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꼬리 팽이
겨울이 되니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팽이가 생각난다.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것인데 밑에 박힌 구슬은 반들반들 빛났고, 너무 오랜 세월을 채로 두들겨 맞아서 그런지 허리는 마치 조각품 비너스같이 매끈하고 잘록했다. 또 시합할 때면 얼마나 잘 도는지 승률이 높아 아이들 모두가 몹시 부러워했던 박달나무 팽이다.
그런데 그 팽이를 잃어버린 것이다. 팽이치기는 겨울철에 얼음판이나 마당에서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봄에서 가을까지 잘 보관해야 했지만 무관심하여 잃어버린 것이다. 지금이야 금방 문방구에 가서 사와도 되지만, 그땐 돈으로 사는 것도 몰랐고, 상점이 있는 5리 길 소재지엘 가본 일도 없었으니 막무가내로 아버님께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기만 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애타게 졸라대는 막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답도 없으시고 일만 하셨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간다. 아버님은 유달리 근면하셨기에 농한기에도 솜 틀기,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쇠죽 쑤기 등으로 바쁘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팽이를 잃어버려 마당에 나가 놀지 못하는 막내의 안타까운 마음을 모른 체하시는 아버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체념하지 않았다. 믿었던 아버님이 외면하시니 이젠 누굴 의지할 수도 탓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듯이 내가 손수 팽이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다락에서 톱, 깎기 망치, 낫을 꺼내어 뒤꼍 나뭇단에서 아이 손목 굵기만 한 소나무를 잘라와 쪼그려 앉아 깎아댔다. 한참을 다듬고 매만지니 어느 정도 팽이의 모습이 갖추어졌지만, 모양새가 마치 배추 뿌리같이 울퉁불퉁하고 길쭉한 게 너무 조잡했다. 그렇지만 조급한 마음에 밑에다 못을 두드려 박고 마당에 나가 아이들과 당당히 맞섰다.
팽이를 헝겊 채로 휘감아 마당에 뿌린 다음 채로 살살 쳐보기 시작했다. 비실비실 돈다. 그러나 금세 쓰러지고 만다. 그래도 다시 힘을 내어 치기를 계속하니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어린애 응석하듯 뱅뱅 돌았다. 하지만 시합을 하자마자 제일 먼저 누워버려 그만 버티지 못하고 마당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이 안타까운 마음을 아버님은 모르시겠지. 혼자 중얼대며 마당 가운데서 씩씩하게 돌아가는 다른 팽이들을 시샘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애써 만든 내 팽이를 화풀이하듯 걷어찼다. 그래도 그 녀석! 미숙아 같이 비실댔어도 그해 겨우내 동안 나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어렸어도 과감하게 다락에서 연장을 꺼내 팽이를 만듦으로 나는 무언가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왜냐하면, 그 후 연을 손수 만들어 마루터기에서 날렸고, 썰매도 손수 만들어 겨우내 마당이나 논배미 얼음판에서 타고 놀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버릇이 남아서인가 아내의 칭찬에 개장과 평상을 만들어대고, 한적한 시간이면 종이접기나 동영상을 만들고 있으니 난 혹시 아직도 철이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