樂(악)也니이다 今棄擊甕叩缶而就鄭衛하며 退彈箏而取昭虞하니 若是者는 何也오 快意當前하여 適觀而已矣니이다 今取人則不然하여 不問可否하며 不論曲直하고 非秦者去하며 爲客者逐하니 然則是所重者는 在乎色樂珠玉이요 而所輕者는 在乎人民也니 此非所以跨海內 制諸侯之術也니이다
臣聞 地廣者粟多하고 國大者人衆하고 兵强則士勇이라하니 是以로 泰山은 不辭土壤이라 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는 不擇細流라 故로 能就其深하고 王者는 不卻衆庶라 故로 能明其德이니이다 是以로 地無四方하고 民無異國하여 四時充美하고 鬼神降福하나니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니이다 今乃棄黔首以資敵國하고 卻賓客以業諸侯하여 使天下之士로 退而不敢西向하여 裹足不入秦하니 此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夫物不産於秦이로되 可寶者多하고 士不産於秦이로되 願忠者衆이어늘 今逐客以資敵國하고 損民以益讐하여 內自虛而外樹怨於諸侯하니 求國無危라도 不可得也리이다
사기열전 - 이사 열전(李斯列傳)
李斯者(이사자)
楚上蔡人也(초상채인야) 年少時(년소시)
爲郡小吏(위군소리)
見吏舍廁中鼠食不絜(견리사측중서식불혈)
近人犬(근인견) 數驚恐之(수경공지)
이사(李斯)는 초(楚)나라 상채(上蔡) 사람이다.
그는 젊었을 때 지방 관현의 하급관리로 있었다.
하루는 관청 변소에서 오물을 먹는 쥐를 보게 되었다.
사람 발자국 소리가 나거나 개 짖는 소리가 나면
쥐는 안절부절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斯入倉(사입창) 觀倉中鼠(관창중서)
食積粟(식적속) 居大廡之下(거대무지하)
不見人犬之憂(불견인견지우) 於是李斯乃歎曰(어시이사내탄왈)
人之賢不肖譬如鼠矣(인지현불초비여서의)
在所自處耳(재소자처이)
또 하루는 곡물창고에서 곡식을 훔쳐 먹는 쥐를 보게 되었다.
넓은 창고 안에 사는 그 쥐는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그 순간 이사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아,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이 쥐와 같구나.
인생은 자신이 처한 곳에 달려있을 뿐이다.”
乃從荀卿學帝王之術(내종순경학제왕지술) 學已成(학이성)
度楚王不足事(도초왕불족사) 而六國皆弱(이육국개약)
無可爲建功者(무가위건공자) 欲西入秦(욕서입진)
이후 순경(荀卿 순자)에게서 제왕의 통치술을 배워 유세에 나섰다.
초나라 왕은 섬길만한 인물이 못되며,
다른 여섯 나라들은 약소하여 공을 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서쪽의 대국 진나라로 떠났다.
辭於荀卿(사어순경) 曰斯聞得時無怠(왈사문득시무태)
今萬乘方爭時(금만승방쟁시) 游者主事(유자주사)
今秦王欲呑天下(금진왕욕탄천하) 稱帝而治(칭제이치)
此布衣馳騖之時(차포의치무지시) 而游說者之秋也(이유설자지추야)
處卑賤之位(처비천지위) 而計不爲者(이계불위자)
此禽鹿視肉(차금록시육) 人面而能彊行者耳(인면이능강행자이)
故詬莫大於卑賤(고후막대어비천) 而悲莫甚於窮困(이비막심어궁곤)
久處卑賤之位(구처비천지위) 困苦之地(곤고지지)
非世而惡利(비세이악리)自託於無爲(자탁어무위)
此非士之情也(차비사지정야)
故斯將西說秦王矣(고사장서설진왕의)
순경에게 다음과 같이 하직 인사를 올렸다.
“때를 얻으면 놓치지 말라고 들었습니다.
지금 진나라가 천하를 점령해 황제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세하는 자로서 다시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비천한 자가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새나 짐승이 먹이를 보고도 사람이 있어서 억지로 참는 꼴입니다.
그러니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비천하면 세상을 비관하고 핑계를 대며 자신의 진심조차 알 수 없습니다.
이에 저는 출세를 위해 진나라로 가서 유세하려 합니다.”
至秦(지진) 會莊襄王卒(회장양왕졸) :
李斯乃求爲秦相文信侯呂不韋舍人(이사내구위진상문신후여불위사인)
不韋賢之(불위현지) 任以爲郞(임이위랑)
李斯因以得說(이사인이득설) 說秦王曰胥人者(설진왕왈서인자)
진나라에 도착하니 마침 장양왕이 죽었다.
이사는 재상 여불위(呂不韋)의 가신으로 들어갔다.
여불위는 이사를 현명하게 여겨 시위관(侍衛官)에 임명했다.
이로 인해 왕을 만날 기회를 얻어 자신의 견해를 유세할 수 있었다.
去其幾也(거기기야) 成大功者(성대공자)
在因瑕釁而遂忍之(재인하흔이수인지) 昔者秦穆公之霸(석자진목공지패) :
終不東幷六國者(종불동병육국자) 何也(하야)
諸侯尙衆(제후상중) 周德未衰(주덕미쇠)
故五伯迭興(고오백질흥) 更尊周室(갱존주실)
自秦孝公以來(자진효공이래) 周室卑微(주실비미)
諸侯相兼(제후상겸) 關東爲六國(관동위육국)
秦之乘勝役諸侯(진지승승역제후) 蓋六世矣(개육세의)
今諸侯服秦(금제후복진) 譬若郡縣(비약군현)
夫以秦之彊(부이진지강) 大王之賢(대왕지현)
由竈上騷除(유조상소제) 足以滅諸侯(족이멸제후)
成帝業(성제업) 爲天下一統(위천하일통)
此萬世之一時也(차만세지일시야) 今怠而不急就(금태이불급취)
諸侯復彊(제후복강) 相聚約從(상취약종)
雖有黃帝之賢(수유황제지현) 不能幷也(불능병야)
“뜻이 없는 자는 찾아온 기회도 놓치지만,
큰 뜻이 있는 자는 없는 기회도 만들어 얻습니다.
옛날 진나라 목공(穆公)이 천하의 패권자였음에도
동쪽 여섯 나라를 끝까지 함락시키지 못한 것은 무슨 이유겠습니까?
쇠퇴해가는 주나라 왕실을 제후들이 번갈아 받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효공(孝公) 이래로 제후들을 통제하여 온 것이
벌써 여섯 대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만 년 만에 찾아오는 기회인 것입니다.
지금 게을리 하시면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니,
대왕께서는 속히 서둘러 주십시오.”
秦王乃拜斯爲長史(진왕내배사위장사) 聽其計(청기계) :
陰遣謀士齎持金玉(음견모사재지금옥)以游說諸侯(이유설제후)
진나라 왕은 타당하다고 받아들여
이사를 장사(長史 궁궐 사무 처리의 요직)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계책을 추진하도록 하였다.
諸侯名士可下以財者(제후명사가하이재자) 厚遺結之(후유결지)
不肯者(불긍자) 利劍刺之(리검자지)
離其君臣之計(리기군신지계) 秦王乃使其良將隨其後(진왕내사기량장수기후)
秦王拜斯爲客卿(진왕배사위객경)
다른 제후국의 대신 가운데 뇌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들에게는
사람을 파견하여 후하게 뇌물을 주고 결탁하였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지체 없이 칼로 죽였다.
또한 첩자를 파견하여 왕과 신하 사이를 이간질 시켜놓고
이어 용맹한 장군을 보내 치게 하였다.
이 계략은 많은 성과를 걷어
진나라 왕은 이사를 객경(客卿)으로 삼았다.
會韓人鄭國來閒秦(회한인정국래한진) 以作注漑渠(이작주개거)
已而覺(이이각) 秦宗室大臣皆言秦王(진종실대신개언진왕)
曰諸侯人來事秦者(왈제후인래사진자)
大抵爲其主游閒於秦耳(대저위기주유한어진이)
請一切逐客(청일절축객) 李斯議亦在逐中(이사의역재축중)
斯乃上書曰(사내상서왈)
그 무렵, 한(韓)나라에서 온 정국(鄭國)이라는 자가
논밭에 물을 대려고 운하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은 진나라를 교란시키는 술수로 밝혀져
왕족과 대신들이 들고 일어나 왕께 아뢰었다.
“진나라를 섬기러 왔다는 대부분의 유세객들은
실상 진나라를 이간질하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모든 빈객들을 축출해주시옵소서!”
여기에 이사 역시 축출 대상에 올랐다.
이에 이사가 상서를 올렸다.
臣聞吏議逐客(신문리의축객) 竊以爲過矣(절이위과의)
昔繆公求士(석무공구사) 西取由余於戎(서취유여어융)
東得百里奚於宛(동득백리해어완) 迎蹇叔於宋(영건숙어송) :
來丕豹公孫支於晉(래비표공손지어진) 此五子者(차오자자)
不産於秦(불산어진) 而繆公用之(이무공용지)
幷國二十(병국이십) 遂霸西戎(수패서융)
“지금 조정에서 빈객들을 축출하자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목공께서 인재를 구하고자
서쪽 융(戎)에서 유여(由余)를 데려오고,
동쪽 완(宛)에서 백리해(百里奚)를 얻었으며,
송(宋)나라에서 건숙(蹇叔)을 맞이했고,
진(晉)나라에서 비표(丕豹)와 공손지(公孫支)를 불러들였습니다.
이들은 진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목공께서 등용하여 20여 나라를 통합하고
마침내 서융을 제패하는 큰일을 이루었습니다.
孝公用商鞅之法(효공용상앙지법) 移風易俗(이풍역속)
民以殷盛(민이은성) 國以富彊(국이부강)
百姓樂用(백성락용) 諸侯親服(제후친복)
獲楚魏之師(획초위지사) 擧地千里(거지천리)
至今治彊(지금치강)
효공께서는 상앙(商鞅)의 변법을 채용해 나쁜 풍속을 개선했고,
이로 인해 백성들이 풍족해졌고 나라가 부강해졌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기꺼이 부역을 담당하고 제후들은 몸소 복종하였습니다.
이어 초나라 위나라를 제압하여 천리 영토를 얻어
지금까지 강대국으로서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惠王用張儀之計(혜왕용장의지계) 拔三川之地(발삼천지지)
西幷巴蜀(서병파촉) 北收上郡(북수상군)
南取漢中(남취한중) 包九夷(포구이)
制鄢郢(제언영) 東據成皐之險(동거성고지험)
割膏腴之壤(할고유지양) 遂散六國之從(수산육국지종)
使之西面事秦(사지서면사진) 功施到今(공시도금)
혜왕(惠王)께서는 장의(張儀)의 계략을 채용해
삼천의 땅을 빼앗고,
파와 촉을 통합하고,
상군을 얻고,
한중을 점령했으며,
성고의 비옥한 땅을 할양받아
마침내 제후들의 합종책을 깨뜨려 모두 진나라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 공로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昭王得范睢(소왕득범수) 廢穰侯(폐양후)
逐華陽(축화양) 彊公室(강공실)
杜私門(두사문) 蠶食諸侯(잠식제후)
使秦成帝業(사진성제업)
소왕(昭王)께서는 범수를 얻어서 양후를 폐위시키고,
화양군을 축출하여 왕실을 강화시켰습니다.
대신들이 강해지는 것을 막고,
제후들을 눌러 황제의 대업을 이루도록 만들었습니다.
此四君者(차사군자) 皆以客之功(개이객지공)
由此觀之(유차관지) 客何負於秦哉(객하부어진재)
向使四君卻客而不內(향사사군각객이불내) :
疏士而不用(소사이불용) 是使國無富利之實(시사국무부리지실)
而秦無彊大之名也(이진무강대지명야)
이 네 임금들은 모두 빈객들을 등용시켜 공로를 세우게 한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건대
빈객들이 왜 진나라를 이간질한다고 여기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재를 멀리하고 등용하지 않는다면
나라의 부귀와 이익을 누가 가져올 것이며
진나라의 지금의 강대국 명성을 언제까지 얻을 수 있겠습니까?
今陛下致昆山之玉(금폐하치곤산지옥) 有隨和之寶(유수화지보)
垂明月之珠(수명월지주) 服太阿之劍(복태아지검)
乘纖離之馬(승섬리지마) 建翠鳳之旗(건취봉지기)
樹靈鼉之鼓(수령타지고) 此數寶者(차수보자)
秦不生一焉(진불생일언) 而陛下說之(이폐하설지)
何也(하야) 必秦國之所生然後可(필진국지소생연후가)
則是夜光之璧不飾朝廷(칙시야광지벽불식조정)
犀象之器不爲玩好(서상지기불위완호)
鄭衛之女不充後宮(정위지녀불충후궁)
而駿良駃騠不實外廐(이준량결제불실외구)
지금 대왕께서는 곤강(昆崗)의 옥을 가지고 계시고,
수씨(隨氏)와 화씨(和氏)의 벽옥(璧玉)도 보유하시며,
명월주(明月珠)를 차고 태아(太阿)의 명검을 갖고 계십니다.
천하 명마인 섬리마(纖離馬)를 타고
취봉기(翠鳳旗)를 높이 세워 영타(靈鼉)의 북까지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들은 진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닌데 대왕께서는 좋아하십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그런데 진나라에서 나는 것만 허용된다면
야광주(夜光珠)로 조정을 장식할 수 없고,
코뿔소의 뿔이나 코끼리 상아로 노리개를 만들 수 없을 겁니다.
정(鄭)나라와 위(衛)나라의 미녀들로 후궁을 채울 수 없으며
결제(駃騠)와 같은 준마로 마구간을 채울 수 없을 겁니다.
江南金錫不爲用(강남금석불위용) 西蜀丹靑不爲采(서촉단청불위채)
所以飾後宮(소이식후궁) 充下陳娛心意說耳目者(충하진오심의설이목자)
必出於秦然後可(필출어진연후가) 則是宛珠之簪(칙시완주지잠)
傅璣之珥(부기지이) 阿縞之衣(아호지의)
錦繡之飾不進於前(금수지식불진어전)
而隨俗雅化佳冶窈窕趙女(이수속아화가야요조조녀)
강남의 금과 주석도 쓸 수 없으며,
서촉(西蜀)의 단청(丹靑)으로 칠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후궁들과 희첩들이 모두 진나라 것으로 치장을 한다면
완주(宛珠)의 비녀,
부기(傅璣)의 귀고리,
아호(阿縞)가 지은 옷,
금수(錦繡)의 장식들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나라의 미녀들도 왕의 곁에 없을 겁니다.
不立於側也(불입어측야) 夫擊甕叩缶彈箏搏髀(부격옹고부탄쟁박비)
而歌呼嗚嗚快耳目者(이가호오오쾌이목자) 眞秦之聲也(진진지성야)
鄭衛桑閒昭虞武象者(정위상한소우무상자) 異國之樂也(이국지락야)
今弃擊甕叩缶而就鄭衛(금기격옹고부이취정위) 退彈箏而取昭虞(퇴탄쟁이취소우)
若是者何也(약시자하야) 快意當前(쾌의당전) 適觀而已矣(적관이이의)
항아리를 치고 질장구를 치면서 어야디야 노래를 불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진나라의 음악입니다.
정(鄭), 위(衛), 상간(桑間), 소(昭), 우(虞), 무(武), 상(象) 등은
다른 나라 음악입니다.
진나라 것이 아닌 이 음악을 받아들인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이 기쁘고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今取人則不然(금취인칙불연) 不問可否(불문가부)
不論曲直(불논곡직) 非秦者去(비진자거)
爲客者逐(위객자축) 然則是所重者(연칙시소중자)
在乎色樂珠玉(재호색락주옥) 而所輕者在乎人民也(이소경자재호인민야)
此非所以跨海內制諸侯之術也(차비소이과해내제제후지술야)
그러나 사람을 얻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됨이 옳은지 그른 지도 묻지 않고,
굽은 지 곧은 지도 따지지 않고,
단지 진나라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돌려보낸다면,
여색과 주옥과 음악은 소중히 여기고 인재는 경시하는 것이 됩니다.
臣聞地廣者粟多(신문지광자속다) 國大者人衆(국대자인중)
兵彊則士勇(병강칙사용) 是以太山不讓土壤(시이태산불양토양)
故能成其大(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하해불택세류)
故能就其深(고능취기심)
땅이 넓으면 곡식이 많고,
나라가 크면 백성이 많고,
군대가 강하면 병사가 용감하다고 합니다.
태산(泰山)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기에
그 높이를 이룰 수 있는 것이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 깊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王者不卻衆庶(왕자불각중서) 故能明其德(고능명기덕)
是以地無四方(시이지무사방) 民無異國(민무이국)
四時充美(사시충미) 鬼神降福(귀신강복)
此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차오제삼왕지소이무적야) :
今乃弃黔首以資敵國(금내기검수이자적국)
卻賓客以業諸侯(각빈객이업제후) 使天下之士退(사천하지사퇴)
而不敢西向(이불감서향) 裹足不入秦(과족불입진)
此所謂藉寇兵(차소위자구병) 而齎盜糧者也(이재도량자야)
성왕들이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었던 것은
찾아오는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토는 사방으로 구분이 없고,
다른 나라 백성이라고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제(五帝) 삼왕(三王)에게 적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나라 백성을 버려서 적들을 이롭게 하고,
천하의 인재들을 진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다른 제후들을 돕게 하니
이것은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보내주는 것과 같습니다.
夫物不産於秦(부물불산어진) 可寶者多(가보자다)
士不産於秦(사불산어진) 而願忠者衆(이원충자중)
今逐客以資敵國(금축객이자적국) 損民以益讎(손민이익수)
內自虛(내자허) 而外樹怨於諸侯(이외수원어제후)
求國無危(구국무위) 不可得也(불가득야)
진나라 밖에서 생산된 물건 중에 보배로운 것이 많고,
진나라 밖에서 타어난 인재들 중에 충성된 자가 많습니다.
지금 빈객들을 축출해 적을 이롭게 하고,
백성을 줄여 적에게 보태주면 나라가 텅 비게 됩니다.
그 틈을 노려 적들이 쳐들어오면
나라는 누가 지키고 그 위기는 누가 해결할 것입니까?”
秦王乃除逐客之令(진왕내제축객지령) 復李斯官(복이사관)
卒用其計謀(졸용기계모) 官至廷尉(관지정위)
二十餘年(이십여년) 竟幷天下(경병천하)
尊主爲皇帝(존주위황제) 以斯爲丞相(이사위승상)
夷郡縣城(이군현성) 銷其兵刃(소기병인)
示不復用(시불복용) 使秦無尺土之封(사진무척토지봉)
不立子弟爲王(불입자제위왕) 功臣爲諸侯者(공신위제후자)
使後無戰攻之患(사후무전공지환)
진나라 왕은 즉시 빈객에 대한 축출을 취소하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켜 그 계책을 따르기로 했다.
이에 이사의 관직은 정위(廷尉 검찰총장)에 올랐다.
20 년 후,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였고 군주를 높여 황제라 칭했다.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모든 군과 현의 성벽을 허물고 무기들은 녹여 다시는 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에게 봉읍으로 주는 일이 없었고,
황제의 후손을 왕으로 내세우지 않았고,
공신들을 제후로 삼지도 않았다.
이것은 후일에 반란의 요소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始皇三十四年(시황삼십사년) 置酒咸陽宮(치주함양궁)
博士僕射周靑臣等(박사복사주청신등) 頌稱始皇威德(송칭시황위덕)
齊人淳于越進諫(제인순우월진간) 曰臣聞之(왈신문지)
진시황 34년, 함양궁(咸陽宮)에서 연회가 베풀어졌다.
박사(博士), 복야(僕射), 주청신(周靑臣) 등이
시황제의 위엄과 덕망을 칭송했다.
이어 제나라 출신 순우월(淳于越)이
앞으로 나와 시황제에게 간언을 올렸다.
殷周之王千餘歲(은주지왕천여세) 封子弟功臣自爲支輔(봉자제공신자위지보)
今陛下有海內(금폐하유해내) 而子弟爲匹夫(이자제위필부)
卒有田常六卿之患(졸유전상육경지환) 臣無輔弼(신무보필)
何以相救哉(하이상구재) 事不師古而能長久者(사불사고이능장구자)
非所聞也(비소문야) 今靑臣等又面諛(금청신등우면유)
以重陛下過(이중폐하과) 非忠臣也(비충신야)
“예전 은나라 주나라가 천 년 동안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식과 형제 공신에게 봉읍을 할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천하를 소유하고 계시지만,
페하의 자제들은 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반란이라도 생기면 보필할 신하가 없으니
어떻게 나라를 구하겠습니까?
옛것을 버리고 오래 지속됐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습니다.
지금 주청신 등이 저렇게 아첨을 늘어놓아
폐하께서 과오를 거듭하게 하므로 저들은 충신이 아닙니다.”
始皇下其議丞相(시황하기의승상) 丞相謬其說(승상류기설)
絀其辭(출기사) 乃上書曰(내상서왈)
진시황이 이 의견을 승상 이사에게 검토하도록 하였다.
이사는 순우월의 간언이 황당한 것이라 여겨 바로 상소를 올렸다.
古者天下散亂(고자천하산란) 莫能相一(막능상일)
是以諸侯並作(시이제후병작) 語皆道古以害今(어개도고이해금)
飾虛言以亂實(식허언이란실) 人善其所私學(인선기소사학)
以非上所建立(이비상소건입) 今陛下幷有天下(금폐하병유천하)
別白黑而定一尊(별백흑이정일존)
“옛날 천하가 어지러운 시절에는 아무도 통일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제후들은 여기저기 깃발을 들고 일어났고,
사람들은 말할 때면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의 것을 힐난했으며
심지어 헛된 말을 꾸며 사실을 혼란스럽게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자신이 옳다하고 나라의 법제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고 흑백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황제 한 분이라고 정하였습니다.
而私學乃相與非法敎之制(이사학내상여비법교지제)
聞令下(문령하) 卽各以其私學議之(즉각이기사학의지)
入則心非(입칙심비) 出則巷議(출칙항의)
非主以爲名(비주이위명) 異趣以爲高(이취이위고)
率羣下以造謗(솔군하이조방) 如此不禁(여차불금)
則主勢降乎上(칙주세강호상) 黨與成乎下(당여성호하)
禁之便(금지변)
그런데 일부 신하들이 개인적인 주장이라면서
조정의 법제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비방하고 나와서 따집니다.
도리어 군주를 비방하는 것이 명예로 여기고 고상하다고 여기고
추종자를 이끄는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만일 이를 금지시키지 않으면
위로는 천황폐하의 위상이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형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금지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臣請諸有文學詩書百家語者(신청제유문학시서백가어자)
蠲除去之(견제거지) 令到滿三十日弗去(령도만삼십일불거)
黥爲城旦(경위성단) 所不去者(소불거자)
醫藥卜筮種樹之書(의약복서종수지서)
若有欲學者(약유욕학자) 以吏爲師(이리위사)
또한 모든 문학과 시경(詩經), 서경(書經)
그리고 여러 제자백가의 저서들을 폐기할 것을 간청 드립니다.
폐기령이 내린 후 30일이 지나도록 소유하고 있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여 죄인임을 표시하고
4년 동안 새벽부터 일어나 성을 쌓는 일을 하는 죄수로 삼아야 합니다.
폐기할 수 없는 책은 의약서와 점술서 농림에 관한 책입니다.
만일 배우고자 하는 이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始皇可其議(시황가기의)
收去詩書百家之語以愚百姓(수거시서백가지어이우백성)
使天下無以古非今(사천하무이고비금) 明法度(명법도)
定律令(정율령) 皆以始皇起(개이시황기) 同文書(동문서)
治離宮別館(치리궁별관) 周徧天下(주편천하)
明年(명년) 又巡狩(우순수) 外攘四夷(외양사이)
斯皆有力焉(사개유력언)
진시황은 이 의견을 받아들여
모든 서적을 폐기시키는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또한 천하의 누구도 옛것을 들먹이며 현재를 비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법률과 제도 율령을 만드는 일은 모두 시황제 때에 처음 생겼다.
또한 문자를 통일시켰다.
전국 여러 곳에 황제의 별장을 지었고 이듬해에 순방에 나섰다.
사방의 오랑캐를 물리쳤는데 이는 모두 이사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
斯長男由爲三川守(사장남유위삼천수) 諸男皆尙秦公主(제남개상진공주)
女悉嫁秦諸公子(여실가진제공자) 三川守李由告歸咸陽(삼천수이유고귀함양)
李斯置酒於家(이사치주어가) 百官長皆前爲壽(백관장개전위수)
門廷車騎以千數(문정차기이천수) 李斯喟然而歎曰(이사위연이탄왈)
이후 이사의 장남 이유(李由)는 삼천군의 군수가 되었다.
또 아들들은 모두 진나라 공주에게 장가들었다.
딸들은 모두 진나라의 공자들에게 시집갔다.
하루는 이유가 휴가를 얻어 함양 집으로 돌아오자 이사가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 고위관료들이 모두 참석해 이사에게 축수를 빌었다.
대문과 뜰에 수레가 수천 대나 되었다.
이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듯 말했다.
嗟乎(차호) 吾聞之荀卿曰(오문지순경왈) 物禁大盛(물금대성)
夫斯乃上蔡布衣(부사내상채포의) 閭巷之黔首(여항지검수)
上不知其駑下(상불지기노하) 遂擢至此(수탁지차)
當今人臣之位無居臣上者(당금인신지위무거신상자)
可謂富貴極矣(가위부귀극의)
物極則衰(물극칙쇠) 吾未知所稅駕也(오미지소세가야)
“아,
나는 순자에게서 사물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는 평범한 평민으로 태어나 민가에서 자란 평범한 백성일 뿐인데,
폐하께서 나의 모자람을 알지 못하시고 발탁하여 지금에 이르게 해주셨다.
신하 중에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없고,
부귀는 극도에 달해 말할 수 없도다.
만물이 극에 달하면 쇠퇴하거늘
내가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겠도다.”
始皇三十七年十月(시황삼십칠년십월) 行出游會稽(행출유회계)
並海上(병해상) 北抵琅邪(북저랑사)
丞相斯中車府令趙高(승상사중차부령조고) 兼行符璽令事(겸행부새령사)
皆從(개종) 始皇有二十餘子(시황유이십여자)
長子扶蘇以數直諫上(장자부소이수직간상) 上使監兵上郡(상사감병상군)
蒙恬爲將(몽념위장) 少子胡亥愛(소자호해애)
請從(청종) 上許之(상허지) 餘子莫從(여자막종)
진시황 37년 10월,
회계산을 순행하다 해안을 따라 북상하여 낭야(琅邪)에 이르렀다.
승상 이사와 중거부령(中車府令 황제 수레 책임자) 조고가 수행했다.
진시황에게는 20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부소는 솔직하고 간언을 잘해 상군(上郡)을 감독하도록 내보냈다.
몽염의 그 부대의 장군이었다.
막내 호애(胡亥)는 총애를 받았는데 이번 동행에 따라나섰다.
다른 아들은 따라오지 못했다.
其年七月(기년칠월) 始皇帝至沙丘(시황제지사구)
病甚(병심) 令趙高爲書賜公子扶蘇(령조고위서사공자부소)
曰以兵屬蒙恬(왈이병속몽념) 與喪會咸陽而葬(여상회함양이장)
그해 7월, 진시황이 사구(沙丘)에 이르러 병이 악화되었다.
조고에게 장남 앞으로 편지를 써 보내게 했다.
“군대는 몽염에게 맡기고 함양에 와서 나의 장례를 맞아라.”
書已封(서이봉) 未授使者(미수사자) 始皇崩(시황붕)
書及璽皆在趙高所(서급새개재조고소)
獨子胡亥丞相李斯趙高及幸宦者(독자호해승상이사조고급행환자)
五六人知始皇崩(오륙인지시황붕) 餘羣臣皆莫知也(여군신개막지야)
李斯以爲上在外崩(이사이위상재외붕) 無眞太子(무진태자)
故祕之(고비지) 置始皇居轀輬車中(치시황거온량차중)
百官奏事上食如故(백관주사상식여고)
宦者輒從轀輬車中可諸奏事(환자첩종온량차중가제주사)
편지는 봉했지만 아직 사자에게 맡기기 전에 진시황이 죽고 말았다.
그 편지와 옥새는 조고가 지니고 있었다.
진시황이 돌아가신 사실은 막내아들 호애, 승상 이사, 조고,
그리고 가까이 모시는 환관 대여섯 명이 전부였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특히 이사가 정식 태자가 책봉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여 비밀에 부쳤다.
시신을 온량거(轀輬車:창문이 양쪽에 달린 튼 수레)에 넣어두고
예전처럼 정무를 지속했다.
환관이 온량거 안에서 여러 가지 국사를 대신 결제한 것이었다.
趙高因留所賜扶蘇璽書(조고인류소사부소새서)
而謂公子胡亥(이위공자호해) 曰上崩(왈상붕)
無詔封王諸子(무조봉왕제자) 而獨賜長子書(이독사장자서)
長子至(장자지) 卽立爲皇帝(즉입위황제)
而子無尺寸之地(이자무척촌지지) 爲之柰何(위지내하)
조고가 진시황이 장남 부소에게 보내는 편지를 쥐고서 막내 호애에게 말하였다.
“황제께서 돌아가셨지만 누구를 황제로 봉한다는 조서가 없고,
단지 장남에게 편지만 남기셨습니다.
장남이 오면 곧 황제로 즉위하게 되고
막내 공자께서는 이제 한 치의 땅도 가질 수 없을 것인데 어찌하시겠습니까?”
胡亥曰固也(호해왈고야) 吾聞之(오문지)
明君知臣(명군지신) 明父知子(명부지자)
父捐命(부연명) 不封諸子(불봉제자) 何可言者(하가언자)
호애가 대답하였다.
“당연하지요. 현명한 군주는 신하를 잘 알고,
현명한 아버지는 자식을 잘 압니다.
아버지께서 태자를 책봉하지 않으셨으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趙高曰(조고왈) 不然(불연) 方今天下之權(방금천하지권)
存亡在子與高及丞相耳(존망재자여고급승상이)
願子圖之(원자도지) 且夫臣人與見臣於人(차부신인여견신어인)
制人與見制於人(제인여견제어인)
조고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을 잡느냐 마느냐는
막내 공자와 저와 승상에게 달려있습니다.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신하로 부리는 것과
남의 신하가 되는 것이 어찌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豈可同日道哉胡亥曰(개가동일도재호해왈)
廢兄而立弟(폐형이입제) 是不義也(시불의야)
不奉父詔而畏死(불봉부조이외사) 是不孝也(시불효야)
能薄而材譾(능박이재전) 彊因人之功(강인인지공)
是不能也(시불능야) 三者逆德(삼자역덕)
天下不服(천하불복) 身殆傾危(신태경위)
社稷不血食(사직불혈식)
호애가 말했다.
“형을 막고 아우가 나서는 것은 불의이며,
아버지의 조서를 받들지 않는 것은 불효이고,
재능이 천박하면서도 남의 공로를 빼앗는 것은 무능함이오.
이 세 가지는 거스르는 일이라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고 사직의 제사를 받들지 못할 것이오.”
高曰(고왈) 臣聞湯武殺其主(신문탕무살기주)
天下稱義焉(천하칭의언) 不爲不忠(불위불충)
衛君殺其父(위군살기부) 而衛國載其德(이위국재기덕)
孔子著之(공자저지) 不爲不孝(불위불효)
夫大行不小謹(부대행불소근) 盛德不辭讓(성덕불사양)
鄕曲各有宜(향곡각유의) 而百官不同功(이백관불동공)
故顧小而忘大(고고소이망대) 後必有害(후필유해)
狐疑猶豫(호의유예) 後必有悔(후필유회)
斷而敢行(단이감행) 鬼神避之(귀신피지)
後有成功(후유성공) 願子遂之(원자수지)
조고가 말했다.
“탕왕과 무왕은 각기 자신의 임금을 죽였지만
천하가 그들을 불충하다고 하지 않고, 의롭다고 칭송합니다.
위나라 임금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지만
백성들은 그 덕을 받들었고
공자(孔子)마저도 그 사건을 불효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큰일을 행할 때는 작은 일에 주의할 필요가 없고,
큰 덕이 있는 사람은 큰일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을 돌아보다 큰일을 잊으면
나중에 후회하고 위태롭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감행하시면 귀신도 피해가고 분명히 성공할 겁니다.
공자께서는 서둘러 실행하시옵소서!”
胡亥喟然歎曰(호해위연탄왈) 今大行未發(금대행미발)
喪禮未終(상례미종) 豈宜以此事干丞相哉(개의이차사간승상재)
趙高曰(조고왈) 時乎時乎(시호시호)
閒不及謀(한불급모) 贏糧躍馬(영량약마)
唯恐後時(유공후시)
이에 호애가 깊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직 황제가 승하한 것도 알리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 일에 대해 승상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겠소?”
조고가 말했다.
“때가 때인 만큼 서두르셔야 합니다.
말을 타고 달려도 늦어질까 걱정입니다.”
胡亥旣然高之言(호해기연고지언)
高曰不(고왈불)
與丞相謀(여승상모) 恐事不能成(공사불능성)
臣請爲子與丞相謀之(신청위자여승상모지)
호애는 조고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다.
조고가 말했다.
“승상과 의논하지 않으면 이 일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승상과 의논하겠습니다.”
高乃謂丞相斯曰(고내위승상사왈) 上崩(상붕)
賜長子書(사장자서) 與喪會咸陽而立爲嗣(여상회함양이입위사)
書未行(서미행) 今上崩(금상붕)
未有知者也(미유지자야) 所賜長子書及符璽(소사장자서급부새)
皆在胡亥所(개재호해소)
定太子在君侯與高之口耳(정태자재군후여고지구이) 事將何如(사장하여)
조고가 이사를 찾아가 말했다.
“황제께서 돌아가시면서 장남에게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그 내용인즉 함양에서 장사를 지내고 맏아들을 후사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편지는 발송하지 않았고
지금 황제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편지와 옥새는 지금 호애가 가지고 있습니다.
태자를 정하는 일은 이제 승상의 입에 달려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斯曰(사왈) 安得亡國之言(안득망국지언)
此非人臣所當議也(차비인신소당의야)
이사가 말했다.
“어찌 나라를 망칠 말을 하시오!
이일은 신하된 자가 논의할 것이 아니오.”
高曰(고왈) 君侯自料能孰與蒙恬(군후자료능숙여몽념)
功高孰與蒙恬(공고숙여몽념) 謀遠不失孰與蒙恬(모원불실숙여몽념)
無怨於天下孰與蒙恬(무원어천하숙여몽념)
長子舊而信之孰與蒙恬(장자구이신지숙여몽념)
조고가 말했다.
“승상께서는 능력 면에서 몽염 장군과 비교해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공로 면에서 몽염 장군보다 누가 더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계책에 있어서 몽염과 비교해 누가 더 성공할 수 있습니까?
맏아들과 신임 면에서 몽염보다 누가 더 닛습니까?”
斯曰(사왈) 此五者皆不及蒙恬(차오자개불급몽념)
而君責之何深也(이군책지하심야)
이사가 대답했다.
“나는 다섯 가지 모두 몽염보다 못하오.
어찌 그리 심하게 따지는 것이오?”
高曰(고왈)
高固內官之廝役也(고고내관지시역야)
幸得以刀筆之文進入秦宮(행득이도필지문진입진궁)
管事二十餘年(관사이십여년) 未嘗見秦免罷丞相功臣(미상견진면파승상공신)
有封及二世者也(유봉급이세자야) 卒皆以誅亡(졸개이주망)
皇帝二十餘子(황제이십여자) 皆君之所知(개군지소지)
長子剛毅而武勇(장자강의이무용) 信人而奮士(신인이분사)
卽位必用蒙恬爲丞相(즉위필용몽념위승상)
君侯終不懷通侯之印歸於鄕里(군후종불회통후지인귀어향리)
明矣(명의) 高受詔敎習胡亥(고수조교습호해)
使學以法事數年矣(사학이법사수년의) 未嘗見過失(미상견과실)
慈仁篤厚(자인독후) 輕財重士(경재중사)
辯於心而詘於口(변어심이굴어구) 盡禮敬士(진례경사)
秦之諸子未有及此者(진지제자미유급차자)
可以爲嗣(가이위사) 君計而定之(군계이정지)
조고가 말했다.
“저는 하찮은 환관이지만
공문 담당 관리로 조정에 들어왔고 일을 한 지도 20년이 되었습니다.
파면당한 승상이나 공신 가운데 2대를 이는 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 형벌을 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황제의 20명의 아들 모두를 승상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맏아들은 강직하고 용맹스러운 분이라
즉위하면 몽염을 등용해 승상으로 삼으실 겁니다.
지금 승상께서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막내 아들 호애를 가르치고 법률을 가르친지가 몇 해가 되었지만
아직 잘못한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인자하고 인재를 중히 여기고 재물을 가벼이 여깁니다.
말씨가 겸손하고 예의를 다해 사람을 섬깁니다.
이런 분이 후사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승상께서 결정하십시오.”
斯曰(사왈) 君其反位(군기반위)
斯奉主之詔(사봉주지조) 聽天之命(청천지명)
何慮之可定也(하려지가정야)
이사가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고,
이 몸은 조칙을 받들어 하늘의 명에 따를 것이다.
어찌 우리가 결정한단 말인가?”
高曰(고왈) 安可危也(안가위야)
危可安也(위가안야) 安危不定(안위불정)
何以貴聖(하이귀성)
조고가 대답했다.
“편안 것을 위험으로 돌릴 수 있고,
위험한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편안하고 위험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찌 승상으로서 존중을 받으시겠습니까?”
斯曰斯(사왈사) 上蔡閭巷布衣也(상채여항포의야)
上幸擢爲丞相(상행탁위승상) 封爲通侯(봉위통후)
子孫皆至尊位重祿者(자손개지존위중록자)
故將以存亡安危屬臣也(고장이존망안위속신야)
豈可負哉(개가부재) 夫忠臣不避死而庶幾(부충신불피사이서기)
孝子不勤勞而見危(효자불근로이견위)
人臣各守其職而已矣(인신각수기직이이의)
君其勿復言(군기물복언) 將令斯得罪(장령사득죄)
이사가 말했다.
“나는 평범한 자로 황제께서 발탁하시어 높은 지위와 많은 봉록을 받았소.
그리고 장차 나라의 존망이 내게 맡겨졌는데
어찌 이 뜻을 저버린단 말이오?
충신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효자는 부모를 섬기는데 부지런히 힘쓰고,
신하된 자는 각기 본분을 지킬 뿐이오.
그대는 나를 죄짓게 하지 마시오!”
高曰(고왈) 蓋聞聖人遷徙無常(개문성인천사무상)
就變而從時(취변이종시) 見末而知本(견말이지본)
觀指而覩歸(관지이도귀) 物固有之(물고유지)
安得常法哉(안득상법재) 方今天下之權命懸於胡亥(방금천하지권명현어호해)
高能得志焉(고능득지언) 且夫從外制中謂之惑(차부종외제중위지혹)
從下制上謂之賊(종하제상위지적) 故秋霜降者草花落(고추상강자초화락)
水搖動者萬物作(수요동자만물작) 此必然之效也(차필연지효야)
君何見之晩(군하견지만)
조고가 말했다.
“상황이 변하면 적절한 시기에 따르고
끝을 보면 시작을 알고
지향하는 바를 알면 귀착될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이제 천하의 대권은 호애에게 달렸으니
저는 승상의 마음을 알고 싶습니다.
어찌 판단이 더디십니까?”
斯曰(사왈) 吾聞晉易太子(오문진역태자)
三世不安(삼세불안) 齊桓兄弟爭位(제환형제쟁위)
身死爲戮(신사위륙) 紂殺親戚(주살친척)
不聽諫者(불청간자) 國爲丘墟(국위구허)
遂危社稷(수위사직) 三者逆天(삼자역천)
宗廟不血食(종묘불혈식) 斯其猶人哉(사기유인재)
安足爲謀(안족위모)
이사가 말했다.
“옛날 진(晉)나라는 태자를 교체했다가 세 임금이 평안하지 못했고,
제나라 환공은 자리다툼을 하다가 살육 당했으며,
은나라 주왕은 간언하는 자의 말을 듣지 않다가 사직을 위태롭게 하였소.
이 몸이 어찌 모반을 꾸밀 수 있겠소?”
高曰(고왈) 上下合同(상하합동)
可以長久(가이장구) 中外若一(중외약일)
事無表裏(사무표리) 君聽臣之計(군청신지계)
卽長有封侯(즉장유봉후) 世世稱孤(세세칭고)
必有喬松之壽(필유교송지수) 孔墨之智(공묵지지)
今釋此而不從(금석차이불종) 禍及子孫(화급자손)
足以爲寒心(족이위한심) 善者因禍爲福(선자인화위복)
君何處焉(군하처언)
조고가 말했다.
“위 아래가 같은 마음이면 오랜 세월 권력을 지속할 수 있으며,
안과 밖이 일치하면 표리부동이 없어집니다.
저의 계획을 수락하신다면 오래도록 봉후를 누리시게 할 것이고
대대로 추앙받는 인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포기하면
재앙이 자손에까지 미쳐 화가 큰 것이고
목숨을 버리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질 것입니다.
승상께서는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
斯乃仰天而歎(사내앙천이탄) 垂淚太息(수루태식)
이에 이사가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曰嗟乎(왈차호) 獨遭亂世(독조란세) 旣以不能死(기이불능사) :
安託命哉(안탁명재) 於是斯乃聽高(어시사내청고)
“아, 어지러운 새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고,
도대체 이 목숨을 어디에다 맡긴단 말인가!”
결국 이사는 조고의 계획을 수락했다.
高乃報胡亥曰(고내보호해왈)
臣請奉太子之明命(신청봉태자지명명) 以報丞相(이보승상)
丞相斯敢不奉令(승상사감불봉령)
조고는 호애에게 보고했다.
“저는 태자를 받들어 승상에게 전했으나,
승상께서 명을 받아들인다고 하옵니다.”
於是乃相與謀(어시내상여모) 詐爲受始皇詔丞相(사위수시황조승상)
立子胡亥爲太子(입자호해위태자) 更爲書賜長子扶蘇曰(갱위서사장자부소왈)
이렇게 막내공자 호애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가 공모하여 진시황의 조서를 거짓으로 꾸몄다.
승상은 조서에 따라 호애를 태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또한 맏아들 부소에게 보내려는 편지를 고쳐 적었다.
朕巡天下(짐순천하) 禱祠名山諸神以廷壽命(도사명산제신이정수명)
今扶蘇與將軍蒙恬將師數十萬以屯邊(금부소여장군몽념장사수십만이둔변) :
十有餘年矣(십유여년의) 不能進而前(불능진이전)
士卒多秏(사졸다모) 無尺寸之功(무척촌지공)
乃反數上書直言誹謗我所爲(내반수상서직언비방아소위)
以不得罷歸爲太子(이불득파귀위태자) 日夜怨望(일야원망)
扶蘇爲人仔不孝(부소위인자불효) 其賜劍以自裁(기사검이자재)
將軍恬與扶蘇居外(장군념여부소거외) 不匡正(불광정)
宜知其謀(의지기모) 爲人臣不忠(위인신불충)
其賜死(기사사) 以兵屬裨將王離(이병속비장왕리)
封其書以皇帝璽(봉기서이황제새)
遣胡亥客奉書賜扶蘇於上郡(견호해객봉서사부소어상군)
“짐은 천하를 순시하며
명산의 여러 신들께 제사를 올려 건강을 되찾는 중이다.
큰아들 부소 보거라.
장군 몽염과 함께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변경에 주둔한 지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한 치의 공은커녕 앞으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병력만 소모하고 있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면서 도리어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짐의 일을 비방하고 태자의 지위로 돌아올 수 없어
밤낮으로 원망하고 있다니 참으로 쾌심하구나.
부소는 아들 된 도리로 불효하므로
칼을 내리니 스스로 자결하라!
장군 몽염은 부소와 함께 있었으니
당연히 그의 잘못된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소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으니
신하된 자로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였으니
또한 스스로 자결하라.
군대는 부장(副將) 왕리(王離)에게 맡긴다.”
그리고 편지를 황제의 옥새로 봉하고
호애의 심복을 시켜 부소에게 전하였다.
使者至(사자지) 發書(발서) 扶蘇泣(부소읍)
入內舍(입내사) 欲自殺(욕자살)
蒙恬止扶蘇曰(몽념지부소왈)
부소가 편지를 뜯어보고는 울면서
내실에 들어가 자결하려고 했다.
이때 장군 몽염이 만류하였다.
陛下居外(폐하거외) 未立太子(미입태자)
使臣將三十萬衆守邊(사신장삼십만중수변) 公子爲監(공자위감)
此天下重任也(차천하중임야) 今一使者來(금일사자래)
卽自殺(즉자살) 安知其非詐(안지기비사)
請復請(청복청) 復請而後死(복청이후사) 未暮也(미모야)
“폐하께서는 궁 밖에 계시고 아직 태자를 책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게 변방을 지키라고 30만 대군을 주셨으며
이 군대를 감독하라며 공자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는 천하에 막중한 임무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 사람의 사신이 왔다고 자살을 하신다면
그 진위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한 번 간청하시고 그 다음에 자살해도 늦지 않습니다.”
使者數趣之(사자수취지) 扶蘇爲人仁(부소위인인)
謂蒙恬曰(위몽념왈) 父而賜子死(부이사자사)
尙安復請(상안복청) 卽自殺(즉자살)
蒙恬不肯死(몽념불긍사) 使者卽以屬吏(사자즉이속리)
擊於陽周(격어양주)
그러나 사신이 자살을 거듭 재촉했다.
부소는 성품이 어진 자라 주저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자식에게 죽음을 내렸는데
어찌 다시 용서를 빈단 말이오?”
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몽염은 죽으려하지 않자
사신은 곧 옥리에게 넘겨서 그를 양주(陽周)에 감금하였다.
使者還報(사자환보) 胡亥斯高大喜(호해사고대희)
至咸陽(지함양) 發喪(발상)
太子立爲二世皇帝(태자입위이세황제) 以趙高爲郞中令(이조고위랑중령)
常侍中用事(상시중용사)
사신이 돌아와서 보고하자 모두 기뻐하였다.
바로 함양으로 돌아와 진시황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태자 호애는 시황2세로 즉위하였다.
환관 조고는 낭중령(郎中令 비서실장)이 되어
궁중에서 황제를 모시는 권력을 쥐었다.
二世燕居(이세연거) 乃召高與謀事(내소고여모사)
謂曰(위왈) 夫人生居世閒也(부인생거세한야)
譬猶騁六驥過決隙也(비유빙육기과결극야)
吾旣已臨天下矣(오기이임천하의) 欲悉耳目之所好(욕실이목지소호)
窮心志之所樂(궁심지지소락) 以安宗廟而樂萬姓(이안종묘이락만성)
長有天下(장유천하) 終吾年壽(종오년수)
其道可乎(기도가호)
시황 2세는 한가로울 때면 조고를 불러 상의했다.
“사람이 살아있는 시간은
여섯 마리 준마가 끄는 수레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했소.
나는 이미 천하를 얻었으니 좋은 것을 보고 즐기고 느끼고 싶소.
그러면서 종묘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을 기쁘게 해
오래도록 천하를 소유한 채 천수를 마치고 싶소.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高曰(고왈) 此賢主之所能行也(차현주지소능행야)
而昏亂主之所禁也(이혼란주지소금야) 臣請言之(신청언지)
不敢避斧鉞之誅(불감피부월지주)
願陛下少留意焉(원폐하소류의언) 夫沙丘之謀(부사구지모)
諸公子及大臣皆疑焉(제공자급대신개의언) 而諸公子盡帝兄(이제공자진제형)
大臣又先帝之所置也(대신우선제지소치야) 今陛下初立(금폐하초입)
此其屬意怏怏皆不服(차기속의앙앙개불복) 恐爲變(공위변)
且蒙恬已死(차몽념이사) 蒙毅將兵居外(몽의장병거외)
臣戰戰栗栗(신전전율율) 唯恐不終(유공불종)
且陛下安得爲此樂乎(차폐하안득위차락호)
조고가 대답했다.
“그것은 현명한 군주만이 누릴 수 있고
어리석은 군주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감히 벌 받을 걸 무릅쓰고 아뢰겠습니다.
지난 번 사구(沙丘)에서의 논의를
여러 공자들과 대신들이 의심하고 있습니다.
공자들은 모두 폐하의 형들이고
대신들은 시황께서 등용했던 인물입니다.
그들은 폐하를 못마땅하게 여겨 복종하지 않으니
변란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몽염 장군이 죽었다고 하나
그 아우 몽의(蒙毅)가 군대를 이끌고 변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두려워 날마다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서 어찌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二世曰爲之柰何(이세왈위지내하)
시황2세가 걱정하며 말했다.
“그럼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趙高曰(조고왈) 嚴法而刻刑(엄법이각형)
令有罪者相坐誅(령유죄자상좌주) 至收族(지수족)
滅大臣(멸대신) 而遠骨肉(이원골육)
貧者富之(빈자부지) 賤者貴之(천자귀지)
盡除去先帝之故臣(진제거선제지고신)
更置陛下之所親信者近之(갱치폐하지소친신자근지)
此則陰德歸陛下(차칙음덕귀폐하) 害除而姦謀塞(해제이간모새)
羣臣莫不被潤澤(군신막불피윤택) 蒙厚德(몽후덕)
陛下則高枕肆志寵樂矣(폐하칙고침사지총락의)
計莫出於此(계막출어차)
조고가 대답했다.
“법을 엄하게 하고 형벌을 가혹하게 하여
황제의 명을 거역한 자는
연좌해 처단하시고 일가족을 구속하게 하십시오.
시황제 때의 대신들을 처벌하시고 형제들을 멀리하십시오.
그리고 폐하께서 신망하는 자를 가까이 두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해로운 것은 제거되고
간사한 책략은 방지될 것입니다.
신하들은 폐하의 두터운 은덕을 입어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하고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二世然高之言(이세연고지언) 乃更爲法律(내갱위법율)
於是羣臣諸公子有罪(어시군신제공자유죄) 輒下高(첩하고)
令鞠治之(령국치지) 殺大臣蒙毅等(살대신몽의등)
公子十二人僇死咸陽市(공자십이인륙사함양시)
十公主矺死於杜(십공주탁사어두) 財物入於縣官(재물입어현관)
相連坐者不可勝數(상연좌자불가승수)
시황2세는 조고의 말이 옳다고 여겨 법률을 바꾸었다.
그리고 대신들과 공자들 중에 죄를 지으면 조고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장군 몽의 등이 죽었고,
공자 12명이 시장 바닥에서 죽었다.
공주 10명도 사지가 찢겨 죽었다.
그들의 재산은 모두 관청에 몰수되니 연루된 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公子高欲奔(공자고욕분) 恐收族(공수족)
乃上書曰(내상서왈) 先帝無恙時(선제무양시)
臣入則賜食(신입칙사식) 出則乘輿(출칙승여)
御府之衣(어부지의) 臣得賜之(신득사지)
中廐之寶馬(중구지보마) 臣得賜之(신득사지)
臣當從死而不能(신당종사이불능)
爲人子不孝(위인자불효) 爲人臣不忠(위인신불충)
不忠者無名以立於世(불충자무명이입어세)
臣請從死(신청종사) 願葬酈山之足(원장력산지족)
唯上幸哀憐之(유상행애련지)
공자 고(高)는 도망가려다가 가족이 구속되는 것이 두려워 상소를 올렸다.
“선제(先帝)께서 살아계셨을 때,
제가 궁궐에 들어가면 음식을 하사하셨고,
궁궐을 나서면 수레를 타게 하셨습니다.
관복도 하사하셔서 입었으며,
좋은 말도 하사하시어 타고 다녔습니다.
저는 선제를 따라 죽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자식된 자로 불효이고 신하된 자로 불충입니다.
불충한 자는 감히 세상을 나설 수 없으니
저는 선제를 따라 죽고자 합니다.
선제가 계신 여산 기슭에 묻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저를 가엷게 여겨주시옵소서.”
書上(서상) 胡亥大說(호해대설)
召趙高而示之(소조고이시지) 曰此可謂急乎(왈차가위급호)
趙高曰人臣當憂死而不暇(조고왈인신당우사이불가)
何變之得謀(하변지득모) 胡亥可其書(호해가기서)
賜錢十萬以葬(사전십만이장)
시황2세가 상소를 읽고 조고에게 말했다.
“이것이 위급하다는 것이오?”
조고가 말했다.
“신하된 자가 죽는 것을 근심 하는데 무슨 모반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시황2세는 상소대로 허가하고 10만 전을 하사하여 장사지내게 했다.
法令誅罰日益刻深(법령주벌일익각심) 羣臣人人自危(군신인인자위)
欲畔者衆(욕반자중) 又作阿房之宮(우작아방지궁)
治直[道]馳道(治直[道]치도) 賦斂愈重(부렴유중)
戍傜無已(수요무이)
이후 법령과 형벌이 날로 가혹해졌다.
그런 와중에 황실은 끊임없이 아방궁을 짓고 도로를 넓히느라
백성들은 세금이 가중되고 부역이 늘어나 불평이 높아갔다.
그런 와중에 역모를 꾸미는 자가 생겨났다.
於是楚戍卒陳勝吳廣等乃作亂(어시초수졸진승오광등내작란)
起於山東(기어산동) 傑俊相立(걸준상입)
自置爲侯王(자치위후왕) 叛秦(반진)
兵至鴻門而卻(병지홍문이각) 李斯數欲請閒諫(이사수욕청한간)
二世不許(이세불허) 而二世責問李斯曰(이이세책문이사왈)
옛날 초나라 지역 수비병인 진승(陳勝)과 오광(吳廣)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갈수록 그 세력이 강해졌다.
승상 이사가 여러 번 간언을 올렸지만
황제는 듣지 않고 도리어 이사를 문책하였다.
吾有私議(오유사의) 而有所聞於韓子也(이유소문어한자야)
曰堯之有天下也(왈요지유천하야) 堂高三尺(당고삼척)
采椽不斲(채연부착) 茅茨不翦(모자불전)
雖逆旅之宿不勤於此矣(수역려지숙불근어차의)
冬日鹿裘(동일록구) 夏日葛衣(하일갈의)
粢糲之食(자려지식) 藜藿之羹(려곽지갱)
飯土匭(반토궤) 啜土鉶(철토형)
雖監門之養不觳於此矣(수감문지양불곡어차의)
“내 한비자에게 들은 바가 있소.
요(堯)임금이 천하를 차지했을 때
마루높이는 3자였고
서까래는 통나무를 깍지 않았으며
지붕은 억새풀로 덮어 비록 주막이라 해도
이보다 검소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소.
또 겨울에는 사슴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여름에는 칡으로 베옷을 지어 입었으며
거친 밥에 명아주와 콩잎으로 끓인 국을 질그릇에 담아 먹었소.
문지기의 음식도 이보다 검소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소.
禹鑿龍門(우착룡문) 通大夏(통대하)
疏九河(소구하) 曲九防(곡구방)
決渟水致之海(결정수치지해) 而股無胈(이고무발)
脛無毛(경무모) 手足胼胝(수족변지)
面目黎黑(면목려흑) 遂以死于外(수이사우외)
葬於會稽(장어회계) 臣虜之勞不烈於此矣(신로지로불열어차의)
然則夫所貴於有天下者(연칙부소귀어유천하자)
豈欲苦形勞神(개욕고형로신) 身處逆旅之宿(신처역려지숙)
口食監門之養(구식감문지양) 手持臣虜之作哉(수지신로지작재)
此不肖人之所勉也(차불초인지소면야)
非賢者之所務也(비현자지소무야) 彼賢二之有天下也(피현이지유천하야)
專用天下適己而已矣(전용천하적기이이의)
此所以貴於有天下也(차소이귀어유천하야) 夫所謂賢人者(부소위현인자)
必能安天下而治萬民(필능안천하이치만민) 今身且不能利(금신차불능리)
將惡能治天下哉(장악능치천하재) 故吾願賜志廣欲(고오원사지광욕)
長享天下而無害(장향천하이무해) 爲之柰何(위지내하)
우(禹)임금은 용문산(龍門山)을 뚫어 대하까지 통하게 했고,
구하를 소통시켰으며
제방을 쌓고 물길을 트느라 다리의 털이 다 없어졌소.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못이 박히고
얼굴은 새카맣게 그을렸소. 그러다 결국 화계산에 묻혔는데,
노예의 노동도 이보다 잔혹하지 않았을 것이라 했소.
그렇다면 천하를 소유한 까닭이
육신과 정신을 힘들게 하고
몸은 주막에 묵고,
음식은 문지기의 밥을 먹고,
일은 노예처럼 하기 위함이란 말인가?
이것은 못난 군주가 힘쓸 바이지
현명한 군주가 할 바가 아니라고 했소.
현명한 군주가 천하를 소유하였을 때에는
자기에게 맞도록 하는 것이라 했소.
그러면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했소.
그런데 제 몸조차 이롭게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소.”
李斯子由爲三川守(이사자유위삼천수) 羣盜吳廣等西略地(군도오광등서략지)
過去弗能禁(과거불능금) 章邯以破逐廣等兵(장감이파축광등병)
使者覆案三川相屬(사자복안삼천상속)
이사의 아들 유(由)는 삼천군의 군수였다.
반란을 일으킨 오광 등이 삼천군을 지나가도 막을 수가 없었다.
후에 장한(章邯) 장군이 반란군을 축출하자
이사는 삼천군과 관련된 심문을 여러 번 받게 되었다.
誚讓斯居三公位(초양사거삼공위) 如何令盜如此(여하령도여차)
李斯恐懼(이사공구)
重爵祿(중작록) 不知所出(불지소출)
乃阿二世意(내아이세의) 欲求容(욕구용) 以書對曰(이서대왈)
“삼공(三公)의 직위에 있으면서
어찌 도적들이 이처럼 날뛰도록 했단 말이오?”
이사는 문책이 두려웠으나
벼슬과 녹봉을 버릴 수 없어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에 황제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상소를 올렸다.
夫賢主者(부현주자) 必且能全道(필차능전도)
而行督責之術者也(이행독책지술자야) 督責之(독책지)
則臣不敢不竭能(칙신불감불갈능) 以徇其主矣(이순기주의)
此臣主之分定(차신주지분정) 上下之義明(상하지의명)
則天下賢(칙천하현) 不肖莫敢不盡力竭任(불초막감불진력갈임)
以徇其君矣(이순기군의) 是故主獨制於天下(시고주독제어천하)
而無所制也(이무소제야) 能窮樂之極矣(능궁락지극의)
賢明之主也(현명지주야) 可不察焉(가불찰언)
“현명한 군주는 잘못한 신하는 반드시 질책하고 벌을 내립니다.
신하는 이것이 두려워 감히 군주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하와 군주의 직분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위아래가 의롭고 분명해지면모든
사람은 군주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천하를 통제하는 것은 군주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즐거움을 누리는 자가
현명한 군주이시니 어찌 실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故申子曰(고신자왈) 有天下而不恣睢(유천하이불자휴)
命之曰(명지왈) 以天下爲桎梏者(이천하위질곡자)
無他焉(무타언) 不能督責(불능독책)
而顧以其身勞於天下之民(이고이기신로어천하지민)
若堯禹然(약요우연) 故謂之桎梏也(고위지질곡야)
夫不能修申韓之明術(부불능수신한지명술) 行督責之道(행독책지도)
專以天下自適也(전이천하자적야) 而徒務苦形勞神(이도무고형로신)
以身徇百姓(이신순백성) 則是黔首之役(칙시검수지역)
非畜天下者也(비축천하자야) 何足貴哉(하족귀재)
夫以人徇己(부이인순기) 則己貴而人賤(칙기귀이인천)
以己徇人(이기순인) 則己賤而人貴(칙기천이인귀)
故徇人者賤(고순인자천) 而人所徇者貴(이인소순자귀)
自古及今(자고급금) 未有不然者也(미유불연자야)
凡古之所爲尊賢者(범고지소위존현자) 爲其貴也(위기귀야)
而所爲惡不肖者(이소위악불초자) 爲其賤也(위기천야)
而堯禹以身徇天下者也(이요우이신순천하자야)
因隨而尊之(인수이존지) 則亦失所爲尊賢之心矣(칙역실소위존현지심의)
未可謂大繆矣(미가위대무의) 謂之爲桎梏(위지위질곡)
不亦宜乎(불역의호) 不能督責之過也(불능독책지과야)
그래서 신불해는 천하를 소유하고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면
천하가 자신을 얽매는 차꼬와 수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하를 질책하지 못하면 군주가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스스로 질곡을 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천하를 자기 맘대로 부리지 못한다면
군주에게 무슨 존귀함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군주가 신하를 질책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과오입니다.
故韓子曰(고한자왈)
慈母有敗子(자모유패자) 而嚴家無格虜者(이엄가무격로자)
何也(하야) 則能罰之加焉必也(칙능벌지가언필야)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아들이 나와도
엄한 집안에는 방자한 하인은 없다고 한비자가 말했습니다.
무슨 이유이겠습니까?
잘못을 하면 반드시 벌을 주기 때문입니다.
故商君之法(고상군지법) 刑弃灰於道者(형기회어도자)
夫弃灰(부기회) 薄罪也(박죄야) 而被刑(이피형) 重罰也(중벌야)
彼唯明主爲能深督輕罪(피유명주위능심독경죄)
夫罪輕且督深(부죄경차독심) 而況有重罪乎(이황유중죄호)
故民不敢犯也(고민불감범야)
옛날 상군(商君)의 법에 의하면 길가에 재를 버리면 벌을 내렸습니다.
재를 버리는 행위는 가벼운 것이지만 그 형벌은 무거웠습니다.
군주가 가벼운 죄에도 혹독하게 질책하는데
하물며 큰 죄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러므로 백성들은 감히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是故韓子曰(시고한자왈) 布帛尋常(포백심상)
庸人不釋(용인불석) 鑠金百溢(삭금백일)
盜跖不搏者(도척불박자)
하찮은 비단 조각이라도 평범한 자들은 내버려두지 않지만,
황금 2천 냥을 놔두면 도적도 훔쳐가지 않는다고
한비자는 말합니다.
非庸人之心重(비용인지심중) 尋常之利深(심상지리심)
而盜跖之欲淺也(이도척지욕천야) 又不以盜跖之行(우불이도척지행)
爲輕百鎰之重也(위경백일지중야) 搏必隨手刑(박필수수형)
평범한 자들이 하찮은 이익을 중히 여겨서가 아니라,
도척이 욕심이 적어서가 아니라 훔치면
반드시 손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則盜跖不搏百鎰(칙도척불박백일) 而罰不必行也(이벌불필행야)
則庸人不釋尋常(칙용인불석심상) 是故城高五丈(시고성고오장)
而樓季不輕犯也(이누계불경범야) 泰山之高百仞(태산지고백인)
而跛牂牧其上(이파장목기상) 夫樓季也而難五丈之限(부누계야이난오장지한)
豈跛牂也(개파장야) 而易百仞之高哉(이역백인지고재)
峭塹之勢異也(초참지세이야) 明主聖王之所以能久處尊位(명주성왕지소이능구처존위)
長執重勢(장집중세) 而獨擅天下之利者(이독천천하지리자)
非有異道也(비유이도야) 能獨斷而審督責(능독단이심독책) 必深罰(필심벌)
故天下不敢犯也(고천하불감범야) 今不務所以不犯(금불무소이불범)
而事慈母之所以敗子也(이사자모지소이패자야)
則亦不察於聖人之論矣(칙역불찰어성인지논의)
夫不能行聖人之術(부불능행성인지술) 則舍爲天下役何事哉(칙사위천하역하사재)
可不哀邪(가불애사)
且夫儉節仁義之人立於朝(차부검절인의지인입어조)
則荒肆之樂輟矣(칙황사지락철의) 諫說論理之臣閒於側(간설론리지신한어측)
則流漫之志詘矣(칙류만지지굴의) 烈士死節之行顯於世(열사사절지행현어세)
則淫康之虞廢矣(칙음강지우폐의) 故明主能外此三者(고명주능외차삼자)
而獨操主術以制聽從之臣(이독조주술이제청종지신)
而修其明法(이수기명법) 故身尊而勢重也(고신존이세중야)
凡賢主者(범현주자) 必將能拂世磨俗(필장능불세마속)
而廢其所惡(이폐기소악) 立其所欲(입기소욕)
故生則有尊重之勢(고생칙유존중지세) 死則有賢明之謚也(사칙유현명지익야)
是以明君獨斷(시이명군독단) 故權不在臣也(고권불재신야)
然後能滅仁義之塗(연후능멸인의지도) 掩馳說之口(엄치설지구) :
困烈士之行(곤열사지행) 塞聰揜明(새총엄명)
內獨視聽(내독시청) 故外不可傾以仁義烈士之行(고외불가경이인의열사지행)
而內不可奪以諫說忿爭之辯(이내불가탈이간설분쟁지변)
故能犖然獨行恣睢之心(고능락연독행자휴지심) 而莫之敢逆(이막지감역)
若此然後可謂能明申韓之術(약차연후가위능명신한지술)
而脩商君之法(이수상군지법) 法脩術明而天下亂者(법수술명이천하란자)
未之聞也(미지문야)
故曰王道約而易操也(고왈왕도약이역조야)
唯明主爲能行之(유명주위능행지) 若此則謂督責之誠(약차칙위독책지성)
則臣無邪(칙신무사) 臣無邪則天下安(신무사칙천하안)
天下安則主嚴尊(천하안칙주엄존) 主嚴尊則督責必(주엄존칙독책필)
督責必則所求得(독책필칙소구득) 所求得則國家富(소구득칙국가부)
國家富則君樂豐(국가부칙군락풍) 故督責之術設(고독책지술설)
則所欲無不得矣(칙소욕무불득의) 羣臣百姓救過不給(군신백성구과불급)
何變之敢圖(하변지감도) 若此則帝道備(약차칙제도비)
而可謂能明君臣之術矣(이가위능명군신지술의)
雖申韓復生(수신한복생) 不能加也(불능가야)
따라서 형벌이 없으면 하찮은 것도 훔치게 되는 것입니다.
군주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하들을 질책하고 죄를 따져 물어 벌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존귀한 것이고
그런 까닭에 백성들이 죄를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검소하고 절약하고 어질고 의로운 자가 조정에 서면
방자한 쾌락이 사라지고,
도리에 맞는 간언을 하는 신하가 군주 곁에 있으면
방만한 의견들이 없어지고,
열사와 절개를 지킨 자들의 행위가 드러나면
음탕한 풍속이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 까닭에 이 세 부류의 인물을 멀리하는 군주라면
신하를 철저히 질책할 수 있어야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군주는 홀로 결정하며 그래야 신하에게 권력이 옮겨가지 않는 것입니다.
왕도란 간략하지만 현명한 군주라야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군주가 올바로 질책하면 간사한 신하가 사라집니다.
간사한 신하가 없으니 천하가 평안해지고,
천하가 평안해지니 나라가 부유해지고,
나라가 부유해지니 군주가 더욱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군주 밑에서 모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현명하신 황제께서 헤아리신다면
신불해와 한비자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더 보탤 것이 없을 것입니다.”
書奏(서주) 二世悅(이세열)
於是行督責益嚴(어시행독책익엄) 稅民深者爲明吏(세민심자위명리)
二世曰若此則可謂能督責矣(이세왈약차칙가위능독책의)
刑者相半於道(형자상반어도) 而死人日成積於市(이사인일성적어시)
殺人衆者爲忠臣(살인중자위충신)
二世曰(이세왈) 若此則可謂能督責矣(약차칙가위능독책의)
상소를 읽은 시황2세는 기뻐했다.
이후 신하에 대한 처벌이 더욱 엄격해졌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을 걷는 자를 유능한 관리라고 여겼다.
그 후 거리에 다니는 사람 절반이 형벌을 받았을 정도였고,
길거리에 사형당한 시신들이 쌓여갔다.
많은 사람을 죽인 자가 충신이라 여길 정도였다.
그러나 시황2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이 질책을 잘하기 때문이도다!”
初趙高爲郞中令(초조고위랑중령) 所殺及報私怨衆多(소살급보사원중다)
恐大臣入朝奏事毁惡之(공대신입조주사훼악지) 乃說二世曰(내설이세왈)
조고(趙高)가 낭중령(郎中令)에 오르자
그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가두거나 하였다.
심지어 대신들이 조정에서 자신을 나쁘다고 말할까 두려워 황제를 설득하였다.
天子所以貴者(천자소이귀자) 但以聞聲(단이문성)
羣臣莫得見其面(군신막득견기면) 故號曰朕(고호왈짐)
且陛下富於春秋(차폐하부어춘추) 未必盡通諸事(미필진통제사)
今坐朝廷(금좌조정) 譴擧有不當者(견거유불당자)
則見短於大臣(칙견단어대신) 非所以示神明於天下也(비소이시신명어천하야)
且陛下深拱禁中(차폐하심공금중)
與臣及侍中習法者待事(여신급시중습법자대사)
事來有以揆之(사래유이규지) 如此則大臣不敢奏疑事(여차칙대신불감주의사)
天下稱聖主矣(천하칭성주의)
“천자가 존귀한 까닭은
신하들은 천자의 음성만 들을 뿐이고 용안은 뵐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칭호도 짐(朕 사물이 제 모습을 나타나기 전 상태)이라 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젊으시니 모든 일에 능통할 수 없습니다.
지금 조정에 앉아서 신하를 질책하시거나 등용하실 때에
행여 옳지 않은 것이 있으면
대신들에게 단점을 보이는 것이니
그러면 황제의 신명함이 약해집니다.
당분간 궁궐 깊숙한 곳에서 팔짱을 끼고 계십시오.
안건이 생기면 익숙한 신하와 시중과 의논해 결정하시면
대신들이 감히 신명함을 의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천하의 백성들은 폐하를 훌륭한 군자라 칭송할 것입니다.”
二世用其計(이세용기계) 乃不坐朝廷見大臣(내불좌조정견대신)
居禁中(거금중) 趙高常侍中用事(조고상시중용사)
事皆決於趙高(사개결어조고)
高聞李斯以爲言(고문이사이위언)
乃見丞相(내견승상)
황제 2세가 이를 받아들여 궁궐 깊숙한 곳에 머물렀다.
이때 조고가 황제를 모시는 위세로
안건들을 모두 결정했고, 횡포는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사가 황제를 뵙고자 했다.
그러자 조고가 먼저 이사를 찾아왔다.
曰關東羣盜多(왈관동군도다) 今上急益發繇治阿房宮(금상급익발요치아방궁)
聚狗馬無用之物(취구마무용지물) 臣欲諫(신욕간) 爲位賤(위위천)
此眞君侯之事(차진군후지사) 君何不諫(군하불간)
“함곡관 동쪽에 도적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아방궁을 짓거나,
개나 말을 모으는데 빠져 계십니다.
제가 간언하려고 하나 직위가 미천합니다.
이런 일이야 말로 승상께서 하실 일인데
어찌 간언하지 않으십니까?”
李斯曰(이사왈) 固也(고야) 吾欲言之久矣(오욕언지구의)
今時上不坐朝廷(금시상불좌조정) 上居深宮(상거심궁)
吾有所言者(오유소언자) 不可傳也(불가전야) 欲見無閒(욕견무한)
이사가 대답했다.
“지금 폐하께서 조정에 나오지 않으시고
궁궐 깊숙한 곳에 머물러 계시니
간언을 드리려 해도 알현할 기회가 없소.”
趙高謂曰(조고위왈) 君誠能諫(군성능간)
請爲君候上閒語君(청위군후상한어군)
於是趙高待二世方燕樂(어시조고대이세방연락)
婦女居前(부녀거전) 使人告丞相(사인고승상)
上方閒(상방한) 可奏事(가주사)
丞相至宮門上謁(승상지궁문상알) 如此者三(여차자삼)
二世怒曰(이세노왈)
조고가 말했다.
“진실로 간언하시려 한다면
승상께만 폐하의 한가한 시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시황2세가 연회를 즐기며 미녀들과 함께 있을 무렵,
조고는 사람을 시켜 이사에게 전했다.
“지금 폐하께서 한가하니 와서 말씀을 올리십시오.”
이사가 궁문에 이르러 황제를 뵙기를 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세 번이나 거듭 요청하자 황제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吾常多閒日(오상다한일) 丞相不來(승상불래)
吾方燕私(오방연사) 丞相輒來請事(승상첩래청사) 丞相豈少我哉(승상개소아재)
且固我哉(차고아재)
“내가 한가로울 때는 승상은 오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연회를 즐기려고 하는데 문득 찾아와 아뢰려고 한다니,
감히 황제를 얕잡아 보는 것이오?”
趙高因曰(조고인왈) 如此殆矣(여차태의) 夫沙丘之謀(부사구지모)
丞相與焉(승상여언) 今陛下已立爲帝(금폐하이입위제)
而丞相貴不益(이승상귀불익) 此其意亦望裂地而王矣(차기의역망열지이왕의)
且陛下不問臣(차폐하불문신) 臣不敢言(신불감언)
丞相長男李由爲三川守(승상장남이유위삼천수)
楚盜陳勝等皆丞相傍縣之子(초도진승등개승상방현지자)
以故楚盜公行(이고초도공행) 過三川(과삼천) 城守不肯擊(성수불긍격)
高聞其文書相往來(고문기문서상왕래) 未得其審(미득기심)
故未敢以聞(고미감이문) 且丞相居外(차승상거외) 權重於陛下(권중어폐하) :
그러자 조고가 나서며 말했다.
“폐하, 그리 하시면 위험하십니다.
저 사구(沙丘)의 음모에 승상도 관여했습니다.
폐하께서는 황제에 오르셨지만 승상은 더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승상의 의도는 땅이라도 나누어 가져 왕이 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폐하께서 묻지 않으시기에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승상의 장남이 삼천군 태수로 있을 때
역적 진승 등이 이웃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도적들이 삼천군을 지나다녀도 군수가 잡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적과 군수 사이에
무슨 문서라도 오고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아직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아뢰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승상은 궁 밖에서 폐하보다 권세가 더 대단한 것이 사실입니다.”
二世以爲然(이세이위연) 欲案丞相(욕안승상) 恐其不審(공기불심)
乃使人案驗三川守與盜通狀(내사인안험삼천수여도통장)
시황2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승상을 심문하기 전에,
먼저 삼천군 태수와 역적들이 내통한 상황을 조사하도록 하였다.
李斯聞之(이사문지) 是時二世在甘泉(시시이세재감천)
方作觳抵優俳之觀(방작곡저우배지관) 李斯不得見(이사불득견)
因上書言趙高之短(인상서언조고지단)
이사는 이러한 움직임을 알았지만 황제는 감천궁에 있으면서 유휘와 연극을 구경하고 있어 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올려 조고의 단점을 말했다.
曰臣聞之(왈신문지) 臣疑其君(신의기군) 無不危國(무불위국)
妾疑其夫(첩의기부) 無不危家(무불위가)
今有大臣於陛下擅利擅害(금유대신어폐하천리천해)
與陛下無異(여폐하무이) 此甚不便(차심불변)
“신하와 군주가 알력이 생기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아내가 남편과 알력이 생기면 집안이 위태로워집니다.
지금 폐하를 모시고 있는 대신 중에
폐하만큼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가 있으니 이는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昔者司城子罕相宋(석자사성자한상송)
身行刑罰(신행형벌) 以威行之(이위행지) 朞年遂劫其君(기년수겁기군)
지난 날 송(宋)나라 재상인 자한(子罕)이
법을 집행하며 위엄있게 행동하더니 자신의 임금을 위협했습니다.
田常爲簡公臣(전상위간공신) 爵列無敵於國(작열무적어국)
私家之富與公家均(사가지부여공가균) 布惠施德(포혜시덕)
下得百姓(하득백성) 上得羣臣(상득군신) 陰取齊國(음취제국)
殺宰予於庭(살재여어정) 卽弑簡公於朝(즉시간공어조)
遂有齊國(수유제국) 此天下所明知也(차천하소명지야)
제나라 간공(簡公)의 신하 전상은 가장 높은 직위에 오르자
여러 신하들을 끌어들여 결국 간공을 시해하고 제나라를 차지했습니다.
今高有邪佚之志(금고유사일지지)
危反之行(위반지행) 如子罕相宋也(여자한상송야) 私家之富(사가지부)
若田氏之於齊也(약전씨지어제야) 兼行田常子罕之逆道(겸행전상자한지역도)
而劫陛下之威信(이겁폐하지위신) 其志若韓玘爲韓安相也(기지약한기위한안상야)
陛下不圖(폐하불도) 臣恐其爲變也(신공기위변야)
지금 조고는 사악한 뜻을 품고 반역을 행하려는 것이
자한이나 전상과 같은 자입니다.
폐하께서 지금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으시면
변란이 일어날까 심히 두렵습니다.”
二世曰(이세왈)
何哉(하재) 夫高(부고) 故宦人也(고환인야)
然不爲安肆志(연불위안사지) 不以危易心(불이위역심)
絜行脩善(혈행수선) 自使至此(자사지차)
以忠得進(이충득진) 以信守位(이신수위)
朕實賢之(짐실현지) 而君疑之(이군의지) 何也(하야) :
且朕少失先人(차짐소실선인) 無所識知(무소식지)
不習治民(불습치민) 而君又老(이군우노) 恐與天下絶矣(공여천하절의)
朕非屬趙君(짐비속조군) 當誰任哉(당수임재)
且趙君爲人精廉彊力(차조군위인정렴강력) 下知人情(하지인정)
上能適朕(상능적짐) 君其勿疑(군기물의)
황제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오?
조고는 환관이오.
그는 제멋대로 행하지 않았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고,
행실이 맑아 지금의 지위에 이르렀소.
충성으로 승진한 것이고
신의로써 자신을 지키는 자요.
그를 의심하다니, 무슨 이유요?
나는 백성을 다스리기에 능숙하지 않고,
그대는 늙었으니
짐이 조고에게 국사를 맡기지 않으면
누구에게 맡긴단 말이오?
그는 민심을 알고 위로는 짐의 뜻을 아는 자이니
그를 의심하지 마시오.”
李斯曰不然(이사왈불연) 夫高(부고) 故賤人也(고천인야)
無識於理(무식어리) 貪欲無厭(탐욕무염) 求利不止(구리불지)
列勢次主(열세차주) 求欲無窮(구욕무궁) 臣故曰殆(신고왈태)
이사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고는 미천한 출신이라 도리에 밝지 못하고,
탐욕은 끝이 없어 권력은 무소불위합니다.
그래서 위험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二世已前信趙高(이세이전신조고) 恐李斯殺之(공이사살지) 乃私告趙高(내사고조고)
高曰(고왈)
丞相所患者獨高(승상소환자독고) 高已死(고이사)
丞相卽欲爲田常所爲(승상즉욕위전상소위)
於是二世曰(어시이세왈) 其以李斯屬郞中令(기이이사속랑중령)
황제는 조고를 신임하고 있기에
승상 이사가 혹시라도 조고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 사실을 조고에게 알려줬다.
조고가 말했다.
“승상의 걱정거리는 국사가 아니라 오직 이 조고뿐입니다.
제가 죽으면 승상은 곧 전상과 같은 반역을 행하려 할 것입니다. ”
그러자 황제가 말했다.
“이사를 낭중령 조고에게 넘겨 조사하도록 하라!”
趙高案治(조고안치이사) 李斯拘執束縛(이사구집속박)
居囹圄中(거령어중) 仰天而歎(앙천이탄)
이사는 곧 붙잡혀가 조고의 심문을 받아야 했다.
감옥에 갇힌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했다.
曰嗟乎(왈차호) 悲夫(비부) 不道之君(불도지군)
何可爲計哉(하가위계재) 昔者桀殺關龍逢(석자걸살관룡봉) 紂殺王子比干(주살왕자비간) 吳王夫差殺伍子胥(오왕부차살오자서)
此三臣者(차삼신자) 豈不忠哉(개불충재) 然而不免於死(연이불면어사)
身死(신사) 而所忠者非也(이소충자비야) 今吾智不及三子(금오지불급삼자)
而二世之無道過於桀紂夫差(이이세지무도과어걸주부차)
吾以忠死(오이충사) 宜矣(의의)
且二世之治豈不亂哉(차이세지치개불란재)
日者夷其兄弟而自立也(일자이기형제이자입야) 殺忠臣而貴賤人(살충신이귀천인) 作爲阿房之宮(작위아방지궁)
賦斂天下(부렴천하) 吾非不諫也(오비불간야) 而不吾聽也(이불오청야) :
“아, 슬프도다!
도리를 모르는 군주에게 무슨 계책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옛날 하나라 걸왕은 관용봉(關龍逢)을 죽였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比干)을 죽였으며, 오나라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충성을 바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죽음을 모면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군주가 도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그들보다 못하고 시황2세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보다 심하니
내가 죽는 것은 당연하도다.
장차 이 나라가 어찌 어지럽지 않겠는가?
형제를 살육하고 즉위했고,
충신을 죽이고 미천한 자를 귀하게 여기고,
아방궁을 짓느라 백성들을 수탈하고,
내가 직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군주가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이다.
凡古聖王(범고성왕) 飮食有節(음식유절) 車器有數(차기유수)宮室有度(궁실유도) 出令造事(출령조사) 加費而無益於民利者禁(가비이무익어민리자금)
故能長久治安(고능장구치안)
훌륭한 임금들은 음식에도 절제가 있었고,
수레나 물건에도 정해진 것이 있었고,
궁궐을 짓는데도 한도가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백성에게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은 금하였다.
그래서 오래도록 평안하게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今行逆於昆弟(금행역어곤제) 不顧其咎(불고기구)
侵殺忠臣(침살충신) 不思其殃(불사기앙)
大爲宮室(대위궁실) 厚賦天下(후부천하)
不愛其費(불애기비) 三者已行(삼자이행) 天下不聽(천하불청)
今反者已有天下之半矣(금반자이유천하지반의)
而心尙未寤也(이심상미오야) 而以趙高爲佐(이이조고위좌)
吾必見寇至咸陽(오필견구지함양) 麋鹿游於朝也(미록유어조야)
황제는 지금 어긋난 행위를 하고도 그 허물을 알지 못하고,
충신을 죽이면서 그 재앙을 생각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거둔 세금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이 세 가지 못된 일로 곧 만 천하의 백성들이 황제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지금 조정은 사악한 반역자들이 차지하고 있건만
황제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조고를 마치 국사로 삼아 국정을 맡기고 있으니,
반드시 도적들이 이 궁궐에 쳐들어와서 쑥대밭을 만들고 말 것이다.”
於是二世(어시이세) 乃使高案丞相獄(내사고안승상옥) 治罪(치죄)
責斯與子由謀反狀(책사여자유모반장) 皆收捕宗族賓客(개수포종족빈객)
趙高治斯(조고치사) 榜掠千餘(방약천여) 不勝痛(불승통)
自誣服(자무복) 斯所以不死者(사소이불사자) 自負其辯(자부기변)
有功(유공) 實無反心(실무반심) 幸得上書自陳(행득상서자진)
幸二世之寤而赦之(행이세지오이사지)
李斯乃從獄中上書曰(이사내종옥중상서왈)
시황2세가 이사를 처벌하도록 하자,
이사와 아들 유는 반란죄로 구속되었고,
그의 일가친족, 가신, 빈객들도 모조리 공범으로 잡혀 들어갔다.
조고는 이사를 심문하면서
1천 번이나 매질하고 고문하여
결국 이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로 자백하고 말았다.
이사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공로가 있었고,
실제 모반할 마음이 없었고,
황제에게 진정서를 올릴 경우 용서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옥중에서 상소를 올리게 되었다.
臣爲丞相治民(신위승상치민) 三十餘年矣(삼십여년의)
逮秦地之陜隘(체진지지합애) 先王之時秦地不過千里(선왕지시진지불과천리)
兵數十萬(병수십만) 臣盡薄材(신진박재) 謹奉法令(근봉법령)
陰行謀臣(음행모신) 資之金玉(자지금옥) 使游說諸侯(사유설제후) 陰脩甲兵(음수갑병) 飾政敎(식정교) 官鬪士(관투사)
尊功臣(존공신) 盛其爵祿(성기작록) 故終以脅韓弱魏(고종이협한약위)
破燕趙(파연조) 夷齊楚(이제초) 卒兼六國(졸겸육국)
虜其王(로기왕)立秦爲天子(입진위천자)
罪一矣(죄일의)
“신이 승상을 지낸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진나라의 영토가 1천리를 넘지 못하고
병력도 몇 십 만 명에 지나지 않았을 때,
신은 변변치 않은 재주로 부름을 받아 법령을 제정하고,
제후들을 설득하고,
군비를 갖추고 정치와 교육을 정비했으며
공신을 존중해 직위와 봉록을 충분히 내렸습니다.
그리고 주변 여섯 나라를 통합하여 진나라의 천자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번째 죄입니다.
地非不廣(지비불광) 又北逐胡貉(우북축호맥)
南定百越(남정백월) 以見秦之彊(이견진지강)
罪二矣(죄이의)
더욱 약진하여 북쪽으로 호(胡)와 맥(貉)을 쫓아내고
남쪽으로 백월을 평정해 진나라의 강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두 번째 죄입니다.
尊大臣(존대신) 盛其爵位(성기작위) 以固其親(이고기친)
罪三矣(죄삼의)
대신들을 존중해
군주와 신하 사이를 친밀하게 한 것이
저의 세 번째 죄입니다.
立社稷(입사직) 脩宗廟(수종묘) 以明主之賢(이명주지현)
罪四矣(죄사의)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구축해 황제의 현명함을 밝혔습니다.
이것이 저의 네 번째 죄입니다.
更剋畫(갱극화) 平斗斛度量文章(평두곡도량문장)
布之天下(포지천하) 以樹秦之名(이수진지명)
罪五矣(죄오의)
도량형을 통일시키고
천하에 널리 알려 진나라의 명성을 수립한 것이
저의 다섯 번째 죄입니다.
治馳道(치치도) 興游觀(흥유관) 以見主之得意(이견주지득의)
罪六矣(죄육의)
수레가 달릴 수 있는 도로를 닦아
황제가 지방을 순시할 수 있도록 하여
의기양양 다니도록 한 것이
저의 여섯 번째 죄입니다.
緩刑罰(완형벌) 薄賦斂(박부렴)
以遂主得衆之心(이수주득중지심) 萬民戴主(만민대주) 死而不忘(사이불망)
罪七矣(죄칠의)
또한 형벌을 낮추고
백성들의 세금을 덜어주어
모든 백성들이 황제의 은혜를 잊지 못하도록 한 것이
일곱 번째 죄입니다.
若斯之爲臣者(약사지위신자) 罪足以死固久矣(죄족이사고구의)
上幸盡其能力(상행진기능력) 乃得至今(내득지금)
願陛下察之(원폐하찰지)
이제 신하된 자로서 죄를 지었으니 죽어 마땅하오나,
폐하께서 저의 능력을 다하게 하시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으니 삼가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書上(서상)
趙高使吏弃去不奏(조고사리기거불주)
曰囚安得上書(왈수안득상서)
이 글이 올라오자 조고는 당장 폐기하라고 명했다.
“죄수가 어찌 폐하께 글을 올린단 말인가?”
趙高使其客十餘輩(조고사기객십여배) 詐爲御史謁者(사위어사알자)
侍中(시중) 更往覆訊斯(갱왕복신사)
斯更以其實對(사갱이기실대) 輒使人復榜之(첩사인복방지)
後二世使人驗斯(후이세사인험사) 斯以爲如前(사이위여전)
終不敢更言(종불감갱언) 辭服(사복) 奏當上(주당상) 二世喜曰(이세희왈)
조고는 몰래
자신의 수하부하를 심문하는 관리로 변장시켜
이사를 심문하게 하였다.
이사가 자백을 번복하면 매질을 해서
허위자백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나중에 궁궐 관리가 심문했는데
이사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허위자백을 하고야 말았다.
끝내 자신의 무고함을 밝히지 못하였던 것이다.
죄가 확실하다고 알려지자
시황2세는 기뻐하며 말했다.
微趙君(미조군) 幾爲丞相所賣(기위승상소매)
“조고, 그대가 아니었다면 내가 승상에게 속을 뻔 했소!”
及二世所使案三川之守至(급이세소사안삼천지수지)
則項梁已擊殺之(칙항량이격살지) 使者來(사자래)
會丞相下吏(회승상하리) 趙高皆妄爲反辭(조고개망위반사)
二世二年七月(이세이년칠월) 具斯五刑(구사오형)
論腰斬咸陽市(논요참함양시)
斯出獄(사출옥) 與其中子俱執(여기중자구집)
顧謂其中子曰(고위기중자왈)
이어 삼천군 태수인 아들 류를 조사하려고 병사를 파견했으나,
반란군 항량에게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결국 승상 이사는 모반죄로
함양의 시장 바닥에서 허리가 잘리는 사형을 받게 되었다. 함께 투옥됐던 둘째 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吾欲與若復牽黃犬(오욕여약복견황견)
俱出上蔡東門逐狡ꟙ(구출상채동문축교토)
“내가 너와 함께 고향에 토끼 사냥을 가려고 했는데, 이젠 어쩔 수가 없구나!”
豈可得乎(개가득호) 遂父子相哭(수부자상곡)
而夷三族(이이삼족)
마침내 부자는 서로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이사의 삼족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李斯已死(이사이사) 二世拜趙高爲中丞相(이세배조고위중승상)
事無大小輒決於高(사무대소첩결어고)高自知權重(고자지권중)
乃獻鹿(내헌록) 謂之馬(위지마)
이사가 죽고, 시황2세는 조고를 예우해 중승상(中丞相)으로 삼았다.
국정에 관한 모든 일은 조고에게 보고되고 조고에 의해 결정되었다.
한 번은 자신의 권한이 막중해진 것을 알고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二世問左右(이세문좌우) 此乃鹿也(차내록야)
左右皆曰(좌우개왈) 馬也(마야)
그러자 황제가 물었다.
“말이라니? 이것은 사슴이 아니오?”
그러자 신하들이 모두 대답했다.
“말이옵니다!”
二世驚(이세경) 自以爲惑(자이위혹) 乃召太卜(내소태복)
令卦之(령괘지) 太卜曰(태복왈) 陛下春秋郊祀(폐하춘추교사) 奉宗廟鬼神(봉종묘귀신) 齋戒不明(재계불명)
황제가 놀라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
태복(太卜)을 불러 점을 치게 했다.
“폐하께서 종묘제사를 지낼 때 정하고 금하는 것이 분명치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재계하시고 많은 덕을 쌓으셔야 합니다.”
故至于此(고지우차) 可依盛德而明齋戒(가의성덕이명재계)
於是乃入(어시내입) 上林齋戒(상림재계)
日游弋獵(일유익렵) 有行人入上林中(유행인입상림중)
二世自射殺之(이세자사살지)
趙高敎其女壻咸陽令閻樂劾(조고교기녀서함양령염락핵)
不知何人賊殺人移上林(불지하인적살인이상림)
시황2세는 몸과 마음을 재계한다고 하면서
상림원에 들어가 매일 사냥이나 하면서 노닐었다.
한 번은 어떤 이가 상림원에 들어왔다가
황제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조고가 그 소식을 듣고는 사위 염락을 시켜 고발하도록 하였다.
“누군가 사람을 죽여 상림원에 옮겨놓은 자가 있다.”
高乃諫二世曰(고내간이세왈) 天子無故賊殺不辜人(천자무고적살불고인)
此上帝之禁也(차상제지금야) 鬼神不享(귀신불향)
天且降殃(천차강앙) 當遠避宮以禳之(당원피궁이양지)
二世乃出居望夷之宮(이세내출거망이지궁)
조고가 황제에게 말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자라도 하늘이 금하는 것입니다.
이제 귀신도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늘은 재앙을 내릴 겁니다.
그러니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재앙을 물리치는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시황2세가 고개를 끄덕이며
멀리 망이궁(望夷宮)으로 나가 살았다.
留三日(류삼일) 趙高詐詔衛士(조고사조위사)
令士皆素服持兵內鄕(령사개소복지병내향) 入告二世曰(입고이세왈)
山東羣盜兵大至(산동군도병대지)
사흘 후, 조고는 궁궐 경비대에게 위조한 조칙을 내려 보냈다.
경비대는 모두 흰 옷을 입고 무장한 채 궁으로 들어오게 하고,
그것을 시황2세에게 산동의 도적떼가 쳐들어왔다고 알렸다.
二世上觀而見之(이세상관이견지) 恐懼(공구)
高卽因劫令自殺(고즉인겁령자살) 引璽而佩之(인새이패지)
시황2세가 궁궐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정말 같았고 두려웠다.
이 틈을 타 조고는 시황2세를 위협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하였다.
그리고 옥새를 손에 넣고 자신은 황제의 복장을 갖춰 입었다.
左右百官莫從(좌우백관막종) 上殿(상전) 殿欲壞者三(전욕괴자삼)
高自知天弗與(고자지천불여) 羣臣弗許(군신불허)
乃召始皇弟(내소시황제) 授之璽(수지새)
그런데 좌우 백관들이 아무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제왕의 자리에 오르려 했지만
세 번이나 궁전이 무너져 오르지 못했다.
그 순간 조고는 하늘이 자신을 돕지 않고
백관들도 허락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시황제의 손자인 자영(子嬰)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子嬰卽位(자영즉위) 患之(환지) 乃稱疾不聽事(내칭질불청사)
與宦者(여환자) 韓談及其子謀殺高(한담급기자모살고)
高上謁(고상알) 請病(청병) 因召入(인소입)
令韓談刺殺之(령한담자살지) 夷其三族(이기삼족)
자영이 즉위하면서
조고를 두려워해 병을 핑계 삼아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서 몰래 환관 한담(韓談)과 그의 아들과 함께
조고를 살해할 모의를 꾸몄다.
마침 조고가 문병을 청해오자 불러들였다.
옆에 있던 한담이 칼로 조고를 찔러 죽였다.
이어서 조고의 삼족을 신속히 멸하고 말았다.
子嬰立三月(자영입삼월) 沛公兵從武關入(패공병종무관입)
至咸陽(지함양) 羣臣百官皆畔(군신백관개반)
不適(불적) 子嬰與妻子自係其頸以組(자영여처자자계기경이조)
降軹道旁(강지도방) 沛公因以屬吏(패공인이속리)
項王至而斬之(항왕지이참지) 遂以亡天下(수이망천하)
자영이 즉위한 지 석 달, 패공(沛公 유방)의 군사가 함양에 이르렀다.
모든 문무백관들은 대항하지 않았다.
신하들이 모두 자신을 배반한 것을 알게 된 자영은
처자와 더불어 옥새를 목에 걸고서 패공에게 항복하였다.
패공이 그를 관리에게 넘겼으나 항우가 와서 자영의 목을 베었다.
마침내 진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太史公曰(태사공왈)
李斯以閭閻歷諸侯(이사이여염력제후) 入事秦(입사진)
因以瑕釁(인이하흔) 以輔始皇(이보시황)
卒成帝業(졸성제업) 斯爲三公(사위삼공)
可謂尊用矣(가위존용의) 斯知六蓺之歸(사지육예지귀)
不務明政以補主上之缺(불무명정이보주상지결)
持爵祿之重(지작록지중) 阿順苟合(아순구합) 嚴威酷刑(엄위혹형) 聽高邪說(청고사설)
廢適立庶(폐적입서) 諸侯已畔(제후이반)
斯乃欲諫爭(사내욕간쟁) 不亦末乎(불역말호)
人皆以斯極忠(인개이사극충) 而被五刑死(이피오형사)
察其本(찰기본) 乃與俗議之異(내여속의지이)
不然(불연) 斯之功且與周召列矣(사지공차여주소열의)
태사공은 말한다.
“이사는 미천한 출신이었으나 진시황을 보필해 황제의 대업을 이루었고,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육예(六藝)의 근본을 알면서도 정치는 공명정대하게 하지 못했다.
지위와 재물이 있었으면서도 군주에게 아첨하고 구차하게 영합하며 살았다.
형벌을 혹독하게 제정하고 조고의 간사한 말을 듣고서도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즉위시켰다.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킨 뒤에 직언을 하려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사람들은 이사가 극진하게 충성을 다했는데도 사형을 당한 줄 알지만
그 본말을 살펴보면 세속의 공론과는 다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사의 공적도 확인
주공이나 소공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만하였을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강의도 잘 들었습니다.
가정 형편상 계속 강의를 들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부회장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