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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5월초 영종 구역 담임자 종순일 전도사와 김치덕 권사가
구역 순행중 옹암교회를 들렀는데 교인들은 부흥회를 인도할 인도자를
요청하였다
장봉섬 지역은 1920년까지 강화 남구역에 속해있었다
장봉도 지도
종순일 전도사는 강화에 인도자 파송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으나 사정으로 인도자가 내려오지 못했다
이 무렵 두곡교회 정윤화 속장(45세)은 진촌교회의 교세가 더 빈약함을 알고 그곳으로 가서 부흥회를 인도 하려고
5월6일 전치옥 속장과 함께 아침 일찍 두곡교회를 출발하여 작은 매너미를
넘고 매너미를 넘어 미루지 해안에서 배를타고 장봉도 진촌나루터에 내려
진촌교회를 찾아가 김경즉 속장에게 오게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교인 숫자가 너무적어 부흥회를 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발길을 돌려 본도로 오려고 나루터까지 나왔을때 옹암교회 이군선과
김순서 속장이 진촌교회에 볼일이 있어 왔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후
옹암교회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랬더니 아직도 부흥회가 열리려면 며칠 걸리기에 전치옥 속장은 집으로
되돌아 가고 정윤화 속장은 부흥회를 인도 하기 위해 이군선 김순서 속장과
옹암교회로 갔다
가서 월요일 밤부터 부흥회를 인도했다
(그때는 남반 여반으로 앉아 예배를 드렸다)
(장봉도를 가려면 두곡교회에서 작은 매너미(뫼넘어)고개를 넘어 다시 매너미고개를 넘머 미루지에 가서 배를 타야한다)
두곡교회에서미루지까지 거리는 약 4km
작은 매너미고개----첨성단에서 상봉산으로가는 중간에 잘쑥 들어간 부분
매너미고개----참성단에서 여차리 화류봉으로 가는 중간에 잘쑥 들어간 부분
(여차리 미루지 뿌리와 동막리 돈대뿌리간 약 2.5km의 제방은 196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제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미루지에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6.25 때에도 화도 분들이 미루지에서 배를 타고 장봉도로 피난을 갔으니 말이다)
차신자(75) 권사님 증언에 의하면 권사님은 어릴적에는 미루지에서 사셨으며 아버지께서
낙배(풍선)를 부리셨다고 하였다
낙배는 댓고작이 두개로 연평도 앞바다에 가서 조기를 잡아 오셨다고 하였다
그당시 큰배도 여러척이 있었으며 작은배들도 많았는데 작은 배들은 펄에 그물을 매고
고기를 잡아 왔다고 하였다
※정유화 속장님도 그 당시 낙배를 타고 장봉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 앞산 왼쪽으로 미루지 뱃터가 있었고 바다 건너가 장봉도이며 왼쪽 뿌리에 선착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사분에 삼 지점에 진촌 나루터가 있다 )
미루지와 장봉도 거리는 6.3km 이다
5월10일 밤 참석인원 39명 성경----요한계시록2:1~7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 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5월11일 밤 참석인원 59명 성경----야고보서1:12~18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는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5월12일 밤 참석인원62명 두곡교회에서 내려온 전치옥 속장과 조만석이 합류했다
5월13일 밤 많은 분들이 치유받는 이적이 일어났다
5월14일 오전에 전치옥 속장과 조만석은 강화로 돌아왔다
밤 마태25:31~46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것
같이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 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 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 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 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2:17~19
하나님이 말씀 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모든 사람이 은혜 충만한 가운데 부흥회가 끝났다
5월15일 해질무렵 배에 오르니 옹암교인들이 배웅하였다
두곡교회로 돌아가는데 옹암교회 교인 12명이 동행했다
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심했고 두곡으로 걸어 오는 길에도 폭우가
쏟아졌다
가던중 3차례 머물러 서서 일행에게 생명수를 불어 넣어 주고 밤중에
두곡 교회에 도착했다
도착 후 기도회를 갖고 예배당 안에서 잤다
5월16일 주일 정윤화는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을 선포했다
5월17일 정윤화는 장봉도에서 온 교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전도하여 생명록을
작성 하라고 명하였다
돌아오는 주일(5월23일)에 다시 두곡 교회로 모일것을 명하였다
이에 장봉교인 8명은 배를 타고 돌아갔다
1915년 당시에도11칸 예배당 모습은 같았습니다 내리553번지
1909년에 정윤화(남):교회학교 교장 전치옥(남):속장 으로 기록 되어있습니다
5월22일~24일 두곡교회에서 집회를 인도 하였다
24일날은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조반을 먹은후 모두 다
마리산으로 올라가 기도회를 가졌다
6월1일~6일 옹암 진촌을 오가며 집회를 인도 하였다
☞정윤화 전도사님에 대하여 알아본다
(명치1년--1868년 대정1년--1912년 소화1년--1926년)
1871년 6월1일------하도면내리555번지에서 태어났다 (명치4년)
아버지 정덕원(나주정씨)
어머니 이아선란
처 이애라
1903년 교회 설립당시33세
1915년 속장으로 일해오다 부흥회 인도(45세)
5월10일부터14일까지 장봉도 옹암교회 집회인도
5월22일저녁부터24일 새벽까지 두곡교회에서 집회인도
집회후 마리산 참성단에 올라 예배인도
이때부터 마리산 부흥회가 시작 되었다
6월1일부터 6일까지 옹암교회와 진촌교회에서 집회 인도
1916년 권사천거 장봉에서 특별기도회인도
1917년 권사1년급 두곡 교회에서 본처 전도사로 일했다
정윤화 권사집을(555번지) 사택이라 불렀다
1918년 권사2년급
1919년 전도사1년급
1922년 전도사 4년급 수료
1924년 내리교회 전도사로 일 하시다 3월2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윤명삼 선생님은 금년에 내리 마리산 자락에 구식 기와집으로 신축교사 50여칸을 마련 하였다
교장--------주윤창
부교장------윤명삼
학감--------정익섭
교사--------유봉진 김양권 김성권 주장훈 주시민 조경복
★윤명삼 선생님은 신축교사를 마련한후 6월4일 하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
☞내리교회 설립자 윤명삼 선생님에 대하여 알아본다
선생님은 강화읍을 드나드시다 복음을 받아드리게 되었으니
바로 그 교회가 강화읍 잠두교회 입니다
잠두교회는 1900년에 세워진 교회이며
본교회를 다니시다
윤명삼 성도님은 1903년 3월15일 화도면 안골 송강리 본인의 집 사랑방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송강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니 잠두교회에서 첫 번째로 개척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도 교회 생일을 3월15일로 지키고 있으며
첫예배에 정윤화씨가 참여 하므로 그후부터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잠두교회의 도움으로 성장하게 되었지요
교회가 세워진지 1년이지나 본 교회에 다니던 성도들을 통하야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1904년----장곳교회
1905년----곳창교회
1906년----문산교회 ----- 장봉에 옹암교회가 개척하게 됩니다
또한 1906년 윤명삼 성도는 양도면 조산리 조산 합일학교를 세우는데 힘썼으며
그후 교회는 날로 가정수가 늘어나자
1907년에는 두곡553번지(대지70평)에 예쁘게 초가 7칸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사하여 두곡 교회라 부르게 되었으니
본 교회는 언덕바지 길옆에 자리하고 있으며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정윤화 성도의 집입니다
교회를 여기에 세우게 된것은 이곳이 내리의 중심이 되기 때문인것 갔습니다
(그 후 1922년에 바로 윗쪽 내리 산 3번지로
면 사무소가 이사 왔으니까요)
두곡교회는 자리가 비좁게 되자
1908년에는 초가 7칸에서 11칸으로 증축하였습니다
그당시 얼마나 기뻤을까요
지금도 본교회 사진이 남아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윤명삼 성도는 할일이 또있다 하였으니
바로 그것이 문맹 퇴치였습니다
1908년에 정규창씨의 넓은사랑방을 빌려 리산학원을 세웠지요
이 지역에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 드리게되어 기뻤고
공부를 하게 되어 기뻤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장되어가자 윤명삼 선생님은 교육과 구국 운동에 힘쓰셨으며
정윤화 전도사님은 성령운동에 몸을 바치시게 되었으니
이것은 길이길이 내리의 자랑이요 이 민족의 자랑이 될것입니다
정윤화 전도사님은 마리산 부흥회에 불을 붙이셨으니
그불이 오늘에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불은 꺼지지 아니할것입니다
전도사님은 51세의 나이에 전도사 4년급을 마치셨으니
그 당시로 볼때 대단하십니다
1924년 3월20일 부흥운동을 이끄시던 전도사님이 54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금년에 윤명삼 선생님은 56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리 마리산 자락에 신축교사 50여칸을
마련하시고 부교장에 임명 되셨는데 그때 그 감격 또한 이루 말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계셔 6월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두분은 교회 설립당시에도 함께 하셨는데 불러가심도 함께 하셨으니 말입니다
이리하여 정윤화 전도사님의 바톤을 김수창 전도사님이 받으시고
윤명삼 선생님의 바톤을 네째 아들 윤재근씨가 물려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리산학원에서----리산 학술 강습회로---- 리산 고등공민 학교로-----리산 중학교로
그후 그자리에 심도 중학교라 부르게 되었으니
선생님의 교육 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계속 될것입니다
☞윤명삼 선생님의 후손
윤명삼----윤순근-----윤병운 윤병돈 윤병효
윤형근-----윤병헌 윤병식 유병춘 윤병문 윤병일
윤준근-----윤병엽 윤병덕
윤재근-----윤병열(미국)
윤성근-----윤병수 윤병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