꼽등이, 어둠 속 ‘팔딱팔딱’ … 청각은 없어
▲ 알락꼽등이. 사진출처= 블로그 ‘벽천사진실’(http://egloos.zum.com/ychsjaws)
여름이라 안 쓰는 보일러가 궁금해 보일러실을 들렸더니만 난데없이 뭔가가 겁에 질려 허겁지겁 날뛰더니만 가뭇없이 구석에 꽁꽁 숨는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가까이 눈을 대고 살펴보니 더듬이(觸角)이가 유난히 길기로 유명한, 사실 좀 혐오스러운 꼽등이 놈이 아닌가. 집안의 보일러실이나 창고, 화장실에서 내내 볼 수 있고, 집 밖에서는 산속의 동굴, 바위틈이나 수로·하수구·도랑 등에 사는 녀석이다.
꼽등이(Diestrammena coreana)는 메뚜기목, 여치아목, 꼽등이과 곤충으로 흔히 등이 휘어져 구부정하다 하여 ‘곱등이’로 부르지만 정식국명은 ‘꼽등이’이다. 우스꽝스럽게도 등이 꼬부라져 꼽추(곱사등이)처럼 보인다 하여 꼽등이란 이름이 붙었고, 서양 사람들은 이들이 동굴에 많다해 cave cricket, 등이 굽었다해 camel cricket라 부른다. 꼽등이 학명(종명)에 coreana가 붙은 것은 한국특산종(Korean camel cricket)임을 뜻하고, 전국에 분포하는 꽤 흔한 종이다.
꼽등이는 세계적으로 250종, 한반도에는 꼽등이·알락꼽등이·장수꼽등이·검정꼽등이·굴꼽등이·산꼽등이 등 6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꼽등이는 질병을 옮기거나 농작물과 산림들에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해론벌레(害蟲)로 분류하지 않는다. 한국·일본·중국·타이완에 분포한다.
꼽등이는 여치와 매우 흡사하고, 성충은 얼추 18~25mm 안팎이고, 포동포동 살이 오른 놈이 강한 턱을 가지고 있으며, 날개가 없어 날지는 못한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더듬이가 비할 데 없이 길어서 체장의 3~4배에 이른다. 생김새가 귀뚜라미와 비슷하지만 몸체에 비해 다리가 길고, 등이 굽었으며, 더듬이가 아주 길어서 쉽게 구분된다. 체색은 대부분 칙칙한 연갈색이고, 가슴 앞에서부터 배에 이르기까지 불규칙한 황갈색무늬가 어룽지고, 뒷다리는 갈색으로 대퇴부의 가장자리에 가시가 나있다. 꼽등이는 검은색의 커다란 겹눈(複眼)이 있긴 하지만 어두운 곳에서 오래 살다보니 눈은 명암 정도만 구별할 따름으로 볼 수 없고, 더욱이 청각기가 없어 들을 수도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감각을 더듬이를 연신 한들한들 흔들어서 알아챈다. 그리고 뒷다리가 매우 크고 힘세어 펄떡펄떡 뜀박질(跳躍力)을 잘 한다. ?? 성충은 등에 광택이 나지만 애벌레(若蟲, nymph)는 나지 않고, 한살이(一生)에서 번데기시기가 없이 알→약충→성충으로 불완전변태를 한다. 그래서 메뚜기처럼 유충은 등치가 작을 뿐 생김생김은 어미를 쏙 빼닮았다.
암컷은 꼬리끝자락에 20mm나 되는 긴 산란관(ovipositor)이 있는데 칼처럼 위쪽으로 휘었고, 짙은 갈색으로 종에 따라 각각 다르다. 그리고 어둡고, 온도가 일정하며, 눅눅한 곳에서 생활하기에 연중 발생한다. 가을에 흙 속에 산란관을 꼽아 지름 1mm정도의 알을 낳고, 약충으로 겨울을 나며, 수명은 보통 1년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11월 즈음에 새끼치고 곧바로 죽는다. 꼽등이 다음으로 흔한 알락꼽등이(D. asynamora)를 간단히 살펴본다. 역시 메뚜기목 꼽등이과의 곤충으로 몸길이는 20~25mm 남짓이다. 몸의 바탕색깔은 갈색으로 온몸에 여러 개의 굵은 검은색 띠가 얼룩지고, 다리 마디마다 검은 띠가 있다. 동굴 입구나 습기가 많고, 어두운 곳에 들끓는다. 그리고 어른벌레의 몸이 더할 나위 없이 알록달록해 알락꼽등이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귀뚜라미와 꼽등이를 비교해보자. 모두 비슷한 크기로 귀뚜라미는 날개를 가지고 있으나 꼽등이는 날개가 아예 없고, 또한 귀뚜라미는 등이 편평한 데 꼽등이는 굽었고, 꼽등이는 색이 연갈색이고 무늬가 있으나 귀뚜라미는 검거나 어둔 갈색이다. 그리고 둘 다 식성이 비슷한 잡식성으로 곤충의 시체·유기물·음식찌꺼기 등을 먹어 청소부 역할을 한다. 또 모두 낮에는 구석진 곳이나 으슥한 곳에 숨었다가 밤에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와서 나대는 야행성이다.
위에서 보면 귀뚜라미는 사각형 꼴이나 꼽등이는 둥글둥글하고 길쭉한 타원형 몸매이고, 이동시 귀뚜라미는 바퀴벌레 같이 땅바닥에 납작 붙으나 꼽등이는 성큼성큼 걸어 다니듯 한다. 귀뚜라미는 더듬이가 매우 짧지만 꼽등이는 길고, 귀뚜라미의 산란관은 창이나 면봉 모양으로 가늘지만 꼽등이 것은 칼 모양으로 옆으로 납작하다. 귀뚜라미는 발목마디(?節)의 마디가 3개지만 꼽등이는 여치처럼 마디가 4개다.
그런데 꼽등이·메뚜기·사마귀들은 가느다란 철사 모양의 유선형동물(類線形動物, hair worm)인 연가시의 임자몸(宿主)이 된다. 연가시유충이 메뚜기목곤충의 몸속에 들어가 얄궂게도 신경조절물질을 분비해 숙주곤충을 조종한다. 엉뚱하게도 물가로 유인해 산란하니 기생충이 숙주행동을 조절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꼽등이들의 주된 천적은 개미고, 거미·지네·들쥐 따위의 먹잇감도 된다. 그래서 보잘 것 없는 미물인 꼽등이도 생태계의 먹이사슬(먹이그물)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한 코를 차지한다. 매듭 하나만 망가지는 날에는 속절없이 사슬·그물(생태계)은 통째로 못 쓰게 되니 그게 바로 생태교란이다. 인간사슬·그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세상에 쓸모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하는 것. 또한 다 제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