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지학의 성격
1) 합리적 신비주의
인지학은 인식론적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첫째, 보이는 세계 배후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둘째, 그러나 사람 안에 잠자고 있는 능력을 개발함으로써 이 숨겨진 세계에 파고들 수 있다(T. Steiner,1972(a))
인지학은 우주에 대한 정신적 관점에서 연역된 과학적 인식론, 즉 일종의 합리적 신비주의 인식론이라 할 수 있다.
인지학은 인간의 영혼불멸과 그러한 영혼이 계속해서 윤회하는 것을 가정하며, 윤회와 카르마의 법칙을 전제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인지학은 힌두교나 불교적 전통을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힌두교가 물질세계를 환영(마야:maym)이라고 간주하고 경시하면서, 이러한 물질로부터 벗어나 브라만(Brahman:우주적 자아)으로 흡수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 반면 슈타이너는 물질세계를 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와 이원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물질 역시 진화하며 물질은 정신적인 것의 기반이요, 근거이며, 물질세계에는 정신적인 힘과 다양하게 상호 작용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발도르프 교육학은 인간이 윤회의 법칙에 따라서 육체의 옷을 입고 태어나 육화한 것인데, 교육이 육화의 과정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교육은 카르마의 법칙에 따르는 도덕적 요소와 유전법칙에 따르는 신체적 요소 간에 조화를 이루어 정신적 존재가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인지학은 기독교적 전통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정통 기독교를 신봉하고 인지학을 하나의 종교로 만들 시도는 하지 않는다. 슈타이너는 정신과학으로서의 인지학이 어떤 새로운 종교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정신과학은 기독교를 대신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기독교를 이해하는 도구이고자 한다.”
인간의 원죄와 예수를 통한 인간의 속죄와 구원의 문제를 슈타이너는 정통 기독교에서와는 다르게 해석한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골고다의 신비로 인해 ‘최고의 정신’(슈타이너는 이것을 태양정신: sun spirit으로 표현하는) 이 육화하여 지상에 내려와 그 이후부터 모든 인류는 그것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즉 골고다의 신비를 전환점으로 해서 인류는 자아를 절대 정신의 경지로 실현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지학은 특정 종교 교리에 기초한 사상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정신세계를 인정하고, 인간의 근원을 정신적인 우주와 관련짓는 종교성, 신비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2) 인간학으로서의 인지학
슈타이너는 교육이 인간본성에 대한 바른 인식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인간본성에 대한 바른 인식이란 다름 아닌 인지학적 인간이해요, 인간학으로서의 인지학 자체를 뜻한다.
기존의 “인간학은 인간을 물리적 관찰 하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지학은 관찰에서 정신적인 근거를 추궁하고자 한다.” “인지학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즉 인지학이 보여주려는 것은 감각세계의 인지뿐 만 아니라, 이전 생의 존재와 그 일생의 영향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으로 인지학적 인간학은 슈타이너 자신이 직관을 통해 보았다는 인간 본성에서 출발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이를 교조적으로 적용하면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지학적 인간관은 인간이해의 지평을 확대하여 인간을 영적 정신적인 존재로 끌어올리고 있다.
3) 인지학의 사회적 실천
슈타이너는“우리들은 우리의 커다란 과제를 잘 자각해야합니다........ 첫째로 이 시대의 커나큰 빈궁, 둘째로 이시대의 커다란 과제입니다(1919.8.20)” 라고 말하였다
인지학은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일상 속에서 정신적인 면들을 발견하려고 한다. 따라서 인지학은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활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슈타이너 자신이 정신세계와 현재의 물질적 삶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리라고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발도르프교육과 발도르프학교 운동은 인지학의 교육 분야에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회적 실천이다. 슈타이너는 유기체적인 특성을 사회질서의 분화와 통합에 비유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의 세 가지 영역은 크게 경제 영역, 정치•법의 영역, 정신생활의 영역 이다.
삼중적 사회질서의 기본적인 이념에 따르면, 인간의 사회생활은 의식적으로 조직될 때에만 번영할 수 있다.
삼중적 사회질서를 통해 슈타이너는 교육이 경제생활 영역의 요구도 아니고, 정치생활 영역의 요구도 아닌, 인간의 본래 가지고 태어난 바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현재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인력은 무엇인가?’ ‘현재 사회 유지를 위해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는 대신에 ‘인간에게 무엇을 배울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가?’ ‘무엇이 형성되고 발달될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슈타이너는 당시 교육이 국가 권력과 물질주의에 지배되는 것을 비판하고, 교육의 영역에서 자유로운 정신생활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함을 느꼈다. 1919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지방에서 시작한 자유 발도르프학교가 그것이다.
인지학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토대로 교육 이외에도 의학과 농업, 예술, 경제, 자연 과학 등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구체적인 사회활동으로 실천되고 있다.
농업에서는 유기농법(Bio-dynamic : 땅을 살아 있는 유기체로 간주한다)으로 발달하였다. 인지학에 기초하여 발전된 의학과 치료교육 역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또 슈타이너의 삼중적 사회질서 운동에 기초한 아이디어에 따라 타인의 착취가 아닌 복리를 그 활동의 중심으로 세우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책임 속에서 돈과 자본을 대하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가는 은행들이 생겨났다. 비엔나 시절 뇌수종을 앓는 소년을 가정교사로서 가르친 경험이 있었고 남동생이 장애아이기도 했던 슈타이너는 특수교육을 위한 강좌도 개설했다. 그는 장애아의 교육에서 역시 교육자가 문제를 지닌 아동 개개인의 본성을 파악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 캠프힐 운동(International Camphill Movement)으로 발전하였다.
출처 :푸른숲 발도르프 어린이집 원문보기▶ 글쓴이 : 지성아빠(김태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