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가볼만한 곳>
철원 가볼만한 곳을 돌아보자. 아름다운 곳, 가슴 아픈 곳, 너른 평야에 가슴이 탁 트이는 곳, 가슴 시린 맑은 물에 갓끈 씻어야 할 그곳에 와서 우리 산하를 보듬어보자.
국보를 품은 사찰과 너른 철원평야의 오대쌀에 전쟁의 상흔에 처참한 건물과 다양한 폭포의 향연이 모두 어우러져 있다. 어제 본 고석정에 구비구비 한탄강까지 합하면 관광이나 여행, 휴양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이만큼 고루 구비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게다가 실패한 왕조지만 태봉의 왕도가 아니었던가.
6.25때는 얼마나 험렬한 격전지였던가. 국군이 치열하게 싸운 덕분에 휴전선은 전쟁 이전보다 올라가 있어 남한땅에 속하게 되고, 거기다 민통선의 상당부분이 상향 해제되어 이제는 민간의 품으로 돌아온 문화재와 볼것들은 그대로 현대사의 통증이다. 남북으로 찢긴 현대사의 아픔을 이만큼 잘 보여주는 동네도 없다.
먹을만한 향토음식도 고루 갖추고 있다. 한탄강 맑은 물의 민물고기 매운탕과 이북 만두에 메밀국수가 고루 있어서 미식가와 동시에 고향의 토속음식 그리운 이를 함께 부른다.
2019.9.18. 관람
도피안사는 조계종, 신흥사의 말사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절이 어지러운 마음을 편안하게 단순하게 정리해준다. 오랜 동안 민간인 통제구역이었던 이곳, 이제 우리에게 돌아왔다.
2000년에 민통선이 북상하며 통제에서 해제되었다니 최근의 일이다. 다음백과에는 아직도 "휴전선 북쪽 민통선 부강에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백과사전 소개에 대한 탓보다 이제는 볼 수 있게 시절이 좋아진 뿌듯함이 더 앞선다.
도피안사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바로 대적광전에 모신 철제비로자나불과 그 앞의 이 삼층석탑이다. 삼층석탑은 보물로, 불상은 국보로 지정된 것이다.
대적광전은 2012년 보수하였다.
국보 철조비로자나불, 좌대까지 철제로 되어 있다. 제작년대는 865년, 도피안사 건립과 같은 해다. 국보가 박물관이 아니라 이렇게 일반인도 접근할 수 있는 불당 안에 그냥 있어줘서 황송하고 고맙다. 불공드리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민통선 최지근거리에 국보 불상을 앞에 두고 외우는 평화로운 구도의 염불이 불교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도 화재 등에 대비한 철저한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도피안사를 나서 2.5킬로를 가면 노동당사에 이를 수 있다. 노동당사까지만 갈 수 있다. 그 바로 위는 통제구역이다. 조만간 휴전선이 아니라 북한까지도 자유롭게 왕래하는 시절이 빨리 오길 바란다.
이곳 철제불상은 휴전선 안의 안양사에 있었다고 한다. 새로 조성한 안양사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철불이 사라졌는데 나중 도피안사 자리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곳에 도선국사가 절을 세우고 도피안사라 했다. 철불을 잃어버리고 찾는 이야기가 그대로 도피안사 사찰명의 연기설화가 되었다. 부처님이 피안에 이르렀다는 의미의 '도피안'을 이름으로 삼았으니 말이다.
불교계에서는 안양사의 흔적을 찾지 못하는 것을 애닯아 한다. 안양사를 넘어 궁예의 흔적이 묻힌 태봉 왕국은 물론 그곳에 묻힌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역사를 모두 찾아 복원할 수 있는 날이 곧 왔으면 한다.
철원 오대쌀. 벌써 햅쌀 출하가 한창이다. 오대쌀은 맛있는 쌀로 유명하다. 철원은 오대쌀 생산에 협조한 군장병의 고향집에 오대쌀을 추석전에 보냈다. 철원의 마음과 풍요로움이 전국으로 배달되었다.
철원 사람들은 오대쌀이 전국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오대쌀을 사가지고 와서 집에 와서 다른 잡곡 하나도 섞지 않고 그대로 밥을 지어 보았다. 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부심이 근거 있는 거였구나, 싶었다.
찹쌀을 넣은 것처럼 차지고 탱글탱글하고 자르르 기름지다. 이천쌀이 이만하랴, 싶다. 이천쌀은 품질이 좋아서라기보다 한양과 가까워 왕실 납품이 이루어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명성에 값하기 위해서였는지 이천쌀밥 맛도 여느 쌀 못지 않다. 북한에서는 오랫동안 이팝에 고깃국이 최고의 생활 목표였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다. 이만한 이팝이면 삶의 목적이 될 만하다 싶다. 이런 평야를 격전 끝에 남한에 내줬으니 북한의 한은 더 커질 것이다.
철원 오대쌀을 생산하는 드넓은 철원평야. 북한이 이곳을 차지했으면 쌀 부족을 조금은 해결했을 것이다. 치열하게 싸워준 국군에 다시 감사한다.
아울러 후삼국 태봉의 궁예가 왜 이곳을 왕도로 삼았는지 그 혜안에 다시 감탄한다. 조금만 후한 성정을 가졌더라면 이러한 막대한 생산의 힘으로 역사에서 크게 한 몫을 했을 텐데 말이다.
*노동당사. 전쟁의 상흔과 이념 대립과 사상 억압이라는 인류 역사의 아픔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건물 잔해 속에서 수많은 인골과 철사줄 등으로 이곳에서 자행된 만행을 보여주었다.
아픔도 역사가 되고 힘이 된다. 역사의 교훈은 영웅에게서 선행에서만 얻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반면 선생이 되고 있는 노동당사, 분단과 전쟁의 상징으로 남은 역사가 제대로 역사가 되어 미래의 불행까지 다 가져갔길 빈다.
노동당사 앞길. 도로 끝에서 다시 민간통제구역, 민통선이 시작된다.
*직탕폭포. 고석정과 더불어 한탄강이 자아내는 최고 절경 중 하나이다. 마치 등용문같은 느낌, 이곳을 솟아 올라야 용이 될 거 같은, 그만큼 높지도 거대하지도 않다. 상류여서 강폭도 그리 크지 않다. 이쪽저쪽을 연결하는 돌다리가 바로 위에 있어서 폭포를 끼로 둘레길로 걸을 수 있다.
서울 한강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대신 한강은 수운의 중심이 되었다. 지방의 세금, 특히 곡물 운송이 가능했던 것은 수로 덕분, 바다와 강을 이용한 운송로를 통해 세곡미를 운반했다. 한탄강의 이런 비경은 거꾸로 그런 것이 어렵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쉬운 것은 주차장이 없다는 것. 주변 땅은 모두 음식점, 사유지다. 철원팔경이 왠지 안타깝다. 이것도 항상 명암이 같이 있다는 진리인가.
삼부연폭포. 솥 부에 심연 연자를 쓴다. 세 개의 물웅덩이가 솥 모양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궁예가 철원을 도읍으로 삼을 때, 이곳에서 용 세 마리가 승천했다 한다.
비극적인 최후 덕분에 아기장수, 김덕령 등과 함께 민중영웅으로 분류되는 그가 활약하기에는 난관이 많으니 신령스러운 기운이 도와야 했을 법하기는 하다. 이런 전설은 바로 그에게 신령성을 주어 힘을 부여하려는 민중의 의도가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철원 고석정 바로 옆에서 꽃축제가 열리고 있다. 철원 산천을 꽃과 함께 즐기도록 낮은 꽃, 꽃잎이 잔잔한 꽃 위주로 심어 놓았다.
고석정. 철원팔경 중 하나.
잡어매운탕. 한탄강에 오면 맑은 물에서 잡은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어야 한다. 추천할 만한 집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먹어 본 잡어는 하나하나 제 맛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다. 육질이 달게 느껴질 정도다. 시래기가 없어 서운했던 매운탕인데, 시래기 없는 것이 이 지방 특색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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