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십자가의 길
시작기도
아버지 하느님! 저희는 그동안 당신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잘 가꾸어 나가기보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파괴해 왔고, 당신의 얼이 담긴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겸손 되이 당신 앞에 통회하고,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처 예수님 사형선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땅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한없이 내어 주었던 넉넉한 땅, 받아들이고 삭히며 좋은 것을 내어 주던 땅이, 쓰레기 더미에 눌려 신음을 하고 있습니다.
2처 예수님 십자가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농사꾼들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휘몰아친 태풍에 자식처럼 키우던 곡식 맥없이 쓰러지고, 물밀 듯이 밀려 온 수입농산물에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가슴, 그 누가 위로해 줄 수 있겠습니까?
3처 예수님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이 넘어지셨습니다. 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불도저로 밀어젖혀 동강이 나버린 산, 산짐승들이 살 곳을 맇고, 올가미나 덫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거기, 우리의 생명도 죽어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처 예수님, 성모님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만나셨습니다. 숲과 공기가 만나 울고 있습니다. 우리는, 내게 주어진 한 장의 종이가 나무의 속살이고, 나무의 잘려 버린 일생임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5처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졌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졌습니다. 환경단체, 시민단체, 농촌을 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이, 시몬처럼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6처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을 닦아 드렸습니다.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렸습니다. 늙고 병든 사람들, 장애인이라서 부끄럽고, 가진 것이 없어 거리로 내 몰린 사람들, 그들과 함께 계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눈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그들의 눈에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할 베로니카는 누구입니까?
7처 예수님 두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예수님 두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들녘이 죽어갑니다. 밭에 돋은 질긴 생명 잡초 원망스러워, 단 한번 뿌린 제초제에 누렇게 말라버린 여린 풀들은 한줌의 거름도 되지 못하고 죽어갑니다.
8처 예수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원하지 않은 아이라는 이유로, 내게 능력이 없어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판단에 의해 무참하게 죽어간 태아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9처 예수님 세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세 번째 넘어지셨습니다. 강이 넘어졌습니다. 골짜기마다 쳐 박혀 있던 쓰레기, 빗물에 떠밀려 온 날, 송사리 은어때도 허연 배를 드러내고 떠올랐습니다. 시커먼 거품을 물고 강은 말합니다.
10처 예수님,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옷 벗김을 당하셨습니다. 계곡이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산 그늘을 돌아 흐르던 맑은 물소리,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의 노랫소리, 산새소리 아우러져 그 아름답던 계곡에 사람들의 소리만 가득합니다.
11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의 팍팍한 매연,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매캐한 공장 연기, 이제는 정말 숨이 막힙니다. 단풍들기도 전에 열매가 익기도 전에 무너져 내리는 나무의 슬픈 몸짓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12처 예수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바다가 죽었습니다. 붉은 산호초 숲이 사라지고, 진주를 키우던 조개들이 독을 품어 안게 되었습니다. 왜? 누구 때문입니까? 핵 발전과 몰래버린 양심의 오물, 온갖 산업폐기물은 서서히 바다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바다 속은 죽음의 캄캄한 어두움이 있을 뿐입니다.
13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졌습니다. 하늘이 내려앉았습니다. 눈도 맞으면 안 되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산성비랍니다. 우리는 알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이라는 것을.
14처 예수님 십자가에 묻히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묻히셨습니다. 복제양 돌리가 만들어졌고, 복제 송아지 영롱이가 만들어졌습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합니다.
마침기도
우리가 상처 입힌 자연에 대해, 소홀히 한 생명에 대해, 진정으로 통회하고 그들을 내 형제 자매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너 없이는 내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동안 필요 이상의 탐욕을 부렸고, 아까운 줄 모르고 너무 많은 것을 버려왔습니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비축하지 않는 자연처럼 가난함을 지녀야 살 길이 보입니다. 욕심을 내지 않는 빈 마음이 생명의 길로 가는 길입니다.
안동교구 사목국에서 전국 생명`환경 신앙대회를 준비하면서 만든 ‘생명, 환경 십자가의 길’입니다.
저희 공동체 수녀님들과 십자가의 길을 바치면서 뒷 부분은 나름대로 조금 수정하였습니다.