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사피엔스』에 이어 작년에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호모 데우스』를 읽었다.
전작 『사피엔스』를 인류의 과거 역사에 대해 위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썼던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심리학과 종교, 기술공학과 생명과학에 대한 폭넓고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한 우울한 분위기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울한 예언 자체가 이 책의 목적이 아니고,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이다.
인본주의 혁명, 유전공학・인공지능의 발달로 ‘신 같은 인간(호모 데우스)이 되어 가려는 인류, 인본주의의 퇴색, 비의식적 알고리즘, 데이터교, 지능과 의식,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 인류에게 던져진 피할 수 없는 주제들이 읽는 내내 섬뜩하면서도 깊은 흥미를 자아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류의 미래 역사에 대해 부정적 판단도 긍정적 판단도 하지 않고 다만 그저 보여줄 뿐이다. 미래 역사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결정들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는 암시와 함께…….
《본문 중에서》
날씨 같은 복잡한 시스템은 우리의 예측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반면 인간의 발전 과정은 우리의 예측에 반응한다. 예측이 훌륭할수록 더 많은 반응을 유발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우리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컴퓨터의 성능을 더 높일수록 사건들은 더 제멋대로, 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일어나게 된다. 지식이 축적될수록 예측은 어려워진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윤리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사실적 진술이다. 이른바 이 사실적 기술은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토머스 제퍼슨 시대에는 타당한 말처럼 들렸지만, 생명과학의 최신 연구결과들과는 잘 맞지 않는다. 자유의지와 현대 과학 사이의 모순은, 많은 사람들이 현미경과 기능자기공명 영상을 볼 때 못 본 척하고 싶어 하는 ‘실험실의 코끼리’이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이야기하는 자아와 동일시한다.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경험의 세찬 흐름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경험하는 자아가 겪는 무질서한 인생을 가지고 논리적이고 일관된 이야기를 자아내는 내부 시스템과 우리를 동일시한다. 이야기의 줄거리에 거짓과 누락이 허다하고 여러 번 고쳐 쓴 바람에 오늘의 이야기가 어제의 이야기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변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 것이다. 이 느낌은 내가 나눌 수 없는 개인이며, 우주 전체에 의미를 제공하는 분명하고 일관된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미심쩍은 자유주의를 야기한다.
하지만 생명과학은,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생화학적 알고리즘들의 집합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자유주의를 뿌리째 뒤흔든다. ~ 이야기하는 자아는 끝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 한다. ~ 하지만 아무리 설득력 있고 매력적일지라도 이 이야기는 결국 허구이다. 중세 십자군 전사들은 삶의 의미가 신과 천국에서 온다고 믿었고, 현대의 자유주의자들은 인생의 의미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둘 다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중대한 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인간은 경제적 가치를 잃을 위험에 놓여 있다. ~ 둘 중 어느 것이 진정 중요한가? 지능인가, 아니면 의식인가? 이 둘이 항상 짝지어 다니는 한 둘의 상대적 가치를 논하는 것은 철학자들의 소일거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이 문제는 절박한 정치적・경제적 쟁점이 되었다. 하지만 군대와 기업은 이것이 “지능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의식은 선택 사항이다.”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문제임을 알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마도 ‘그 모든 잉여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을 더 잘할 수 있는 높은 지능의 비의식적 알고리즘이 생긴다면, 의식을 가진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도래하는 시대에 새로운 기술종교들은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한 구원을 약속함으로써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이런 신흥 기술종교들을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 종교(데이터교)이다.
기술 인본주의는 우리가 아는 형태의 호모 사피엔스는 역사의 행로를 완주했으며 미래에는 할 일이 없다는 데 동의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가 기술을 이용해 호모 데우스(훨씬 우수한 인간 모델)를 창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호모 데우스는 인간의 본질적 특징들은 그대로 보유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향상된 능력을 갖춘 덕분에 매우 정교한 비의식적 알고리즘들 앞에서도 당당히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기계학습과 인공신경망이 부상하면서 점점 더 많은 알고리즘들이 독립적으로 진화해 스스로 성능을 높이고 실수하면서 배운다. 이런 알고리즘들은 어떤 인간도 망라하지 못하는 천문학적 양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 인식 방법을 배우고, 인간의 마음은 생각해낼 수 없는 전략들을 채용한다. ‘종자’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 알고리즘은 성장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따라 인간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리고 어떤 인간도 갈 수 없는 곳으로 간다.
인간이 네트워크에서 수행하는 기능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창조의 정점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신성시한 바로 그 잣대가 우리를 매머드와 양쯔강돌고래처럼 잊힌 존재로 만들 것이다.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떠오르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은 분명 세계를 탈바꿈시킬 테지만, 단 하나의 결정론적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이런 가능성들 가운데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개 현시점의 이데올로기와 사회 시스템에 얽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현시점에 우리가 처한 조건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고,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검열은 사람들에게 관계없는 정보들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모르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 쟁점에 대해 조사하고 논쟁하느라 시간을 보내기 일쑤이다. 고대에는 힘이 있다는 것은 곧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힘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무시해도 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혼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우리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월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마 중동의 동요, 유럽의 난민사태, 중국의 둔화된 경제성장 같은 당면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수십 년 단위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지구온난화, 증가하는 불평등, 직업시장의 교란 같은 문제들이 크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이라는 실로 장대한 관점으로 본다면, 상호 관련된 다음의 세 과정 앞에서 다른 모든 문제와 상황들은 작게 보일 것이다.
1) 과학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교의로 수렴하고 있고, 이 교의에 따르면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며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고 있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과정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이 이 책을 덮은 뒤에도 이 질문들이 오랫동안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