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고장 보은> : 정이품송, 서원리 정부인 소나무, 세조로 소나무
한국인의 나무는 소나무다. 취미는 등산,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다. 2019년 조사에서 51%가 소나무라고 답하여 2위인 벚나무 7%보다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우리는 산이 많은 나라다. 그 산에는 대부분 나무가 있다. 그래서 산이 숲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산이면서 숲이 없는 나라가 많고, 숲이어도 산이 아닌 경우도 많다. 사막지대의 산에는 당연히 나무가 없고, 중국만 해도 나무 없는 산이 많다. 몽골의 산에도 대부분 나무가 많지 않다. 알프스산맥도 상당부분이 나무 없는 산이다.
핀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숲이지만 대부분 평지에 있다. 국토종단 기차여행을 해도 가도가도 평지에 줄기가 하얀 자작나무가 주류를 이뤘다. 우리는 산에 가는 것은 숲에 가는 것인데, 핀란드는 숲에는 가고 산에는 못간다.
중국 특히 황하강 유역은 산에는 가지만 숲에는 가기 어렵다. 황하문명을 일으키느라 나무가 없어져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문명 전에는 80%이던 숲이 5%로 줄어들었다 한다. 문명의 전파로 빚을 진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우리에겐 평지는 농사를 짓거나 사람이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의 공간이고, 물이 흐르는 물의 공간이고, 산은 나무가 사는 나무의 공간이다. 산이 많지만 거의 2천 미터가 넘지 않으므로 1,300미터 이하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 된다. 소나무는 건조해도 햇빛만 있으면 잘 자란다. 실제로 소나무의 분포도가 가장 넓다.
우리에게 산은 소나무숲인 것이다. 결국 등산을 하는 것은 소나무를 보러 오르는 것이나 진배없다. 등산과 소나무는 동의어인 셈이다. 낮은 산이어서 등산이 가능하고, 낮은 산이어서 소나무가 자라니, 등산과 소나무는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그러다보니 나무 중에서는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대하는 소나무와 가장 친하다. 소나무는 민족나무다.
대부분 나무가 인간에게 그러지만 소나무 또한 버릴 게 없는 나무다. 기둥은 마을을 지켜주는 장승으로 쓰이고 서까래, 대들보 등 건축재료 , 옷장 뒤주 등의 가구 재료 및 지게, 절구, 나막신 등 생활용구로 쓰이고, 잎과 가지, 줄기는 모두 땔감으로 쓰였는데 소나무 장작이 가장 좋은 땔감이었다.
송진도 채취하여 화학약품을 얻었다. 아산의 봉곡사 입구는 멋진 소나무로 유명한데, 일제시대에 송진 채취를 위해 밑둥에 낸 상처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송진이 많이 엉긴 솔가지는 불을 붙여 관솔불로 쓰였다.
'광솔 있는 데만 가르쳐 주시우. 내가 켜놓을 테니.'
'광솔은 여기도 있지.'
하고 그 어머니가 토마루 앞구석에 있는 광솔을 집어다가 아들을 주니 그 아들은 안방에 들어가서 광솔에 불을 달아다가 건넌방에 등잔불을 켜놓고 방문 앞에 섰는 유복이를 내다보며
(홍명희, 임꺽정 4권, 사계절, 74면)
홍명희 <임꺽정> 에서 박유복이 가난해서 도적이 된 신불출네 집에 가서 맞닥뜨린 장면이다. 관솔을 여기서는 '광솔'이라 했다. 등잔불을 켜는 데까지 관솔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널리 쓰였는지 알 수 있다.
솔잎 송모도 취사 시 쓰였는데 불조절이 편리하여 음식을 만드는데 많이 쓰였다. 송모로는 죽을 끓이기도 하였다. 꽃가루 송화는 다식을 만들거나 술을 빚어 마시기도, 차로 마시기도 한다. 소나무껍질 즉 송피는 흉년이 들면 구황작물로 먹었다. 잎은 차로도 마시고, 약으로도 먹으며, 음식 만드는 데도 쓴다.
송편은 바로 소나무 잎을 두고 쪄서 송편이다. 솔잎을 넣고 찌면 부패도 방지하고 송편끼리 늘어붙는 것도 막으며 향내를 송편에 담기도 한다. 솔잎은 간장을 띄울 때도 쓴다. 잡내를 없애고 향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요즘 간장게장에 솔잎을 많이 쓰는 것도 그런 용도다. 용도로만 쳐도 참으로 버릴 게 없는 나무다.
거기다 사철 푸른 잎은 지조를 상징하고, 수명이 오래여서 장수를 상징한다. 물리적 존재의 영역을 넘어 한국인 정신문화 영역의 중심이기도 한 것이다. 문학작품에서도 소나무는 주된 소재였다. 윤선도의 오우가 중 한 벗도 소나무다.
소나무는 이처럼 한국인의 생활문화와 정신문화의 반려로 살아오면서 온 몸을 다하여 한국인을 살피고 섬겨왔다.
아이가 태어나면 솔가지를 넣은 금줄을 치고, 소나무 장작을 때서 차린 삼신상을 삼신할머니에게 올렸다. 이후로 소나무 장작으로 으로 덥힌 온돌에서 자다 죽어서는 소나무관에 들어갔다.
그걸로도 마음을 놓지 못해 도래솔을 무덤 둘레에 심어 이승과의 경계를 삼았다. 도래솔은 자손이 후손이 사는 이승을 잊고 편하게 저승으로 가시라고 이승을 막아 세우는 나무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같이 하다 죽어서도 소나무의 보호를 받으며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
소나무는 참으로 전면적인 우리 민족의 벗이었다. 삶과 죽음과 생활 구석구석에 소나무가 있었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소나무를 좋아하고 흠모하고 존경했다.
수령이 오랜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600년쯤 된 나무가 가장 오래된 것인데 전국에 너댓그루가 있다. 그 중 두 그루가 이곳 보은에 있다. 하나가 정이품송이고 하나가 서원리 소나무 정경부인 나무이다. 운좋게 두 나무가 지척에 있고 법주사 가는 길에 있어 두 나무를 덤으로 볼 수가 있다.
소나무를 생각하는 한국인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 이곳 정이품송이다. 우리 민족도 소나무를 흠모하고 존경했을 뿐 아니라 소나무도 우리를 존경하고 예를 다했다. 참으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넘어서 일체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자연보호를 넘어서 인간과 동등하게 자연을 존중하는 관점이 이미 생활 속에서 실천되고 있었던 셈이다.
인물성동이논쟁은 조선 철학의 오랜 화두이다. 정이품송은 인물성동론의 근거를 삶 속에서 보여주는 소중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홍대용의 <의산문답> 한 구절을 보자.
'오륜이나 五事[다섯가지 훌륭한 행실. 효 우 독서, 근행, 근검]는 사람의 예의이고, 무리를 지어 기어 다니면서 서로 불러 먹이는 것은 금수의 예의이고, 떨기로 나며 가지가 뻗어나는 것은 초목의 예의이다. 사람의 견지에서 물을 보면 사람이 귀하고 물은 천하다. 물의 견지에서 사람을 보면 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하다. 하늘에서 보면 사람과 물이 균등하다.' (조동일, <옛글 다시 읽기>에서 재인용)
인간에게는 인간의 예의가 동물에게는 동물의 예의가 있다. 떨기로 나며 가지가 자라나는 것이 식물의 예의다. 사람이 사람이 귀하고 다른 생명체를 천하다고 하면 다른 생명체도 자신들이 귀하고 인간이 천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동물과 식물 위에 오만하게 군림할 근거가 없다.
보은은 정이품송, 정부인 소나무 특별한 나무 외에도 속리산 자체가 최고의 소나무숲을 자랑하는 명산이다. 이외에도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곳이 많다. 구병리아름마을은 200년 이상의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고, 관솔을 넣어 빚은 송로주를 생산하는 마을이다. 속리산과 구병산을 잇는 속리산 둘렛길이 조성되었다. 아홉풍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다는 구병산, 또 하나의 명산을 잇는 소나무 코스다.
말티고개길 옆에 조성된 솔향공원은 소나무 문화를 소개하는 홍보전시관이 있다. 말티고개에는 국립속리산말티재자연휴양림과 숲체험 휴양마을이 있어 소나무 명산 속리산의 소나무 솔향에 직접 젖어볼 수 있다.
보은은 대추의 고장이기도 하지만, 그 위 층위에는 소나무가 있다. 어디서나 사려깊고 포근한 소나무의 눈길이 있는 고장이다. 소나무가 한국인의 나무이니 보은은 어느 곳보다 한국적 정취가 깊은 고장인 셈이다.
방문일 : 2020.1.15.
*일부 내용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참조
*정이품송. 수령 600~800년 추정.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에 걸릴 것이 염려되었다.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염려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이후 세조가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이품 벼슬을 내려 '정이품송', '연 걸이 소나무'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연기념물 103호이다. 원래 삿갓 모양으로 균형잡힌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폭풍과 폭설로 몇 차례(1993, 2004, 2012) 가지가 부러져 모습이 지금과 같이 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꼿꼿한 모습이 역시 정이품송이다.
정이품송은 법주사에서 3키로 거리에 있는데 그보다 앞서 서원리의 소나무를 먼저 만날 수 있다.
서원리 정부인 소나무. 수령은 600년경으로 추산.
아래 밑둥이 두 가지로 갈라져 자란 것을 들어 암나무로 보고, 정이품송은 하늘로 1자로 뻗은 모습을 들어숫나무로 본다. 나무 전체 모양도 가지가 서로 얽혀 땅 아래까지 바짝 드리우는 등 세상을 품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을 향한 남성적 기개와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보이는 두 나무를 짝을 이루는 부부의 모습이라고 하여 <정부인 소나무>라고 부른다.
마을 입구에 있어 마을 수호신 서낭나무 역을 하고 있으므로 매년 정월 초이튿날 제사를 올린다.
*아래 사진
2024.9.4. 촬영
*아래는 법주사 입구에서부터 세심정에 이르는 길, 세조로다.
* 세조로 입구
세조로가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세심정까지 이르른다. 소나무가 끝까지 함께 한다.
세조로는 2016년 9월, 1450년경 세조가 직접 속리산을 왕래하던 길을 따라 개통하였다. 법주사에서 세심정까지 이르는 길, 262키로의 길이다. 평상복 차림으로도 산책하듯 걷기 좋은 길이다.
사찰 앞 찻집 대추차. 진한 대추차, 가미하지 않은 대추차 진국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