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의 기세가 무섭다. 올란도를 내놓기 무섭게 일주일 만에 다시 새 차, 아베오를 선보였다. 며칠 뒤에는 다시 북미에서 카마로를 들여와 시판을 알렸다. 불과 열흘 남짓한 사이에 신차 석대를 내놓은 것. 전쟁터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느낌을 받은 건 발표 장소가 전쟁기념관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쉐보레의 차세대 소형차로 전세계를 누빌 아베오를 타고 양평까지 달렸다.
쉐보레는 올해 내놓겠다는 8대의 새 모델중 3대를 2월의 열흘 사이에 집중 배치했다. 한국 시장에대한 쉐보레의 집념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시장에서 기필코 존재감을 확인시키며 ‘쉐보레’ 브랜드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에 힘입어 쉐보레 바람은 이미 불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엠대우는 물론 ‘시보레’도 잊고 ‘쉐보레’라는 복모음 발음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올란도 아베오 등 국내 생산차는 물론 카마로 등 북미 생산차까지 쉐보레라는 한 브랜드로 팔리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쉐보레에 쏠리고 있다. 물론 그중에는 지엠대우와 쉐보레의 정체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시승할 차는 아베오다. 미국에선 소닉으로 팔리는 차다. 한국에서 쉐보레 브랜드로 출시하는 두 번째 차로 지엠이 글로벌 소형차로 개발한 차다. 지엠의 글로벌 소형차 개발기지인 지엠대우가 선도적으로 개발을 이끈 차다. 전세계150여개국에서 팔릴 것이라 한다. 국내에서는 지엠대우의 젠트라 후속이다. 이제 국산 소형차의 계보가 지엠을 통해 전세계적인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되고 있음을 본다.
우선 선보인 것은 5도어 세단이다. 이어서 5월에는 4도어 세단이 추가된다. 현재는 1.6 리터 엔진이 올라갔지만 순차적으로 엔진 구성도 다양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오를 보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것은 소형차엔 역시 해치백이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치백이 잘 팔리니 안팔리니해도 작은 차에는 세단 스타일보다는 해치백이 훨씬 잘 맞는다.
기아차 프라이드 이후 현대 액센트, 대우 라노스, 지엠대우 젠트라 등 해치백은 적어도 소형차 시장에선 강세를 유지했던 게 사실이다. 아베오도 세단이 출시될 예정이라 나중에 봐야 알겠지만 먼저 나온 해치백 모델이 훨씬 더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사각 틀 안에 배치된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는 차를 똘똘하게 만든다. BMW가 한 때 이런 헤드램프를 애용했던 적이 있다. 지엠대우에서는 모터 사이클에서 영감을 얻어 돌출형 헤드램프로 만들었다고 했다. 단정하지만 힘 있는 모습이다.
지엠대우 소형차 디자인을 관통하는 것은 ‘휠 아웃-보디 인’ 컨셉트다. 작은 차이 공간을 넓게 활용하기 위해 휠을 최대한 바깥으로 배치하는 것. 아베오 이전에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에 적용했던 개념이다. ‘듀얼 메쉬 그릴’로 명명된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은 쉐보레의 디자인 특징, 패밀리룩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올란도에 이어 아베오에 적용됐다. 해치백의 리어뷰는 깜찍함과 유머가 섞여 있다. 적체적으로 소형차에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갖췄다. 위 아래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된 리어 램프는 윗 부분만 살짝 일직선으로 마무리했다. 눈꺼풀 아래의 눈동자를 그린 만화같은 처리가 유머러스하다.
언듯보면 3도어로 착각한다. 뒷문 도어 핸들이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있어서다. 처음 이 차를 만나는 사람은 뒷 문 앞에서 쩔쩔맬지 모른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딘가 손을 대고 문을 열어야 하는데 손잡이를 찾을 수 없다. C 필러를 찬찬히 보면 그 안쪽으로 손을 넣어 문을 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지엠대우의 색다른 시도다. 하지만 이처럼 ‘핸들 숨기기’는 알파로메오가 먼저 시도했다. 90년대 중반 모델체인지했던 알파로메오 156에 ‘숨겨진 핸들’이 있었다.
앞부분으로 쏠리는 선의 흐름은 소형차에 다이내믹함을 불어넣는 디자이너의 마법이다. 작아서 자칫 볼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소형차에 파워와 다이내믹함을 입히는 것. 17인치 타이어는 소형차로는 사치스러울 정도다. 휠 하우스를 가득채운 타이어 모습에서 어떤 ‘느낌’이 전해진다. 인테리어는 소형차다운 느낌이 물씬 풍겼다. 모터사이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다이내믹 미터 클러스터가 눈길을 끈다.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에서 미리 경험했던 계기판이다. 젊은층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차에 사용되던 것을 그 윗급차가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점은 걸린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스티어링 컬럼에 장착된 다이내믹 미터 클러스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식을 동시에 적용, 주행가능 거리, 평균속도, 주행시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수납공간은 여기저기 많이 배치됐고 또한 넉넉한 크기를 가졌다. 위 아래로 열리는 글로브 박스, 센터페시아 위 아래에 나눠 배치된 탑포켓과 토글 포켓, 센터페시아 양옆에 각각 마련된 커플 포켓, 1.5리터 패트 병을 넣을 수 있는 도어 포켓 등이 있다. 물건을 어디 뒀는지 모를 수는 있어도, 물건을 넣어둘 공간이 없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작은 차에 넓고 많은 수납공간이 인상적이다.
트렁크 아래에는 스페어 타이어가 없다. 대신 타이어 수리 킷이 들어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려고 스페어 타이어를 과감히 없앴다. 잘한 일이다. 어차피 한국의 자동차 환경은 스페어 타이어가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도로율이 높아 펑크 날 위험도 크지 않다. 펑크가 난다해도 전화 한 통이면 자동차 회사나 보험회사의 퀵서비스가 출동해 조치를 취해준다. 그것도 시간을 다퉈가면서 달려온다. 이런 환경에서 스페어 타이어를 싣고 다니는 건 전국가적으로 엄청난 낭비다. 지엠대우는 이런 부분을 간파한 것 같다. 라세티 프리미어에 이어 아베오에서도 스페어 타이어를 없앴다. 과감한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
키를 넘겨받아 전쟁기념관을 나섰다. 휘파람을 불려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듯 수 많은 아베오들이 속속 거리에 올라섰다. 물 속으로 잉크가 번져가듯 전쟁기념관을 빠져나온 형형색색의 아베오들이 도로 위의 차들과 섞여 나란히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베오에는 ‘가변흡기 매니폴드’를 적용한 DOHC(4실린더/16밸브 타입) 1.6 리터 엔진이 적용됐다. 최고출력 114마력, 최대토크 151.1kg. 엔진 배기량과 출력의 언밸런스를 한국의 소비자들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같은 1.6리터 엔진으로 141마력, 17.0kg.m의 힘을 내는 차에 익숙한 한국의 소비자들이 1.6리터 114마력을 어떻게 이해할지 궁금하다.
소형차로 이 차를 이해한다면 적절한 힘이다. 속도가 빠르게 상승하지는 않지만 작은 차에 어울리는 가속감을 보인다. 하지만 소형차 치고는 큰 편인 배기량 1.6 엔진이 장착됐음을 안다면 조금 허기를 느낄 수도 있겠다. 힘에 대한 허기, 갈증이 숨겨지지 않는다. 그나마 6단 자동변속기가 엔진을 효율적으로 컨트롤했다. 변속 쇼크는 크지 않았다. 엔진 출력을 주행조건에 맞게 컨트롤하며 연비까지 고려하는 최신 변속기다. 변속레버는 올란도처럼 헐겁지 않았다. 꽉 짜인 변속레버의 감각이 좋다. 아베오의 변속레버에는 토글 시프트 기능이 있다. 버튼을 이용해서 시프트 업, 다운을 할 수 있는 수동 변속 버튼이다. 변속레버를 잡은채 엄지로 버튼을 움직이며 변속기를 다룰 수 있다. 전투기에서 따온 아이템이다.
아베오에는 ‘자동 중립 기어’ 시스템이 있다. 신호 대기 및 장시간 정차 시엔 운전자가 변속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중립으로 변경, 엔진과 변속기 부하를 줄여주는 기능이다. 속도에 맞춰 증가하는 적당한 엔진소리와 바람소리, 노면 잡소리 등은 상당부분 걸러진 뒤 실내로도 유입됐다. 아베오의 소리는 정직한 편이다. 발생하는 소리를 적극적으로 차단되거나 억누르지 않고 적당히 걸러낸 뒤 실내 유입을 허용한다. 소형차로서의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은 결과다. 조향성능은 중립에서 조금 민감한 편으로 한 클릭 이동했다고 보겠다. 핸들을 완전히 감으면 2.8 회전한다. 승차감을 중시하는 차들이 3회전하는 것과 비교하면 조금 예민한 편임을 알 수 있다.
조향비가 타이트한데다 작은 차여서 코너링에서 아베오는 매우 민첩하게 움직였다. 조금 과하다 싶은 속도로 코너를 시도했는데 큰 무리없이 코너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수한 조향성능에 더해 짧은 차체 길이가 미끄러짐에 대한 부담을 줄이며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준다. 노면 쇼크는 때로 거칠게 전해진다. 도로 위의 돌기물을 지날 때 차의 거동이 거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신형 아베오는 운전석, 동반석, 사이드 에어백, 커튼 에어백(옵션)을 적용, 충돌 시 앞/뒤 좌석 승객의 머리를 최대한 보호하고, 충돌 파편의 실내 유입을 막아준다. 또 뒷좌석 중앙 시트의 3점식 안전벨트, 앞좌석 듀얼 프리텐셔너, 유아용 시트 고정장치, 로드 리미터, 충격 감지 도어 잠금 해제 장치, 후방주차 센서 등을 장착했다. 작지만 안전한 차를 만드는 요소들이다.
아베오는 그 자체로 훌륭한 소형차다. 특색있고 세련된 디자인은 이 차의 훌륭한 강점으로 작용하겠다. 배기량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무난한 성능과 경제성, 안전성은 칭찬해줄만 했다. 절대평가로는 그렇다. 상대평가를 시도하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온다.
오종훈의 단도직입
선루프는 원터치로 열리지 않는다. 열리는 동안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 그냥 버튼 한 번 누르면 열리고, 닫히는 선루프가 훨씬 편하겠다. 출력, 토크, 연비 등은 이 차의 대표적인 경쟁자 현대 엑센트보다 확실한 열세다. 신차를 만들면서 이전부터 있던 경쟁차보다 열세인 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냥 내놓은 것을 보면 ‘투지’가 의심된다.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기보다는 해외의 적당한 시장에 내다파는 데에만 더 큰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시장은 좀 더 강한 아베오를 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