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 만큼 왔니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정신분열증 11년 만에 시집을 낸 최승자 시인. 그녀의 음성에서 쇳소리가 났다. 살가죽이 거의 붙은 얼굴과 그 속의 쑥 파인 눈. 마른 막대기 같은 몸피를 숫자로 환산하면 키 149cm 몸무게 34kg이다. 그녀는 가족이 없었다. 서울의 세 평짜리 고시원과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정신분열증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의 직전 단계까지 간 그녀를 찾아내 포항으로 데려온 이가 외삼촌이다.
밥 안 먹지만 취미는 요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흘러가지 않는 저 세월은
내게 똥이나 먹이면서
나를 무자비하게 살려둬
최 시인은 1952년 충남 연기 출생이다. 수도여고와 고려대 독문과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