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행사' 사찰 이야기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백제 음악과 춤, 백제아악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곳, 정행사가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일본을 평가할 때, '세 가지가 불가사의한 나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세가지가 불가사의 하다는 것은,
1. 커피가 대중화 되지 않은 나라.
2. 기독교가 대중화 되지 않는 나라.
3. 어떤 문화와 역사든지, 일본에 들어가면 원형이 사라지지 않고, 타임캡슐처럼 보존되어서,
후세에 모습을 전한다고 합니다.
오다노부나가 때, 카톨릭 신자가 30 만명 이었고, 서양 신부가 30 명이 와 있었죠.
그런데 도쿠가와 정권이 들어서면서 철저한 박해를 받습니다.
모든 스페인과 포르투갈 외교를 단절하고, 신부를 추방하고, 카톨릭을 믿는 사람들을 추적해서
전부 죽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배교(종교를 버림)를 하도록 했습니다.
교를 버리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신자를 추적해서 밝히느냐 하면, 사람이 다니는 길에다 성모상을 그려놓고 밟고 가게 해요.
안 밟으면 이 사람은 믿음의 씨앗을 숨기고 있다고 해서 추궁을 하지요.
그리고 성모상에 침을 뱉게 해요.
침을 뱉고 나서 또 어떻게 시험을 하느냐 하면, 성모송을 하는데, 성모는 많은 남자를 상대해서
예수를 낳았다고 고백하게 해요.
그렇게 해서도 교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바닷가에 십자가를 만들어서 매달아요.
밤이 되면 목까지 물이 차오릅니다.
이렇게 3~4일 간을 두면 사람이 두려움과 배고픔, 추위 속에서 종교를 버리던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순교를 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해서 철저하게 카톨릭 신자를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모든 절에 동사무소를 두고 절에 소속 시킵니다.
그래서 그 제도가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단가제도' 입니다.
일본은 전 국민이 불교 사찰에 소속 돼있습니다.
그래서 승려들이 공무원 같은 관승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비 속에서도 약 200 년 간 자기들의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200 년 동안 자기들의 신앙을 지켜왔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신앙을 지켜왔냐하면,
십자가나 성모상을 모실 수 없으니까 바로 관음상을 모시는 거에요.
성모마리아가 이렇게 아기를 안고 있잖아요?
배에다가 아기를 안고 있는 관음보살을 모셔요.
그리고 자기들끼리 겉으로는 관음을 모셔놨지만, 내적으로는 성모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요.
이렇게 해서 200 년간 믿음의 씨앗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라틴어로 미사와 의례들을 전부 배웠어요.
'프란체스코 사비에르' 로부터 쭉 이어지는 이 전통을 받아서 했습니다.
명치유신하면서 독일과 유럽지역에서 신부들이 와서 성당을 짓고, 종교를 공식적으로
폅니다.
그 때 이 사람들이 찾아와서 신부들이 굉장히 놀랍니다.
사제와 신부 없이 200 년간 이 신앙을 지켜왔고, 신앙을 지켜오는 카톨릭 신자들이 있다고 하니
깜짝 놀래서 합치자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는 합칠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미사 드리는 방식이 다르다고 말을 하는거예요.
자기들은 라틴어로 하고, 그때 배운 것을 바꿀 수 없으며, 버릴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일본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새로운 것이 와서 변해야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처음 배운 방식 이것을 그대로 지킵니다.
지금도 처음 배웠던 '라틴어 미사 방식' 그대로 내려오는 카톨릭 신자들이 있습니다.
정통 일본의 가톨릭교단과 합치지 않고 그대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제 때 일본으로 전해졌던 백제 문화는 지금까지 그 원형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돼서 내려온 것입니다.
고구려 때 일본으로 전해졌던 고구려 문화들은 일본에서 그대로 전승되어 오고 있고,
발해 때 일본으로 전해진 모든 민속과 음악들이 지금까지 내려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적도 없는, '고구려 아악' 이런 것이 구마진자에 내려오고 있고,
발해 음악이 있고, 또 신라의 가야금, 의자왕이 사용했던 바둑판 이런 것들이 일본은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백제의 음악과 춤, 이런 것들이 '국내청' 과 '후쿠오카 정행사' 라는 두 곳에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한국에 한 번 왔었는데, 통도사 서울 포교당 구룡사가 있고, 일산에 여래사가 있죠?
여래사가 오픈 행사 할 때, 이 정행사의 백제 아악진들이 왔어요.
보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분들이 정오스님의 초대로 오게 됐는데, 일체 어떤 공연료나 이런 대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일본)은 백제에서 전해져 온 것을 은혜를 입고 이렇게 예술단을 해 오는데
한국에서 요청했을 때, 우리가 그 은혜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례를 따로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례를 받지 않고, 그 예술 팀들이 왔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다시 가서, 그 주지스님을 뵀었는데, 이번 초파일 때 통도사에 다시 한번 온답니다.
우리는 백제 문화가 유물 몇 점 외에는 없습니다.
백제의 살아 있는 무용과 춤, 이런 것들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잖아요.
그곳에서는 백제 때 전해진,
백제식 무대,
복식,
춤,
악기, 이런 것들이 그대로 내려오는 어떤 불가사의한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일본 안의 3대 목조 불상 보물이 있습니다.
1. 반가사유상,
2. 백제관음,
3. 구세관음입니다.
얼마 전에 부여 왕흥사에서 사리탑, 사리함이 발견됐지요?
이것은 백제의 위덕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세운 절입니다.
백제 향로가 나온 부여의 능산리 절터가 있습니다.
이것은 위덕왕이 자기 아버지, 성왕을 위해서 지은 절입니다.
성왕이 어떻게 죽었냐하면, 신라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목이 잘려 죽습니다.
그리고 이 목을,
신라 관청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계단 밑에 머리를 묻어서 밟고 다니게 합니다.
이와 같은 능멸과 모욕을 줬어요.
그래서 아들 창이 신라에 대한 원한을 사무치게 갖습니다.
그리고 목이 잘린 시신만이 백제 땅으로 돌아옵니다.
위덕왕이 그 때 분을 참지 못하고 "출가를 하겠다" 그래요.
출가를 해서 아버지의 명을 빌겠다 하니 모든 신하들이,
"대를 이어서 백제 왕업을 이어야지, 출가를 하시면 되겠습니까" 하니
백명의 젊은이를 출가시켜서 아버지를 위한 기원을 드리게 합니다.
그리고 죽은 아버지의 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관음상을 만듭니다.
관음상을 만들어서 이름을 '구세관음' 이라 합니다.
그 구세관음의 모습이 바로 백제의 성왕입니다.
이 백제 성왕의 모습을 조각해서 어떤 연유인지,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래서 구세관음상이 호류지 '법륜사' 라고 하는 '나라의 고찰' 이곳에 남아있습니다.
백제 성왕을, 일본에 불교를 전한 백제왕으로 알고 있지만,
일본에는 관음보살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라 불교를 일으킨 3대 성인이 있죠?
법흥왕, 이차돈, 원효대사가 있듯이, 일본 불교를 일으킨 세 명의 성인이 있습니다.
1. 성덕태자,
2. 백제에서 건너간 소암화자,
3. 최초의 일본 여황제, 스이코 천왕입니다.
이 세 사람을 일본 불교의 3대 성인이라 부릅니다.
이 스이코 천왕에게 신라의 진평왕이 보낸 선물이 일본의 국보 1호입니다.
그 스이코 천황이 일본 문화의 르네상스를 이뤘던 분입니다.
그 때 담징을 초대해서 금당에 벽화를 그리게 하고,
백제의 많은 장인들을 불러들여서 일본의 문화를 꽃피게 한 장본인이라 합니다.
그 절에는 어떤 기록이 있냐 하면, 백제 성왕이 목이 잘려 죽었죠? 그런데 다시 태어납니다.
일본에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 바로 '일본의 성덕태자' 입니다.
성왕의 덕을 지니고 일본에 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백제를 건설하는 거에요.
말하자면 신백제. 이것이 그 절에 역사기록에 나옵니다.
백제의 위덕왕! 성왕의 아들입니다.
위덕왕의 왕자가 '아좌태자' 입니다.
아좌태자가 일본의 법흥사 낙성식에 사신으로 참석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성덕태자를 만납니다.
성덕태자를 만나고 깜짝 놀래요.
성덕태자 모습이 자기 할아버지 모습과 똑같더라는 거에요.
할아버지! 백제의 성왕이죠!
아좌태자가 화가였습니다.
성덕태자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요.
이 그림이 현재 일본 국내청에 국보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이전에 회화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백제 때 위덕왕의 왕자 아좌태자가 그린 그림이 현재 일본에 그대로 보전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돈에 세종대왕 초상화가 있듯이, 예전 일본 돈에는 아좌태자가 그린, 성덕태자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일본이란 나라하고 임진왜란과 일제 36 년을 통해서 민족적인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했는데, 일본은 조선을 두 번 침략했거든요.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인과가 아닙니다.
백제와 신라의 인과가 그와 같은 침략 전쟁으로 나타났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영국과 유럽 사람들이 식민지를 개척 했죠.
그리고 나서 독자적으로 독립합니다.
1400 년 전에 그와 같은, 똑같은 일이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거에요.
한성 백제가 망하고, 백제 개로왕이 죽고, 그 아들 동생, 곤지왕이 일본으로 건너가잖아요.
말하자면 신백제를 건설하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밀린 세력들은 전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의 주류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망하면서 고구려의 많은 인물들과 스님들이 일본의 문화 거점을 이룹니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신성한 새에요.
까마귀는 바로 고구려의 새입니다.
고구려의 새라는 것은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천손의 자손' 이라는 거에요.
태양은 까마귀, 달은 토끼, 이렇게 상징을 두고 있습니다.
까마귀가 '금시조' 라고도 불립니다.
금시조는 용을 잡아 먹는 새입니다.
용을 상징하는 나라는 중국입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중국을 잡아 먹는 금시조였어요.
이것이 바뀐 모습으로 내려온 것! 바로 '봉황' 입니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로부터 이어진 전통을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 속의 우리 문화 역사 지식들을, 좀 더 관심 있는 분들이 자세하게 공부 하면 좋습니다.
이런 관심을 가지고 현지를 답사하면, 더 풍부한 역사 지식과 과거 우리 조상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내용들이 외대 교수였던 홍륜기 교수가 쓴 <일본 속의 우리 문화를 찾아서>,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 이런 책들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소설로 쓴 사람이 최인호씨 입니다.
<잃어버린 왕국>으로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도 현대소설만 썼다가,
일본에 리포터로 따라가서 일본에 있는 재일 사학자 김달수라는 분을 만나게 되어,
한.일간의 고대 역사 지식을 듣고,
그 때 비로소 우리 고대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쓴 소설이 '잃어버린 왕국' 백제 역사입니다.
그 다음에 <해신>을 통해서 신라 역사를 다루고,
고구려 역사를 다룬 다음에 제 4의 제국, 가야를 만들어서 자기 나름대로 우리 역사를 소설로
정리한 겁니다.
우리들이 불교를 배울 때는 여러 가지 가르침도 배우지만,
역사 속에서 불교의 변천사,
어떤 역사 흐름이 있었고,
어떤 문화를 이뤄 냈는지,
이런 것들을 함께 배울 수 있으면, 더 흥미로운 우리 역사 속의 우리 문화를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후쿠오카 3 사 순례를 통해서,
1. 관음보살로 되살아난 명성황후가 모셔진 쇼쿠지 세신원 성복사.
2. 선조의 장손, 임해군의 아들이 건립한 일련종 사찰, 묘안사.
3. 미마지가 일본에 전한 백제 음악과 춤, 백제악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정행사.
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배웠습니다.
합장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와같은 수행의공덕 원합니다 깨달음얻어
온갖번뇌 사라지거라 생로병사 거친파도속
윤회바다 떠도는중생 연꽃나라 어서나지다
나. 무. 아. 미. 타. 불
현장스님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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