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음식, 남도 음식, 한국 음식 : 남도 문화 담긴 집밥>
먹을 만한 식당에 가보면 식당 사장을 겸한 주방장 아주머니가 친정엄마 음식을 재현하고 있다는 경우가 많다. 과천의 <토정> 식당도 그런 경우다. 엄마도 할머니도 음식을 잘하셨단다. 시어머니마저 음식을 잘하셨다니 양가의 가양 음식을 함께 이은 셈이다. 요즘은 친정과의 관계가 더 돈독하니 친정엄마 솜씨 유산은 기본이다. 운이 좋아 솜씨 좋은 시어머니까지 만나 솜씨가 배가되었다.
밥상에 펼쳐지는 전복, 피조개, 꼬막, 삼합 등 특별한 음식들이 눈으로만 맛봐도 남도 품새인데, 살짝 삭은 홍어 냄새까지 더하니 확실한 남도 음식이다. 피조개의 옹골찬 맛은 무엇으로 형용하랴. 단지 이 맛을 보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내려오는 사람도 많단다. 입안에 가득 차는 포만감과 즐거움은 혀끝으로만 누릴 수 없는 맛이다. 짜지 않고 육질이 부드러울 만큼 익었으며 진하지 않은 양념이 조개 살을 빛낸다. 살 안에 간직되었다가 입안에 톡 터지는 조개의 육즙맛이 황홀하다. 텀턱스럽게 커다란 조개 살을 육즙이 골고루 적시니 맛과 식감에 혀를 포함한 입안 구석구석이 호사를 한다. 이 맛을 보니 나도 다시 찾을 것 같다.
삼합의 홍어는 적절하게 삭아 있다. 삭은 홍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정도로만 삭았다. 사실 홍어는 좀 더 삭아 코끝으로 가스가 나오는 느낌이어야 맛이 제대로 난다. 홍어맛을 모르면 남도 맛을 아직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연습해가면 홍어의 최고 맛에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라도를 비하하여 홍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그것은 그만큼 음식을 즐기지 못한다는 자기 고백이 아닐까 싶다. 삭은 홍어 요리는 발효김치를 즐기는 것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발효 음식 취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역시 음식은 지역성을 가져야 족보 있는 제맛이 난다. 지역 사람들이 즐기면서 키워낸 맛을 이곳 낯선 곳에서도 누릴 수 있으니 남도 음식, 집안음식을 이어서 해내는 귀한 손이 고맙고, 이곳까지 옮겨온 소통과 교류의 세상이 고맙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전라도 세습무는 며느리로 가업이 전수되었다. 하지만 거의 끼리끼리의 결혼인 경우가 많으므로 며느리도 결혼 전 친정에서 입문은 하고 온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는 선생님은 시어머니이므로 고부가 사제지간이다. 며느리가 집안 문화를 잇는 것은 지체가 낮으나 높으나 오랜 전통이다. 요새는 친정이 시집보다 더 가까우므로 결혼 전 입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수되므로 모녀가 사제지간이고 시어머니는 보조교사다.
중국 곡부(曲阜)에 가면 공자 가문에서 내려오는 공부가주(孔府家酒), 공부채(孔府菜)를 맛볼 수 있다. 공부가주(孔府家酒)는 중국 전역에서 포장된 술을 살 수 있고, 심지어 이제는 한국에서도 수입해 팔고 있다. 음식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하므로 곡부에 가면 먹어야 한다. 실제로 먹어보니 중국 음식 일반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선지 다른 중국 음식과의 변별성이 잘 감지 안 된다. 오랜 기억을 더듬어보면 특별한 식재료가 있었던 거 같고, 두부의 조리법이 특별했던 것 같다.
자료를 찾아보니 진귀한 식재료도 많이 쓰지만 그 지역 특산물인 향춘아(香椿芽, 샹춘야)라는 채소를 많이 쓴다 한다. 봄에 나는 향춘아 수백 근을 사서 일년 내내 쓴단다. 우리말로는 가죽나무순인데, 이것을 중국에서는 춘권(春捲)의 속으로 많이 쓴다. 춘권에는 봄채소가 들어가서 춘권이다. 향춘아는 봄을 상징하는 봄나물이므로 춘권의 속으로 많이 쓴다.
송나라 이래 시작되어온 공부채는 드디어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신청을 할 정도로 중국 음식문화의 대표로 성장하였다. 공자가 워낙 특별한 존재라서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지만, 초점을 좁혀보면 한 집안의 음식이 일대를 풍미하는 음식문화가 된 경우이므로 집안 음식을 물려받는 우리들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 집안의 음식문화도 세계유산을 넘보는데, 여러 집안 문화가 어우러진 남도 음식문화도 확산에 더 적극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음식은 맛 외에 문화로도 먹는다. 공자네 음식이라니, 아직까지 제대로 전해올까. 더구나 장손은 대만으로 가고 공산화 기간 특히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공자를 부정해서 유교문화가 한산한데 정말 공자집안 음식이 내려올까. 곡부는 공자를 찾는 관광객들이 밀려들지만 다른 지역 공자 관련 기념관은 매우 한산하다. 길림의 공자사당을 3,4년 전 찾았을 때는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았다. 공자복권은 정치적인 차원이지 민중 의식 속에서의 복권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곡부까지 간 사람들은 대부분 공부채를 찾는다. 음식맛이 아닌 문화맛을 찾는 것이다. 음식의 맛이 아니라 음식에 담긴 문화적 함의로도 음식을 먹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가면 그 문화권에서 합의된 음식에 대한 기호를 받아들인다. 우리가 이태리에 가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피자를 먹고 오고, 베트남에 가면 쌀국수를 먹고, 중국에 가면 썩은두부(초또우푸)를 먹고 오듯이 말이다.
전라도 음식이면서 남도의 개성을 가진 남도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남도를 넘어 서울에서도 과천에서도 남도음식을 찾는다. 남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찾는다. 음식맛과 문화맛을 동시에 찾는 것이다. 남도음식은 높은 맛을 찾는 청중의 지향이기도 하지만 고향 시원(始原)의 맛에 대한 지향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집밥에 대한 선망 위에 남도음식에 대한 기대가 실려 있다. 엄마표 음식으로 남도음식을 재현하는 음식은 고향을 찾는 도시인의 허전한 마음을 위로해주면서 남도문화에 대한 지향을 충족시킨다.
안양의 <시골집갈치밥상>은 지역성은 약화된 집밥에 대한 선호를 반영한다. 반면 서울 인사동의 <여자만>은 집밥 기대는 어려운 남도음식이다. <토정>은 둘 다 가진 남도음식 집밥이다. 거기다 남도 음식을 안안팎으로 제대로 전수받은 집안의 남도 솜씨까지 제대로 갖추었다. 하나의 코드만 지켜내도 손님이 만원사례인데, 이 집은 두세 가지 코드를 다 갖추었으니 더욱 관심을 끈다.
유교적 성향이 강한 경상도의 명문 집안 음식은 상업화시키지 않아 많이 사라졌다 한다. 범박한 전라도 음식을 넘어 맛과 전통성을 겸비한 남도 음식을 계속해서 잘 지켜나가는 주역이 되길 빈다. 남도음식을 잘 지키는 것이 전라도 음식을 지키는 것이고 한국음식을 잘 지키는 것이다. 음식 한류의 출발점 중 하나는 지역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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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경기 과천 <토정> http://cafe.daum.net/koreawonderland/jHes/16
경기 안양 <시골집갈치밥상> http://cafe.daum.net/koreawonderland/jHes/15
서울 인사동 <여자만> http://cafe.daum.net/koreawonderland/iVJW/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