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80ㅡ 드레스 실종사건 (사소)
흰 드레스 가운으로 온몸을 감싼 모습은 관광객들에겐 조신한 모습쯤이었으리라. 두 친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찌나 애정스레 여며주던지 말이다. 쿠션이 좋은 운동화를 챙겨 신은 건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씩씩하게 골마다 굴이 있는 곳에 올라가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마음을 다해 기도도 드렸다. 내려갈 때는 선이와 선경이 후달리며 내려가고, 나는 앞질러 폴짝폴짝 내려가니, 너는 기운도 좋다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건강이 거의 회복된 것이다.
주차장 근처에 다다르자 긴 드레스가 칭칭 감기며 땀이 비 오듯했다. 뒤따라 도착한 친구들과 화장실에 들러 세수라도 하면 좋을성 싶었다. 화장실은 들어서자 더 습한 기운이 후욱 에워쌌다. 나도 모르게 흰 드레스를 훌훌 벗어 수건대에 걸고나니 이젠 완전히 수영장 모드. 먼저 나가는 선과 선경을 여고 때처럼 잠시 입구에 보초를 세웠다.
친구들이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리라. 간만에 볼 일도 보고, 목이랑 얼굴이랑 세수도 하니 급한대로 더위가 가셨다.
' 절에 오니 평화가 찾아오는 구나! 이젠 바닷가로 떠나는 거야'
벌써 시원해진 기분으로 입구를 보았다. 어! 그런데 이상하다. 친구들 뒤태가 안 보인다. 걸어놨던 드레스도 사라졌다.
" 선경아~" 나직이 불렀다.
" 선아~!" 조용히 불러도
두 번 세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 무슨 일이지?'
지금 누구라도 들어오면 영락 없이 절 화장실에 숨어든 , 야하고 이상한 여인인데 말이다. 친구들은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 사이 신난 모기들에게 자진 공양을 하게된 불쌍한 장난꾼! 쫓아도 쫓아도 포식자 모기들의 기세는 더욱 맹렬해져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조해진다.
'아무도 오지 않아 다행이긴한데 마냥 기다릴수도 없고... 이 차림으로 밖에 나가? 스님들 요사체가 바로 옆인것 같았는데 ? ...'
' 흐 이걸 어쩌지? '
농담 같던 퍼포먼스가 연출될 수 있는 즉발의 상황.
"선경아! 선아! "
나직이 엎드려 사위를 살피며 한 발 한 발 고양이 걸음으로 일보 일보 전진.
' 헐! 가려면 옷이라도 놔두고 가지. 선녀와 나무꾼도 아니고... 도대체 어디로들 간 거야? 흐흑!'
저 멀리서 사람들 소리가 들린다.
' 아! 크게 부르면 다 나를 쳐다볼 텐데.흑! '
놀리며 앞질렀다고 벌이라도 주는걸까? 도무지 영문모를 일이다.
이제보니 노출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려야할 곳이 너무 많다. 몸을 최대한 숙이고 살금 살금 몇 발짝을 떼어도, 애타게 친구를 불러도 녀석들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엎친데 덮친격, 멀리서 큰 개가 나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이제 개는 딱 멈춰서 나를 보고 있다. 개랑 눈이 마주쳤다. 큰 개가 내게 온다.
'허! 왜 저 개가 여기로 오는 거지? 흑! 어. 어. 어 "
포식자들이 득실대는 화장실로 돌아가는 것은 답이아니다. 진 퇴 양 난.
' 에라! 모르겠다. '
자포자기로 주저 앉기 일보 직전, 큰 개가 내게 돌진해 온다.
' 허어 어뜩해 ! '
' 으허! 어떡해! 헝 으악~~ ! '
나도 모르게 지른 신음이 온 산에 울려퍼졌고 뒷걸음을 치는 순간,
" 유경아! "
반갑다 못해 야속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로써 한여름 나 혼자 공연은 끝을 냈다. 친구들은 화장실 입구에 서 있다가 모기들이 너무 달려들어 조금 떨어진 약수터로 잠시 피신을 했던 것이었다. 드레스는 자상하신 친구 선이 화장실이 너무 습해서 거둬서 보관하신 것. 내가 화장실서 신호하는 걸 보고 뛰어오려 했으나, 둘이 얘기 꽃을 피우다 잠시 나를 잊은 두 친구.
인생은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 보면 희극, 잠깐의 원 맨 쇼.
두려웠다가 슬펐다가 이유를 몰라 황당하고 허둥대다 잊은듯 다시 만나 웃게 되는,
우리 생이 그러할까?
친구들과 와인이 함께한 그날 밤은 더욱 달콤하고 곤했다.
첫댓글 비극, 희극, 원 맨 쇼. 역시 연극반 출신 티가 나네요. ㅋㅋ
1편에 이어서 이런 에피소드가 또 있었군요. 절에서의 수영복 차림이라~ 참 난감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