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읽은 책 너와 나의 비밀 나정윤 후원 회원
일곱 살 오스카의 비밀 비센테 무뇨스 푸에예스 글|노에미 비야무사 그림|김수진 옮김|꼬마이실
엄마 엄마 거실 불 하나는 켜 주세요. 엄마 엄마 문 닫지 마세요.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사람도 없는 거실 불을 환히 켠 채 문을 활짝 열어 놓고도 아이는 몇 번을 엄마를 부른다. 왜 그러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살포시 무시해 준다. 밤은 늦었고 나의 체력은 방전됐으니까. 성의 없이 괜찮다는 말 몇 번 남겨 주고 친구들이 들려주는 괴담 따위는 다 지어낸 거라고 일러 주고 자리를 뜬다. 그러다 머뭇거리는 아이의 목소리가 내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도대체 몇 살인데 그러냐고 도대체 뭐가 무섭다는 거냐고 짜증 섞인 핀잔을 준다. 타당하기 그지없는 나이 공격에 아이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는다. 한참 후 조용해진 방을 들여다보면 잠들어 있는 아이. 뒤늦게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어찌 잠이 들었을까. 무슨 홍길동도 아닌데 무서운 것을 무섭다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꾸짖으며 다독이며 잠들었을까. 자신을 겁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아이는 겁쟁이가 아니다. 오스카가 겁쟁이가 아닌 것처럼.
오스카는 어른들도 또래 친구들과 싸우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아이다. 단지 정말 단지, 밤도깨비와 사자 얼굴을 한 우체통이 두렵다는 작은 비밀이 있을 뿐. 그래도 오스카는 행운이었다. 그에게는 매일 밤 함께 밤도깨비를 수색해 주고 에바와 함께 잠드는 진짜 이유를 눈감아 주며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려 주는 부모가 있었으니까. 그의 부모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의 눈이 아닌, 사자에게 카라멜을 던지던 그 시절의 눈으로 오스카의 공포를 바라보았고 이에 그것을 폄하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오스카는 두려움을 딛고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으며 결국 스스로 극복해냄으로써 한 단계 성장했다. 비단 오스카뿐이며 아이들뿐일까? 아이건 어른이건 우리 모두 자신만의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모두 마주할 수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그 감정의 구덩이에서 누군가의 이해와 따뜻한 포옹을 딛고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알 수 없는 불안증이 따뜻한 차 한 잔 속 이야기에 가라앉듯. 눈앞의 막막함이 작은 체온으로 녹아내리듯. 그런 생각을 하며 아이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지친 발걸음을 옮긴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허공에 둥둥 뜬다. 오늘도 늦어지는 남편이 들어왔을 때 너무 어두우면 좀 서운할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욕실의 작은 불을 하나 켜고 나서야 나도 잠이 든다.
그게 뭐라고. 참 많이, 참 쉽게 쓰는 말이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떠는 거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난리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무섭니,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우니. 나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뭘 그리 칼같이 굴었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 밤에는 엄마라는 부름에 지친 내색 없이 답해 주어야지. 아이가 불을 끄지 말라고 하면 속삭여 줄 것이다. 사실, 엄마도 작은 불 하나를 켜고 잔다고. 하지만 우리 같이 있으니 이제 너와 나 모두 괜찮을 거라고. |
첫댓글 와우 너무 멋지신거 아니에요? 자랑스럽네용^^
글속에서 정윤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네요. 씩씩한 어른인척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도 아이도 같은 감정속에서 살아가는 걸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음성지원이라는게 이런건가봐요. 그날의 목소리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싸우는걸 젤 무서워해서 늘 그런 상황이 되면 외면하는데요~ 그런 감정들을 숨기는 것도 참 힘들고 그래요. 하물며 아이들은요~ 각자 또 서로, 이해와 인정. 좋은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