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 향

[수필창작반전호준]

            전 의성군 공무원

                                                                    고  향

                                                                                          전 호 준

  고향하면 우선 어머님이 생각나게한다.

늘 그립고, 보고싶고 안기고 싶은 어머님의 품속 같은곳, 언제나 따뜻하고 정겨우며 아늑하고 편안한 고향집 초가삼간 구들장 아랫목 같은곳, 고향을 떠난지 이제 겨우10년 30여년을 일선공무원으로 고향을 지키다가 은퇴와 더불어 고향을 떠났지만 어쩌다 한번 들려보는 고향은 엣날의 향수와 정겨움을 느끼기엔 아쉬움이 남는것은 잃어버린 세월 탓일까?

  내고향은 대구에서 80여km 떨어진 경북의 한 가운데 위치한 의성군 가음면이다.

면 소재지 뒤로는 비봉산이 봉황새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듯 면 전체를 감싸고 있고 앞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쌍계천 맑은 물이 사시사철 감돌아 흐르는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가음면의 유래는 면을 감싸고 있는 둿 산의 형상이 마치 날아오르는 봉황새의 형국이라 비봉 산(飛鳳山) 이라 칭했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산중턱 깊은 곳에 봉황새가 날아와 세 번 울고 사라졌는데, 그 아름답고 웅장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러 퍼졌다 하여 한자로 아름다울 가(佳)소리 음(音)자를 따서 가음면 이라 이름 하였다 하고 , 일설로는 가음면의 주봉인 선암산(船岩山)이 돗단배의 형상인데 배 후미에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가야금을 타는 형국이라 아름다운 소리가 끊이질 않는 곳이란 뜻의 가음면 이라 이름 하였다고 전해 오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가음초등학교 총 동창회 체육대회가 모교 운동장에 있었다.

묵직하고 새카만 기와 지붕에 널빤지로 벽을 감싸고 몰탈 로 단장했던 시커먼 교실의 흔적은 사라진지 제법 오래 되었지만 텅빈 운동장이 내 가슴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운동장 가장 자리를 따라 세로로 줄지어 서서 위용을 자랑하던 10 여 그루의 프라타나스 나무들, 어른 두명이 감싸 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아름 들이 나무들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 아닌가. 그 소중한 무엇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듯한 헛탈감에 눈을 감아본다.

  그 엣날 프라타나스 그늘아래 1000 여명의 친구들이 뛰놀았던 운동장 지금은 고작 20여명이 전교생이라니, 믿기지 않는 현실앞에 귀를 의심해 본다.

부족한 교실에 오전 오후반을 번갈아 가며 수업을 받다 못해 여름 철이면 시원한 프라타나스 그늘 아래 매미소리 자장가 삼아 맨땅위에 아무렇게나 퍼질고 앉아 꾸뻑 꾸뻑 졸면서 수업을 받던 우리들의 야외교실이 살아지고 없는것이 아닌가.

프라타나스 나무는 그 당시 가음국민 학교의 상징이며 자랑이였고 인근 주민들의 피서지 겸 휴식처 였다.

나무가 살아진 황량한 운동장은 모교의 마당이 아닌 남의 집에 손님으로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들은 프라타나스 열매로 공차기를 했다, 헐렁한 검정 고무신에 탁구공 만한 탱자 열매를 사이에 두고 옥신각신 헛 발질을 하면 작은공 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날아오르는 축구시합에 시간 가는줄 몰랐다.

그 시절 축구공은 정기 운동수업 시간이 아니면 만져볼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였다, 우리들은 신이 벗겨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여학생들의 고무 줄 놀이를 기습해 신틀을 만들어 여학생들을 골탕 먹였다.

그 때 욕설을 하며 주저앉아 엉엉 울던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 만났다,

그 시절을 회상하며 손을 맞잡고 운동장 동편 가장자리 느티나무 그늘 아래 둘러 앉았다.

수십년 세월이 더 흘렸건만 인생은 이렇게 변했는데 느티나무는 엣 모습 그대로 우리들을 동심의 세계로 나래를 펼치게 한다. 우리들은 금방 어린 소년 소녀가 되었다. 신로 심 불노(身老心不老)라, 비록 몸은 늙었서도 마음만은 그때 그마음이다.

  행사가 끝나고 교문을 나설때 찡해오는 애틋하고도 서러운 마음, 마을 을 지나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차창에 스치는 아련한 추억들 차창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가는 고향땅, 어머님의 품을 떠나 타관 객지로 길을 떠나는 여린 자식의 심정이 이런 마음이 아닐까?

강산이 열번 변하고 백발이 머리를 감싸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가슴속 한구석 아련히 자리 잡은 영원히 잊지 못할 어머님 품속 같은 곳이 내 고향이 아니겠는가.... 끝.

 산이 준 교훈

                                                                                                              전 호 준

  나무들의 숨결을 코끝으로 느끼며 오랜만에 산행을 해본다.

이제 겨우 이순의 나이에 무릎이 좋지 않아 평소 즐겨하던 산행을 중단한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집에서 출발해 5분 남짓 걸어 나가면 대구의 명소 수성 못이다.

못 뚝 끝자락 수성 랜드 입구에서 도로를 건너가면 바로 법이산 등산로 이다, 입구 오른쪽에 법이산 정상까지는 1.8Km라는 안내판이 산지기처럼 서있다, 시골 노인네들 5일장 가듯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겨본다. 등산로 양쪽으로 하늘에 닿을 듯 늘어선 아카시아 고목나무들의 하얀 꽃무리가 백발노인들의 모습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글퍼진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아카시아 꿀 향을 한입가득 머금어 본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새 힘이 솟는 듯 기분이 상쾌하다.

  지난겨울 끝자락 산에 올랐을 때 숨을 멈추었던 산, 다시 숨을 쉬고 있다. 산은 분명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생물체이다. 아니, 부활의 환희를 자축 하는듯하다, 앙상했던 가지에는 어느새 푸른 잎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들한들 살아 움직인다,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이름 모를 산새들의 입방아, 인기척에 놀란 듯 혼비백산 달아나는 무수한 풀벌레들, 땅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 부활하는 자연의 신비에 취한 듯 홀린 듯 오르다보니 법이산 정상이다.

  대구시 수성구 파동 산9-1번지 해발333m정상에는 그 엣 날 통신 수단 이였던 봉수대의 흔적인 돌 축대가 군데군데 허물어 진채 남아있다. 봉수대의 둘레는 약 50m로 남쪽으론 밀양 청도를 거쳐 오는 정보를 북쪽으론 경산, 하양, 영천을 거쳐 의성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서로간 거리는 약 8km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시공을 초월해 상상을 해보지만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를 손안에 넣은 현대의 문명을 봉화 불을 피우던 그 시절 사람들은 상상조차 해봤을까? 정말 상전벽해가 아닌 천지개벽이다 .

문득 엣 모습 그대로의 봉수대가 무척 궁금하고 보고 싶어진다.

  등산객들을 위해 설치해둔 의자를 외면하고 봉수대 주변 가장자리 바위위에 아무렇게나 퍼질고 않아 생각에 잠겨본다. "지혜로운 자는 바다를 좋아하고 선한사람은 산을 좋아 한다” 는 글귀가 떠오른다. 바다보다 산을 더 좋아하는 나로선 응당 후자일 터, 아무리 뒤돌아 생각해봐도 선한사람은 못될 것 같고 바보 측에는 끼일 것 같다. “선한 사람과 바보는 형제간이다” 라고 했던가, 어리석었던 지난일이 떠오른다.

50,여 년 전 고등학교2학년 겨울 방학 때 마을사람들을 따라 지게를 지고 땔감 나무을 하려 따라나셨다, 그 시절 농촌의 땔감은 나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집에서 10여리를 걸어가면 우리고장의 최고봉인 해발874m 선암산 이다, 산의 주(主)봉이 돛단배의 꼬리 같아 배선(船)자 바위 암(岩)자를 따서 선암산 또는 지방 사투리로 배의 꼬리 같다하여 배(船)미(尾)산 또는 뱀 산으로 불렀다.

어릴 적 우리들은 배미산은 뱀이 우굴 거리는 무서운 산으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두렵고도 신비함을 느껴왔던 산이다.

  그 시절 겨울철 농한기면 농번기를 대비해 많은 사람들이 땔감을 하려 산으로 몰려들었다. 산으로 오르는 입구 길목은 시골 5일장 같이 지게꾼들의 왁자지껄 한 행렬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길섶 풀잎에 피어난 새하얀 서리꽃이 떠오르는 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고 나니 추위는 어느 듯 사라지고 숨이 차고 땀이 난다. 어디까지 올라야 하는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주위의 엄청 높은 산들이 발아래 밟히는걸 보니 아마도 산중턱은 좋게 오른듯한데 발길은 멈추질 않는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땔감을 하기 때문에 잘 마르고 질 좋은 나무를 하려면 더 높이 더 멀리 더 험준하고 깊은 곳으로 들어 가야만했다.

  한참을 더 올라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낄 때쯤 일행들이 하나, 둘, 산비탈 샛길로 각자 흩어진다, 나도 무작정 조금 더 올라가 산짐승들이 만들어 논 일명 토끼 길을 따라 산비탈을 한동안 헤맨 끝에 행운을 만났다.

누군가 제법 큰 소나무 밑 둥을 통째 잘라놓았다, 솔잎이 누렇게 변한걸보니 얼추 마른 것 같다, 아마도 나무꾼들 중 누군가가 후일을 위해 잘라 놓은듯하다.

누구일까！? 혼자만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살아있는 소나무를 단두대에 올려놓고 방치한, 뱃심 좋은 사람이 무척 궁금해진다. 벌써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야 아직은 거둘 때가 이르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바보같이, '행여 그 사이 이 소나무와 같은 운명이 되였을지도 누가 알아, 멍청한 망상 속에 남의 것을 훔치는 것 같은 기분과 어디서 누군가 불쑥 나타날 것 같은 생각에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도 욕심이 난다. 톱과 낫을 이용해 통나무 둥치를 매끈한 놈만 골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보기 좋게 한 짐 했다. 기분이 좋고 신이난다, 짐을 지고 무게를 가늠해보니 조금은 무거운 것 같지만 들뜬 마음과 욕심이 무거움 따위는 짓눌러버렸다.

오히려 남은 놈 들이 아깝다, ‘내일 또 와야지, 나뭇가지 와 풀잎으로 적당히 숨겨놓고 왔던 길을 되돌아 조심조심 비탈길을 벗어나 산길 로 접어들었다. 한등 성을 내려오면 산 능선 왼편 양지쪽에 아름 들이 소나무가 두 그루 서있고 그 아래 여인네의 앞가슴 같은 무덤 한 쌍이 자리 잡고 있다. 아늑하고도 벌이 제법 넓은 명당이다, 일명 진 등 묘 봉 쉼터이다.

  지게를 내려놓고 일행들을 기다렸다, 지나가는 나무꾼 들이 더러는 잠시쉬어가고 더러는 그냥 지나쳐 내려간다, 시장기와 함께 깜박 졸음이 온다. 얼마 을 기다렸을까? 일행들이 한명씩 모여든다, 갖고 온 도시락을 둘러앉아 먹으며 “자네 오늘 한 짐 잘했네 ‘너무 무겁지 않느냐,? 는 걱정에 괜찮습니다, 한마디로 허세를 부리며 의기양양 힘차게 산을 출발했다.

산길은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한 짐 지고 내려오는 산길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다, 두어 바탕 내려 왔을 때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께가 아프다. 한겨울 추위에도 전신에 땀이 배여 온다.

아직도 몇 바탕이 남은 것 같다.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오랜 세월 나무꾼 들이 쉬어가는 곳이 나름 데로 정해져있었다.

마치 시내 버-스 정류소처럼 그 한 구간을 한 바탕이라 했다.

  힘든 산길을 벗어나 산 밑 마을 앞 우물가 쉼터에서 얼음 같은 샘물을 벌컥 벌컥 마시고나니, 땀이 마르며 으슬으슬 한기가 느껴진다, 이제 힘들었던 산길을 벗어났으니 별것 아니겠지, 안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짐이 왜 이리 갑자기 무거워 졌을까? 일행들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자꾸만 뒤처져 간다, 도저히 따라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길가 가장자리에 지게 을 내려놓고 나 혼자 쉬어본다. 아무래도 짐을 너무 많이 진 것 같다. 어쩔 수 없다, ‘세월대로 가야지 산길도 아닌데, 저물기 전에 집에야 가겠지, 느슨히 마음을 먹어보지만 집이 가까워질수록 어께는 무너질 것 같고 짐은 점점 더 무거워만 진다. 발뒤꿈치 까지 따끔거린다.

  방학동안 무슨 놈의 큰일을 하겠다고 지난장날 새로 사 신은 농구화가 화근이다, 지게를 벗고 아무렇게나 퍼질고 않아 양말을 벗어봤다. 발뒤꿈치가 부풀어 올랐다가 터진 듯 진물이 난다. 다시일어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짐을 줄어야겠다, 아까운 심정은 말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다, 큰맘 먹고 두어둥치를 내려버렸다.

‘이젠 좀 괜찮겠지, 그러나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엔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어께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도 무게지만 발이아파 걷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지게를 통째로 벗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다, 이젠 집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궁여지책 다시 살 같은 몇 둥치를 더 버리고 나니,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 아직도 욕심의 건덕 지가 남았나보다, 이젠 빈 지게나 다름없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빈 지게를 지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신다 .자초지종 이야기 을 들으신 어머님 “엣 부터 욕심이 많으면 식물을 감한다고”했다 “가까운 곳에 가서 아무거나 조금해 일찍 올 일이지, 고생했다, 어서 씻고 저녁밥 먹어라”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때 산이 내게 준 교훈을 망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모든 근심걱정 고통은 욕심과 욕망의 산물임을 세월 호 참사가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질 않았던가...

세상엔 내 것이란 애시 당초 없는 것을,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잠시 빌려 쓰다 그냥 두고 가는 것을,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아등바등 마음을 쓰고 고통을 받으며 살아간다.

“어찌 오늘의 내 것이 내일은 네 것인 것을 알지 못할까?”

수성 못 뚝 한견에 우두커니 서서 내려온 산을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올려다본다,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맑은 수면위에 한 무리 오리 가족이 한가롭게 나들이를 하고 있다.

무척이나 평온하고 행복해 보인다, 아마 저들은 무소유의 청빈한 삶을 사시다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끝.

                             삼식(三食)이 의 어느하루

                                                                                                    전  호  준

  아침에 눈을 뜨니 새벽5시다.

어젯밤에도 자정이 넘어 잠이 들었는데, 벌써 나이 탓일까?

그렇게도 늧 도록 기세가 꺾이지 않고 무더위와 열대야로 심통을 부리던 병술년의 여름도 백로가 지나면서 아침 저녁으로 제법 시원한 바람이 지난여름 무더위에 찌든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오랜만에 수성 못 으로 산책을 나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책과 운동을 겸해 열심히 오간다. 마라톤 선수같이 땀을 흘리며 뛰어가는 사람, 다정히 손잡고 오순도순 걸어가는 중년의 남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힘겹게 걸음마 하시는 할아버지의 옆을 애 시리 따르시는 할머니, 애기 대신 강아지를 품에 안은 젊은 여인네, 멍하니 나 홀로 정처 없이 걷는 사람, 뭇 군상들의 틈에 한몫 끼어 겨우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뱃속이 제법 허전해온다.

  지난밤 늧 도록 책과 씨름하던 아내가 잠에 취한 채 입을 연다.

“어제 먹던 식은 밥(남은 밥)이 셋이 먹기에는 좀 적은데 새로 밥을 하면 또 식은 밥이 될 것이고 그냥 먹읍시다.”

아내의 중얼거림에 무언으로 수긍하고 잠꾸러기 아들놈을 한바탕 전쟁을 치른 끝에 억지로 깨웠다.

아내가 어제께 목련시장 생선가계 에서 덤으로 얻어왔다며 자랑하던 생선 대가리 우린 국물의 시원한 맛에 조금 부족한 양이지만 맛있게 먹고 늧 잠 에서 입맛을 잃은 아들놈이 남긴 밥 까지 깨끗이 처리하고 나니 만포장이다.

  커피 잔을 앞에 놓고 신문을 뒤적이고 있으려니, 아들놈을 먼저 학교에 보내놓고 부엌에서 떨거덕 거리며 분주히 움직이던 사람이 연신 시계를 보면서 학교 갈 시간이 바쁜 듯 거울 앞에 앉아 옆 사람이 듣 든 말든 아내가 다시 중얼거린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처 놓았습니다,” ‘일찍 해놓으면 밥맛이 못하니, 11시경 전기 코드를 꼽고 밥이 다 되면 밥솥 뚜껑 스위치를 열림으로 돌려 열고, 반찬은 냉장고에 무엇무엇이 있고, 듣는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서둘러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그래도 혼자 집에 있는 신랑이 되도록 맛있는 점심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일까 ? 미안해하는 마음일까? 아무튼 아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고 내심 생각하며 배를 깔고 업 드려 신문을 들척이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정각 열한시다. 퇴직 후 삼식이가 되면서 무엇이던 아내의 말에 순응하는 선한 목자의 순한 양이 되어 버렸다.

밥솥의 전기 코드 을 꼽고 취사 버튼을 누르니, 전광판이 밥이 진행되고 있다는 대답대신 불빛 신호와 취사라는 작은 글씨에 노란불이 들어왔다. 성공이다.

밥이 익을 동안 TV.를 켜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압력 밥솥의 김 빠지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이제 조금 후 뜸이 들며 먹으면 되겠지, 아침밥이 성에 덜 찬 탓인지 입맛이 돈다. 취사란 두. 글자가 보온으로 바뀌었다.

12시 정각 점심시간에 30여년 길들어진 공직생활, 12,시20,분, 정말 딱 맞는 식사시간이다, 아침에 먹다 남은 생선찌개를 불에 올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아내가 일러준 말을 떠올리며 식탁위에 아무렇게나 나열해놓고, 밥솥의 스위치를 열림으로 돌리고 조심스레 밥솥뚜껑을 열었다.

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있어야 할 밥은 어디로 가고 말라붙은 밥알 몇 알들이 을씨년스럽게도 나을 기다린다.

정말 황당하고도 어이가 없다. “당신도 이젠 나이 탓인가?”‘아니 일상에 쫏긴 바쁜 마음 탓이겠지,‘밥솥 불릴 물을 부어놓고, 밥을 안친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짜증보담 웃음이 난다, 오히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농촌에서 자라나 두 남동생의 뒷바라지와 딸이라는 멍에 때문에 하고 싶던 공부는 꿈 도 꾸지 못하고 보릿고개의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우리들의 세대, 결혼 후 남편의 둿 바라지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은퇴와 더불어 늧 동이 외아들 놈의 학업을 위해 대구로 이사 온지 2년여가 되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시간과 생활의 여유가 쥐꼬리만큼 있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 갈망하던 대학생활의 꿈을 실현하는 아내의 향학열이 가상하여 출혈을 각오하고 허락한 만학도의길,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방해는 말아야지, 평소의 배려하던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짜증스런 한마디가 불쑥 튀어 나온다.

‘그놈의 공부 신랑보다 더 소중한 모양이지?,

  나 혼자 먹겠다고 새 밥을 지으려니, 자신도 없고 귀찮고 짜증스러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찬장을 뒤지니 라면 한 봉지가 나를 기다린다.

냉장고의 계란은 언제 깨어졌는지 깨어저 말라붙은 놈도 있다.

라면 냄비를 대하고 앉아 국물을 입에 떠 넣으니, 라-면 이름이 신(辛 )라면이라 그런지 어찌 국물 맛이 씁쓰레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산지 얼마 되지 않은 밥솥이 불릴 물 때문에 태워먹지 않은 것이 만행이다, 생각 할수록 웃음이 절로 나는 아찔한 하루다.  끝.

[대경상록자원봉사단]

고향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수필창작반전호준]

단장님 항상 격려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