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 찾기 프로젝트
:있긴 한걸까
"흔들린다고 했잖아."
여전히 내 입술과 맞닿은 김태형의 입술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와 달리 나는, 김태형과의 오랜 키스에 잔뜩 숨을 헐떡이고 있는 채였다. 그럼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김태형은 다시 한 번 내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춰왔고, 이번엔 머지않아 쉽게 떨어졌다. 그에 다시 한 번 고르지 못한 숨을 헐떡이고 있자, 김태형은 아무 말 없이 그런 날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남자와의 키스도 지금이 처음이고, 전후 상황도 모른 채 갑작스레 입을 맞춰버리니 아무런 말도 입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스런 나머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고 있자, 가만히 있던 김태형이 고개를 숙여 나의 어깨 위에 얼굴을 묻었다.
"계속 흔들려 줘."
"........"
"제발."
"......."
계속 흔들려달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잔뜩 내뱉고서 마침표를 그은 김태형이, 그대로 내 품 위로 쓰러졌다. 그에 겨우겨우 김태형을 받아내며 그게 무슨 소리야. 잠시만. 잠시만 일어나봐. 김태형! 하고 김태형을 불러보았지만, 김태형은 미동이 없었다. 아마 나와 키스를 하며 술기운이 더 올라와 그런 것 같았다. 입안에 달갑지 않은 쌉싸름한 술맛이 가득히 맴돌았다. 괜히 붉어지는 얼굴에 연신 고개를 가로 젓자, 힘이 쭉 빠진 김태형의 몸이 더욱 깊숙이 나의 품에 안겨왔다. 그에 하는 수 없이 김태형을 품에 안고서 발걸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옮기기 시작하자, 갑작스레 김태형이 아닌 누군가가 나의 손목을 잡아왔다.
"어? 박지민?"
"기다리랬더니 사라져 버리고."
"...아, 그게,"
"전화했더니 전화도 안받고."
그래서 집에 와본건데, 둘이 뭐하고 있는거야, 지금? 잔뜩 낮아진 박지민의 목소리가 조용히 내 귓가를 메웠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 박지민의 얼굴은 뚜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잔뜩 굳어있는 입꼬리만 봐도 지금 많이 화나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에 잔뜩 얼어붙은 내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있자, 아무 말 없이 옅은 한숨을 내쉰 박지민이 내게서 김태형을 떼어냈다. 그리곤 곧바로 등을 내어 김태형을 업어 들었고, 일단 들어가자. 들어가서 설명해줘. 하며 입을 열었다. 아, 문. 문 열어야지.
집에서 나올 때 알아두었던 비밀번호를 빠르게 입력한 뒤 문을 활짝 열자, 박지민이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김태형을 업은 채 발을 들였다. 그에 졸졸 그 뒤를 쫓아 집 안으로 들어가자, 박지민이 쇼파에 김태형을 내동댕이 치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박지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에 쭈뼛쭈뼛 함부로 앉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박지민의 곁에 서 있자, 쇼파 옆에 있던 물티슈를 쥔 박지민이 시선을 허공에 둔 채 내게 물티슈를 건넸다. 닦아.
"...어?"
"입술. 번졌어."
"입술..?"
아. 미친. 물티슈를 받아든 채 멀뚱멀뚱 박지민을 바라보고만 있던 내가 뒤늦게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키스 하다가 립스틱 번졌나봐. 어떡해. 그에 민망해진 내가 허겁지겁 물티슈로 내 입술을 닦아내자, 박지민의 시선이 그제서야 내게로 향했다. 점심때 보았던 얼굴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지민은 이유 모를 한숨만 가득 내뱉어냈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김태형이 누운 쇼파 곁에 털썩 주저 앉았다.
"키스는, 왜 한거야?"
"....그게,"
"너 김태형 좋아해?"
"........."
"....김태형은, 너 좋아하는거 같아?"
"........"
박지민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걸까. 애써 박지민의 시선을 피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자, 박지민이 나의 손을 잡고 당기며 자신의 곁에 날 앉혔다. 순식간에 박지민과 나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졌다. 순간 훅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어 박지민과 거리를 두려하자, 다시금 박지민이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거리가 더더욱 좁혀지고, 박지민의 숨소리가 보다 더 뚜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떠보인 내가 요동치는 시선으로 박지민을 바라보자, 박지민의 시선과 진득이 맞닿았다. 심장이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너무 가까워서 그런걸까? 심장소리 들리면 어쩌지?
"그럼 난?"
"........"
"난 항상 말해왔잖아. 너 좋아한다고."
".........."
"난 좋아하는 여자한테 헷갈리게 안해."
"........."
"아직도 모르겠어?"
날 바라보는 박지민의 시선이 느리게 일렁였다. 박지민의 입은 마침표를 찍었지만, 난 그 어떠한 답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상황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 주제에 말을 해. 그에 역시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닫고 있자,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박지민이 두 눈을 부르르 떨며 감았다 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참아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부족이였는지 결국 조용히 욕을 읊으며 고개를 돌려내었고, 내게서 얼굴을 감추자마자 조금씩 몸을 떨기 시작했다. 혹시 우는건가..? 어떡해. 미치겠네 진짜..
"...기다릴 수 있어."
"........."
"나한테 진심이랬잖아.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말이니까 기다릴 수 있어. 그런데."
".........."
"이렇게 보니까 조금 억울하다."
"............"
"누군 친구랍시고 술 취해서 키스해도 친구고."
"..........."
"난 니 친구가 날 좋아한다는 이유로 금세 남이 되버리는 거야?"
"..........."
"난 시작도 못했어. 이제 너랑 잘해보려고, 이제 막 너랑..!"
마지막 마디와 함께 박지민의 시선이 다시금 내게로 향했다. 박지민의 두 눈가는 역시나 축축이 젖어있는 채였다. 그 새 많이 울었던건지 눈가가 붉어져 있었고, 코끝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날 바라보는 박지민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그에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박지민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자, 박지민이 두 손을 모아 내 손을 붙잡았다.
"너도 진심이었다고 했잖아. 왜 니 친구가 날 좋아하는 대가를 내가 치뤄야해...?"
"............."
"친구가 니 감정보다 중요한거야? 아님, 날 좋아했던 마음이 딱 거기까지였던거야?"
"............"
"아니잖아. 그때 그 고백, 아무 의미 없던거 아니잖아. 너가 진심이었다고 했잖아."
".........."
"대답해줘. 진심이었잖아. 응?"
박지민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억지로 울음을 참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물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채였다. 하지만 그런 박지민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내 입은 점점 더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알겠네. 니 친구가 박지민을 좋아한단 이유로 마음을 접었던거야? 그럼 술자리에서 고백은 왜 한건데? 친구 잊고 제대로 사겨보려고 마음 먹었던거야? 그럼 김태형과 김석진은? 도대체 뭘 어쩌려고 했던거야 김여주.
"진심 맞아."
"........"
"진심 맞는데."
"........."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
"미안."
염치가 없어 차마 눈을 맞추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김여주가 아니니까. 그에 말을 끝마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이자, 한동안 정적이 우리 둘 사이를 맴돌았다. 내 손을 꽉 잡아온 박지민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에 그런 박지민의 손 위로 내 손을 덮자, 내 손등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한 방울. 두 방울. 여러 방울이 내 손등 위로 얼룩지고 나서야 그 주인이 박지민이 아닌 나였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내가 울고 있다니. 내가 왜? 왜 울고 있는거지? 미안해서? 매몰찬 김여주에게 여러번 차이고 있는 박지민한테 감정 이입이라도 한거야?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었다. 지금 당장 박지민이 안쓰러운 것은 맞지만, 그게 눈물까지 흘릴 정도인가 싶었다.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생각에 잠겨있자, 박지민의 손이 불쑥 나에게로 다가왔다. 이어 박지민의 손이 내 턱을 살짝 잡아 들어올리자, 다시금 박지민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린 채인 박지민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에 아무 말 없이 박지민을 바라보고 있자, 박지민의 손이 움직여 내 뒷목을 감쌌다.
순식간에 박지민의 입술이 나의 입술과 맞닿았다. 분위기에 홀린걸까. 나 역시 아무런 스스럼 없이 박지민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부드럽고 몰캉한 것이 계속해서 날 붙잡았다. 둘 다 울고 있어서였는지 우리의 뺨이 서로 스칠 때마다 차가운 것이 묻어나고, 이 진득한 입맞춤에서 얼핏 짠맛이 난 것도 같았지만 둘 중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키스하는 도중 나도 모르게 감았던 두 눈을 스르르 떠 보이자, 여전히 울고 있는 박지민의 예쁜 두 눈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혹시 나도 지금 울고 있을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입맞춤을 하다 정신을 차린 내가 먼저 맞물린 내 입술을 떼어내었다. 그에 박지민 역시 감았던 두 눈을 떠보이며 내게서 멀어졌지만,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로 향해 있었다. 키스하기 전보다 더 무거워진 정적이 우리를 가득 에워쌌다. 그에 박지민과 맞추었던 내 입술을 살짝 긁듯이 깨물며 박지민에게서 시선을 떼어내자, 여주야. 하는 박지민의 부름이 들려왔다.
"말했잖아. 기다린다고."
"..........."
"그 말들이 진심이었으면 충분해. 고마워."
"..........."
"재촉 안한다고 약속했는데, 어쩌다보니 재촉해버렸네."
"..............."
"미안."
여전히 눈물을 머금고 있는 박지민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잔뜩 울어 코까지 붉어져 놓고선, 헤실헤실 웃고 있는 모습이 묘했다. 그런 박지민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감정은 또 뭐지? 도통 김여주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김여주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인걸까. 지금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김여주는, 아니, 나는, 박지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거지?
"지민아."
"어?"
"자고 가."
"............."
"시간 늦었잖아."
".........."
"김태형이랑 단둘이 자는 것도 좀 그러니까.."
"............."
"자고 가. 응?"
+노는게 제일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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