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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산은 행정상으로 봉담읍 세곡리에 위치해 있으며 그 정상은 팔탄면 기천리와 경계선상에 있다. 지금도 봉우리 정상에 조선시대 봉수대 터와 깨진 기왓장들이 흩어져 남아 있으며, 해발 367m로 근동에서 제일 높아 ‘순조 21년 1821년에 봉수대가 축조되었다. 수원화성의 봉화대는 화성시 장안면 홍천대 해봉에서 이곳 봉담읍 건달산 간봉을 받아 용인시 석성산(에버랜드 인근산) 육봉으로 봉화를 전달했다’ 고 하니 건달산봉수대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던 셈이다.
건달산은 그 이름을 한글로 부르자면 좀 요상한 면이 없지 않으나 하늘건 자에 통달할 달자를 써서 능히 하늘에 닿을 수 있다는 산이니 그 내용이 범상치 않다.
또한 건달산은 그 골이 깊고 봉이 높아 예부터 15개 마을의 땔감을 조달했으며 소나무와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다양한 수목 군이 형성되어 있고, 고라니 삵, 산토끼, 매, 올빼미, 부엉이, 황조롱이, 소쩍새......등 최근까지 여러 야생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분포되어 있는 자연의 생태 보고이다.
하지만 건달산은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광업을 빙자한 상업적 목적으로 석산 개발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은혜와 진리교회 자리가 고려개발에 의해 석산개발 되었다가 메워지고 1990년대는 흰돌산기도원 옆, 건달산에서 해병대사령부로 넘어가는 허리부분이 석산개발로 산맥이 끊기는 등 몸살을 앓는다. 게다가 상기리 즘골마을 뒤편에 대대적인 석산개발로 건달산 가장 높은 봉우리 아래까지 석산개발로 돌을 깨내는 바람에 건달산은 거의 혼수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를 보다 못한 근동 마을사람들과 이장모임, 그리고 오산환경연합과 인터넷 모임 ‘건달산 빌리지’가 주축이 되어 2002년 <건달산 지킴> 운동을 펼치게 되었다. 3만 명의 서명과 수 차레의 민원을 통해, 그리고 상기리 석산붕괴 사고로 인명피해가 난 이후 결국 석산개발은 우여곡절 끝에 중단 되었다. 진통 끝에 건달산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건달산의 중요함을 재인식한 화성시는 서봉산 뒤를 이어 삼림욕장으로 꾸미려는 성의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건달산 주변에는 상기리와 기천리 사이에 위치한 ‘기천 저수지’ 와, 해병대사령부 덕우리 앞에 위치한 ‘덕우지’가 있다. 기천지와 덕우지는 낚시터로도 유명한데 기천지는 물이 맑고 겨울철 빙어낚시로, 덕우지는 일제강점기에 만든 저수지로 월척 급 조과가 유명하다. 이처럼 화성시에서 가장 큰 두 개의 저수지 수원이 바로 건달산 이라는 점은 두말 할 나위없고 이 저수 물들은 팔탄면을 거쳐 남양호로 유입되는 <발안천>을 이루어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화성제일미 ‘수라청’ 쌀을 생산하는 젖줄이 되고 있다. 또한 저수지에 소풍 온 낚시꾼 및 그 가족이 삼삼오오 건달산으로 등산을 하다 보니 이제는 인터넷 블러그 에도 쉽게 등장하는 명산이 되어 있다. 최근에는 화성시에서 등산로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무인 화재경보기를 설치했으며 동선마다 나무의자 쉼터를 마련하는 등 성의를 보여 등산객들이 나날이 늘고 있으며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건달산은 아직 그 입구가 혼재하고 안내판 정리가 안 되는 등 아직 정비해야 할 것들이 산재해있다. 상기리 쪽 방향으로는 석산이 방치되어 있고 길이 끊겨있어 위험하기조차 하다. 시 차원에서 다시 석산 환경을 최종 정비해야 하며, 등산노선은 여러 개가 엉켜있어 초행자는 길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등산안내 표지판이 있었으면 좋겠다. 서봉산이 어머니처럼 편안하고 둥근 산이라면 건달산은 아버지처럼 뼈대와 어깨가 느껴지는 기개 높은 산이다. 건달산 등산은 소나무 숲과 바위 틈새길, 그리고 급경사와 완경사가 알맞게 변화 있는 좋은 등산로이다. 저 듬직한 어깨 넓은 내 고장 청산은 앞으로도 대대손손 화성시민의 건강을 책임져 주며, 자라나는 후세에게 호연지기를 길러줄 훌륭한 자연의 선물이며 조상님의 유산이다.
박석우선생님은 이발소그림책의 저자이며 현재 서울중산고 미술교사로 재직중이십니다.
세곡리가 고향이며 건달산 지키는 일에 동참해오셨습니다.
첫댓글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