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온 가족이 모이는 곳이자 때론 외부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사랑채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의 거실은 보이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정은진 씨가 연출한 거실은 철저히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필요에 의해 디자인한 공간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다.
그러고 보니
주방 옆에는 식탁도 없다. 처음에는 가죽 소파 자리에 유행하는 빅 테이블을 두었는데, 손님을 초대할 때 빼고는 잘 앉지 않게 되더라는 것.
주방과 함께 있는 메인 거실에는 TV를 치우고 소파와 오디오 기기만 두었더니 낮에는 주로 둘째 도헌이랑 마주 앉아 책 읽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부엌은 주부에겐 거실만큼 특별한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늑하고 편리해야 하며 취향과도 잘 맞아야 한다. 부엌을 디자인할때 가장
먼저 결정하는 부분은 브랜드 제품을 사용할 것인가, 맞춤 제작 제품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무래도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높고, 인조
대리석을 선택하자니 마뜩잖다는 정은진 씨. 그래서 선택한 것이 거푸집에 시멘트를 부어 현장에서 뚝딱 만든 아일랜드 조리대다. 보통 다른 집에
커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를 시공할 때는 이론상으로만 편하다고 얘기했는데, 실제 사용해보니 그렇게 편리할 수가 없단다. 무엇보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가족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한쪽 벽에 수납장을 짜 넣고 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을 매입하니 집은
한결 정돈되어 보이지만 수납장이 턱없이 부족했다. 아일랜드 조리대 아래도 그릇장을 추가하고 한쪽에 콘솔처럼 폭이 좁은 수납장을 짜 넣어 해결.
그릇 수납장이 깊을 필요는 없다는 설명을 덧 붙인다.
가장 큰 방을 아이 방으로, 가장 작은 방을 부부 침실로 사용한 발상 전환
공간 배치도 재미있다. 침실에는 그저 커다란 침대와 사이드 테이블, 은은한 조명등 정도가 전부다. 침실은 온전히 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결 고운 한지 벽지로 마감하고 작은 선반을 벽에 달아 미니 사이드 테이블로 활용한다.
1 오로지 휴식하는 침잠의 공간,
침실. 한지 벽지를 발라 더욱 고요하고 아늑하다.
2 후드를 생략한 주방 벽면에도 작품을 걸었다. 이강욱
씨의 추상 작품.
3 책상처럼
높은 테이블을 두어 부부가 나란히 앉아 TV를 보거나 일을 한다. 서류꽂이, 선반이 더해진 테이블은 맞춤 제작한 것. 바퀴가 달려 이동이
간편하다.
4 아이 방 한쪽에 마련한 책 읽는 공간. 박스 형태로 수납장을 짜고 매트를 깔아 데이 베드로
활용한다.
5
공간에 포인트를 주는 보라색 유화 작품은 일본의 신예 작가 신타로 오하타 Shintaro Ohata의
처녀작.
6 아일랜드 조리대 아래에는 정수기, 밥솥 등 가전제품을 수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다.
그림 걸어주는
여자
그의 집을 이야기할 때 집 안 곳곳에 걸어둔 그림이나 사진 작품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의 위치는
치밀하지 않다. 높이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주방 환풍기 옆에도 동그란 추상화가 걸려 있을 정도!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유학 시절부터
미술 작품을 하나씩 모아온 컬렉터다. 이동재, 신동원, 서상익, 백승우, 이강욱, 노세환 씨 등 주로 국내 작가와 히로시 스키모토, 고레히코
히노 등 일본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가 그림을 선택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컬렉팅이 아니어서
작품을 볼 때는 오로지 취향과 집에 걸었을 때의 이미지를 먼저 고려한다. 뮤지션 존 레넌을 워낙 좋아하는 그는 이동재, 서상익 작가의 존 레넌
작품을 마주 보게 배치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과 두 아들은 그림을 바꿔 걸어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좋아한단다.
“문화가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바닥에 작품을 턱 놓아두었어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요. 조심해야한다고
주의를 주니 식당에서도, 미술관에서도 조용하죠. 둘째 아이는 작가 작업실에 함께 놀러 가거나 전시회에 자주 데려가니 남다른 질문을 해요.
창의력은 물론 섬세한 감수성까지 다른 거죠.” 그림이 있으면 집이 행복해진다고 단언하는 정은진 씨. 그림은 보통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사보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하다못해 아트 숍에서 파는 포스터라도 사서 걸어볼 것. 투자 가치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내 감성에 어울리는 그림, 내 가족이 좋아할 그림을 한번 골라보자. 사실 ‘잇 백’ 하나 덜 사면 되는 일 아닌가. 주부 스스로
즐겨야 아이도 즐기고 남편도 즐길 수 있다.
살림 살아본 여자의 노하우, 정은진 씨가 전하는 인테리어
팁
1 다이닝 룸에는 식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편한 것이 바로 아일랜드 조리대다. 아일랜드
부엌은 중앙에 섬처럼 별도의 작업 공간을 만드는 것인데, 디자인에 따라 다양한 수납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동선이 편리한 것이 장점. 음식을
만드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싱크대 사이를 쉽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 어 좁은 공간에도 오히려 잘
맞는다.
2 요즘 침실의 구성 요소는 점차 간소화되고
있다. 공간이 필요 이상으로 넓다면 가벽을 세워 두 가지 용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가벽을 세우고 건너편은 드레스 룸이나 피트니스
룸으로 활용하면 그만.
3 마지막으로 조명 계획이
중요하다. 조명이 훌륭하면 낡은 소파도 근사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가구를 배치해도 소용없기 때문. 보통 펜던트 조명등은
공간의 한가운데에 설치하는데, 한쪽 옆으로 살짝 치우치게 하는 것도 감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