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강인숙
봄의 신부
한줌 꽃 꿈
잉태를 하기 위하여
그리움의 사연 거느리고,
꽃잎 터트리고 떨고 있는
거룩한 표정
바람도 네 앞에선 깃을 접은
황홀한 갈망
운제산장
강인숙
산모퉁이 길 돌아돌아가니,
어오지* 겨울 호수가 은빛으로 잠겨있다
눈보라 속에서도
소나무는 여전히 푸르름으로 옷 입고
산지인양 변함없이 버티고 있다
산에 새소리가 없으면 죽은 산이라더니
비비새의 가냘픈 노래가 여울져 흐른다
눈 덮힌 겨울 산
묻어나는 산 냄새는 여전히 산 냄새다
운제 산장* 작은 연못
송어와 향어가 어우러져 물살을 가른다
운제 산장 닭집에는
오리와 닭이 어울려 살아간다
어-언-산 해 기울면
닭들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건만
오리들은 쉴 새 없이 꽥꽥거린다
이놈의 오리 때문에 닭들이 야위어만 간다고
내일은 오리 떼를 쫓아내고야 말겠다는 주인의 성화에도
운제 산장은 여전히 시가 잇고 솔잎 향 그윽한 곳이다
“*어오지 –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위치한 호수
*운제산장 -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위치한 운제산에 소재
오월
강인숙
노-란 유채꽃밭
하얀나비 노랑나비 어우르며 춤을 춘다
함박웃음 하얗게 부서지는 찔레꽃
눈부시도록 화사한 취기
신열에 들뜬 바람이
불고
청초한 햇살 머금은 아까시
꽃향기 메아리처럼 퍼지면
가슴 두근대는 첫사랑의 추억
담장 너머로 내민 사랑스러운 장미 얼굴
부드럽고 미소 머금은 너의 모습 곱기도 해라
포항제철 긴긴 철 울타리에
하얀 꿈으로 빼곡히 피어난 파라간세스
예식장 줄지어있는
신부들의 행렬같이 황홀하다
오월의 아침
푸른 햇살
라일락 꽃 향기 짙푸른 꿈
사랑에 물들다
아름다운 집
강인숙
문화공보부 종무국장을 지내신 이종률 선생 댁,
삼천여 평이 넘는 땅에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한옥,
안채와 바깥채, 그리고 사랑채가
옛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정신이 존경스러웠다
안채인 ‘해강제’에는 송영국 선생의 솔잎 국화가 걸려 있고
‘낙오정’에는 조선말의 유명한 문인들의 글이 담겨 있고
동파 선생의 ‘강산적설’이라는 그림도 여운에 남는다
이종률 선생이 좋아했다는
구상 시인의 ‘꽃자리’가
액자에 담겨 있다
고풍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한옥
시와 그림이 아름다운 집
장연이를 보내며
강인숙
비단결보다 더 곱고 착했던 장연아
뜀박질만 하면 숨이 차서 헐떡여도
부모님 걱정시킬세라, 내색 한 번 못하고
혼자서만 가슴앓이
끙끙 앓더니만
기어코 파리한 입술 떨며 쓰러졌었지
바싹 마른 너를 보면
부모님은 세상을 다 잃은 듯 했단다
병원에서 심장판막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비가 없어 약으로만 하루하루 지탱하다가
수술대에 눕던 날
여덟 시간의 기나긴 죽음의 터널에서
우리 모두 함께 떨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하나님이 허락한 귀한 시간들
그때에
너의 모습은 천사의 얼굴같이 해맑게 밝았단다
결혼하던 날
결혼 행진곡에 발맞추어
아버지와 달의 모습을 보는 순간
기쁜 날에 웬 눈물이 그리도 쏟아지는지
결혼 후
고달픈 삶을 내색 안하고 견디고
아이를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받고서도
아이를 가졌지
어렵사리 팔삭둥이를 낳고 다시 재수술대에 올랐고
인큐베이터 속의 아이도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들을 넘기었다
그 파리한 몸 해가지고 애 키우랴, 공장에 나가 돈벌랴
고생도 눈물도 숱하게 했건만
부모님께는 늘 잘 지낸다고 웃으며 전화하던
너는 착하기만 했다
그토록 힘든 삶을 꿋꿋하게 버티던
장연아
그깟 감기로 이레 만에 천국에 가다니!
“엄마가 보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가지 못한 부모님은
억장이 무너지는 설움에 가슴을 찢고
울고 또 울었단다
너의 생명을 걸고 키운 딸 혜은이
참 예쁘게 자랐더구나
혜은이는 유치원에 갈 시간이 되면
엄마가 깨워준다고 일어나서는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다고
외할머니한테 전화하면
할머니도 울고 손녀도 울고
이제 천국에서는
수술의 아픔도
공장 다닐 고달픔도 없을테니
예쁜 딸 혜은이와 연로해 가시는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겠지
이제
너를 떠나보낸 아픔보다
너와 함께 한 아름다운 삶을 우리에게 허락한
주님께 감사하며, 천국에서 만나보자
서른 셋 서러운 나이
훌쩍 떠난
사랑하는 나의 정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