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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 오후, 저희집에서 가까운 과지초당 (瓜之草堂)에 구경갔습니다. 과지초당은 추사 김정희 선생께서 말년에 약 4년을 보낸 곳입니다. 과지초당의 과(瓜) 자는 '오이'를 뜻한다. 추사께서 거처하시던 시절, 주변에 오이밭 아니면 참외밭이 널려 있어서 초당의 이름을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10월9일 정오 풍경. 바로 옆 추사박물관 구경도 할 겸해서 또 갔습니다. ^^ 과지초당의 누마루에는 추사께서 절친 이재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 글에서 따 온 摩穿十硏 (마천십연), 禿盡千毫 (독진천호) 주련이 붙어있다. 吾書雖不足言 (오서수부족언) 七十年 (칠십년) 摩穿十硏 (마천십연) 禿盡千毫 (독진천호) "제 글씨는 비록 족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칠십년 동안 벼루 열개를 갈아 구멍을 냈고, 천자루의 붓을 닳게 했습니다." 과지초당 정면의 기둥에도 촌로의 가장 큰 즐거움을 나타내는 "대팽두부.고회부처" 주련이 걸려 있다. 추사의 예서체 대련: 대팽두부.고회부처 대팽두부과강채 : 최고로 좋은 반찬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채소요, 고회부처아녀손 : 최고 가는 훌륭한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라 "이것은 시골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다. 최상의 즐거움이 비록 허리춤에 말(斗)만한 큰 황금인장을 차고 몇 장 길이의 밥상 앞에 시중드는 여인이 수백 명있다 하더라도 능히 이런 맛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농(古農)을 위해 쓰다. 칠십일과(七十一果)"
완당이 71세에 남긴 마지막 예서체 대련 <대팽두부>는 완당이 살아 온 인생의 종착점이 어디였는지를 말해주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그것은 글 내용과 글씨에서 완당의 예술이 평범성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최말년의 대련이다. 잘 쓰겠다는 의지를 갖지도 않은 상태에서 절로 드러난 무심의 명작이라 할 만하다. - 유홍준의 완당평전 2권 -
과지초당 앞의 아담한 연못 수련이랑 토란같이 생긴 수생식물 |
첫댓글 과지초당. 과천이라니 한 번 가보고 싶네요. 헷살이 너무 따사롭네요.
저도 이른 시간 내 한번 방문하고 싶네요,실크 동창 분들과 가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바로 옆에 추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오면 더욱 좋습니다. 탁본도 직접 해볼 수 있거든요.
한잔하고 일필휘지라, 과연 추사 선생이네요.
한번 가보고 싶은데 주소를 주시면 좋겠네요. 부탁합니다.
과지초당 바로 옆에 새로 지은 '추사박물관'이 있습니다. (경기 과천시 주암동 184-2)
추사박물관을 주소로 해서 찾아가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