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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14159
(1)
별이 스쳐 갔습니다. 내가 달리고 있는 것인지 별이 다가왔다 멀어져 간 것인지 나는 모릅니다. 그저 눈여겨보던 사물이 시야 밖으로 사라져 갔음만을 느낄 뿐인데, 왜 내가 같은 곳에 머물지 않았다는 감상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낯선 시간과 공간을 보고 있습니다. 진정 우주란 우리의 외로운 영혼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적막의 바다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한때 막창자 근처의 충양돌기 부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 중의 하나로 생을 영위했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일생을 희생하여 얻은 성공이라는 것이 배설을 위해 항문으로 가고 있는 오물의 한 조각을 섭취한 것임을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우연히 한 줄기 실핏줄에 흡수되어 정처를 모르는 여행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모른다는 것, 그것은 행복의 한 종류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꼬리가 하나 달린 세균 무리가 두 개의 꼬리를 가진 무리를 기형이라고 부르듯 나는 자신의 의식을 표준삼아 세계의 크기를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마 자신이 섭취한 오물이 최고의 영양이 못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므로 보통의 한살이를 최상의 것인 양 살 수 있었던 원시생물이었을 것입니다. 진정 우주란 상상을 불허하는 거대함 속에 생명의 아둔한 착각을 포용하여 양식으로 삼아 더욱 큰 생명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거대 생명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 별이 스쳐 갔습니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의 흐름인데, 앞서 흘러갔던 별이 한 바퀴 우주를 돌아 제자리를 찾고 있는 듯도 보입니다. 그러나 역시 낯선 기분은 다르지 않습니다. 별이 하나 많고 적음의 차이이고, 유전과 상실의 가시화된 증명인데, 그것이 영겁의 윤회 중 한 차례의 순환임을 짐작 못할 바도 아니면서 찰나 전의 경치와 찰나 후의 경치에서는 같은 감동이 얻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상황에 너무 깊이 매료된 탓에 의미를 분석하는 능력을 상실한 정신질환자일지도 모릅니다.
언제쯤이라고 시대를 구분하기 힘든 아득한 옛날에 우리 남매는 어머니를 떠나 왔을 것입니다. 그날 우주가 치른 영광은 우리의 탄생을 축복하는 환호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미 과거로 변해 버린 사건을 증명할 현재 속의 증거를 찾을 능력을 나는 갖지 못했습니다. 더러 현명함을 뽐내기 좋아하는 이들이 말하듯 겨자씨보다 작은 어떤 원초 물질이 갑작스레 폭발을 일으켜 우주가 시작되었고, 그날 이후 200억 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 오늘의 모습이 되었음이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겨자씨가 입과 줄기와 뿌리에서 비롯되었고, 뿌리는 대지의 은혜를 입어 생명을 이어감을 볼 때, 우리 남매는 그때의 탄생 이전에도 어디에선가 뛰놀았을 듯합니다. 그러나 누님, 우리는 우리의 탄생 이전을 기억하고 있지 않습니다. 막연한 동경만을 갖고 신을 믿는다면 신도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해 우상으로 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누리에 가득하여 밝음의 시초가 된 대폭발을 우리 남매 탄생의 첫 번째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리하고, 그것이 가장 사실에 가까운 우리의 탄생 전설일 게라고 애써 믿으려 하는 것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모태를 떠난 숱한 광파와 물질 속에 우리 남매가 있었을 것입니다. 누님이 앞섰는지 내가 앞섰는지 알 수는 없고, 그 순서를 가름해야 할 이유도 의식되지 않습니다마는, 우리의 성별을 분류해야 할 필요는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있어 자식이 있고, 아버지의 피를 물려 내가 있다’는 것은 우주의 온갖 생물의 생존 공식인 모양인데, 따라서 어머니의 성을 가진 누님과 아버지의 성을 이은 내가 각기 개체를 확립하여 탄생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정한 기준에 준한 윤리의 집행일 것이고, 내게서 누님에게로 보내지는 애정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수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에 우리 남매는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보다 깊이 설명하면 우리는 나 이외의 것을 알 수 없을 만큼 별개인 시간과 공간 속으로 사출되었고, 그 거리를 짐작할 만큼의 현명함도 갖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세상이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과대망상 증세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인식할 때마다 인식의 대상이 된 사물은 창조의 첫걸음을 내딛곤 하였습니다. 나는 사물을 기억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허락된 세계를 넓혀 갔는데, 나 이전에 무언가가 있어서 세계를 구성해 놓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온전히 하나뿐인 창조주였습니다. 내 지성이 밝게 인식한 세계는 밝음의 창조와 통했고, 내 의심암귀의 발작은 세계의 어두움과 한 가지 하였습니다. 나는 자꾸만 내 여행의 길고 먼 시간을 의식해 가고 있었는데, 길다거나 멀다거나의 인식은 ‘왜?’의 수순을 거쳐 의심과 번민의 탄생을 낳았고, 그런 사연의 중첩으로 내게는 지혜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지성체 되었음을 자각했을 때, 그것은 온전한 탄생의 순간을 의미했습니다. 내게 자신이 저 숱한 별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빛나고 있을 뿐으로 역할을 다하는 초라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 그때의 의심과 번민은 지혜라는 지성체 고유의 능력을 탄생시키는 필연의 수순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아직 어린 지성체에 지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자존을 선언한 순간 더불어 최초의 곳을 떠나온 수많은 광파와 입자들도 같은 경이를 체험하고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나는 자신만의 현재를 달리며 순간마다 숱한 과거를 쌓고 있었는데, 내가 보낸 과거와 상황은 틀리지만 공식만은 온전히 같은 어제의 시간을 우주의 온갖 곳의 온갖 사물들도 지나쳤고, 나와 한가지로 소유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그러한 사실을 사실로 인식하였을 때는 먼 훗날 나름대로의 형태를 굳히고 지혜의 고감도 발현을 이룬 후였는데, 그때의 나는 혼자만의 나를 자랑하던 전날의 내 철부지를 깨닫고 여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차츰 인식의 범위를 넓혀 갔습니다. 멈추어 있음이 시간까지의 멈춤이 개입된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풍경으로 보고 무심히 넘기던 멀고 가까운 별자리가 제각기의 가치를 가진 사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지혜의 개척으로 이런저런 깨달음이 가슴에 닿을 때마다 나는 그간의 성장을 증명하는 척도가 얻어진 듯하여 기쁨을 증폭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곧 현명함을 얻은 데 대한 반작용으로 고뇌와 갈등이 체험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 가득하여 하등 신기할 바도 없었고 운동 모습도 한낱 풍경에 지나지 않아 보였던 별과 별,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영원 동안 간직해야 할 업화를 만들었다’는 후회와 ‘도약의 밑거름이 되었다’의 보람을 아울러 안겨 주었던 그때의 사건은, 그 무렵의 고독이 발전하여 빚어낸 경이의 구현이었을 것입니다.
지성체가 자존을 확인하기 위해 갖는 첫 번째 지성활동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의 의문을 창작하는 것일 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터무니없이 넓은 우주의, 위치를 짐작하기 힘든 어느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황당함…… 나는 그와 같은 정통의 수순을 거친 성장 끝에 누님을 만나는 경이를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별과 별이 부딪쳐 대폭발이 이루어진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우연을 계기로 공간에 사출되는 탄생 이후 두 번째의 영광을 얻어 힘찬 유영을 시작했습니다. 우주의 한 조각인 별자리의 하나로서 당당히 장거리 원 그리기의 운동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곳은 무단한 방법으로는 소유가 허락되지 않는 성역이었습니다. 오직 법도에 의해서만 주인을 맞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돌연 그곳에 있었고, 주인의 권리를 얻고자 달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별이 무리를 지어 날았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한 뭇 별들의 각축으로 그 세계는 생존을 위한 투쟁만이 가득했습니다. 남보다 앞서 달려야 하였고, 지극히 좋은 운에 선택되어야 하였습니다. 나와, 주위의 모든 별들은, 막연한 그리움을 동력원으로 삼아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깊이와 넓이가 짐작되지 않아 혼돈으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 그 늪에서, 우리는 반드시 성취해야 할 상봉을 찾아 최초의 사출로 인해 빚어진 관성을 핑계로 끝이 없을 듯한 전진운동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고, 예측이 불가능한 사건이 엮어지고 있었습니다. 흰 꼬리 무리가 검은 꼬리 무리를 하급의 별무리라고 조소하고 있었고, 검은 꼬리 무리는 흰 꼬리 무리를 미개한 족속이라고 비웃었습니다. 나는 검은 꼬리 무리에 속한 새내기별인 모양이었는데, 시종 억울한 느낌 속에서 주위의 동료들을 시샘하고 있었습니다. 보다 완전한 육체를 갖추고 앞장서서 달리고 있는 동료들에 비해 새로 무리에 섞여 들어 유영을 시작한 나는 한없이 초라한 존재였습니다. 기실 우리는 큰 차이의 장단이 있지 않은 동형의 별무리였을 터였습니다마는, 홀로 독존의 시대를 살던 지성이 돌연 많은 닮은꼴을 만났으므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자신이 서지 않아 그와 같은 감상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한 흰 꼬리별이 내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되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서로 상대의 정체를 알지 못했고 더불어 자신의 정체도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기막힌 우연으로 이웃하여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을 뿐 우리는 자신들의 여행 목적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무지의 덩어리였던 것입니다.
“나는 나야.”
그가 답했습니다.
“나는 나야.”
나도 답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진리를 이야기한 양 자랑스레 활짝 웃었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나’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틀린 답을 말한 것은 아니었고, 적어도 상대에 밑도는 지성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증거를 보인 셈이었으므로 자랑스러워함이 마땅했습니다.
경쟁심이란 지성체 된 자에게 숙명처럼 짐 지워진 천형과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무리가 어떤 경이의 폭발에 힘입어 개개의 존재를 확립하고 약진을 시작한 순간부터, 각 개체는 자신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두려움을 느껴야 하였습니다. 상하좌우 어느 곳을 보아도 닮은꼴의 무리가 하나같이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양을 발견했을 때, 잠깐 그 장엄한 행렬에 감동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곧 많은 닮은꼴 속에서 비슷한 하나로 사라질 자신의 최후가 짐작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탐욕의 전진을 계속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함과 아울러 대열에서 낙오되고 있는 동료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쟁취의 목표가 하나뿐이고 모두가 그것을 바라고 달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깨달음을 얻은 개체들은 자신 이외의 동료들을 경쟁상대로 의식하고 질주의 속도와 방법을 달리했습니다. 우리 중의 힘이 센 누군가가 약한 누군가를 추월하여 앞으로 나섰고, 연하여 다른 모두도 그러했습니다. 이윽고 무리의 꼬리에 처한 누군가는 경쟁에서 낙오되었고, 뜻밖의 강력한 시련에 -아름다움이 곧 평화가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맹렬히 달리고 있는 이유 중에는 멈춤이 죽음과 통한다는 사실을 본능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의, 도피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흡수되어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최초의 죽음을 신호로 우리는 하나 둘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경쟁에서 낙오한 약한 자들로부터의 순서였는데, 목표에 다가갈수록 높아만 가는 세파를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대량 소멸의 위기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곳은 혼돈이 심한 세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이룬 유기물질의 덩어리가 강한 산성의 액체로 이루어진 혼돈의 바다 속에서 시시각각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허겁지겁 질주를 계속하는 것으로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달아나야 하였습니다.
하나, 둘, 숫자가 늘어가는 동료의 시체를 혼돈의 바다에 남기는 어려운 여행 끝에 나는 드디어 그리던 성역에 닿았습니다. 수많은 경쟁자를 누르고 오직 하나뿐인 승자가 된 환희…… 어떤 기막힌 우연의 조화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대망의 완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주 최초의 영광 때에 헤어졌던 누님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누님은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그곳에 닿아 있었는데, 나를 위해 자리를 나누어주었습니다. 그곳은 원래 하나의 승자만 선택되는 성역이었는데, 누님이 양보를 해준 덕택으로 나는 누님과 남매가 되는 그 세계 최고의 행운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완성을 이루었노라고 환희의 찬가를 불렀지만 이러한 종류의 완성은 영겁을 달리고 있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크고 작은 별들의 폭발과 같이 흔한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사건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하여도 그날의 사건은 우리의 운명을 기획 지을 분기의 사건일 수 있었습니다. 결코 불완전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더욱 보완이 계속되어야 할 완전에의 고행. 우리는 영원히 최초의 이별을 회복하기 위하여 재상봉에의 기대치를 높이며 살아야 하는 슬픈 숙명의 생물이었습니다.
(2)
“축하합니다. 이번에는 아드님을 보셨습니다.”
어머니는 의사가 하는 의례적인 인사말이 꿈속의 이야기처럼 황홀하게 들렸다고 하셨다. 이게 웬 행운이람. 그토록 기다리던 자식을 둘씩이나, 그것도 딸과 아들의 쌍둥이로 얻다니. 신이여,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무렵의 어머니는 두 자식이 업화의 고리였음을 몰랐다. 어머니는 모르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이십대의 철없는 여인이었고, 그래서 행복할 수 있었던 철없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행복은 잠시였다. 행복의 또 다른 축이었던 어머니의 남편, 즉 우리 남매의 아버지가 그 무렵의 전쟁에 참가하여 전사하신 때문이었다. 내 어릴 적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는 연방의 법과 도덕, 윤리를 증오하는 것으로 삶의 지주를 삼던 극단적인 불평분자로 반추되곤 하였는데,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긴 여인이 할 수 있는 한풀이의 방법이 그뿐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의 동아시아는 인접한 세 나라인 반도국과 대륙국과 섬나라의 정치가들이 피부 색깔이 같은 인종임을 명분으로 내세워 연방 형태의 국가를 성립시키고자 노력하던 대변혁의 시기에 있었다. 아버지는 통일을 반대하는 반도국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에게 강제 징집되어 참가한 전쟁에서 영문 모를 유탄을 맞고 희생된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동아시아에 속한 대부분의 시민들이 분리와 통합의 두 가지 주의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던 시기에 오로지 자신의 가족만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상황 밖을 겉돌던 속칭 나그네족이라는 이름의 방관자들은 입지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그러한 경과로 우리 가족의 비극은 잉태된 것이었다.
어머니는 뼛가루로 돌아온 남편의 영전에 남긴 두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을 이어가리라 다짐을 보내고 억척스레 일을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가장 격렬한 집단생존경쟁의 와중에서 두 아이를 거느린 젊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고, 어머니는 자식들이 철든 후에도 밝힐 수 없을 것이 확실한 어떤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것으로 겨우 세 식구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아이를 거느린 어머니로서 연방통일전쟁이라는 혼돈의 와중에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던 어머니는 우리 남매가 일곱 살의 생일을 맞기 며칠 전에 고달픈 생을 마감하고 그리던 남편이 기다리는 저 세상을 향해 떠났다. 내게 남겨진 어머니의 모습은 무척이나 눈물이 흔하던 눈과 내 샅을 유별나게 정성 들여 닦아주던 손길뿐이었다. 전쟁 막바지의 혼란 속에서도 본시 성격이 깔끔했던 어머니는 우리 남매를 수시로 물가로 끌고 가곤 하셨는데, 어머니는 결벽증이 아닐까 싶을 만큼 우리의 몸을 샅샅이 닦아주곤 하였다.
우리 남매는 전장 근처의 화약 냄새 섞인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며 어머니의 손이 샅을 닦아 줄 차례를 기다렸다. 그때쯤 나는 내가 누이와 구별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누이의 것과 전혀 닮지 않은 샅의 모습에서였고, 내 샅에 머무는 어머니의 손길이 누이에게의 그것과 같지 않은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샅에 비누칠을 한 후 더운물과 찬물로 번갈아 가시고 가장 정결한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다가 별안간 힘을 가해 마구 문질러 대곤 하였다.
때때로 어머니는 자식의 샅에서 피를 보이곤 하였다.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의 네 번째 기일을 맞아 제사의식을 준비하기 위한 목욕 중에서였다. 그날 어머니는 제물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싫어하는 섬나라 계열의 관리에게 몸을 파셨던 모양으로 못내 흐느끼다가 갑자기 아들의 샅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돌연 발작하듯 성기를 잡아당기거나 움켜쥐거나 하는 어머니의 거친 손길을 느끼고 놀람과 아픔에 눈물을 찔끔거렸지만, 어머니의 핏발이 선 눈매와 악다문 입 모양에 질려 울음소리를 내지는 못하였다.
그 후 많은 날, 내 성기는 어머니의 좋은 노리개 감이었다. 내 샅이 어머니의 손길 아래 놓여 부드럽게 쓰다듬어지거나 발작하듯 꼬집히거나 하는 애호의 날이면 누이는 늘 외톨이로 돌았다. 나는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부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는 누이의 희고 연약한 샅과 내 성물의 돌출 된 당당함을 비교하고 속으로 우쭐대곤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 후 우리 남매는 전쟁고아를 보살피는 구호기관의 수용소에 적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경과는 대부분의 전쟁고아들이 거치는 수난의 과정과 대차가 없었으므로 우리 남매의 운은 평범의 범주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선의 이동에 따라 몇 곳의 수용소와 복지원을 옮겨 다니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외관상 우리 남매는 보통의 전쟁고아로 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누이는 어머니를 대신한 보호자 역을 맡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덟 살 남짓의 소녀가 몇 분 뒤에 태어난 쌍둥이 남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누이 노릇에 대단한 무엇이 있을까마는, 나는 당연한 듯이 어머니에게서 얻었던 의지를 누이에게서 구했다.
누이의 보살핌은 참으로 헌신적이었다. 정부의 구호기관에서 배급되는 식량과 의복은 우선적으로 내게 주어졌고, 누이는 동생이 남긴 음식 부스러기와 땟국에 절은 옷가지로 굶주림과 추위를 달래곤 하였다. 어른이 된 후의 누이가 파리한 얼굴빛과 가냘픈 몸매를 소유하게 된 이면에는 그때의 허기에 익숙해야 하였던 생활이 있었다.
누이의 어머니 역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이는 우리 남매가 전날 어머니의 손길 아래 있을 때에 가졌던 행복의 모든 종류를 동생에게 베풀려고 노력하였는데, 그 중 가장 비중이 큰 어떤 의식을 열심히 흉내 내곤 하였다.
여덟 살이 되던 해에 머물던 수용소의 근처에는 제법 물이 흔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전쟁 냄새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어느 화창한 봄날, 누이는 그 강가에서 전날 어머니가 하였던 청결 작업을 어머니에 못하지 않게 정성 들여 해주었다.
물로 씻고 골고루 비누칠을 하여 거품 속에 감추어진 샅을 누이의 가는 손가락이 반복하여 마찰해 주는 감촉을 나는 물장구를 치며 즐겼다. 희고 부드러운 누이의 샅이 내 눈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나는 간지러운 듯도 하고 부끄러운 듯도 한 느낌을 빙글빙글 웃어대는 걸로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 해의 가을, 패전한 연방군의 뒤를 따라 이동한 전쟁고아 수용시설은 남녀 어린이를 나누어 수용한 것이었으므로 우리의 그러한 의식은 끝을 보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우리 남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았다. 청년기를 맞을 때까지의 나는 그때의 기억 속에 각인 된 여덟 살 소녀의 성숙되지 못한 육체를 여성의 전부로 알고 있었다.
내가 최고학부를 나와 전문인 양성기관에 적을 둔 것을 계기로 우리 남매는 정부의 보호시설을 나와 독립을 하였다. 국가보조금의 수혜층에 머물었고, 임대 아파트의 관리비를 걱정할 정도의 가난 속에 있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그날의 우리는 남녀를 구별한 복지시설에 나누어 수용된 후 십년 만에 재결합한 이산가족이었으므로 그러한 행복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이는 복지기관에서의 교육 덕택에 옷감을 자르고 바느질을 하는 기술을 배워 자기 몫의 생활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공부를 마칠 때까지 누이의 경제 능력에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그 무렵 동아시아는 전쟁을 승리로 끝낸 통합 측의 득세로 연방 형식의 연합국가가 건국되어 있었다. 세기말적인 혼란기를 겪은 동아시아가 전쟁고아들에게 남겨 준 선물은 식량의 냄새를 맡고 획득하는 -훔치거나 돈을 주고 사거나- 기술의 발달뿐이었으므로 전쟁고아 출신의 대부분은 잉여인간 계층에 속해 있던 터이라 우리 남매는 대체로 잘 풀린 경우에 속하는 셈이었다.
아버지를 반도국계 민족주의자로 분리 측에 속해 전장에서 쓰러지신 나그네족으로 정의해 두고 있었던 때문에 최고학부 재학과 전문인 양성기관 연수과정 내내 반정부 계열 집회에 참여를 종용받았지만 나는 끝내 방관자로서의 자존을 지켜냈다. 그 무렵의 나는 그간 쌓아온 지식 속의 사상이나 이념을 앞세운 소위 민주투쟁보다 더욱 심각한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세 나그네족이었다.
내 전쟁의 상대는 누이와 누이의 남자친구였다. 누이는 우리가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한 남자를 사귀었던 모양으로 우리 남매가 다시 한 가족으로 뭉치던 날 제 삼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를 바라고 내게 인사를 시켰다.
나는 꾸벅 머리를 숙여 윗사람을 대하는 예의를 지켰다. 그는 별다른 풍파를 겪음 없이 자란 상류계층 출신 귀공자의 전형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연약한 살결과 곱살한 눈매를 꼬집어 ‘이건 온실 속 화초와 같은 도련님이로군’하고 점수를 깎아 내리고 있었다.
그날 화초도령은 우리 남매를 위해 크게 한턱을 냈다. 나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일류의 소비시장들을 순행하면서 그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한 것과는 달리 내용이 충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화려하지만 분에 넘치지 않았고, 신분에 걸맞을 만큼의 지적인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일류의 음식점에서 그가 찾은 음식은 토속음식의 대명사격인 김치찌개였고, 고전극의 무대를 볼 때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을 가려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고금 미래의 학문에 관해 남보다 먼저 지식을 과시하지는 않았지만 좌중의 화제가 틀린 부분으로 흐를 때면 정확히 지적하여 고쳐 주는 법을 알았다. 그것도 상대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겸손한 화법을 동원해서였다.
아마도 누이를 점찍은 그의 결혼관도 높은 안목에서 비롯된 선택일 것이었다. 누이는 생활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지식에 대한 욕구 또한 높아 연방정부가 베푸는 사회보장제도하의 교육과정을 적절히 활용하여 무료교육이나마 최고학부를 최고의 성적으로 마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었다. 화초도령은 누이의 그러한 미담이 실린 신문기사를 보고 화제의 주인공이 뜻밖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인임에 호기심이 생겨 접근하였을 것이었다. 요컨대 그는 누이의 용모와 성품을 옳게 판단하고 신분의 차이를 도외시한 구애를 할 만큼의 교양인이었다.
누이와의 새 생활이 시작된 첫날의 밤, 나는 어떤 기대감에 취해 휘적휘적 욕실로 들어가서 냉온수의 수도 밸브를 활짝 열어 놓았다. 부러 출입문 여닫는 소리를 크게 내었고, 물줄기를 거세게 맞받아 온몸에 끼얹어 댔다. 그러나 그럴수록 내 몸은 무언가 꼭 치러야 할 어떤 행사를 목전에 둔 열기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었다. 문이 열리고 누이가 들어온 듯도 싶었다. 누이가 아니고 어머니였을까? 그저 어떤 여인이 들어와서 내 샅에 물을 끼얹고 비누칠을 하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정갈스럽게, 정갈스럽게 닦아주는 듯하였다.
아니었다. 나는 헛되이 물줄기를 받고 있는 내 샅을 보았다.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성장해 버린, 내 샅의 어떤 물건이 외롭게 고개를 들고 있었다.
화초도령과 누이의 사이는 날로 다정의 심도가 깊어 갔다. 나는 두 사람의 사랑 놀음에 늘 혹처럼 붙어 다녔다. 두 사람 모두 나를 상대 못하지 않게 소중히 대해 주었고, 나도 여간 곰살궂게 굴은 것이 아니어서, 나는 그들의 몸에 붙은 암 덩어리처럼 불필요하지만 언제나 주위에 있는 존재로 어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짓궂은 장난꾸러기였다. 두 사람에게 단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 준 후 가장 분홍 빛깔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불쑥 나타나 깔깔거리기 일쑤였고, 부러 원색의 천박한 대사를 공중 앞에서 지껄여 대어 두 사람의 사랑이 신분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주위에 인식시키곤 하였다. 그러나 두 연인은 감탄할 만큼의 인내로 버릇이 나쁜 동생을 용서하고 오히려 서로를 위로하여 음모를 꾸민 이의 부아를 돋우었다.
누이를 괴롭히는 일에는 갖가지 영악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나는 누이의 연인, 즉 화초도령이 당당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할 때면 가장 비굴한 모습을 하고 졸랑졸랑 뒤를 따랐고, 그가 재치를 번뜩여 교양 있는 신사의 면모를 보일 때면 가장 천한 행동을 하여 분위기를 망쳐 놓곤 하였다. 누이는 그러한 동생에 속이 상해 눈물을 찍어내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화초도령은 넓은 가슴을 활짝 펴서 누이를 달래 주곤 하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견고한 사랑을 확인한 날이면 나는 예외 없이 환락가 순례를 떠났다. 연방체제의 견고한 구축으로 최성세를 맞은 자본주의 사회는 돈이면 즐겨 하체를 허락하는 여성들을 무수히 낳았으므로 나는 누이를 속여 만든 몇푼 돈으로 남성 된 권리를 향유할 수 있었다. 배설의 극적인 순간 환희에 겨워 경직되어 버린 내 육체는 일순 최고의 탑을 쌓곤 하였다. 나는 내 샅의 흉물스러움을 포용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밤의 꽃들의 샅을 향유하며 순간일망정 나야말로 우주의 주체임을 확인하곤 하였다.
그러나 행위가 끝나고 행복한 피로감마저 사라진 후이면 나는 뱃속의 온갖 오물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토해 내곤 하였다. 어떠한 만족도 짐짓 화려한 외피로 치장한 거짓 감성이었고, 그것을 추구하여 조형해 낸 어떤 상상도 갈망해 마지않는 행복과는 많은 거리가 있었다. 나는 그저 누이의 희고 여린 샅을 그리워하여 울부짖었을 뿐이었다.
누이와 화초도령의 결혼 날짜가 잡히고 누이가 시댁이 될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며느리 감으로서의 내락을 받은 뜻 깊은 날, 나는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누이를 빈정거림으로 맞았다. 백 년의 시간 동안 잠들어 지냈던 공주님이 드디어 고대하던 왕자님을 만나셨군요. 그 긴 잠 속에서 무슨 꿈을 꾸셨나요? 그 진부하기 짝 없는 몇 마디 빈정거림의 말들은 누이의 가슴을 에는데 부족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누이는 금세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난 너를 생각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어! 나는 또 빈정거렸다. 백마를 탄 왕자님을 맞은 공주님께서 웬 빈말이람. 행복에 겨워 짐짓 겸손을 보이는 겐가? 누이는 황급히 변명했다. 그를 만난 지는 한 해도 채 되지 않았어! 넌 요 십 년 동안 내 하나뿐인 가족으로 가장 큰 아픔이었어! 나는 풋! 웃고 되쏘아 주었다. 일 년 사이에 결혼을 생각할 만큼 가까워진 이성과, 십 년씩이나 돌보지 않은 혈친은 어느 쪽이 소중한 대접을 받은 걸까? 누이는 사뭇 울부짖으며 깊이 묻어 두었던 비밀을 한달음에 쏟아 놓았다. 바보야! 우리는 통일전쟁 때에 방관자의 입장에 섰던 나그네족의 아들딸이야! 난 네가 색깔이 혼란스러운 계층의 사람으로 분류되어 그늘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싫었어! 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발악하듯 소리치며 누이를 노려보았다. 못난! 세속적인 출세 따위 뭐가 대단한 것이라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런 따위가 아니라는 걸 왜 몰라? 누이는 동생의 사나운 눈초리를 정면으로 받으며 진정을 몰라주는 동생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누이가 설움이 복받쳐 어깨를 들먹이는 양을 냉정히 지켜보며 엉뚱한 오기를 발동시켰다. 암, 그렇지. 누이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동생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해 왔지. 기왕에 그러했으니 보다 완전하게 증명해 보여야지. 나는 누이를 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하의를 훌훌 벗고 샅을 내민 후 가장 비굴하고 애처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누야, 나 씻어 줘. 이제 누가 시집가면 다신 기회가 없잖아. 마지막으로, 응? 누이는 잠시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바르르 떨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질세라 마주 비굴한 눈빛을 보냈으므로 우리 남매 사이에는 때 아닌 눈싸움이 벌어졌다. 이윽고 누이가 패배를 인정하고 눈길을 돌렸다. 누이는 눈을 질끈 감아 마지막 눈물을 짜낸 후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한 겹, 두 겹. 천천히, 천천히. 작은 천 조각 하나로 샅을 가렸을 뿐인 누이의 나신은 희고 맑고 아름다웠다. 여신상의 조각인들 이보다 더하랴! 나는 가슴 한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듯이 감동이 폭발하는 양을 의식하고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름답구나, 내 누이는…… 금세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감동을 눈을 부릅뜨는 걸로 억누르며 속으로 외쳤다. 저 천 조각 아래에는 희고 부드러운 누이의 샅이 숨어 있겠지. 누이는 욕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샅에 비누칠을 하였다. 조심스레 물을 뿌리고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나는 실실거리고 웃었다.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걸로 된 거야. 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기지 않아도 돼. 누이에게 맡겨진 내 샅에서는 생명력이 약동하고 있었다. 부풀기를 시작한 내 샅을 애써 외면하는 누이의 눈은 무척이나 슬픈 것이었다. 나는 누이의 슬픈 눈과 어느새 불기둥처럼 솟구쳐 오른 내 샅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원초적 본능의 증표를 감추어야 할 사람에게 들켜 버린 부끄러움…… 나는 순간 새로운 오기를 발동시켜 양심을 괴롭히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였다. 여전한 비굴함과 애처로움으로 누이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누야, 보고 싶어. 옛날처럼. 잔뜩 굳어 있는 누이의 나신을 끌어안으며 내 비굴한 하소는 계속되었다. 누는 내가 싫어졌나 봐. 내 손의 무단한 동작으로 누이의 샅 가리개가 끌어내려졌다. 누이는 흠칫 손으로 하초를 가렸다. 나는 또 비굴하게 간청했다. 누야, 그러지 마. 강한 완력이 가해진 내 손에 의해 누이의 손이 비켜졌다. 나는 희고 작고 부드러운 누이의 샅을 기대하여 온 신경을 집중했다. 지난 십여 년, 내 꿈속의 성지였던 은밀한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성장해 버린 누이를 보았다. 많은 시간, 지고지순한 성역의 상징으로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누이의 샅은 몇 푼 돈에 쉽사리 허락되던 윤락녀들의 그것처럼 검은 숲에 감추어져 있었다.
나는 와락 누이를 밀치고 밖으로 내달았다.
-가엾게도, 광견병에 걸렸어. 이건 미친 수캐와 다를 바 없군.
-너희의 환희를 구가하는 노래 소리야말로 발정 난 암퇘지의 꿀꿀거리는 소리와 다를 바 없는 신음소리다!
-정말 미쳤어! 격리시켜야 해!
-아녀요! 내 동생은 사랑에 굶주려 있었을 뿐 아픈 게 아녀요!
-이 여자도 정상이 아냐! 윤리 도덕이 엄연한 세상에 근친상간이라니, 용서해서는 안 돼!
-너희야말로 먹고 자고 새끼를 낳는 일에만 열중하다 일생을 마칠 돼지들이다!
-역시 미쳤어! 속히 격리시켜야 해!
-당신, 당신까지 저들 편이야?
-내 소유라고 믿던 여자로부터 실망을 맛본 남자의 분노는 예사로울 수 없지.
-이 위선자! 내 누이의 바보!
-말려! 사람을 친다!
-이건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역시 미쳤어! 법에 기준해서 최고의 형벌을 내리도록 해!
(3)
그 세계에서 얻은 지혜 중에, 신에 의해 호리병 속에 갇힌 악마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악마는 좁고 어두운 호리병 속에 갇혀 긴긴 시간 동안 구원의 날을 기다렸습니다. 처음의 천년 동안은 구해 준 이의 호의를 은혜로 받아들이고 명예와 재물을 후하게 베풀어 갚겠다고 다짐하였고, 다음의 천년은 곱절의 은혜로 갚으려 하였고, 기다리기에 지친 세 번째 천년부터는 누구든지 자신을 호리병 속에서 꺼내 주는 이를 원수로 대하리라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세 번째의 천년도 끝나갈 무렵에야 악마는 한 어부에 의해 구함을 받지만 맹세대로 은혜를 원수로 갚지는 못하고 어부의 영악함에 속아 -“저 좁은 곳에 당신 같은 위대한 분이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게 사실이라면 다시금 원래의 모습이 되는 걸로 증명을 해보이시라”는- 다시금 호리병 속에 감금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고 오기를 부리게 될 만큼 긴 시간 동안을 기다림 속에서 지냈으나 은원 간의 어느 쪽도 집행해 보지 못하고 다시금 기다림의 지옥 속에 빠지게 되는 순진한 악마였던 것입니다.
영겁의 시간 동안 악마는 광명을 기다릴 것입니다. 가엾게도 은혜의 천년과 곱절 은혜의 천년, 복수 천년의 상상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할 것입니다.
과거의 빛을 보는 속임수 속에 현재의 내가 있었습니다. 하기는 우리는 언제나 과거의 빛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은 순진한 악마였을 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우주의 생명활동의 기준 축인 빛이 출발한 장소와 시간에 따라 선후의 가름이 있음을 깨달은 것은 고독을 자초한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때의 사건이 누이의 자살과 내 교수대행으로 결말이 난 후, 문득 세계를 바꾼 나는 재상봉의 우연을 기다리는 외로운 별이 되어 있었습니다.
덜컥! 교수대의 발판이 떨어지고 허공에 매달린 내가 목에 감겨 오는 밧줄로부터의 고통에 못 이겨 한동안 몸부림을 친 끝에 맞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 경이로운 행사는, 나를 그 시대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일순에 한 세계가 마감되고 모든 풍경이 새로워짐을 느꼈습니다. 한 줌의 명예와 한 조각의 빵과 한 마디의 달콤한 말에서 행복을 찾던 그곳에서의 시간은 찰나의 순간 공허로 사라지고, 주관에 의해 사건을 조망하는 본래의 별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때에 그곳에서 가졌던 생명행위는 우주의 영겁한 연륜에 비하면 참으로 하찮은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 짧은 경험이 생애 전부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데 지성을 가진 자의 슬픔이 있었습니다. 나는 기다림이 있기에 슬픈 별이 되었습니다. 영원을 달려도 끝을 볼 수 없는 광활한 우주에서 다시금 누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우연을 바란다는 것은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기다림을 자초하여 끝없는 관조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우연이 같은 상황 하에서 다시금 발생하는 일이 결코 있을 수 없는 진행형 우주에 속해 있는 우리로서는 헛되이 흩어질 꿈에 지나지 않을 슬픈 기다림의 관조를.
다소간의 기쁨과 더욱 많은 상실이 있던 세계, 한때 살았던 그 세계에서의 시간과 사건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를 수없이 분석해 보았습니다. 어떠한 불완전한 충동에 의해 출현했던 것인지를 밝혀내는 일은 차치하고, 그곳에서의 생명행위가 찰나 속의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임을 전제로 하고서도, 내 그리움은 무한인 양 긴 기다림으로 진화해 가고만 있었습니다.
떠나는 자는 돌아올 것을 기약하여 운동을 시작한다고 그곳의 윤리관에서 배운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찾은 고향이 원래의 시간과 공간을 유지하지 못하는 우주에서는 회귀란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시행착오적인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회귀본능 또한 정신적인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나는 육체로부터의 해방을 얻은 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서러운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자청했던 한때의 내 기억을 그리움의 대상으로 믿으려 애쓰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역시 희망을 가져야 하였습니다. 모든 운동은 최초의 평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원래의 -원래와 비슷하다고 착각되는- 모습으로 돌아온 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대폭발 직전의 겨자씨만한 우주 속에 나와 누님이 있었듯이, 축소를 거듭하여 본래의 면목을 회복한 겨자씨 속 세계의 이웃에 누님이 있지 않다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별이 스쳐 갔습니다. 혹 누님일까 살펴보았지만 그런 행운은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것이었고 전혀 모르는 애송이별의 운동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란 그곳에서 배운 관념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나는 여전히 누님의 희고 부드러운 샅을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스쳐 간 별은 내 그러한 꿈을 절망으로 돌리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두루뭉수리의 돌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나와 관계가 없는 변화에서 의미를 찾는 일에는 진작 흥미를 잃고 있었으므로 나는 냉정하게 시각기관의 주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낙원이란 추구하는 자의 희망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 낙원은 누님과의 상봉을 말할 것입니다. 나는 열심히 원을 그려 제자리를 찾았지만, 내가 그린 원이 완전한 것임을 증명할 공식을 모르는 슬픈 별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