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라며 후배 문인이 프리지어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샛노란 꽃들이 너무나 이쁘다. 세어보았더니 무려 아흔여덟 송이다. 그들이 밤새 저마다 향기와 색깔을 뽐내며 우리 집에 온 인사를 이리 해댄 것이었다.
자고로 꽃이란 색깔의 아름다움도 치지만 향기가 있어야 한다. 향기 따라 벌 나비도 찾아들고 그 향기를 흠흠거리며 사람들도 좋아한다. 향기를 따라 고개를 돌려 보게도 된다. 그러고 보면 꽃의 첫째 사명은 향기일 것 같다.
문득 명색이 글을 써오기 사십 년이나 되어가는데 내 글에 향기는 있는 것일까 의아해진다. 글자가 되었다고 다 글은 아니잖은가. 스무 권이나 책을 냈지만 낼 때마다 엄습하던 두려움과 불안도 늘 그 자리에서 머무는 것 같은,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는 내 사고와 사유 그리고 평범한 표현들이 아니던가. 그러다가 보내어오는 책들을 받으며 어떤 작품에선 더이상 펜을 들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을 느낄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제도 받은 책 중 하나는 나무 수필이고 또 하나는 전원수필이고 다른 하나는 수필 쓰기에 관한 것이었다. 나무에 대한 사유로만 수필집 한 권을 묶었고 전원생활의 사유를 모아 역시 한 권의 수필집을 내었고 한 권은 수필가로서 쓰고 가르치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찌나 재밌게 써냈는지 잠깐만 본다는 것이 책의 반을 놓지 못하고 보고 있었다. 오는 책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처음 몇 줄도 못 나가게 하는 것도 있고 너무 뻔한 이야기로 글이랄 수 없는 것도 있다. 색깔도 향기도 없는 것들이다.
프리지어의 향을 내 안 깊이로 들이마셔 본다. 그러고 보니 내 살아오는 동안 이런 짙은 향기로 내 삶을 응원해 주신 분, 있는 듯 없는 듯한 향기로 나를 도와주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분들 덕에 이만큼 글을 쓰는 흉내라도 내고 있지 싶다. 그분들만은 못 되어도 내 향기의 감동과 응원과 도움도 되는 글쓰기와 삶이었으면 싶다. 쉽진 않을 것이다. 여태껏 못 한 것을 어찌 지금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여태 안 된 것이 지금이라고 되겠는가마는 프리지어 향과 만나고 보니 더 조급한 마음 가득 욕심도 생긴다. 화향 백리(花香百里) 인향 만리(人香萬里)란 말이 있지만 어찌 꽃향기가 백리에 미치겠으며 사람의 향기가 만리에 이르겠는가. 하지만 공감과 감동을 넘는 감격의 글이 되면 백리 만리가 아니라 지구를 몇 바퀴 도는 크고 긴 감동의 여운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프리지어를 바라본다. 98송이의 꽃들이 저마다 활짝 웃으며 ‘그래 잘 생각했어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응원할게’ 한마디씩 하는 것 같다. 그래 한 번 해볼까. 이 봄 나의 마음 밭에 피어오른 의욕의 꽃 싹들과 좋은 글 좋은 삶을 위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저만치 떠오른 아침 해도 방긋 웃고 있다. 오늘은 날도 좋을 것 같다. 프리지어가 주는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