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청산 주도 `민족문제연구소`...... ‘범민련’ 간부 대거 포진
‘김일성 영생론’ 칭송자가 지도위원
“16대 때 통과된 친일진상규명법은 국민들을 실망시킨 누더기 법률”이라며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과 함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을 주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국내 친북이론가들이 대거 결집해 있는 단체이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진 중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이창복 전 의원, 이해학 씨(성남주민교회 목사)는 이적단체인‘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이하 범남본)’에 지난 91년 창립준비 단계부터 참여해 온 인물이다.
김희선 의원은 91년 범남본 창립준비위원을 거쳐 92년‘전국연합’통일위원장을 역임했고, 16대 국회에 진출한 이후 국가보안법철폐, 이라크파병반대, KAL기 진상규명 등을 주도해왔다.
이창복 전 의원은 84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 사무처장,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의장을 거쳐 93년부터 98년까지 ‘전국연합’상임의장을 역임했다.
연구소 이사진 중 이관복 씨(박정희기념관반대국민연대 대표)는 범남본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범남본 산하 여중생범대위 고문으로 있으며, 장두석 씨(민족의학연구회장)는 현재 범남본의 고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범남본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노선을 추종한다는 이유로 결성단계인 지난 91년 11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이적단체판정을 받았고, 97년 5월 16일 다시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정을 받은 단체이다.
전국연합 역시 범남본과 함께 1민족, 1국가 2정부의 북한식 연방제통일방안을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단체로서 지난 한 해 동안 500여 건 이상의 친북반미운동을 전개한 단체이다.
김남식 지도위원,“수령은 인민의 뇌수”
민족문제연구소에는 강만길(상지대 총장),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김남식(인터넷매체 통일뉴스 고문) 등 친북지식인들도 지도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참여하고 있다.
통일운동가로 알려진 김남식 씨는 온오프라인 상에서‘김일성 영생론(永生論)’을 옹호하 는 등 김정일 체제를 미화해온 인물이다.
김씨는 지난 9일 인터넷매체 통일뉴스에 게재한 ‘북한의‘영생 10년’의 이해를 위하여’라는 글을 통해 “김일성 수령은 인민대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의 뇌수의 역할을 하는 중심이다” “오늘의 북한사회는 선군(先軍)정치에 의해‘주체혁명(主體革命)’의 위업(偉業)을 이끌어 왔다” “김일성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先軍)정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는 등 주장을 펴기도 했다.
리영희 교수와 강만길 교수 역시 온오프라인 상에서 각각 “남한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화를 통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지난 해 11월22일 민족통일학회 발언)”“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1월 31일 동 학회 발언)”는 등 반미민족공조 논리를 개발해 온 인물들이다.
임헌영 소장,‘남민전’사건 10년 복역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인 임헌영 씨는 지난 79년 적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의 연루자이다.
남민전은 검거 당시 안용웅 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통제를 받아 온 공산혁명조직으로 밝혀졌다.
남민전은 검거 당시 남한 내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만들어 놓았고, 공작금을 마련키 위해 혜성대(彗星隊)라는 조직을 만들어 재벌집 강도 등을 예비하기도 했다.
특히 남민전은 검거 이후 교도소 내에서 오히려 조직을 강화시켜 80년대 이후 국내 좌익세력의 토대가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향한 좌익사상범으로서 지난 89년 ‘수인(囚人)번호 3179’라는 책을 썼던 김정익 씨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남민전 조직원들은 교도관연락책까지 동원, 교도소 내외에 비밀지령을 주고받으며 조직을 강화시킬 정도로 치밀했다”고 적고 있다.
김 씨는 남민전 핵심관련자인 시인 고 김남주 씨로부터 공산주의사상교육을 받은 내용을 같은 책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김남주가 반복해 교육했던 내용 중 한 가지는 아래와 같다.
“계급적 적들을 증오하라. 철저히 증오하라.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히 죽여 없애는 것이다. 그 숫자는 200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에 연루됐던 임헌영 소장은 지난 89년까지 복역한 후 대통령특사로 출소했다.
한상범 의문사위원장이 前 소장
임헌영 씨 이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인물은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한상범 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불교인권위원회 공동대표도 역임하고 있는데, 지난 6월 7일에는 김정일을 ‘구국의 영웅’‘민족의 지도자’등으로 각종 문건에서 칭송하고 있는 이적단체 범청학련 남측본부 윤기진 의장을 “통일*민족운동에 온 힘을 다해온 데 치하한다”며 ‘박종철 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성욱기자 2004-08-02 오후 7:40:00
`친일파처단` 주장 민족문제연구소장 임헌영씨, 70년대 최고공안건 `남민전`사건 주역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역사를 바로세운다는 명목하에 지난 91년 설립되어 `친일인명사전`편찬사업을 벌여온 민족문제연구소의 소장 임헌영(任軒永*중대 국문과 겸임교수)씨가 지난 70년대 최대 공안사건인 `남민전사건`의 연루자였음이 최근 임씨의 활동을 소개한 한겨레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졌다.
남민전 사건은 1960년대 인혁당, 통혁당사건 관련자들이 출감 후 노동자*농민*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을 규합 북한과의 연계 속에 결성된 지하공산혁명조직이다. 이 사건은 1970년대를 대표하는 간첩사건으로 관련자만 해도 84명(불고속자 포함)이 넘었다.
남민전은 안용웅(安龍雄)등이 월북, 김일성에게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북한으로부터 구체적 통제를 받아왔고, 남한 내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경우 게양할 붉은 별이 그려진 대형 `전선기`(戰線旗)까지 제작하기도 했다.
당시 3차에 걸친 경찰발표에 의하면, 남민전은 불순세력을 규합하여 지하조직을 완성하고 도시게릴라 방식으로 사회혼란을 조성하여 민중봉기와 국가반란을 유도, 베트남방식의 적화를 획책해 왔다는 것이다.
당시 재판결과 사건의 총관련자가운데 1심과 2심에서 39명이 석방됐으며 임씨를 포함한 모든 남민전 사건 연루자들은 지난 1989년까지 모두 만기*특사로 출옥했다. 특히 작가 홍세화(洪世和)는 79년 당시 남미전 사건으로 프랑스에 망명,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후인 99년 한국에 돌아와 현재 한겨레 신문 편집국 부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작업에 북한자료사용 한편 지난 2003년 민족문제연구소장의로 취임한 임씨는 최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층의 밥그릇 챙기기에 만신창이로 뜯겨나가고 휘청거리는 대한민국에 진정한 역사의혼을 불어넣겠다`면서 `역사 앞에서 진정 산 자와 죽은 자가 누구인지 친일인명사전 편찬과정에서 드러낼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편찬 과정에서 이들이 친일파 범주를 규정하기 위해 참고한 문헌의 일부는 1940년대 중반 북한에서 발간된 자료들로서 그 이념성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첫댓글 완전 빨갱이 집단이군 나라가 걱정 돼내요
빨갱이 확실 하구만,,,,,,,,,우리의 할 일은 악마의 술,,,좌익 친북노선을 ,,,격파하는 것입니다
정말 빨갱이 세상이네,..빨갱이들 노무현부터,..다죽어라!,....정말 분이 터진다,....빨리 정권이 바뀌여야지!,..정말 지금은 살맛 안난다,...에라!~~~~빨갱놈들아,...죽어라,.......
의문사위가 군인을 조사하는 어처구니~~!발갱이...
대중이를 대통령으로 뽀ㅂ고 부터 이지경...우리국민 모두의 잘못이지...한심한 궁민들...좌익들이 판치는세상...잘좀 뽑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