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짐> 찾는 곳
-윤동재
2011년 여름, 나는 모처럼 외국에 나가볼 기회를 가졌다. 설렘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가서 짐을 부치려고 하는데 안내 표지판을 보니 눈에 거슬렸다. 안내 표지판에는 ‘짐’이라는 누구에게나 쉽고 정겨운 우리말은 없고, ‘수하물手荷物(てにもつ), 行李(xíng‧li), baggage’로만 표기되어 있었다. 수하물이라는 말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으나 이 말은 우리말이 아니고 일본말이다. 그러니 우리말이 없는 것이다.
외국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짐을 찾으려고 하니 그곳에도 ‘짐’이라는 우리말은 없고 수하물이라는 일본말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다. 짐을 부치는 곳에 우리말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짐을 찾는 곳에 우리말이 없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들어올 때는 인천공항이 우리나라 관문, 출입문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인천공항에 전화를 했다. 인천공항은 우리나라 공항인데 안내 표지판을 보니 짐을 부칠 때나 짐을 찾을 때 누구에게나 쉽고 정겨운 우리말 “짐”이 빠져 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했다. 다른 나라 공항을 보면 안내 표지판에 자국어를 가장 먼저 쓴다. 인천공항 안내 표지판이 이 모양으로 되어 있으니 누가 인천공항을 우리나라 공항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안내 표지판에 ‘짐’이라는 우리말을 꼭 넣어주십시오 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이 방금 전화로 주신 말씀을 인천공항 ‘고객의 소리(VOC)’에 올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나중에 답변을 드리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곧바로 거기에다 올렸다. (접수번호 A201108-0355, 접수일자 2011-08-19 17:32:05) 그러고는 인천공항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인 2011년 9월 15일 내 전자우편으로 인천공항의 답변이 왔다. 반가웠다. 전자우편을 열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터미널 안내 표지판을 담당하고 있는 공항공사 터미널 건축팀입니다. 인천공항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의 제안대로 저희 공사에서는 현재 안내표지판의 단어를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재검토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제안하신 내용 중 "수하물 찾는 곳"은 "짐 찾는 곳"으로 최근에 변경되었습니다. 일부 장소에 "수하물"이라는 용어가 소수 남아있을 수 있으나 곧 변경작업이 완료될 예정이며, 다만 입점해있는 기업의 영업 관련 문구(택배사 등)는 공항공사의 권한으로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점에 대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수하물’이라는 말 대신 ‘짐’이라는 쉽고 정겨운 우리말을 가장 먼저 써서 바꾼 안내 표지판 사진도 붙임으로 보내주었다. 뛸 듯이 기뻤다. 그 뒤 또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어서 인천공항에 가 보았더니 짐 부치는 곳이나 짐 찾는 곳 모두 ‘수하물’이란 말 대신 ‘짐’이라는 쉽고 정겨운 우리말을 맨 앞에 넣은 안내 표지판으로 거의 대부분 바뀌어 있었다. 가슴 뿌듯했고 내 제안을 받아들여준 인천공항이 고맙고 고마웠다.
조동일 교수의 <<해외여행 비교문화>>(보고사, 2018)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유구(琉球りゅうきゅう)에서 지방 여행을 하다가 박물관에 들러‘방언찰’(方言札)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나무 패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45년 이전 학생들이 일본어가 아닌 유구어를 말하면 이 패찰을 목에 걸었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더 알아본 바로는, 이 패찰을 목에 걸고 있는 수모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학생이 유구어를 사용하는 것을 발견하고 패찰을 그 학생 목에 옮겨 걸어야 했다고 한다. 그 패찰을 목에 걸고 있는 학생은 벌을 받았다.”
조동일 교수는 덧붙여 우리나라에서도 김용직 교수의 증언을 들어 다른 형태로 아침에 교사가 학생에게 일정한 수의 딱지를 나누어주고, 조선말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가지고 있는 딱지를 빼앗으라고 했다고 했다. 저녁 때 교사가 조사해보고, 딱지를 많이 가진 학생은 상을 주고, 딱지를 적게 가진 학생은 벌을 주었다고 했다.
일본이 유구에서나 우리나라에서 유구말이나 우리말을 버리고 일본말만 사용하게 한 것은 유구 사람이나 우리나라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일본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말을 마음껏 써도 되는 시대에, 우리말을 쓰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이 시대에 구태여 쉽고 정겨운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일본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외국말을 쓰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외국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 쓰는 일은 국어학자의 몫만은 아니다. 한글운동가나 한글 애호가의 책무로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다. 외국말이 넘쳐나는 이 기막힌 시대에 우리말을 지키고 살려 쓰는 일에 모두 나서자고 소리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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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짐을 너무 열심히 찾다가 마음을 잃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