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자식을 위하여
이서지
한국에 왔다.
얼마 만인가 몇십 년 만인가 뒤돌아본다. 벌써 61년이 지났다. 그 옛날 어릴 적 대명동에 살면서 교육대 정문 앞에 숨어서 책가방 들고 교대로 공부하러 다니는 학생들이 너무 부러워 숨어서 바라보았던 내가 일흔을 바라보며 교육대학 사회교육원 자서전회고록반 장호병 교수님 슬하에서 공부하는 것이 꿈만 같다. 하느님이 내 마지막 삶에 귀한 선물을 주신 것 같다. 열심히 글쓰기 공부해서 지나온 내 삶의 아픔과 세상살이에 부대끼고 시달리면서 험한 고비 넘어온 과정을 글로 써 봐야 하겠다. 늘 내 마음에 무거운 한을 남게 했던 쓰라린 일들은 멀리 내다 던지고 보다 밝고 희망에 찬 날들을 만들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남들은 지난날들을 멋진 추억으로 안고 있겠지만 내 지난 추억들은 늘 아픈 상처투성이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엄마들이 ‘우리 아들 우리 아들’하고 전화 받으면서 나누는 다정한 대화도 부러웠다. 나 또한 남부럽지 않게 자식을 위해 살아왔다고 하면서도 두 자식 앞에서는 고생하며 공부시킨 일 때문에 늘 죄인 같다.
너희들 잘 자라주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눈물 가득한 내 마음을 남이 눈치챌까 봐 뜨거운 눈물을 속으로 삼킨 일들이 수도 없다. 남의 나라 땅에서 초등학교에서 대학교 박사과정까지 밟을 동안 두 손 모아 하늘에 빌고 땅을 보고 다짐하고 힘을 내었다. 이국땅 골목골목을 헤매면서 두 자식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못난 어미에게 용기를 달라고도 빌었다.
울며 헤맬 때가 어제 같은데 살다 보니 좋은 날도 나에게 온 것 같다. 그렇게 다칠세라 빗나갈세라 애원하며 빌고 염원했던 일들이 이루어졌다. 좁은 공간 방에서 책상이 없어 밥상을 놓고 시작한 내 두 자식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다. 이젠 훌륭하게 자라서 험난한 세상 내 나라가 아닌 남의 나라 일본에서 존경받으면서 잘살고 있다. 두 자식이 내겐 재산이며 보석보다 귀하다.
아들아, 딸아, 여기까지 오는 동안 너희들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뿐인데 똑바로 살아준 너희들을 보면 엄마는 이제는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아들아, 딸아, 각박한 세상 사노라면 뜻대로 되지 않고 힘겨울 때가 많단다. 어려움 닥쳐도 잘 살아가리라고 믿는다.
얘들아! 고맙다. 건강하고 부디 행복해야 한다.
너희들 행복이 곧 이 엄마의 행복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